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댁 장롱? 세대 넘어 ‘영원히 깨질 수 없는’ 자개의 아름다움

자개 공예가 ‘할머니 장롱 무늬’를 넘어 젊은 세대의 레트로+힙 아이템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레트로+힙’ 자개 공예 인기


신석기시대부터 조개껍데기 장식 

K컬처 인기에 젊은층도 빠져들어

세대 간 잇는 소통 수단 구실도

한겨레

취향대로 고급스러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자개 공예의 큰 장점이다. 동물 문양의 자개 공예품을 만든 수강생.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듯 가늘고 약한 조개껍데기 조각들이죠. 하지만 모이면 천년의 시간에도 변치 않는 강한 빛깔을 만들어냅니다.”


지난달 19일 찾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자개 공방 ‘휘호’. 공방 주인 홍현아(47)씨는 책상 위에 미세한 자개 조각들과 작은 핀셋을 올려두며 말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 우연히 자개의 매력에 빠져 2년 전 공방까지 차린 홍씨는 “요즘 케이(K)컬처 인기가 높아지면서 자개를 배우고 싶다고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며 “특히 한국 고유 문양의 의미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자개 공예는 역사가 상당히 길다. 기원전 3천년 이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조개껍데기를 장식용으로 활용한 문화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 무덤에서 자개 장식품이 발견됐고, 고려시대에는 자개 칠기가 크게 발전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화려한 전통 공예품이면서도, 동시에 ‘할머니 집 장롱 무늬’로 각인되며 누구에게나 익숙한 존재이기도 하다.



한겨레

다채로운 자개 공예품들. 개성 강한 문양이 돋보인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홍씨는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자개 무늬가 ‘레트로 감성’과 ‘힙한 분위기’를 동시에 지닌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뮤지엄 숍에서는 자개소반 디자인 무선충전기 등 자개 소품과 자개 디자인 스티커 등이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열풍까지 더해져 광풍 수준이다.


직접 자개 공예를 해보기로 했다. 넓은 공간을 미세한 자개 조각으로 채우기 위한 디자인 작업부터가 난관이었다. 홍씨가 미리 잘라둔 조개 조각을 이리저리 배열하면서 디자인했다. 학이나 거북 같은 전통 무늬나 십이지신 조각을 먼저 배치한 뒤, 남은 공간은 얇고 긴 자개 조각을 짧게 잘라 길게 무늬를 이어 붙이는 ‘줄음질’과 더욱 미세하게 자른 조각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할패법’을 반복하며 공간을 채웠다. 집게에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만큼 약한 재료지만, 마무리로 레진 코팅까지 입히자 단단한 조개껍데기의 질감과 빛깔이 되살아났다.

의미까지 담은 ‘힙한’ 노리개

최년희(33)씨는 박물관에 근무하던 시절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자개의 매력을 차츰 알게 됐다. 오묘한 빛깔의 아름다움에 반해 교육 프로그램에 자개를 접목한 게 시작이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우리 전통 유물과 자개를 접목한 케이 전통 굿즈 브랜드 ‘희뮤즈’를 론칭했다. 주로 달토끼, 용, 호랑이 등 전통 무늬를 ‘자개 노리개’ 형태로 재해석하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어 자개 제품을 소개했다. 최씨는 “얼마 전 한 독일인 고객이 프러포즈용으로 반지 대신 호랑이 자개 노리개를 선물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며 “액운을 막아주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의 호랑이가 새겨진 자개를 선물하며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개처럼 평생 함께하길 원한다는 진심을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자개 공예품을 만들 때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한겨레

자개 공예품을 만들 때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달토끼와 호랑이, 용, 거북처럼 한국의 전통 문양에는 저마다의 상징과 의미가 담겨 있잖아요. 자개 공예는 이런 문양을 그대로 살려내기 때문에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메시지를 전할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젊은 세대들은 취미 생활을 하더라도 마냥 가볍고 단순한 것보다 나름의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개 공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최씨는 ‘힙한’ 감성의 자개 제품들을 선보이는 데 주력한다. 얼마 전에는 한 문구업체와의 협업으로 ‘갓을 쓴 미키마우스’ 자개 노리개를 만들어 주목받았다. “요즘 세계적 열풍인 ‘케데헌’에도 등장한 갓의 인기가 높잖아요.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는 친근한 미키마우스가 갓을 쓴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한 데서 시작했는데, 역시나 반응이 뜨겁더라고요.”



한겨레

자개 공예 재료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한겨레

자개 공예 재료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빛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색감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 숍에 ‘파란 호랑이 자개 스티커’와 ‘자개소반 무선충전기’ 등을 납품해 박물관 전통 굿즈 품절 대란에 합류한 쉘랑 코리아의 조상명(48) 대표도 7년 전 자개의 매력에 푹 빠졌다. 빛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자연의 색감을 품고 있다는 점이 그가 꼽은 자개 공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조 대표는 “인위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요즘, 자연 그대로의 색감과 질감이 반영된 자개 공예를 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개가 문화유산이나 장식품으로만 머물기보다는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물건과 결합해 일상에 더 많이 쓰이길 원했다”고 전했다.



한겨레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판매 누리집 ‘국립박물관 문화상품’에 올라가 있는 ‘자개소반 무선충전기’ 이미지. 누리집 화면 갈무리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상징’을 찾고, 또 드러내길 좋아해요. 특히 전통 문양은 오랜 시간 이어져온 의미와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래서 까치와 호랑이 같은 전통 소재가 유행이나 ‘예쁘다’는 단순한 감각을 넘어 ‘힙하다’(감각 있고 세련되며 멋지다)는 복합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앞으로 젊은 감각의 자개 공예 소품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것이 조 대표의 목표다. 


“자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다양한 생활용품들에 자개를 접목하려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할머니 집 장롱’처럼 자개가 앞으로도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기억됐으면 합니다.”



한겨레

자개 공예품을 만들 때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한겨레

자개 공예품을 만들 때는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세대를 잇는 문화 연결고리

자개 공예는 이렇듯 옛 세대와 요즘 세대를 이어주는 문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백경신(49)씨도 이런 점에 끌려 자개 공예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공방을 운영하며 인스타그램에 ‘케데헌’에 등장하는 까치 호랑이 캐릭터를 자개로 구현해 젊은 세대들의 호응을 얻었다.


“자개 공예를 찾는 연령대가 어려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어린 친구들이 할머니 생신 선물용 자개 손거울을 만들러 왔더라고요. 소재는 전통적인 자개이지만 개성이 담긴 귀여운 캐릭터 모양도 담고 아기자기하게 꾸몄죠. 일종의 세대 간 소통 수단이 되고 있구나, 새삼 느꼈어요.”



한겨레

자신의 취향을 담아 완성한 자개 공예품. 염서정 스튜디오 어댑터

처음에는 호기심에 찾아왔던 사람들도 넓은 공간을 미세한 자개 조각으로 채우는 과정 그 자체에 매료된다고 백씨는 전했다. “자개 공예는 오랜 시간을 들여 작은 조각을 촘촘히 채워나가는 과정입니다. 작은 조각과 짧은 순간들이 모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자개를 체험하시는 분들은 인생살이와 닮았다고 해요. 이런 매력 덕분에 자개 공예가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도 사랑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장선희 자유기고가

2025.09.1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이 되겠습니다.
채널명
한겨레
소개글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이 되겠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오늘의 인기
    TOP10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