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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차박, 어디까지 해봤니? 난 경차로 한다

by한겨레

나는 ‘차박인’이다


낚시인, 등산객이 쪽잠 자던 차박은 옛말

카페 ‘차박캠핑클럽’ 올해 신규가입 4.7배↑

“오토캠핑 무경험 2030, 바로 차박 시작”

경차 실내 평평한 침대로 꾸미는 이들도

차박의 매력은 안락함, 재미, 간편함

한겨레

지난 14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새와참새 캠핑장’. 이혜연·김경남 부부가 경차 ‘레이’ 차박을 준비하고 있다. 딸 주은이는 도킹텐트 안에서 노는 중이다. 김선식 기자

2002년 어느 봄날, 강원도 춘천 소양강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차박을 했다. 여행 가서 차에서 자는 걸 차박이라고 한다. “춘천 가서 하룻밤 자고 올까?” 같이 운동하던 체육관 ‘관장님’의 즉흥 제안에 흔쾌히 따라나섰다. 난 ‘그레이스’ 봉고차(승합차)에 몸을 실었고 관장님은 정수기용 물 한 통과 라면을 챙겼다. 관장님은 낚시했고 난 구경했다. 가져간 물로 먹고 씻다 보니 새벽이었다. 난 조수석에 기대 쪽잠을 청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잠결에 빗소리마저 달콤하고 아늑했다. 우린 날이 밝자마자 철수했다. 텐트도, 짐이랄 것도 없으니 일사천리였다. 그때만 해도 차에서 대충 쪽잠이나 자는 게 차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유래는 그렇다. 국내 차박 문화는 낚시인이나 등산객이 한밤에 쪽잠 자면서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일반 오토캠핑(차로 이동해 텐트 치고 즐기는 야영)에서 간소한 차박으로 ‘환승’하는 차박 마니아들이 생겨났다. 최근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차박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 ‘차박캠핑클럽’ 운영자 ‘둥이아빠’는 “최근엔 오토캠핑을 경험하지 않고 바로 차박을 시작하는 20~30대들이 있다”며 “맛집 기행 하면서 숙소 비용이 부담스러워 차박으로 다니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차박에 대한 관심이 심상치 않다. ‘차박캠핑클럽’ 운영자 ‘둥이아빠’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올해 1월부터 5월15일까지 카페 신규 가입자는 전년 동기(8123명) 대비 약 4.7배 수준인 3만8039명이다. 차박 용품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아웃도어 용품 전문업체 제드코리아 심재운 대표는 “올해 들어 차량용 도킹텐트 등 차박 카테고리 용품들이 전년 동기 대비 두배 이상 팔렸다”며 “코로나 이슈로 가족 단위 차박 수요가 급증한 거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박 카페’만큼은 아니지만 일반 캠핑 카페도 전년 대비 가입자 증가 폭이 크다. 초보를 위한 캠핑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 ‘캠핑퍼스트’ 이동환 대표는 “올해 3월 중순부터 이달 중순까지 신규 가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두배 이상”이라며 “국내 여행과 야외활동에 관심이 쏠린 영향”이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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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새와참새 캠핑장’. 경차 ‘레이’ 차박을 온 이혜연씨의 딸 주은이가 차안에서 5000원짜리 무드등을 켰다. 김선식 기자

‘차박인’(차박하는 사람)들은 더는 조수석에서 쪽잠을 청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차 안을 침대처럼 평평하게 하여 단잠을 잔다. 승합차나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이 아닌 경차도 가능하다. 경차 차박인들은 “비싼 캠핑 장비를 구매할 여력도, 실을 공간도 없어 차박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막상 시작한 차박은 안락하고 재밌고, 간편했다. 경차 ‘레이’ 차박을 하는 이만희(65)씨는 “비바람 부는 날 텐트 안은 무섭지만 차 안은 낭만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새와참새 캠핑장’에서 만난 ‘레이’ 차박인 이혜연(33)씨는 “차 안을 평평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 특히 재밌었다”고 한다. 같은 캠핑장에서 만난 김주현(19)씨는 경차 ‘모닝’에 차량용 놀이방 매트와 이불 두 장만 싣고 차박을 왔다. 그의 차도 마음도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ESC가 경차에 꿈을 싣고 달리는 차박인들을 만났다.


