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니라는 ‘치매 남편’과 자기가 치매라는 ‘우울증 아내’

[라이프]by 한겨레

[토요판]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④ 알츠하이머와 우울증 부부


외도 의심하는 피해망상 진성씨

기억력 저하 심각한 아내 영자씨

알츠하이머-우울증 감별해봐야

위험 노출된 노부부 꾸준히 늘어

한겨레

고령화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알츠하이머와 우울증에 동시에 노출된 노부부도 꾸준히 늘고 있다. 부부끼리 긍정적인 대화, 꾸준한 글쓰기와 책읽기는 치매와 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2019년 여성의 기대수명은 86.3살로, 남성 80.3살보다 6살 더 많습니다. 노부부만 사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치매는 점점 더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치매는 환자 당사자뿐 아니라 배우자 삶의 질도 현저히 떨어뜨립니다. 영자씨와 진성씨 부부는 이제 7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직장에서 정년을 잘 마치고 나서 퇴직 후에도 건강하게 살아왔고 자녀들도 모두 출가 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걱정할 것 없이 무척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의심하는 남편에 절망감까지

문제는 작년부터 남편 진성씨가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닌지 의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한번은 집에 우편물이 잘못 도착해 영자씨가 반납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진성씨는 영자씨를 의심하며 우편물을 보낸 남자와 사귀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물었습니다. 영자씨가 나이 일흔이 넘어 그런 일은 전혀 없다고 해도 진성씨는 집요하게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자씨도 처음에는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진성씨의 행동은 점점 정도가 심해져서 영자씨가 집 밖에 나가기만 하면 연락을 해서 어딘지 확인을 하고 남자와 함께 있지 않은지 묻곤 했습니다.


영자씨는 남편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젊을 때부터 진성씨는 술을 좋아해서 지금도 식사 때마다 반주를 하고, 하루에 한 갑 정도 흡연을 할뿐더러 고혈압과 당뇨까지 있는 상황이어서 건강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영자씨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진성씨는 자신은 괜찮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병원행을 거듭 거절했습니다. 그 후로 진성씨는 말을 할 때마다 단어를 잘 찾지 못해서 “저… 그거… 왜 있잖아” 등 횡설수설하거나 둘러대는 일이 잦아졌으며 급기야는 집 밖에 나갔다가 아파트 다른 동의 같은 층 집 초인종을 눌러서 이웃 주민이 연락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영자씨는 집요하게 자신을 의심하는 남편이 치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진성씨와 같이 사는 것이 짐같이 느껴지고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식욕이 떨어져서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진성씨는 “어디 가서 그 남자와 재밌게 놀고 와서 집에서 누워만 있냐”고 타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자씨 또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서 진성씨처럼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고 방금 양치질하고 나서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영자씨는 진성씨가 치매가 아니라 사실은 자신이 치매가 아닌지 걱정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바쁜 자식들과 상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남편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치매 초기 남편과 우울증 아내

노년기에 생기는 치매와 우울증은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치매는 ‘해마’의 위축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대뇌에서 저장하는 장기 기억은 초반에는 떨어지지 않고 잘 유지됩니다. ‘해마’는 뇌의 양쪽에 하나씩 있으며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단기 기억 저장을 담당하는 반도체인 램(RAM)과 방향감각을 인지하는 지피에스(GPS)의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진성씨는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고 해마뿐 아니라 전두엽의 위축도 발견되었습니다. 기억력 검사상 초기 ‘알츠하이머 치매’에 해당하는 기능 수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억력 장애, 혼동, 공간 지각력 장애, 지남력(시간·장소·상황 등을 기억하는 능력) 장애, 이름 대기 등의 언어 기능 장애, 계산 능력 저하, 판단력의 와해가 점진적으로 발현되는 가장 흔한 치매를 말합니다.


전두엽은 뇌의 이마 쪽에 위치하는 부분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진성씨는 오랜 음주와 흡연으로 전두엽이 상한 상태라는 소견을 보였습니다. 치매에 전두엽 손상이 겹치면서 의심 증상이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의심 증상 중에 가장 흔한 것은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는 부정망상과 내 물건을 누가 훔쳐갔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이 있습니다. 전두엽에 손상이 오면 이전과는 다르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고 화를 많이 내기도 합니다.


