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도 투표를 할 수 있다면?” 시대를 앞서나간 소녀들의 작가

[컬처]by 한겨레

성차별 심했던 19~20세기에도

여성 참정권 등 앞장 열정적 활동

 

한겨레

<작은 아씨들>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

21세기에도 가슴을 뛰게 하는 멋진 소녀들 대부분은 성차별이 심했던 19~20세기를 헤쳐간 여성 작가들의 펜에서 탄생했다. 이들은 여성 참정권 운동 등에 투신하거나 열악한 상황에서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간 강한 여성들이었다.


<작은 아씨들>을 펴낸 루이자 메이 올컷(1832~1888)은 시대를 앞서 나간 페미니스트였다. 가난하지만 이상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둔 덕에 올컷은 열정적 페미니스트였던 마거릿 풀러, <주홍글씨>의 너새니얼 호손과 인연을 맺는 등 지적으로 충만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자신의 자매들 이야기를 토대로 <작은 아씨들>을 쓴 그는 ‘여성의 결혼은 경력의 단절이자 희생’이라고 생각해 ‘펜을 배우자로 삼고 글을 가족으로 삼아’ 살아갔지만, 소설 속 둘째 ‘조’가 이웃 친구 ‘로리’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독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릴 수 없어 조의 글쓰기를 이해하는 지식인과 맺어지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한다. 그는 생계를 위해 A. M. 버나드라는 필명 또는 익명으로 변태성욕·마약 등 도전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사후 그의 작품이 무더기로 발굴되면서 문단의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열렬한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올컷이 <작은 아씨들>을 펴낸 1868년에서 52년이나 지난 뒤에야 미국은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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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강머리 앤>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1874~1942)는 올컷처럼 정치의식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소설 속 어느 겨울 밤 앤은 매튜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 린드 아주머니가 그러는데요, 여자들도 투표를 할 수 있으면 나라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할 거래요.” 당시 캐나다는 여성운동이 약진하던 시기였고, 앤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 뒤인 1918년 캐나다 여성들은 선거권을 획득했다. 고아 앤처럼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몽고메리는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펜을 놓지 않는 강인한 자아를 지녔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진 뒤 발견된 일기장에 적힌 말은 낙천성의 화신인 앤과 대비되며 비애를 자아낸다.

“나는 주문에 걸린 것처럼 미쳐가고 있다…나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든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빨강머리 앤이 사랑한 풍경>·터치아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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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롱스타킹>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몽고메리와 달리, <삐삐 롱스타킹>의 스웨덴 출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 폐렴에 걸린 둘째딸을 즐겁게 해주려고 삐삐 이야기를 지어낸 그는 몇년 뒤 글로 정리해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퇴짜맞았다. <우리가 사랑한 소녀들>(혜화1117)에 따르면 여자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삐삐를 따라할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후 순종적인 소녀상에 대해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훈육·체벌에 반대하는 교육론이 힘을 얻으면서 1945년 책으로 엮여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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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작가 일라이자 호지슨 버넷.

<소공녀(작은 공주) 세라>의 지은이 프랜시스 일라이자 호지슨 버넷(1849~1924)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10대 후반 잡지사 투고를 하려고 했으나 종이와 우표 값이 없어 벌판의 포도를 따다 팔아야 할 정도였으나 곧 작가로서 널리 이름을 얻고 돈도 벌게 됐다. 당시에는 일하는 여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버넷은 늘 호기심 어린 시선의 먹잇감이었다. 그가 1898년 이혼했을 때 미국의 언론들은 그를 ‘신여성’으로 지칭하며 ‘부인으로서의 의무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선진적인 의식’이 이혼의 이유라고 몰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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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작가 요한나 루이제 슈피리.

앞서 언급된 작가들보다 더 이른 시기에 태어난 요한나 루이제 슈피리(1827~1901)는 가족과 휴가를 자주 보냈던 스위스의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썼다.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슈피리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의 조카이자 스위스 최초의 여성 법학 박사인 에밀리 켐핀 슈피리(1853~1901)에 얽힌 일화를 통해 그의 성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에밀리가 온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에 진학하려고 할 때 큰어머니인 요한나도 “여자가 품위있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가정”이라는 말을 해서 조카를 낙담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내면세계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슈피리는 자서전 청탁이 들어왔을 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평생 걸어온 길은 몹시 단순해서 글로 쓸 만한 특별한 이야기가 없지요. 반면 나의 내면의 삶은 온갖 폭풍으로 가득해요. 어느 누가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을까요?” (<알프스 소녀 하이디>·윌북펴냄)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2019.07.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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