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의 포토그래퍼 황태석 “거칠고 못나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다”

[컬처]by 한겨레

[토요판] 인터뷰


‘데일리 노가다’(dailynokada) 황태석 포토그래퍼


알코올 중독 3년 ‘무기력한 생활’


생활고에 공사장 일용직 나서


철근, 시멘트 소재로 폰카 시작


노동현장을 감성 사진으로 포착


SNS 팔로어 10만명 관심 끌어


“기기보다 마음가짐 더 중요,


보이는 아름다움이 전부는 아냐”


쓰레기 매립지 촬영해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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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 공사장 일용직 일을 하던 황태석(33)씨는 하루아침에 사진작가가 됐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또는 거칠다는 편견으로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던 공사장 시멘트, 철근, 전선, 못 등에 휴대전화 카메라로 미적 감각을 불어넣어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설 공사장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스엔에스)에서 감성 사진으로 화제가 될 거라고는 본인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빚에 쪼들려 내몰린 지방 공사장 일용직 생활은 그를 세상과 단절시켰다. 현장 숙소엔 와이파이 한줄 잡히지 않았다. 고되고 따분한 일상의 벗은 시멘트, 철근, 콘센트, 전선, 못, 안전모 등 공사장에 널린 건축 자재들이었다. 휴대전화 사진에 이를 담아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며 웃고 떠드는 일이 하루 피로를 달래는 유일한 낙이었다. 무심코 에스엔에스에 올린 사진에 ‘좋아요’가 서서히 늘었고, 어느새 팔로어가 10만명이 넘었다. ‘공사장에서 희망이 보인다’ ‘장인은 도구 탓하지 않는다’ ‘질감을 너무 잘 살렸다’는 사진 댓글이 이어졌다. 그는 사진을 전공한 적이 없다. ‘dailynokada’(데일리 노가다)란 에스엔에스 문패를 단 그는 이제 포토그래퍼 황태석으로 불린다. 지난 1일 황씨를 만났다.


―갑자기 유명인이 됐다. 생활이 달라졌나?


“그대로다. 다만 사진을 좀 더 진지하게 찍게 되긴 했다. 한 출판사 제안으로 포토에세이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던 시절부터 일용직으로 건설 공사장에 나가기까지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담아낼 계획이다.”


―요즘 건설 공사장 일은 안 나가나?


“책 준비하느라 두달 전부터 일을 못 하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일자리가 없기도 하고. 그동안 모은 돈과 책 계약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하다 자연스럽게 공사장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은 사진을 찍으러 일부러 공사장을 찾아다녀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다.(웃음)”


황씨는 지난해 10월16~30일 서울 충무로 반도카메라 갤러리에서 ‘기다림’이란 주제로 열린 그룹전시에 참여했다. 당시 공사장 일을 하느라 오프닝 행사 날에만 가볼 수 있었다.


―전시회 주제가 ‘기다림’이었다. 어떤 기다림이었나?


“3년 정도 알코올 중독이 심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기억과 감정을 다뤘다. 당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은 술에 타 먹을 얼음을 얼리는 거였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잔에 담고 다시 얼음틀에 물을 부어 냉동실에 넣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게 상징적 의미로 남아 있다. 술잔에 얼음이 항상 채워져 있어서 알코올 중독 하면 얼음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막연히 언젠가는 이런 나날이 끝나겠지라는 무기력한 기다림밖에 없었다. 활동적으로 변한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전시장에 걸어둔 사진으로 끌어내 마주하게 됐다. 지난날을 정리하는 의미가 컸다.”


와인병이 된 멸치액젓병


―공사장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술을 배웠다. 한 출판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뒤 새로 취직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렸다. 처음엔 다 내려놓고 쉰다는 생각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며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집에서 혼자 술만 마셨다. 어느 날 통장에 돈이 떨어지고 카드도 한도 초과로 사용이 막혔다. 대출도 더는 안 됐다. 당장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공사장밖에 없었다.”