반면에 영자씨도 자신이 치매가 아닌지 검사를 원해 함께 진행했습니다. 자기공명영상에서 해마의 위축이나 전두엽 손상은 없었으나 기억력은 다소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검사상 치매 소견은 없지만 우울증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우울증이 오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멍해져서 방금 들은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영자씨는 자신이 치매가 아니라는 소식을 듣고 무척 안심했습니다. 다만, 우울증이 젊을 때 발병한 것은 치매와 관련이 없지만 65살 이후 초발한 경우에는 치매의 위험이 2배 정도 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합니다. 혈압이나 당뇨가 조절이 안 되거나, 신체 활동을 안 하는 경우에는 위험이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뇌 영상을 촬영하기 전에도 어느 정도 환자와의 상담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치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병이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이에 비해서 우울증 환자는 오히려 자신이 치매가 아닐까 걱정을 더 많이 합니다. 그래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치매인 환자들은 가족들에 의해 억지로 오게 되는 경우가 많고, 우울증인 환자들은 자신이 치매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해마 손상 여부인데 해마의 기능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기 기억이 떨어지는 것은 비슷하지만 노인 우울증에서는 방향감각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진성씨가 ‘집 밖에 나갔다가 아파트 다른 동의 같은 층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일’은 치매 환자에게는 있을 수 있지만 노인 우울증 환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증상이지요. 때로는 치매와 우울증이 함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한 감별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 모두 진단·치료 통해 호전

요양보험 혜택과 자녀들도 관심↑

대화 늘면서 일상적 불화도 감소

최고 예방책은 운동·독서·글쓰기

일상적 독서·대화·산책이 최고 예방약

치매 환자에게서 망상이 나타나면 배우자가 매우 힘들고 망상의 내용이 아니라고 설득을 해도 도저히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서 황혼 이혼을 하거나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환자는 젊을 때의 성격이 더 강해지고 집요해지기도 합니다. 배우자가 아무리 환자의 행동을 바꾸려고 설득해도 바뀌지 않아서 오히려 지치고 진이 빠지게 됩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치매에서 생기는 정신적인 증상을 치매의 행동심리증상(BPSD)이라고 합니다. 성격 변화, 초조 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공격성 증가, 수면 장애, 무감동 및 무관심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섬망’이라는 현상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섬망은 치매 증상과 유사하지만 해 질 무렵부터 무척 심해지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헛것을 보거나 듣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뼈에 골절이 생기거나 심장질환이 있을 때도 흔히 나타납니다. 치매에서 발생하는 의심은 피해망상의 일종으로 섬망과는 다르고 하루 종일 지속됩니다.


진성씨는 그동안 치매 증상으로 인해 혈압, 당뇨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음주와 흡연은 더 늘었습니다. 그 결과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졌습니다. 치매와 치매의 행동심리증상에 대한 치료를 받으면서 영자씨에 대한 의심이 없어지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영자씨도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남편의 건강과 영양 상태를 세심하게 챙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성씨의 의심이 줄어들면서 마음이 무척 편해졌습니다. 부부가 함께 밖에 나가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식들도 결국 두 분의 상태를 알게 되었고 자주 집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진성씨는 담당 의사를 통해서 소견서를 발급받아 제출하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장기요양요원이 가정을 방문하여 신체 활동 및 가사 활동, 인지훈련을 지원하는 방문요양 서비스를 무료로 지원받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았지만 이제는 우울증도 호전되고 요양요원의 도움으로 끼니를 거르지 않아서 건강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는 노트르담수녀회 수녀들을 통해 알게 된 치매 예방법 연구로 유명합니다. 국립노화연구소 자금을 받아 노트르담수녀학교 출신 678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언어능력이 노년의 인지 기능 및 치매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연구에 참가한 수녀들은 모두 75살 이상으로, 사망 후 뇌를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데도 서약했습니다. 스노든 박사는 수녀들이 쓴 글에서 단어 수가 풍부하고 어휘력이 유창할수록 치매에 적게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대부터 쓰기 시작한 수필과 일기를 살펴보았을 때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된 수녀의 80%는 나중에 치매에 걸렸지만, 글의 어휘가 풍부한 수녀들은 10%만이 치매가 발생했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할수록, 적정 체중일수록,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남아 있는 치아가 많을수록, 어휘를 많이 사용하고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쓸수록 치매에 덜 걸린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부가 서로 긍정적인 대화를 많이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치매와 우울증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진성씨와 영자씨는 매일같이 가족 앨범을 보면서 예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족사진에 나온 사람의 이름을 맞혀보기도 하고 어디에 사는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또 눈이 어둡기는 하지만 책과 신문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나온 이야기를 서로 설명해주기도 하고 토론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리고 낙상 방지를 위해서 다리 근력을 강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함께 아파트단지 안에서 산책을 합니다. 진성씨의 기억력은 더 떨어지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고 영자씨는 기분도 좋고 의욕도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겨레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지은이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에 관해 설명합니다. 매우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2022.02.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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