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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먹다 남은 치킨도 ‘황비홍 고추’를 만나면 라조기가 된다

by한겨레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라조기


완제품으로 파는 고추튀김

닭고기 바삭한 맛 극대화

적당히 매워 맥주와 찰떡

한겨레

황비홍 고추를 넣어 조리한 쓰촨식 라조기. 박찬일 제공

요즘 학생들은 떡볶이집에 잘 가지 않는다. 대신 마라탕집에 간다. 마라는 마취될 듯 얼얼하고 맵다. 훅 하고 들어와서 쭉 간다. 마라탕을 한국에 가져온 사람들은 이렇게 유행할 줄 몰랐다고 한다. 마치 칭따오맥주의 대히트를 예견하지 못했던 것처럼.(국내에서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아주 작은 주류수입사가 계약을 따냈다고 들었다. 수입 칭따오맥주는 국내 양꼬치집의 확산과 함께 규모가 커졌다.)

매운맛의 성지 쓰촨

마라는 쓰촨(사천)의 맛이다. 쓰촨이 어디인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보통 중국 하면 베이징과 상하이 중심으로 관광 가거나 사업차 방문하기 때문이다. 쓰촨은 서쪽으로 상당히 멀고, 한국에서 가는 여행자나 방문객이 적어서 비행기 요금도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맛으로 유명한 동네다. 중국에서도 쓰촨 안 가본 사람이 대부분인데, 쓰촨 음식 인기는 전국적이다. 마치 한국 대도시에 전주식당이나 목포식당이라는 상호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땅도 넓고 맛있는 요리가 제각각인 중국에서도 쓰촨만큼은 그냥 ‘먹어주는’ 요리다. 요리 잘하기로 유명한 베이징·상하이에도 쓰촨요릿집이 아주 옛날부터 인기가 있었다.


1990년대 초, 베이징에서 현지 사업가가 사는 밥을 먹었다. 당연히 베이징 요리를 먹을 줄 알았는데 쓰촨요릿집에 데려갔다. 물론 쓰촨요리라고 다 매운 건 아니다. 현지인 친구 말에 의하면 안 매운 것도 절반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매운 걸 확실히 많이 먹긴 먹어서 쓰촨성 보건당국이 공익광고로 “매운 것 좀 어지간히 드십시다!”라고 캠페인을 했단다. 공식 통계인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쓰촨성의 위염 약 처방량이 다른 성보다 많이 높다”고 한다. 속 쓰려서 약국 가면 약사님이 약봉지 챙기면서 “매운 거 조심하세요” 하는 걸 보면 ‘매운맛=위통’은 맞는 이야기 같다.


그 현지인 친구와 한국의 중국집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기억나는 대목.


“한국의 대다수 중국집은 쓰촨요리를 한다고 써 놓았는데, 한번도 진짜를 만난 적은 없다”, “쓰촨요리 비슷하게 나온 것이 있긴 하다. 그러나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마파두부 같은 것”, “마라탕집에서 하는 쓰촨요리는 상당히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본격적이지는 않다. 적당히 비틀어서 만든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설명했다. 우리나라 오랜 중국집은 산둥식을 기본으로 한다. 쓰촨식이 해방 후 알려지면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미 쓰촨요리가 인기를 끌던 일본에 취업했다가 돌아온 화교 셰프에 의해 쓰촨식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한국인은 본격적인 쓰촨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쓰촨 후추라고 부르는 ‘마’ 성분(산초가루라고 하지만 실은 다른 종인 제피가루)이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가게에서 쓰촨요리를 하면 ‘마자오’니, ‘화자오’니 하는 제피 성분은 빼고 만들었다. 고추 때문에 맵긴 한데 얼얼하지는 않았다.


