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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잘난 여자도 빠지게 되는 ‘가부장제의 함정’

by한겨레

[황진미의 TV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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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우아한 막장이라니! <부부의 세계>(제이티비시·JTBC)를 보며 터지는 탄성이다.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번안한 <부부의 세계>는 밋밋했던 원작을 휘몰아치는 심리스릴러로 바꾸어놓았다. 드라마는 불륜을 알게 된 지선우(김희애)의 관점을 따라간다. 그가 진실을 알아가며 느끼는 배신감, 분노, 허탈, 분열, 집착, 망상, 폭주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시청자들을 강하게 흡인한다. 시청자들이 후덜덜한 피로감을 느낄 만큼 격렬한 감정이입이 일어나는 것은 김희애의 독보적인 연기력과 아우라 덕분이다. 김희애가 아니었던들 완벽한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갈고닦았던 전문직 여성이 뿜어내는 서늘한 내면의 폭풍을 이토록 농밀하게 공감하긴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드라마에는 맹점이 있다. 준수한 외모와 로맨틱한 태도를 지녔을 뿐 특별한 능력이나 매력이 없는 중년 남성이 유능한 아내와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동시에 사랑받는다니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물론 이태오(박해준)처럼 영혼의 취약함을 매력 자본으로 삼는 ‘예술×남’의 부류가 존재하며 어느 정도 연애에 성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은 제쳐두고라도 집안일도 거의 하지 않으며, 위생관념도 낮은데다, 피임도 잘하지 못하는 남자가 여자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은 썩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재력가의 딸로 뭣 하나 아쉬울 게 없어 보이는 여다경이 하필이면 유부남과의 사랑으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설정에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는 ‘꽃뱀’ 논리의 허망함이다. 지선우는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의사로, 자신이 번 돈으로 집을 사고 병든 시모를 돌보고 남편에게 작은 회사를 차려주었다. 남편은 반반한 외모 외에는 사회적 능력이 없어서, 지역사회 모임에서도 지선우가 남편의 면을 세워주곤 한다. 그런데도 남편은 지선우 몰래 재산을 빼돌리고 거액의 빚을 진 상태다. 이것은 흔히 여자가 외모만 내세워 능력 있는 남자에게 기생해 산다는 이른바 ‘꽃뱀’ 논리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또한 지선우의 조력자인 바텐더 민현서(심은우)는 동거남에게 갈취와 폭행을 당하고 있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오히려 여자의 능력과 노동을 착취하며 사는 남자들이 전 계층에 걸쳐 존재한다. 하지만 ‘꽃뱀’ 프레임에 의해 마치 존재하지 않거나 극히 예외인 양 취급되곤 한다. ‘남자는 경제력, 여자는 외모’라는 도식이나 괴담에 가까운 ‘꽃뱀’ 프레임이 얼마나 여성혐오적인 담론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잘난 여자도 빠지는 가부장제의 함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선우는 돈도 벌고, 아이도 돌보고, 살림도 한다. 이태오가 한 일은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한 지선우에게 청혼하여 미혼모가 되지 않게 해주고, 십수년이 지난 후 결혼사진을 찍게 해주고, 가끔 잠자리를 하고 아들과 놀아주는 것이다. 즉 그가 지선우에게 제공한 것은 결혼이라는 ‘정상성’이다. 그것만으로도 지선우는 만족하며 살았다. 남편의 고향에서 남편의 친구들 사이에서 선망을 받으며, 남편을 ‘키워주는’ 능력 있는 여자라는 자부심을 누렸다. 하지만 그것이 허상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급격한 ‘현타’를 맞는다. 지선우에게는 두 개의 타산지석이 있다. 하나는 자신을 때리는 남자에게 “내가 좋은 남자로 만들겠다”는 헛소리를 하는 민현서다. 또 하나는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이혼하지 않겠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나다”라고 말하는 사모님이다. 이들은 ‘남자가 있는 여자’로 가부장제 안의 자리를 할당받고, 남자를 돌보거나 남자의 성장을 통해 성취를 확인받고자 한다. 이를 ‘정상’으로 여기고, 여기서 벗어나 ‘남자가 없는 여자’가 되기를 두려워한다. 지선우가 처음 이혼에 대해 가졌던 감정의 본질도 이것이다. 남자가 필요 없음에도, 남자(라는 가부장제의 외피)가 없는 삶에 두려움을 느낀다. 가부장제를 초과하는 능력을 지니면서도,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여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지는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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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이혼의 전략과 돈 관리의 중요성이다. 지선우는 이태오가 아들의 보험금에 손을 대고, 아들에게 외도를 들키는 등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그와의 완벽한 이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과정이 간단치 않다. “남편만 내 인생에서 도려내기 위해” 불륜의 증거를 모으고 재정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드라마는 실제 이혼 사건보다 과정의 난망함을 다소 과장하고 있지만, 여성들에게 이혼 절차와 준비로 무엇이 필요한지 실무적으로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영화 <미성년>에서도 남편의 외도를 안 아내가 드러눕는 것이 아니라, 집문서와 통장을 꺼내 살펴보고 남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안방 문을 잠그는데, 이런 장면들은 이혼이 도덕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돈의 영역임을 일깨워준다. 아울러 백 번을 강조해도 부족한 현실적인 교훈을 안긴다. 바로 아무리 바쁘고 남편이 사랑스러워도 돈 관리는 자신이 해야 된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으면 지선우처럼 똑똑한 여자도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불륜을 저지른 남편 및 남편의 용렬한 친구와 몸을 섞는 초인적인 비위를 발휘해야 한다. 세상에나. 이게 어지간한 비위로 할 수 있는 일인가!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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