인력사무소에서 처음엔 황씨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보통 일당이 12만원인데, 어느 날 소장이 일당 18만원짜리 일을 나가보라고 했다. 황씨는 “나를 꺾으려고 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날 일을 마치고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겨우 귀가해 술이고 뭐고 일주일을 누워 있었다. 그 뒤로 인력사무소를 매일 찾아간 황씨는 꾸준히 일을 받아 공사장을 나갔다. 동료 중 한명이 지방을 돌며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자고 제안해 이를 받아들였다.


―공사장에서 어떻게 사진 찍을 생각을 했나?


“2017년부터 3년 동안 충북, 세종, 대전 등 주로 혁신도시 건설 공사장을 돌아다녔다. 서울 집에는 한달에 한번 왔다. 당시만 해도 혁신도시는 허허벌판이었다. 논밭 외엔 없었다. 자고 일어나 일하고 숙소로 돌아와 자고, 단조로운 생활이 이어졌다. 숙소 주변엔 그 흔한 피시방도 없었다. 그 지루함 속에 시작한 일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공사장 사진 찍기였다. 휴식시간에 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개구부(창이나 출입구 등 벽이나 지붕, 바닥 등에 뚫린 구멍)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찍었다.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감성 사진이 탄생했다며 웃고 좋아해줬다. 일반적으로 추하다고 생각하는 공사장에서 예쁜 사진이 나오니까 극적인 대비가 이뤄져서 그런 것 같다.”


―휴대전화 사진의 매력은?


“전문가용 카메라는 왠지 장비라는 기분이 든다. 어릴 때 그림 그릴 때 큰 캔버스를 앞에 놓고 있으면 막연한 마음이 들었을 때처럼,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피사체를 찍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항상 몸에 지니는 도구인 휴대전화는 가벼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편하게 찍을 수 있다. 기기 성능보다는 마음가짐, 태도가 중요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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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왜 호감을 갖는다고 생각하나?


“내가 찍은 공사장 사진은 우리 도처에 널려 있는 일상이다. 단지 거리감이 너무 없다 보니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이다. 공사 현장에 있는 분들 입장에선 감성 사진의 소재가 공기처럼 흔한 존재 아닌가. 그런데 사물의 구조, 형태를 하나의 조형물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아름다운 지점들이 있다. 그것을 사진으로 납득시킨 결과물을 좋아해준 듯싶다.”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면 과거는 대개 아름답게 각인된다. 지금은 실재하지 않는 과거가, 그 시절 어느 한 순간이 포착된 사진으로 소유될 때 기억 필터의 미화 기능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황씨 스스로 “삶의 밑바닥”이라고 표현했던 지난날의 몇몇 조각은 공사장 감성 사진이란 박제물로, 그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면, ‘예쁘게’ 남아 있다.


―공사장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는?


“공정 초반이 가장 예쁘다. 비계(공사장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와 콘크리트만 올라갔을 때다. 계절에 맞춰 공사장도 다르게 변한다. 겨울 공사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하다. 충북 음성은 아침 안개가 심하다. 콘크리트 건물이 뿌연 안개 사이로 드리울 때는 커다란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기말 느낌을 시각화하라고 하면 바로 그런 모습일 거다. 새벽 현장에 출근하면 바닥 진흙이 전부 얼어 있다. 주위에서 들리는 쇳소리는 소리만 들어도 싫을 정도로 차가움을 더한다. 나는 추위를 진저리 치게 싫어해 겨울을 안 좋아하는데, 겨울 공사장 현장의 그 느낌들은 아름다웠다. 마음이 휑하니 비워지는 황량함, 그것만의 맛이 있다. 딱딱하고 거칠고 못나더라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더라.”


―거칠고 차가운 그곳에서 욕망의 상징인 아파트가 탄생한다.(웃음)


“아이러니하게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지 못한다. 내 주변 분들은 거의 그랬다. 그래서인지 공사장 현장은 하나의 마을처럼 돌아간다. 노동자는 전부 자기 작업 구역이 정해져 있다. 그 기준이 동호수다. 자기 집은 아니지만 자기가 지어야 하는 집이 있는 거다. 재밌는 건, 쉬는 시간에 다들 자기 작업 구역에 가서 잔다.(웃음) 청사진을 떠서 안방, 거실, 화장실 등을 먹줄로 선을 구획해놓은 상태라 거기에 침대가 있겠나 이불이 있겠나. 희한하게 잠을 자도 안방 구역에서 잔다. 아마도 그게 본능 아닌가 싶다. 집이란 곳이 개념적인 공간이라 그런 거 같다.”


