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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황진미의 TV 톡톡

‘알함브라…’ 겜알못도 빠져들게 하는 마법

by한겨레

‘알함브라…’ 겜알못도 빠져들게 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 게임을 다룬 드라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소재에 예측불허의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게임 산업의 미래를 시각화한 그래픽도 수준급이고, 섬세한 연기력과 출중한 외모를 겸비한 현빈·박신혜 커플의 로맨스도 애절하다.


송재정 작가는 전작 <더블유>(W)를 통해서도 웹툰속 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는 독특한 상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넘나듦’을 이야기하려면 역시 게임이 제격이다. 문자로 된 책 보다는 시청각을 동원한 영화의 몰입감이 크고, 서사를 따라가는 영화보다 상호작용을 통해 서사를 만들어가는 게임의 행위주체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현실과는 독립된 가상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가상을 입힌 증강현실의 세계야말로 송재정 작가의 문제의식을 펼치기에 알맞은 소재다.


드라마 속 게임은 환상적이다. ‘포켓몬 고’ ‘파덜닷아이오’ 같은 현존하는 게임이나, ‘홀로렌즈 헤드셋’ ‘테슬라슈트’ 같은 장비로 구현되는 기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게임을 시작하면 현실 공간에 덧입혀진 정보가 보인다. 사용자는 시청각은 물론이고, 촉각과 통각을 통해 실재감을 느낀다. 진짜 눈앞으로 화살이 날아오고 검에 찔리면 죽을 것 같은 통증과 공포가 느껴진다. 게임회사 대표인 유진우(현빈)는 숙적인 차형석을 게임 속 결투로 죽였다. 그런데 다음날 차형석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더욱 놀랍게도 죽은 차형석이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유진우 앞에 계속 나타난다. 그와 결투를 벌이다 유진우도 계단에서 추락한다.


여기까지는 의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게임하는 동안 불안, 긴장, 흥분, 공포로 인해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분비 되고 심계항진 등 신체반응이 나타나 차형석이 심장마비로 죽었을 수 있다. 또한 게임이지만 살의를 품고 차형석을 죽인 유진우가 죄의식으로 인해 환각에 시달리고, 낙상으로 머리를 다쳐서 망상이 지속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차형석의 모습이 게임 속에서 동맹을 맺은 비서의 눈에도 보이는 현상을 통해 단지 유진우의 망상이 아님을 말해준다. 물론 이런 현상도 두 사람이 망상을 공유하는 ‘공유 정신병적 장애’로 설명할 수는 있다. 드라마는 이쯤에서 실종된 게임개발자 정세주의 단서를 던지며, “이들이 미친 게 아니라, 게임이 미친 것”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사고 후 1년 동안 환각에 시달리는 유진우는 “미친 사람에게도 논리가 있고, 미친 세계에도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망상이 게임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알고, 그 안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 ‘레벨 업’에 매진한다. 마침내 ‘레벨 90’에 오른 유진우는 실종 당시 그 레벨에 도달해있던 정세주의 메시지를 받는다.

‘알함브라…’ 겜알못도 빠져들게 하는

드라마의 로맨스는 꽤 애틋하다. 게임 판권을 사기 위해 그라나다로 간 유진우가 낡은 호스텔을 운영하는 정희주(박신혜)에게 독설을 퍼붓다가 판권 소유자가 정희주임을 알고 1초 만에 살인미소를 짓거나, 100억 거래를 앞에 두고 슬랩스틱을 벌이는 장면은 웬만한 로맨틱 코미디를 능가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비대칭이 존재한다. 재벌이자 결혼경험이 많은 남자와 워킹 푸어에 연애경험도 없는 여자라는 점도 기울지만, 정보의 비대칭이 더 심각하다. 유진우는 정세주에 대한 정보를 숨긴 채 계약을 밀어붙이고, 이후 정세주의 실종상태를 감춘 채 정희주에게 거짓 메시지를 보낸다. 반면 정희주는 유진우를 은인으로 여기고, 사고로 한동안 자신의 돌봄을 받게 된 유진우에게 연정을 품는다. 유진우가 정희주에게 반하는 순간이 게임 속 캐릭터로 들어 있는 환상적인 정희주를 보았을 때라는 점도 전형적이다. 재력과 정보력을 지닌 남자와 대상화된 아름다움과 돌봄을 제공하는 여자라는 젠더고착이 그대로 담겨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아주 구리게 보이지는 않는데, 이는 두 인물이 매력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희주는 생계에 대한 책임과 윤리적 자존감을 지닌 존재이며 예술적인 꿈도 포기하지 않는 단단한 인물로 묘사된다. 유진우 역시 냉철한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를 갖지만 너절한 변명 없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응원을 받을만하다.

‘알함브라…’ 겜알못도 빠져들게 하는

게임은 첨단 과학기술과 예술 콘텐츠가 집약된 뉴미디어이지만, 여전히 하위문화로 취급된다. 게임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건강을 망치고, 폭력을 부른다는 관념이 현행 ‘셧 다운제’의 근간이다. 과거 만화나 텔레비전도 뉴미디어 포비아를 겪었지만, 게임에서 유독 심하다. 이는 게임을 하는 세대와 하지 않은 세대가 구분되고, 게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을 맛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포비아를 방어하느라, 정작 게임 사용자들이 탐구해야 할 감각의 몰입이나 신체 소유감, 착각이나 신경학적 부작용 등이 깊이 논의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게임에 푹 빠진 사용자가 겪은 기이한 회고담을 들려주는 형식을 통해, 게임이 체험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광화문에서 칼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미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에게 감각되는 세계는 나름 법칙이 있을 것이다. “같이 미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게임의 세계를, 게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풀어내는 마법의 드라마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