‘지리산 공기’ 캔에 담는 마을을 찾아서
서울 ‘매우 나쁨’ 미세먼지 피하고파
지리산 경남 하동 화개면 의신마을로
공기 캔 만드는 마을 옛길 걷다 보면
가슴 후련한 맑은 공기, 그 맛은 뭐랄까
경남 하동군은 머리에 지리산을 이고 있다. 지리산과 맞닿은 면은 화개장터로 유명한 화개면이다. 화개면 1023번 도로는 전남 구례군과의 경계에서 지리산 국립공원을 잇는다. 길은 화개장터, 십리벚꽃길, 쌍계사 들머리를 지난다. 1023번 도로 끝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마을이 의신마을(화개면 대성리)이다. 이 마을은 지리산 벽소령 대피소와 세석 대피소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마을은 공기 좋고 물 좋기로 소문나 여름철 피서객들이 몰린다. 약 2년 전 지리산 공기를 담아 공기 캔을 만드는 공장도 들어섰다. 지난 4일, ‘매우 나쁨’ 수준(150㎍/㎥·세계보건기구 기준·서울시청 위치 기준 하루 평균치) 서울 미세먼지를 피해 의신마을로 향했다.
세석대피소 가는 길에서 본 의신마을. 김선식 기자. |
화개면 1023번 도로를 따라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를 지나면, 지리산 자락에 안겨 있는 의신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한가운데 박혀 있는 마을’이란 표현이 와 닿는다. 지리산 덕평봉 앞에 자리 잡은 마을엔 총 56가구, 196명이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 자랑을 부탁하면 “공기 좋고 물 좋고”라는 말이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다. 지난 4일 마을에서 만난 최진기(57) 이장은 “차에서 창문을 열고 마을로 들어오면 쌍계사 즈음부턴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기 좋다고 알려진 장소로 따라나섰다. 의신마을에서 벽소령 대피소로 가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500m가량 가니 계곡 건너편 소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는 큰 바위가 보였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던 서산대사(1520~1604)가 자주 찾았다고 알려진 ‘서산대사 명상바위’다. 서산대사는 16살에 의신마을에 있는 원통암에서 출가했다. 최 이장은 “저 소나무는 내가 어릴 때도 저 크기였다”고 말했다. 명상바위를 지나 산길을 따라 2.5㎞가량 가면 오른편에 3월 말 준공 예정인 설산습지 탐방로가 보인다. 그 반대편 산길을 따라 1㎞ 더 오르면, 공기 좋은 빗점골이다.
서산대사 명상바위. 김선식 기자. |
빗점골 주변에선 공기 캔에 담을 공기를 모은다. 2017년 6월30일 의신마을에 문을 연 공기 캔 만드는 업체 하동바이탈리티에어는 공기 포집 장소로 이곳을 택했다. 하동군이 2016년 9월 경남과학기술대 환경측정검사센터에 의뢰해 빗점골 주변 대기질 6개 항목(이산화황, 일산화탄소, 오존, 이산화질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6개 항목 모두 대기환경 기준값의 30분의 1에서 2분의 1 수준으로 낮게 나타났다. 6개 유해물질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하동군은 하동바이탈리티에어 투자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
황병욱 하동바이탈리티에어 대표. 김선식 기자. |
빗점은 여러 비탈 밑 자락이 한군데로 모이는 곳이란 뜻이다. 왼쪽부터 왼골, 산태골, 절터골, 천내골 등 네 개 골짜기가 빗점골로 모인다. 빗점골은 남한 빨치산 부대였던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1905~1953)이 경찰 토벌대에 사살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이현상의 은신처는 빗점골에서 산속으로 2.5㎞ 떨어진 곳으로, ‘발전소골’이라 불렸다. 당시 물레방아로 전기를 일으켜 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빗점골은 아직 푸른 잎이 돋아나지 않은 나무만 무성했다. 좁게 흐르는 계곡 옆으로 마을 상수도로 쓰는 검은색 호스만 돋보였다. 여기서 최후를 맞은 이현상을 떠올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한 차례 들숨으로 충분했다. 포만감인지 찜찜함인지 모를 마음을 안고 산에서 내려갔다.
공기 캔에 담는 공기를 포집하는 빗점골 주변. 김선식 기자. |
다시 의신마을로 돌아와, ‘서산대사 길’이라고도 불리는 지리산 옛길을 걸었다. 지리산 쪽 의신마을 끄트머리 ‘출렁다리’를 건너면 반달곰 생태 학습장이 보이는데, 그 옆으로 난 오솔길이다. 옛 초등학생부터 봇짐장수들, 마을 주민들이 1972년 신작로(현재 1023번 도로)가 놓이기 전까지 이 길로 마을 밖 학교나 시장을 다녔다. 옛길은 돌들이 반반하게 박혀 있는 폭 50㎝가량의 좁은 길이다. 길 오른편엔 키 큰 나무들이 깎아지른 언덕에 기울어 자라고 있다. 이따금 짧은 계단을 오르내리다, 긴 오르막과 내리막 계단, 비탈길을 걷다보면 50분 정도 걸려 서산대사 의자 바위를 만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의신사를 불태우고 범종을 가져가려 하자 서산대사가 도술로 범종을 의자로 바꿨더니 왜군들이 혼비백산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서산대사 의자바위. 김선식 기자. |
옛길은 1023번 도로 위 신흥교에서 끝난다. 1시간30분간 옛길을 걷는 동안 사람은 보지 못했다. 길을 물을 사람이 없었기에, 서산대사 의자바위를 지날 무렵 ‘지금 이 길이 전남 구례군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잠시 막막했다. 가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면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두세 차례 새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숨이 편안해졌다. 경로당에서 만난 주민 신말순(80)씨의 말이 떠올랐다. “마을에선 숨쉬기가 편해요. 바람이 살살 부는 정자에 앉아 있으면 천지가 내 마음에 들어온 것처럼 포근한 기분이 듭니다.” 들숨과 날숨에 온전히 집중하며 30여분 걷다보니 콧속 깊숙이 부딪히는 공기가 청량하다. 선선한 날씨에도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숨찬 가슴은 공기가 비워진 듯 채워진 듯 가벼워졌다. 오롯이 숨에 집중하며 걷다보면, 오랜 갈증을 달래는 생수 한 모금처럼 공기가 달다.