그때 크게 히트친 요리가 ‘매운 닭볶음’이라는 라즈지, 즉 라조기다. 1990년대부터는 배달 요리로도 아주 대박이 났다. 라즈지는 본토 발음이고, 라조기는 한국의 화교들에 의해 만들어진 발음이다. 하여튼 라조기를 시키면 큼직하게 썬 마른 고추가 일품이었다. 그냥 시장에서 보는 커다란 마른 고추를 적당히 잘라서 튀긴 닭고기와 볶아내는데, 정작 닭보다 그 고추가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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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라조기의 비밀이 밝혀진 순간

그러던 어느 날, 본토에서 온 라조기를 먹어보게 됐다. 더 맵고 향이 강한 라조기, 아니 라즈지. 보통 한국 라조기는 닭고기에 피를 꽤 두툼하게 묻히는데 아마도 탕수육에 쓰는 그 물반죽의 변형 같다. 하지만 본토에서 온 요리사는 전분을 묻히는 둥 마는 둥 해서 아주 바삭하고 건조하게 튀기고, 역시 고추를 곁들인다. 바삭바삭아사삭. 이런 소리가 나는 요리가 라즈지다. 특히 그 고추가 바삭한 데다가 아주 양을 많이 넣어서 그것만 집어먹어도 이과두주 두어병을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쓰촨에서 즐겨 쓰는 땅콩도 듬뿍 들어서 집어먹는 맛이 그만이었다.


나와 요리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정말 맛있다. 특히 이 고추가 일품이다.” “(약간 당황하며) 고맙다.” “당신은 쓰촨 출신인가?” “아니다. 한국에는 쓰촨 출신이 거의 없다. 중국에 쓰촨 요리가 워낙 유명해서 다 만들 줄 안다.” “오, 이 고추를 튀기는 법을 알려주면 좋겠다.” “그, 그, 그건. 바쁘다. 다음에 와라.”


그렇게 본토 요리사의 고추 튀기는 법을 전수받을 기회를 놓쳤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어느 중국 본토 요리사가 등장하는 게 아닌가. 그는 라즈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튀긴 닭을 건져놓고, 순서상 고추를 잘라 넣어 튀길 타이밍이었다. 넓은 팬에 튀긴 닭과 양념을 넣어 볶기 시작한 그때. 그는 봉지를 들어 북 뜯더니 한 국자쯤 듬뿍 무언가를 넣었다. 봉지에서 튀어나온 건 고추 튀김, 오늘의 주인공 ‘황비홍 고추’였다. 아, 바로 이거였구나!


인터넷쇼핑몰을 뒤지니 역시 팔고 있다. 나만 몰랐다. 이미 튀긴 고추 부각 같은 황비홍 고추가 천하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판매자가 황비홍 고추를, 그것도 같은 회사의 같은 크기만 수입되는지 딱 1파운드(453g)짜리 봉지를 너도나도 올려놓았다. 값은 대략 7천원 정도.


딩동. 배송이 왔다. 묵직하다. 한국 과자처럼 봉지만 빵빵하게 부풀린 게 아니라 아주 무겁다. 봉지 가득 내용물이 들어 있다. 황비홍 고추도 절대 적게 들어 있지 않다. 무게의 40% 정도가 고추. 나머지는 땅콩과 참깨, 고춧가루, 기름, 엠에스지(MSG)와 소금이라고 되어 있다. 천하의 엠에스지, 소금, 고춧가루 배합이니 다른 양념 없이 그냥 먹어도 된다. 입에 불이 나게 맵지도 않다. 중국 고추는 경험상 가늘고 짧은 것과 동그랗고 작은 것이 맵다. 이건 한국 고추처럼 제법 크고 기다란 형태. 살벌하게 맵지 않다. 맥주 마시기에 아주 좋다. 라조기 기분을 내려면 따로 준비해야 한다.

먹다 남은 치킨을 이용한 라조기

치킨 대여섯 조각


간장 반큰술


황비홍 고추 반컵(땅콩 포함)


다진 마늘 1큰술


식용유 약간


설탕 1작은술


고수 약간(옵션)


1. 식은 치킨은 미리 전자레인지로 돌려 데워놓는다. 물론 황비홍 고추를 미리 주문해놓는다.


2. 팬에 식용유를 서너 큰술 넣고 다진 마늘을 넣어 볶는다.


3. 치킨을 넣고, 간장을 뿌린다. 설탕을 넣어 저어가며 타지 않게 볶는다.


4. 황비홍 고추를 넣고 한 번 더 버무리듯 볶고 후추와 고수를 뿌려낸다.


5. 맥주를 딴다.

박찬일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