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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서양 억새 아래 인생사진 찰칵…‘인스타 핫플’ 태안

by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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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청산수목원에 있는 ‘팜파스그래스’ 구역. 빨간 의자까지 놓여 있어 인상적인 여행 사진을 찍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태안/박미향 기자 mh@hani.co.kr

연꽃과 잎이 무성한 호수 옆 둑에 살구색 문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일본 만화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끝이 된 문과 유사한 모양새다. 영화처럼 그 문을 열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짙푸른 초록색의 위엄을 자랑하는 벼들로 가득한 논이 눈에 들어온다. 폭염을 이겨낸 벼들이 당당하게 가을바람을 기다린다. 이 신비롭고 목가적인 풍경은 충남 태안에 있는 ‘청산수목원’이 빚어낸 장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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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수목원 안 호수와 논 사이 있는 둑에 세운 문. 박미향 기자

청산수목원은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가 주관한 ‘2023 대전충남 강소형 잠재관광지 발굴·육성사업’ 공모에 선정된 여행지다. ‘강소형 잠재관광지’는 여행지로서 성장 잠재력은 높지만 인지도는 낮은 곳을 말한다. 지역의 관광 균형발전을 꾀하고 관광을 통해 지역 인구감소에 대응하려는 사업이다.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디지털관광주민증’ 발급, 숙박이나 조식·체험비 등이 최대 5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되는 ‘살아보기 생활관광 프로그램 13선’ 등도 관광공사가 마련한 대책이다. 인구감소 문제를 푸는 열쇠로 관광이 주목받는 데는 강원도 양양의 사례가 본보기가 됐다. 2000년대 중반 서퍼들을 비롯해 여행객이 몰려들면서 한적했던 양양은 지난해만 130만명이 찾는 ‘핫플’이 됐다. 인기 여행지로 소문나면 체류 인구가 는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다. 행정안전부가 2년 전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개 중 한곳인 태안도 양양처럼 거듭날 수 있을까. 청산수목원을 중심으로 관광 전략을 세운 태안을 이틀간 다녀왔다.

태안의 전략 ‘사진 명소 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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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가 세월 싸움이에유.” 지난달 17일에 만난 청산수목원 신형철(59) 원장이 정감 어린 말투로 말했다. 13만㎡ 규모의 수목원에 황금삼나무, 홍가시나무, 앵초, 창포, 부들 등 나무와 야생화 600여종을 심고 키워온 세월을 두고 그는 ‘싸움’이라고 잘라 말했다. 부친이 농사짓던 땅을 1980년대부터 가꾼 형님 신세철 전 원장에 이어 지금과 같은 수목원으로 만드는 일은 그만큼 짜고 매운 일이었다.

“이제 지 따라 나서봐유. 안내할라니.” 수목원은 밀레의 정원, 삼족오 미로공원, 고갱의 정원, 황금삼나무 길 등으로 구성돼 있지만, 가장 돋보이는 데는 ‘팜파스그래스’ 구역이었다. 일명 ‘서양 억새’로 불리는 팜파스그래스는 벼과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코르타데리아 셀로아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남미가 원산지다. 높이가 2~3m나 되는 줄기 여러 개가 모여 하나의 큰 둥지를 이루는 형태다. 땅을 향해 늘어진 뻣뻣한 잎과 푸른 하늘 향해 새침하게 뻗은 화려한 은빛 꽃차례 등이 신기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팜파스그래스를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한 부부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빽빽한 줄기 사이에 붉은색 의자도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여행 인생컷 찍기에 더없이 최적화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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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수목원의 팜파스그래스 구역. 박미향 기자

이곳은 수목원을 세상에 알리는 데도 한몫을 했다. 신 원장은 2010년 우연히 ‘안면도쥬라기박물관’ 맞은편에 자란 팜파스 그래스 30그루를 발견하고 ‘저거 그림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2016년부터 에스엔에스(SNS)를 타고 촬영 명소로 유명세를 얻었다. 문득 팜파스그래스가 몇 그루일까 궁금했다. 그는 “암만 많든 적든 그림 나오는 게 중요하지유, 그루 수 의미 없어유!” 즉답을 피한 그가 자신의 다른 도전을 말했다. “곧 (종류가 다른) 직립성 팜파스그래스를 볼 수 있을 거예유. 바람에 강한 종이라 심었쥬.”


여행 사진 촬영지로 손에 꼽을 만한 곳이 수목원엔 넘쳐난다. “추석 때쯤 핑크뮬리가 피면 장관이지유.” 핑크뮬리는 핑크색 꽃이 인상적인 벼과 다년생 식물이다. 그는 최근 이웃의 논을 빌려 벼를 심고 그 앞에 동남아풍 정자를 지었다. 살구색 문도 세웠다. 초승달 모양의 큰 의자도 만들었다. 하나같이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장소다. 수목원 안의 작은 오솔길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였다는 그의 자랑이 수긍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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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수목원 논 사이에 만든 동남아풍 정자.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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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수목원에서 가을이 되면 누렇게 익은 벼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반달 모양 의자. 박미향 기자