누가 공기를 판다고요?
경남 하동 의신마을 들머리에는 파란색 단층 건물이 있다. 공기 캔 제조업체 하동바이탈리티에어의 115㎡(35평) 규모 공장이다. 캐나다 공기 캔 제조·판매업체 바이탈리티에어, 경남 하동군, 건강기능식품 제조·판매업체 에스엘(SL)바이오텍이 각각 50%, 40%, 10% 지분을 갖고 있다. 공기 캔 제품 ‘지리에어’는 2017년 10월부터 본격 판매됐다. 지난 2월 초 기준 온라인 쇼핑몰 100곳에서 판매하며, 한 캔은 120번(1번에 1초 기준) 마실 수 있다고 업체는 설명했다. 입을 벌리고 스프레이처럼 뿌려 마시면 신선한 산 향기가 난다. 제품명은 ‘지리에어’. 3ℓ 제품 기준 9900원. 지난 4일 황병욱(54) 하동바이탈리티에어 대표를 만났다.
캔 제조 과정은?
″압축기로 67ℓ 실린더에 지리산 빗점골 주변 공기를 250bar 압력으로 담는다. 실린더에 담은 공기를, 공장에서 325㎖ 캔에 공기 3ℓ(대기압 기준)씩 나눠 담는다.″
지리에어 효능은?
″운전, 업무, 학습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고 재충전하는 용도다. 난 장거리 운전할 때 커피 대신 공기를 마신다. 커피는 차가 흔들리면 흘러서 불편한데 공기 캔은 편리하다.″
캔 가격이 비싸지 않나?
″결국 시장의 크기를 가격이 결정할 것이다. 설비 대형화, 수요 증가로 가격을 내리는 게 관건이다. 한 캔 가격이 1700원 또는 2700원 정도까지 내려가면 살 거라고 본다.″
공기 캔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한 캐나다 석유 생산 업체에 몸담았다. 평소 유산소 운동이나 운동 생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캐나다 캘거리 집 앞에서 로키산맥을 보며 조깅하다가 맑은 산 공기를 집안에 들일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2015년 초 우연히 바이탈리티에어와 인연을 맺었다. 이 회사 누리집에서 시이오 대담을 보고 ‘옳다구나’ 했다. 바로 연락했다. 바이탈리티에어의 아시아 담당 공기 캔 수출 에이전시를 운영했고, 여기까지 왔다.″
향후 계획은?
″이 사업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공기 캔 사업과 별개로 ‘에어링 카페’(공기 마시는 카페)를 열 계획이다. 지리산 공기로 실내를 채우고 안마의자에서 쉬는 카페다. 공기 캔 등 하동 특산품도 판매할 생각이다. 서울 소재 백화점 등 점포를 알아보고 있다.″
의신마을 여행 방법
- 가는 법 : 화개 시외버스공용터미널과 의신마을을 오가는 군내버스(편도 1700~1800원)가 하루 6차례씩 운행한다. 서울 남부터미널과 화개 시외버스터미널을 오가는 시외버스(편도 일반 1만9700원, 우등 2만3600원)는 하루 12차례씩 운행한다. (055-883-2793)
- 볼거리 :
- 의신마을 끝 벽소령길 들머리에 지리산 역사관이 있다. (월?목 휴관/오전 10시~오후 5시 개관/무료/055-880-2954)
- 겨울잠 깬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제2회 곰깸축제는 4월13~14일 지리산 역사관 옆 야외무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리산 역사관 길 건너편엔 반달가슴곰 생태 학습장이 있다. (3월15일 이후~12월 중순 개장/월요일 휴무/매일 11시?14시 개장 및 해설/3000원/02-883-3580)
- 먹고 묵을 곳 : 여름 성수기를 제외하곤 의신마을 안 숙소와 식당은 거의 영업하지 않는다. 자동차로 25분 거리에 있는 화개장터 주변에 숙소와 식당이 많다.
공기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하층부를 구성하는 무색, 무취의 투명한 기체. 주성분은 약 1 대 4 비율로 혼합된 산소와 질소. 그 밖에 소량의 아르곤·헬륨 따위의 불활성 가스와 이산화탄소가 포함돼 있음. 최근 초미세먼지·미세먼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먼지를 피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음.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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