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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10억 주겠다” “총으로…” 유치원 비리 감사하자 회유·압박

by한겨레

[한겨레] 비리 근절대책 번번이 좌절, 왜?


유치원쪽, 휴업 선언 등 집단행동


국회·교육청 등에 전방위 로비


의원들은 ‘원장 민원’ 전하며 압력


“10억 주겠다” “총으로 쏴 버릴 것”


감사관들에 회유·협박 비일비재


시·도의원이 유치원 로비 창구


압박 진행형, 국회의원도 ‘쩔쩔’



“요즘 유치원 감사 기간인가요? 지역에서 민원이 들어오는데 어떤 비리를 잡는 건가요? 원장님들의 고충을 참고해서…, 우리 감사관님 생각은 좀 어떻습니까?”(경기도의회 ㄱ의원)


“(유치원 원장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이런 일들(감사)이 생기니까 폐원까지 고려한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계세요.”(ㄴ의원)


2016년 10월 당시 김거성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은 비리 의혹이 있는 사립유치원을 ‘특정감사’하는 도중 잇따라 경기도의회에 호출당했다. 의원들은 김 감사관에게 비리 의혹을 받는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민원’을 전하며 사실상 ‘압력’을 행사했다. 경기도의회 전문위원으로부터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이해 없이 감사가 진행돼 많은 저항과 부작용이 발생되었다는 점, 유아교육의 기반 상실이 우려된다는 점 등 (사립유치원 쪽) 의견이 합리적 추정”이라는 가혹한 평가까지 받아야 했다.


시·도 교육청이 사립유치원에 만연한 비리를 수년 전부터 적발하고도 제대로 된 처벌이나 제도 개선을 할 수 없었던 사정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이 교육청과 국회, 시의회 등에 전방위 로비를 펼치는 한편 아이들을 볼모로 집단휴업을 선언하는 등 조직적인 저항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감사관에 노골적 ‘회유와 압력’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사립유치원 실태조사에 나서는 감사관들에게 가해지는 ‘회유와 압력’이 흔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15일 최순영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비리가 확인된 유치원 쪽에서 ‘10억원을 주겠다’ ‘차를 바꿔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하는 경우들이 있다”며 “한 감사관은 감사 현장에 나갔다가 유치원 원장에게서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쏴버리고 싶다’는 협박성 발언을 들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2016년에는 한 사립유치원 설립자 ㄱ(61)씨가 경기도교육청 소속 ㄴ감사관이 다니는 교회에 택배로 ‘금괴’를 보낸 일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경기도교육청과 국무조정실 산하 부패척결추진단의 합동 감사 결과, ㄱ씨는 2014~15년에 유치원 운영비로 벤츠, 아우디, 베엠베(BMW) 등 외제차 3대의 차량 보험료 1400만원을 내는 등 2억원가량을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ㄱ씨는 현재 의정부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비리 교육기관을 감시해야 할 시의원이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이 비리로 적발된 일도 있었다. 경북 구미 ㅅ유치원은 2016~17년 유치원 돈을 사적으로 쓰다가 경북도교육청 구미교육지원청 감사에 적발돼 3724만원 회수 등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ㅅ유치원은 자유한국당 권재욱(58) 구미시의원이 1996년 3월 설립했다. 권 의원은 지난 6·13 지방선거 전까지 ㅅ유치원 원장을 맡다가 지방선거에 출마하며 원장 자리를 아내에게 넘겼다.


‘표심’ ‘민원’ 앞세워 로비…국회도 좌절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감사하거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국회와 시·도 교육청, 의회 등에 사립유치원 쪽의 각종 로비가 일상화돼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길게는 수십년씩 지역 학부모들과 관계를 맺어온 네트워크 때문에 ‘표심’을 의식해야 하는 선출직 공무원들이 사립유치원 쪽의 ‘민원’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감사관은 “유치원 쪽에서 도의원들에게 얼마나 압력을 넣었는지, 유치원 감사를 벌이는 현장에 나타나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공무원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경우까지 있었다”며 “감사 결과를 놓고 국회 쪽과 얘기해보면, 국회의원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익집단인 사립어린이집·유치원 단체의 힘이 막강한 탓에 국회에서도 이들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을 마련하는 데 수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도 한나라당 시절인 2009년 국공립 유치원 증설을 위한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한 의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개정안 발의 뒤 사립유치원 원장 50명이 지역 사무실에 몰려와 난리 치고, 관련 세미나를 할 때도 항의 방문을 하는 등 무서웠다”며 “당시 야당 의원들도 ‘지역구에서 협박받고 있다’며 반대했다”고 전했다. 이어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허위 소문을 퍼뜨려 비방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정은 19대 국회에서도 이어졌다. 2014년 당시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신고하거나 고발하면 포상금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사흘 만에 철회했다.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을 임기만료에 따른 폐기가 아니라 스스로 철회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손 전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관련 단체에서 의원 사무실에 항의 전화도 하고, 동료 의원들 통해서 설득하기도 해 굉장히 힘들었다”며 “아예 유치원 관련 행사에는 부르지도 않고, 여성 관련 행사에 나가더라도 보이지 않는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바로잡아야 할 문제였는데, 지금은 압력에 굴복해 철회한 것을 후회한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압력’에서 자유로운 감사 도입해야 압박은 ‘현재 진행형’이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2016년 유치원의 학급편성이나 교사의 근무시간을 법으로 규정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열흘 만에 철회했다. 이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2017년 1월 ‘회원님들의 의견 제시와 노력으로 천정배 의원의 유아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12월30일자로 철회되었다’고 누리집에 공지했다. 20대 국회 상반기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을 지낸 한 의원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관련 단체가 시도별로 지부를 두고 있고, 이들이 의원실에 많은 압박을 한다”며 “지역구를 둔 의원은 아무래도 이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유치원 단체 쪽에서 자신들에 유리한 법률 개정을 추진한 경우도 있다. 2013년 당시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사립유치원의 상속이나 양도를 손쉽게 하는 유아교육법을 발의한 대가로 한유총으로부터 3360만원을 받아 법의 심판을 받았다.


사립유치원 비리 감사 업무를 담당했던 한 전직 감사관은 “유치원 원장들이 국회의원이나 시·도의원을 구워삶아 감사관들을 공식적으로 못살게 구는 것뿐 아니라 국민권익위원회 등 기관에 민원을 넣는 형식으로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압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민감사관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강화하는 등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홍석재 정유경 이정훈 김일우 박경만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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