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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ESC

“빨랫감보고 인연 맺어줬죠”···큐피드 화살 된 세탁소 주인

by한겨레

커버스토리│세탁소

동네 세탁소는 훈훈한 추억의 공간

아코디언 연주·손님 중매 나선 주인도 있어

30여년 노포 세탁소, 은평구에 다수 포진

고객의 의류업체 배상 도운 주인

남다른 세탁 철학 소유자 등··재밌는 동네 세탁소

“빨랫감보고 인연 맺어줬죠”···큐피

‘대승 컴퓨터 크리닝’의 주인 김재기씨는 아코디언 연주로 하루 쌓인 피로를 푼다. 동네에서 멋쟁이 세탁소 주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개인 혹은 부부가 함께 꾸리는 소규모 자영업 중에서도 세탁소는 고된 업종으로 꼽힌다. 아침에 문을 열어 밤 9시까지 간판 불을 켜 두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 동네의 부지런한 이웃. 세탁소의 근황을 살폈다.

 

“빨랫감보고 인연 맺어줬죠”···큐피

서울 마포구 지하철 6호선 상수역 사거리엔 ‘대승 컴퓨터 크리닝’이라는 간판을 단 평범한 세탁소가 있었다. 동네 세탁소를 지나다 밤늦도록 다림질을 하는 주인의 모습을 보면 저 이는 언제 쉬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대승세탁소 주인은 밤이면 이따금 아코디언 연주를 했다. 파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을 등지고 악보에 열중한 모습이 무척 근사해서 ‘토스카나, 세무, 무스탕’ 등의 취급 품목이 가득 적혀있는 세탁소 유리창에 ‘아코디언’ 네 글자를 추가하는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세탁소가 있던 자리는 지금 식당으로 바뀌었다. 동네 세탁소는 아련한 추억을 선사하는 공간이기에 어느 날 그 흔적이 말끔히 없어지면 아쉽다.


주인이 바뀌지 않고 오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탁소는 몇이나 될까? 서울시 25개 구의 세탁업 등록 현황 자료를 기준으로 추려봤다. 1990년 이전에 개업해 현재까지 영업하는 세탁소 중에서 영업 시작일과 소재지 시작일이 일치하는 곳은 69곳. 이 중 30개가 은평구에 있다. 오래된 세탁소 대부분이 1987년에 등록이 집중되어 있지만, 실제 영업을 시작한 시점은 그 이전인 경우가 많다. 자유업이었던 세탁업이 신고 업종에 추가된 시기가 1986년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서 운 좋게 멋진 세탁소를 만났다. ‘무지개 패션 크리닝’이라는 가게 이름보다 ‘안심세탁’이라는 문구의 글자 크기가 더 큰 이곳은 김경일(71)씨와 아내 신순호(65)씨가 33년 세월을 가꿔온 일터다. 그냥 지나칠 뻔했다가 가게 안쪽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세탁소에 웬 어항일까? “옷을 깨끗하게 해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곳이 세탁소인데, 우리는 대접을 못 받는다. ‘세탁소’하면 불쾌감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 않나. 오시는 분들이 쾌적하게 느끼도록 꽃 화분도 놓고, 물고기도 기른다.” 우렁찬 목소리에 풍채가 좋은 김씨의 말이다. 1985년도 5월, 개업 당시 선물 받은 시계와 거울이 여태 걸려있는데도 먼지나 얼룩 하나 없이 말끔했다.

“빨랫감보고 인연 맺어줬죠”···큐피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무지개 패션 크리닝’의 실내.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우리 집은 인근 세탁소보다 천원이 더 비싸다. 다른 곳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세탁 문제를 해결하고 당당하게 추가 요금을 받는 것이 내 자부심이다.” 김씨가 기술에 집중하는 동안 가게 경영과 수선은 아내 신씨가 맡았다. 1년 전에 왔던 손님을 알아보고 세탁물을 찾아 줄 정도로 기억력이 좋다는 신씨는 수선 작업을 하다가도 김씨의 말에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며 거들었다. 작업대 옆에 걸려있는 봉제 인형의 옷도 신씨가 새로 해 입혔단다.