간단하고 안락한 경차 차박의 현장

‘레이’에 합판, ‘모닝’에 놀이방 매트 깔아

비싼 캠핑 장비 엄두 못 내다 만난 알뜰 차박

“두 발 쏙 들어가 잠자리 아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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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새와참새 캠핑장’. 경차 ‘레이’로 차박을 하러 온 이혜연·김경남·김주은 가족이 화롯불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선식 기자

경차도 차박이 가능하다. 차박은 여행 중 차에서 자고 머무르는 일을 말한다. 캠핑의 일종이다. 거창한 텐트와 장비 없이도 안락하면서도 간편·신속하게 이동하고 머물 수 있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그런 점에서 경차 차박은 상징적이다. 차량이 작아서 어쩔 수 없어서라도 짐을 줄일 수밖에 없다. 기름값도 덜 든다. 차박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 ‘차박캠핑클럽’(회원 수 12만여명)에선 최근 레이, 모닝, 스파크 등 경차로 차박을 즐기는 이들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올해는 캠핑에 관심 갖는 시기가 예년에 견줘 앞당겨진 것처럼 보인다. 캠핑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 ‘캠핑퍼스트’(회원 수 61만여명) 이동환 대표와 ‘차박캠핑클럽’ 운영자 ‘둥이아빠’는 “매해 보통 신규 가입자는 5월부터 몰리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3월부터 급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4일 경기 가평군 ‘새와참새 캠핑장’으로 네 번째 차박을 온 이혜연(33)씨도 그중 하나다. 한 달 전 ‘차박캠핑클럽’ 카페에 가입한 그는 차박으로 캠핑에 입문했다. 그의 자동차는 경차 ‘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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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자갈 깔린 숲 속 캠핑장, 차창 밖으로 이씨의 딸 주은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김선식 기자

한숨 내쉬며 잠 못 이루던 4월의 어느 날 밤, 이혜연씨는 차박이란 말을 처음 접했다. 그가 운영하는 영유아 카페는 문 닫는 날이 늘어갔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이었다. 딸, 남편과 집에서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홀로 3박4일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잘 곳을 찾다 보니 모텔은 무섭고 호텔은 부담스러웠다. 불현듯 친구 아버지가 차에서 주무실 때가 있단 얘기가 떠올랐다. ‘나도 차에서 자 볼까.’ 인터넷으로 ‘차에서 잠자기’, ‘차에서 잘 때 산소 부족’ 등을 찾아보다가 자연스레 네이버 카페 ‘차박캠핑클럽’에 가입했다. 2박3일 동안 두 시간씩 자며 수만개 글을 훑었다. 오랜만에 가슴 뛰는 시간이었다. “차 안 잠자리를 평평하게 만드는 방법을 하나둘 알아가는 게 정말 재밌었다.” 캠핑은 동경했지만, 비싼 장비 탓에 엄두도 못 내고 있던 터, 차박은 신세계였다. 아내가 차박에 몰입하자 남편 김경남(37)씨도 흥미를 느껴 동행하겠다며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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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남편 김경남씨가 짐으로 가득 찬 차 트렁크를 열었다. 김선식 기자

차박 준비과정에서 최대 난관은 평탄화 작업(차 안을 침대처럼 평평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씨는 카페 정보를 훑다 보니, 미세한 개조가 필요하단 걸 알았다. 운전석 뒷좌석을 5㎝ 뒤로 더 밀어야 했다. 그래야 운전석 등받이를 뒤로 눕혔을 때, 앞으로 접은 뒷좌석과 맞물린다. 지인이 운영하는 정비소에 맡겼다.(통상 개조 가격은 15~20만원. 특정 전문업체에 의뢰해야 한다.) 그는 실내에 무엇을 깔지도 고민이었다. ‘합판인가 에어 매트인가.’ 합판은 상대적으로 얇지만 제작을 의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에어 매트는 구매는 쉽지만 두꺼워 실내 높이가 낮아져서 조금 답답할 수 있다. 그는 고민 끝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카페 글을 통해 알게 된 네이버 카페 ‘캠프킹’ 운영자 이만희(65)씨에게 제작을 맡겼다. 이씨는 경차 ‘레이’ 차박용 합판 등을 개발한 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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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부부가 차 앞에 돗자리를 펴고 짐을 내렸다. 김선식 기자

코팅한 자작나무 접이식 합판 2장(각 101×59㎝), 머리 받침대 고정 합판 1장(30×18㎝), 수납함 겸 받침대 1개(50×30×40㎝), 접이식 의자 2개(각 30×30×30㎝)를 받았다.(총 33만원) 머리 받침대를 고정한 합판은 등받이를 젖힌 운전석 시트에 놓아, 앞으로 접은 뒷좌석과 높이를 맞췄다. 수납함 겸 받침대는 앞으로 접은 조수석과 뒷좌석 사이 빈 곳에 놓아 틈을 메꿨다. 접이식 의자 2개는 트렁크에 놓아 높이를 맞췄다. 합판 위 발포 매트를 깔아도 실내 높이 87㎝를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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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은 뒤로, 조수석과 뒷좌석은 모두 앞으로 접었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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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 시트에 머리 받침대를, 조수석과 뒷좌석 사이엔 수납함 겸 받침대를, 트렁크에 접이식 의자 2개를 놓았다. 김선식 기자