―에스엔에스에서 와인병이라고 생각하고 사진을 유심히 보는데, 댓글 보고는 멸치액젓병인 걸 알았다.


“그게 베트남산이다.(웃음) 설거지하다가 창가에 놓은 멸치액젓병 속으로 햇살이 확 들어오는데 너무 예뻤다. 사실 모든 물체가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 그걸로 사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혐오하기도 한다. 김치는 가장 즐겨 먹으면서도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액젓도 비슷하다. 깔끔하고 청량한 느낌은 아니다. 보이는 아름다움이 꼭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상징하기에 액젓이 극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에서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관계는 불공정하다. 찍는 사람은 철저히 갑의 지위에 있다. 이 불공정 관계는 사물을 찍을 때 극에 달한다. 황씨는 찍는 사람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그렇게 공사장 자재는 편견을 깨고 미적 감각을 지닌 감성 사진의 소재로 변신했다.


―사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사진을 찍을 때는 똑같은 사물도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달하는 콘텐츠가 달라진다. 사진은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전혀 아름답지 않은 공사장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었다.”


검게 칠한 방 벽지


―공사장 외에 사진으로 담고 싶은 장소가 있나?


“쓰레기 매립지다. 일관성 없는 색깔과 재질이 주제 없이 한곳에 우연히 모여 있는 거대한 풍경이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평소 접하기 힘든 광경이다. 올해 포토 에세이집을 내고 매립지 촬영 작업을 해보고 싶다. 잠깐 둘러보는 방식이 아니라 여행 개념으로 돌아다닐 계획이다.”


―인물 사진이 한장도 없다.


“건설 공사장에서도 인물 사진은 안 찍으려 했다. 일하는 사람을 찍으면 ‘노동자의 땀’ ‘고된 현장’ 같은 공익 캠페인 감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조형적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힘들다. 감정이 빠진 현장의 조형적 아름다움만 보여주고 싶어서 인물을 뺐다. 평소에는 그림 그리는 친구의 작업실에 놀러 가 친구 얼굴을 여러장 찍기도 한다. 나중에 그 사진들을 보니 한 인물을 특정해 여러 인상을 끌어내는 경향이 있었다. 인물 사진도 매력적인 요소가 있어 언젠가 찍고 싶다. 나는 창작 자체에 관심이 있다. 그 수단이 사진이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또래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의 행로다.


“알코올 중독에도 빠지고 빚도 지고 공사장 일을 하며 느낀 건, 삶에서 다가오는 어려움이 수습할 수 있는 한도 안에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꿈꿔온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단지 생계 때문에 일해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해보니까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꿈꿔온 일을 한다고 자유로운 삶은 아니지 않나. 공사장 일을 하며 남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삶의 한 방식이다. 무기력한 삶만 아니면 다 괜찮은 거 같다. 삶을 대하는 태도, 관점이 중요하다.”


―방 벽지 색이 검은색이다.


“대부분은 사진 작업하느라 그런 줄 안다. 전문적으로 사진 보정하는 사람은 암실에서 작업하기도 한다. 난 특별한 이유는 없고, 꼭 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한번은 붉은색으로 벽을 칠했다. 형광등 불을 켜니 빨간색이 빛에 반사돼 눈이 너무 피로해져 다시 흰색으로 바꾸기도 했다.(웃음)”


―사진으로 세상과 소통하게 됐다.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나?


“최근 공사장에서 사진 찍는 분들이 늘었다고 한다. 내 사연이 그분들에게 시각적인 영향력을 줬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취미로서 자기 주변에 있는 일상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러면 하루가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난 솔직히 작가로 불리고 싶지는 않다. 일하다 평범한 일상을 휴대전화에 담는 일을 했을 뿐이다. 평소 너무 익숙해 지나쳤던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전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여러 분야에서 제2, 제3의 ‘데일리 노가다’ 현장을 사진으로 많이 보고 싶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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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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