김씨는 소비자들이 세탁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배경에 대해서 말을 이었다. “한국소비자원 분쟁 사례를 보면 아직도 세탁 사고가 많은 수를 차지한다. 세탁물의 취급방법 표기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반드시 드라이클리닝’을 하라는 잘못된 지침 때문에 오히려 옷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소비자들은 고가의 옷을 입다가 물이 빠져도(옷감이 낡아 색이 흐려져도) 본인이 잘못한 것으로 알기 쉽다. 애초에 염색견뢰도(탈색, 변색, 바램 등 여러 가지 작용에 대한 색의 견딤 정도)가 낮은 옷의 문제를 소비자가 입증하기는 어렵다. 이럴 때 전문지식이 있는 세탁업자가 소비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김씨는 실제로 의류업체 측에 항의해 소비자가 배상을 받도록 중재한 경험이 있다.

“빨랫감보고 인연 맺어줬죠”···큐피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 있는 세탁소 ‘무지개 패션 크리닝’. 주인 신순호씨가 활짝 웃으면서 손님을 맞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세탁물을 받은 김씨가 분필을 쥐고 양복바지 이곳저곳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손님 옷에 낙서를 하는가 싶어 깜짝 놀랐다. “분필은 세탁 용제에 들어가면 싹 사라진다. 옷을 받으면 이렇게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손님과 대화를 하니까, 고객도 자기 옷에 관심을 갖고 살펴주는 나를 믿는다. 나는 세탁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여든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싶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이렇게까지 열정적인 세탁 철학을 접할 줄이야. 아들에게도 같은 일을 권하고 싶었지만, 아들은 본인만큼 꼼꼼하지가 않다며 부부가 시원스럽게 웃는다.


지난 14일엔 마포구 망원동을 찾았다. 음식점과 카페가 하나둘 모여들면서 ‘망리단길’이라는 별칭을 얻은 2차선 도로 옆 골목에 반가운 간판이 보였다. 상수동에 있던 ‘대승 컴퓨터 크리닝’이다. 김재기(62)씨의 수선 작업대 옆엔 여전히 아코디언과 악보가 놓여있었다. “젊어서 명동의 큰 양복점에서 일했다. 기성복이 나오는 1980년대 일을 그만두고 중동에 가서 3년간 일하면서 가게 밑천을 벌었다. 그걸로 30살 무렵인 1985년 10월에 세탁소를 차렸다.” 상수동에서 30년을 보낸 김씨는 2015년 망원동으로 가게를 옮겼다. 임대료 상승 때문일까?

“빨랫감보고 인연 맺어줬죠”···큐피

‘대승 컴퓨터 크리닝’의 외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요즘 임대료로는 세탁소 열기 어렵지만, 나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상수동 골목마다 있던 세탁소 중에 네 개가 문을 닫았다. 세탁소는 드라이클리닝 손님이 몰리는 3월부터 6월까지가 제일 바쁜데, 물량이 다 우리 가게로 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까지 일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더라.” 동네마다 세탁소가 여러 개 있어야 손님도, 일하는 사람도 편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오래 일을 하려면 건강도 챙기고 여유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거주지인 현재 자리로 세탁소를 옮겼단다.


김씨의 세탁소에서 눈에 띄는 것이 아코디언뿐만은 아니었다. 다림질 대 옆엔 오디오를 두고, 가게의 네 모서리엔 커다란 스피커를 달았다.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도 일하다가 (세탁) 사고가 날까봐 잘 켜두지 않는다. 택시 운전을 수 십 년씩 한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내는 사고가 있다. 세탁도 마찬가지다. 능숙할수록 더 조심할 수밖에 없고, 요즘도 초보 같은 심정으로 일을 한다.”

“빨랫감보고 인연 맺어줬죠”···큐피

수선도 같이 하는 ‘대승 컴퓨터 크리닝’. 낡은 재봉틀에 세월이 묻어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야기는 남의 옷을 다루는 일의 마음고생으로 이어졌다. 아코디언 연주라는 취미가 그 마음을 달래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수동 시절, 김씨는 단골들을 눈여겨봤다가 여러 번 핑크빛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단다. 이 바지를 맡긴 남자 손님과 저 상의를 맡긴 여자 손님을 짝지어 줬다니! 낭만적인 이야기다. 컴퓨터 세탁소의 중매 결과는 어땠을까? “이상하게 내가 연결해주면 시원치가 않아.” 스팀 소리만큼이나 크고 따스한 웃음이 세탁소 안을 채웠다.

세탁소

돈을 받고 남의 빨래나 다림질 따위를 해 주는 곳.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전 대표는 정계 입문 당시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을 내세워 성실한 노동자의 자식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가수 윤도현도 세탁소를 운영하던 부모의 곁에서 음악인의 꿈을 키우던 시절을 노래의 랩 가사로 옮긴 바 있다. 2018년 11월 기준, 세탁업으로 등록된 업체는 전국 2만8천여곳이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