이쯤 되면, 태안이 선택한 관광 전략은 ‘여행 사진 명소를 늘리는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태안군청 관광진흥과 김미선 관광마케팅 팀장은 “임팩트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여행지는 또 찾게 되고, 체류 시간도 길어질 것”이라며 “그 사진이 에스엔에스를 타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학승 한양대 교수(관광학부)도 “지금 여행 트렌드는 엠제트 세대가 주도하고 있고 그들에게 에스엔에스는 자기 피알(PR)의 장이며 ‘빛나는 순간에 여행하고 있는 나’를 담은 여행 사진은 효과적인 도구”라며 “바로 관광 효과로 이어지기에 지자체들이 대응에 나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여행 사진이 주인공인 여행서도 출간됐다. ‘에이든 인스타 핫플 국내여행 가이드북’은 교통편부터 소개하는 일반적인 여행서와 달리 해시태그 중심의 여행사진 3500장을 소개한다. 출간 한달 만에 1쇄 3천부가 다 팔렸다고 한다. 이 책을 펴낸 타블라라사의 홍경진 이사는 “2018년부터 여행 목적 중심의 콘텐츠 지도를 만들면서,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왔는데 2~3년 전부터 ‘인스타 핫플’을 넣어달라는 요구가 많아 책까지 내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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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참맛은 ‘사진 플러스 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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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맞닿은 듯한 신두리 해안사구. 사구 데크 길을 걷다 보면 개미귀신 등 희귀 곤충을 발견한다. 박미향 기자

태안에는 여행 사진 명소가 더 있다. 원북면에 있는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된 국내 최대 모래언덕이다. 본래 군사보호구역이었으나 1990년대 해제됐다. 푸른 하늘을 등지고 펼쳐지는 사구와 구불구불 온화하게 구부러진 데크 길은 그 자체로 한폭의 그림이다. 이곳도 인기 웨딩 촬영지라고 한다. “비가 와도 많이 찍어요. 하루에 10쌍이 찍을 때도 있어요.” 안경호 신두리 해안사구 생태해설사가 말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빙하기 이후 약 1만5천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 해설사는 “해당화 군락지도 있고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매꽃 등 희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개미귀신, 표범장지뱀, 금개구리 같은 생물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라고 설명했다. 사구 식물들은 뿌리가 가늘고 길다. 가닥 수도 30~40개가 넘는다. 수분을 흡수할 기회가 적은 사구 식물의 특징이다. 그 흔적을 데크 길을 걸으면서 발견할 수 있다. 해설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옛날 풍경도 알려줬다. “몇달 간격으로 모래 산이 이쪽에 생겼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옮겨 다녔어요. 계절풍 때문이었죠. 그때는 여기 길도 집도 없었고요. 모래바람이 민가에 불어 피해가 크니까 1960~70년대 방풍림을 조성했지요.”


신두리 해안사구 모래는 밀가루보다 곱다. 그 곁을 지키는 나무들은 늠름하다. “신기하쥬? 이 나무하고 저 나무 동갑내기예요. 그런디 굵기가 다르쥬. 영양을 잘 찾아 받아먹은 놈은 굵고 아닌 놈은 그보다 가늘어요.” 사구 여행지에서만 볼 수 있는 숲 풍경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엔 해무도 깔린다. 신비로운 장면이 연출된다. ‘천상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라고 한다. 해무를 둘러싼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옛날엔 여행객이 산불 난 줄 알고 신고도 많이 했어유. 출동 엄청 했지요. 지금은 연락 와도 몇가지 확인하고 ‘아니유’ 하고 안 가유.” 그의 설명은 들을수록 빠져든다. 사구 데크 길 여행 마지막 구간에 도착하면 한가롭게 풀 뜯고 있는 건장한 황소들이 작별 인사를 한다. 쉼터가 따로 없다. 풍경이 마음에 평화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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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꽃지해변 노을. 물이 빠지자 여행자들이 갯바위로 걸어가고 있다. 박미향 기자

청산수목원과 신두리 해안사구가 낮 촬영 명소라면 꽃지해변은 근사한 저녁노을 찍기에 적합한 곳이다. 예부터 해변 주변에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 ‘꽃지’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빠지면 갯바위가 드러나는데, 거기를 걷는 이들을 카메라 프레임에 넣고 노을을 배경 삼아 셔터를 누르면 낭만 가득한 여행 사진이 탄생한다.


여행의 본질적인 가치가 ‘인스타그램용 사진 촬영’에 있지는 않을 터. 여행 사진이 견인차 노릇을 해 여행지에 더 머물면서 지역민과 교류하는 게 여행의 참맛이다. 사진만 찍고 떠나는 것은 앙금 없는 단팥빵을 먹는 것처럼 싱거운 일이다.


태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알뜰한 당신 주목! 대한민국 구석구석 싸게 다니는 법

여행 비용을 아끼려는 알뜰족에게 요긴한 정보가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역 인구감소 대응책으로 마련한 관광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다.


‘디지털 주민증’ 발급받고 할인받고


‘디지털 관광주민증’은 지역의 관광 명소를 방문하고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할인쿠폰팩’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모바일 앱이나 누리집에서 관광지를 선택해 디지털 관광주민증과 할인증을 발급받고 관광지 입장권, 숙박, 식음, 체험 행사 등 여행 편의시설 할인을 받는다. 디지털 관광주민증으로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은 △강원 평창 △충북 옥천 △부산 영도구 △인천 강화 △강원 정선 △충북 단양 △충남 태안 △전북 고창 △전남 신안 △경북 고령 △경남 거창이다. 평창 발왕산 관광케이블카 30%, 옥천 전통문화체험관 숙박 30%, 태안 청산수목원 입장권 10% 할인 등 모두 200여건의 할인 혜택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에서 살아보기


‘살아보기 생활관광’이란 최소 3일 이상 여행지에 머물면서 그 지역 역사와 미식 등을 경험하는 체류형 프로그램이다. 강원 속초, 충북 영동·청주·충주, 충남 예산, 전북 군산·전주, 전남 나주·해남, 경남 남해·사천·통영·함양에서 진행된다. 속초 마을 부녀회가 특산물로 차려주는 조식, 해남의 바나나농장 체험, 함양의 종가댁 장 담그기, 통영의 전복 따기, 바리스타 자격증 딴 영동 지역 할머니들의 커피 맛보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최대 5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마련돼 있다. 자세한 정보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