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도 있고, 고양이 문구도 있고?

[라이프]by 한겨레

문구&문구점


서울 골목 사이사이 문구점들 생겨나

망원동, 해방촌, 성수동 문구 덕후 성지

갤러리 같기도, 문구점 같기도 한 공간

‘다꾸’ 마니아에게 사랑받는 곳도 여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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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디자인스튜디오 제로퍼제로가 운영하는 쇼룸 겸 작업실 제로 스페이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학교 앞 문구점은 어린이들로 북적인다. 어른이 되면서 학교 앞 문구점은 잘 찾지 않는다. 어른을 위한 문구점을 찾아 나섰다. 학교 앞이 아닌 골목에 있다. 서울의 이름난 골목에는 빼놓지 않고 문구점이 있다. 저마다의 분위기가 강렬한 개성 넘치는 공간들을 문구 덕후(마니아)들에게 수소문했다. 문구 덕후가 사랑에 빠진 문구점을 ESC가 소개한다.

단정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문구가 가득

“갤러리 같기도 하고, 문구점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 매력 있는 문구점이다.” 문구 덕후인 김지원(25)씨는 이곳을 드나든 지 3년이 됐다. “대학 다닐 때 알았고, 취업한 지금까지 찾는다. 단정한 디자인의 문구류가 많은데, 특히 오래 쓸 수 있는 가위나 자 같은 제품을 좋아한다.” 김씨의 애정이 듬뿍 담긴 평가를 받은 공간은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제로 스페이스’다. 제로 스페이스는 지도와 포스터,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 기반 제품을 디자인하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제로퍼제로의 작업실이자 쇼룸이다. 제로퍼제로의 진솔 디자이너는 “8년째 운영 중이다. 원래 제로퍼제로의 작업만 전시하다가 좋아하는 문구를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다. 우리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 가운데 그림 도구나 문구를 좋아하는 분이 많아서인지, 처음에는 나무 쟁반 하나에 다 들어갈 만큼 아주 적은 종류의 문구를 팔았는데, 점차 그 종류가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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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디자인스튜디오 제로퍼제로가 운영하는 쇼룸 겸 작업실 제로 스페이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제로스페이스는 완벽히 나뉘어 있지 않지만, 3개 섹션으로 구성된 느낌을 준다. 가장 안쪽 공간에 있는 큰 벽면에는 제로퍼제로의 일러스트 작품들이 걸려 있다. 갤러리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이곳에 걸린 각종 지도 일러스트 작품은 항상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입구 오른쪽 창가를 따라서는 김지원씨가 말한 단정한 문구류들이 빼곡하다. 계산대 뒤편 공간에는 미피(토끼 모양의 캐릭터) 관련 제품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제로퍼제로는 라이선스를 받아 미피 제품도 직접 디자인하고 있다. 더불어 빈티지 미피 디자인 제품도 함께 판매 중이다. 진솔 디자이너는 판매하는 문구류 선택에 관해 “써보고 몇 번이고 다시 사게 되는 문구들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뛰어난 디자인, 담긴 이야기, 브랜드의 정서가 좋아서 선보이는 문구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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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디자인스튜디오 제로퍼제로가 운영하는 쇼룸 겸 작업실 제로 스페이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기자가 문구류 코너를 보며 가장 눈길이 많이 간 건 제로퍼제로가 디자인한 마스킹테이프와 작은 그림들이 새겨진 고무도장이다. 특히 서울의 남산타워, 숭례문이 새겨진 작은 고무도장은 도무지 쓸 데가 없을 것 같은데, 꼭 갖고 싶은 매력을 지녔다. 외국인 친구에게 선물하기에 더없이 좋다. 제로스페이스를 방문하기 어려운 사람은 제로퍼제로의 누리집에서 제품을 보고, 구매할 수도 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398-2번지)

