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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툭하면 터지는 방송사고…
한두번도 아니고 자꾸 사고 칠거야?

by한겨레

새로 시작한 음악예능 ‘악인전’

2부서 만나자더니 다큐로 대체

첫방송부터 미완성 영상 내보내

방송 관계자 안일한 의식 도마 위


‘주 52시간’ ‘빠듯한 일정’ 핑계로

드라마·영화·예능 등 전방위에서

CG·동해표기·일베 용어 사고 속출

“방송 관행 깨고 책임의식 가져야”

한겨레

또 방송사고다. 25일 시작한 예능프로그램 <악인전>(한국방송2·KBS2)이 첫 회부터 사고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쪼개기 방송 기준으로 1부가 끝난 뒤 2부로 만나자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세상의 모든 다큐>를 내보냈다. 사전 고지조차 없었다. <세상의 모든 다큐>가 나가는 동안 자막으로 짧게, 한줄로 알렸다. “방송사 사정으로 악인전 2부는 다음주 토요일에 방송됩니다.” 제작진은 26일 공식 입장을 내어 “미처 후반 작업을 다 마치지 못해 2부가 방송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촬영은 끝났는데 다른 기술적인 문제들이 발생한, 명백한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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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전> 출연자 이상민이 개인 에스엔에스에 올린 사진

<악인전>을 계기로 방송 관계자들의 안일한 의식이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2017년 <티브이엔>(tvN) 드라마 <화유기>가 컴퓨터그래픽(CG·시지) 작업이 되지 않은 채 방송을 탄 이후에도 ‘역대급’ 사고는 계속됐다. 지난해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빅이슈>에서는 미완성 시지는 물론, 시지 요청 자막이 노출되는 등 한회에 여러번에 걸쳐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3월 <티브이(TV)조선> 예능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은 생방송 도중 문자 투표 집계가 되지 않아 우승자 발표를 미루는 촌극까지 빚었다. 3월에는 티브이엔 예능프로그램 <더블캐스팅> 방영 도중 갑자기 다른 프로그램이 10분가량 방송되는 송출 사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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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캐스팅>의 한 장면. 티브이엔 제공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만든 이미지와 용어를 사용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2013~2019년 6월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일베 관련 방송심의 결과는 무려 39건에 이른다.


최근에는 전세계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콘텐츠에서 역사의식에 반하는 번역 사고도 벌어지고 있다. 23일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오티티)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은 독일어 자막에서 “지금 동해에 있다”고 말하는 준석(이제훈)의 대사를 ‘Ostmeer’(동해)가 아니라 ‘Japanischen Meer’(일본해)로 표기해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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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공식 누리집 제공

그동안 제작진은 사고가 날 때마다 ‘빠듯한 제작 시간’을 이유로 댔다. <빅이슈> 사태 당시 에스비에스 관계자는 “촉박한 일정에 시지 팀이 작업을 마무리할 시간조차 없어서 미완성 상태로 내보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일베 자막과 이미지 사고 역시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교차 확인을 못 했다는 게 제작진의 일관된 변명이다. 최근 들어서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결방도 잦아졌다. 완성도를 이유로 1주(2회) 정도 하이라이트로 대체하며 시간을 버는 것이다. 한 케이블 예능프로그램 피디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되면서 스태프들 휴식권을 보장해줘야 하니 자구책으로 결방을 택했다. 이런 결방은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작진이 방송시간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짚는다. 방송사들이 편성전략을 운운하며 방송시간을 멋대로 바꾸는 경우가 늘면서 결방과 사고에 대해서도 무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시간에 쫓기는 촬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이티비시>(JTBC)에서 2018년 방영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경우, 피디의 철저한 노력으로 주연 배우가 하루 7~8시간 잠을 자는 등 시간에 쫓기지 않고 촬영을 진행했다. 안판석 감독은 당시 “사전에 철저하게 그림을 그린 뒤 현장에서 꼭 필요한 장면만 촬영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고가 터지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꼬리 자르기 식으로 무마해온 것도 관행이 바뀌지 않는 이유다. 한 케이블 방송사 예능프로그램 피디는 “사고가 나면 대부분 담당자를 바꾸는 선에서 해결한다. 제작 과정을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시도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가 반복되는 사이 시청자는 떠난다. 시청률 조사 기관인 티엔엠에스(TNMS) 집계 결과, <악인전> 2부 시간에 이어진 <세상의 모든 다큐> 시청률은 1.3%로, <악인전> 1부(2.9%)에 견줘 1.6%포인트 하락했다. <악인전> 제작진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제작진은 늘 같은 대답을 해왔다. 이번엔 믿어도 될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