지난달 말 첫 차박은 가족 세명이 모두 차 안에서 잤다. “좁아서 걱정했지만, 다 같이 잘 수 있었다. 딱 붙어 자야 했다.(남편 키가 186㎝다.) 도킹텐트 없이 차에서 음식을 먹으면 밖에서 다 보여서 불편하기도 했다.” 도킹텐트는 요긴했다. 설치한 후 남편 김씨는 텐트 야전침대에서 잤다. 한결 편해졌다. 소소한 선택지가 있다는 게 차박의 다른 매력이다.


“캠핑용품을 하나씩 사는 재미도 쏠쏠했다.” 트렁크에 씌울 유모차용 모기장, 차 안을 밝힐 알전구 등을 마련했다. 이날 캠핑에는 다이소에서 산 5000원짜리 무드등을 개봉했다. 딸 주은이가 차 안에서 등을 켜자 천장에 달과 별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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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 합판 2장을 깔았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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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판 위에 발포 매트와 담요를 깔았다. 김선식 기자

“차박을 다니다 보니 남편과 사이도 좋아졌다.” 평탄화 작업부터 소품 사는 일까지 상의하면서 자연스레 대화가 늘었다. 야외에선 서로 돕는 일도 많아졌다. 아이도 평소 30분 재워야 잤는데 차박할 땐 2분이면 잠들었다. 잠자리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안락했다. 그는 “(그가 운영하는) 영유아 카페 예약이 없는 날엔 ‘캠핑이나 가자’고 생각하며 한숨을 줄이고 코로나 우울증도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딸과 남편은 이씨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화로 앞에 앉아 모닥불을 멍하게 바라봤다. 이씨는 ‘불멍’(화로에 피운 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행위)은 “명상의 시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풀벌레 소리 들리는 자연 속에서 불을 바라보며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밖에 나와 자연을 맘껏 누리고 돌아가면 디지털 문명 세계도 새롭게 느껴진다. 양쪽 재미가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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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알전구를 달았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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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쪽에 도킹텐트(차량과 잇는 텐트)를 설치했다. 약 30분 만에 도킹텐트 연결까지 마쳤다. 김선식 기자

차박의 매력에 폭 빠진 이들은 이씨 부부만이 아니었다. 이날 캠핑장에 온 총 세 팀 가운데 두 팀이 차박을 하러 왔다. 경기 파주시에서 온 19살 동갑내기 여성 김주현·윤지혜씨도 경차 모닝을 끌고 왔다. 중학교 친구 사이인 이들은 첫 차박이자 첫 캠핑을 감행하는 중이었다. 도킹텐트나 합판도 없다. 이유는 단순했다. “텐트는 너무 비싸고 돈은 없다.” 차박을 위해 산 건 ‘차량 놀이방 매트’(3만9000원) 한 장. 그 외엔 집에서 쓰는 이불 2장을 가져왔다. ‘미니멀 캠핑’(간소한 캠핑)의 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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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새와참새 캠핑장’. 김주현(오른쪽)·윤지혜씨가 차박용으로 세팅한 ‘모닝’ 내부 모습. 김선식 기자

실내 평탄화 작업도 간단했다. 먼저 앞뒤 좌석 등받이를 모두 앞으로 접는다. 운전석·조수석 머리 받침대에 매트를 걸고 트렁크까지 펼친다. 매트 안에 탑재된 합판 덕에 앞·뒤 좌석 사이 공간에 머리를 대고 누울 수 있다.(앞으로 접은 뒷좌석 머리 받침대 위로 합판 부분이 놓이는 구조다) 김씨는 여행 관련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우연히 차박 방법을 다룬 영상을 보고 따라 해 봤다고 한다. 그는 “평소 친구와 인천 부평문화의거리로 놀러 다녔는데, 요즘엔 사람 많은 곳에 가기 부담스러워 차박을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튿날 오후 2시 김씨는 잠이 덜 깬 채 전화를 받았다. 기자의 “또 차박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차 안에 두 발이 쏙 들어갔고, 잠자리는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로 아늑했다.”


가평(경기)/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