말랑말랑한 ‘다꾸’용 스티커들 집합 장소

겉도 말랑하고, 속도 말랑하다. 몰캉몰캉한 젤리가 가득한 공간이지 않을까 했는데, 젤리처럼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문구가 가득한 곳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말랑상점’은 ‘다꾸러’(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한영아(29)씨가 추천한 공간이다. “다꾸를 할 때 가장 많이 쓰게 되는 아이템이 인스(인쇄 스티커)다. 말랑상점엔 정말 많은 일러스트 작가들의 스티커와 다양한 다꾸템(다이어리 꾸미는 데 쓰는 아이템)들이 많아서 망원동 문구점 나들이를 할 때 꼭 들르는 공간이다.” 한씨처럼 망원동 곳곳의 문구점과 소품점을 여행처럼 다니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말랑상점 송승진 대표도 망원동 문구점 투어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송 대표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망원동 문구·소품점 투어’에서 빼놓지 않고 소개되어 빠른 시간에 많은 분께 알려졌다. 최근에는 아시아권의 해외 관광객들도 이곳을 찾고, 관련 게시물을 올려줘서 여행자들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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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작가의 그림이 들어간 스티커 등 다양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아이템이 가득한 말랑상점.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귀여운 인쇄 스티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말랑상점을 찾는다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를지 모른다. 20명이 넘는 일러스트 작가들이 그리고 디자인한 인쇄 스티커와 접착 메모지, 마스킹테이프 등이 가득하다. 스티커 속 그림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미소를 절로 짓게 된다. 송 대표는 “여자친구와 함께 ‘오들오들’이라는 캐릭터를 디자인해 제품화했다. 그런데 판매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 걱정하던 차에 지난해 1월 여러 작가님의 제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이곳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말랑상점은 일종이 ‘일러스트 작가 제품 플랫폼’이 되고 있다. 오들오들을 포함해 젤리팩토리, 래빗보리, 후카후카, 고시고시, 봄바람 등 여러 작가의 그림이 담긴 문구로 판매대가 꽉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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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작가의 그림이 들어간 스티커 등 다양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아이템이 가득한 말랑상점.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다꾸러, 문구 덕후들의 반응도 꽤 좋다. 송 대표는 “초반에는 조금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많은 분이 찾아주셨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2호점인 ‘안녕인사동점’을 열었고, 이번 달 안에는 온라인 판매도 시작한다”고 말했다. 말랑상점이 오프라인 판매점으로 자리 잡아 가면서 판매 제품들의 디자인이 더욱 좋아지고 있다. 송승진 대표는 “말랑상점을 통해 꾸준히 매출이 나오니 작가님들도 더 좋은 디자인 문구를 선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점 문의를 해오는 작가들도 정말 많다”고 덧붙였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399-39)

고양이 문구가 모여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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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캐릭터가 들어간 문구와 소품을 모아 파는 상점 고양이 알레르기. 사진 고양이 알레르기 제공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고양이를 기를 수 없는 형편인 사람도 많다. 그들은 언제나 갈구한다. 고양이 모양의 무엇인가를. 고양이나 고양이 캐릭터를 사랑하는 문구 덕후라면 꼭 들어봐야 할 곳이 있다. 서울 용산구 해방촌으로 일단 발을 옮기자. 그곳에 있다. 고양이 상점이. 이름이 눈에 쏙 들어온다. ‘고양이 알레르기’. 고양이 알레르기 특효약을 파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고양이 캐릭터 문구와 고양이 모양 소품이 모여 있는 상점이다. 고양이 발바닥 모양이 펜 끝에 달린 볼펜, 제주도에 사는 참 귀여운 고양이 홍이의 사진이 새겨진 메모지, 고양이 모양으로 구부려진 종이 클립까지! 고양이 애호가인 기자는 이곳 상점을 발견하고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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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캐릭터가 들어간 문구와 소품을 모아 파는 상점 고양이 알레르기. 사진 고양이 알레르기 제공

그런데 상점 이름이 여전히 의문이다. 게다가 고양이 알레르기에는 10살 고양이 ‘은순’이가 주인과 함께 출퇴근을 하고 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는데, 은순이와 함께 지내면서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겼다. 하지만 고양이를 정말 좋아해서, 이런 상점까지 차리게 됐다.” 고양이 알레르기 상점 주인 이수연씨의 설명이다. 고양이 문구 외에도 귀여운 고양이 소품투성이다. 해방촌 나들이를 하고 싶다면 꼭 들러볼 만 한 곳이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 5-1128)

문구에 관한 확실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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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럽고 이색적인 디자인의 문구를 선별해 선보이고 있는 포인트오브뷰. 사진 포인트 오브 뷰 제공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기미가 안 보인다. 반짝하고 수그러들 종류의 인기가 아니다. ‘한때’가 아닌 ‘한 시대’를 단단히 준비한 듯 멋진 가게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문구 덕후들이 성수동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는 곳이 있다. 문구 편집숍 ‘포인트 오브 뷰’다. ‘관점’이라는 뜻에 꼭 걸맞은 공간이다. 누군가의 서점을 들른 듯한 느낌을 준다. 포인트 오브 뷰의 김재원 대표는 “문구는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도구다. 그 도구에 따라 좀 더 세심하고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문구점을 동경하며 문구점 사장님을 꿈꿨다. 어른이 된 지금,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문구점을 만들고자 ‘포인트 오브 뷰’를 열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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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럽고 이색적인 디자인의 문구를 선별해 선보이고 있는 포인트 오브 뷰. 사진 포인트 오브 뷰 제공

포인트 오브 뷰는 문구를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종이와 필기구를 포함한 기능적인 문구부터, 영감에 마찰을 일으키는 오브제까지, 공감각적인 관점과 도구를 체험할 수 있는 문구점이다. ‘문구는 이야기를 가공하는 가장 원초적인 도구’라는 가치가 담긴 제품과 다양한 기획 상품들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16-39)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2020.03.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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