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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허망한 결말…경매 내놨던 간송미술관 보물 결국 유찰

by한겨레

국립박물관 구매 의사 밝혔으나


간송 쪽 거절하고 경매 강행


끝내 유찰되며 모두 머쓱해져


계미명불상 등 국보도 처분 예고


논란과 진통 계속 이어질 듯

한겨레

지난 21~26일 케이옥션 강남사옥에서 사전 전시한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보살입상(왼쪽)과 금동여래입상의 전시 모습. 두 불상 모두 국가지정보물이다.

“15억원에 출발합니다… 15억… 15억… 더 여쭤봅니다.”


“없습니까? 전화 응찰자… 15억원 다시 확인해봅니다.”


(쾅!) “유찰입니다!”


썰렁한 결말이었다. 일제강점기 대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민족 문화유산을 사들여 지키려고 세운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간송미술관이 지난주 사상 처음 경매에 공식 출품했던 소장품 불상 2점의 매각은 무산됐다. 두 불상은 삼국시대의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과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으로 둘 다 1963년 국가지정보물이 된 불교 미술사의 명품이다.


두 불상은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술품 경매사 케이옥션 사옥에서 열린 정기경매의 마지막 순서에 마련된 특별 딸림 경매에 등장했다. 오후 6시 정각을 앞두고 연단 위의 손이천 경매사는 두 불상이 시작가 15억원으로 출발해 2천만원씩 호가하게 된다고 알리면서 응찰을 권유했다. 그러나 현장 응찰자는 물론 전화 응찰자도 나오지 않자 그는 3분여 만에 경매봉을 연단에 찍으면서 두 작품의 거래는 유찰됐음을 알렸다. 경매 현장에는 200여명의 참여자와 더불어 방송사 수십곳의 카메라와 취재진, 일반 시민들까지 나와 진을 치고 경매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나 몇분 사이에 유찰이 선언되자 한숨 소리와 함께 “속상해”라는 일부 청중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경매장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도 나와 상황을 지켜봤으나 실제 기관과 민간 소장가의 응찰은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

한겨레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금동여래입상의 경매가 진행됐으나 불과 3분여 만에 유찰됐다. 손이천 경매사가 작품 시작가를 부르고 있다.

경매에 앞서 전날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기업인·사업가들의 후원협력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의 자금 지원을 받아 경매를 치르지 않고 두 불상을 사는 방안을 타진하겠다고 일부 언론에 밝혔으나, 소유자인 간송 쪽은 침묵을 지켰다. 케이옥션 쪽도 출품 철회는 원칙상 있을 수 없다며, 예정대로 경매를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박물관 쪽은 민간과 경쟁하면서 가격을 높이는 경매에 참여하는 것은 공공기관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행보이며, 한해 유물 구입예산이 40억원에 불과한 형편에서 시작가 15억원짜리 경매에 응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물밑 협상을 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매시장의 한 딜러는 “국립박물관이 유물을 찜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애초 관심 있던 일부 소장가들이 응찰 의사를 접은 것으로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간송이 일제강점기에 거액을 들여 사들이면서 지켜낸 유물이 경매에 나온 사실이 지난주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국가기관에서 예산을 들여 컬렉션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전인건 관장 등 간송의 후손들은 2018년 별세한 전성우 전 관장한테서 상속한 유산과 소장품 상당수를 최근 설립한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귀속하면서 관련 세금을 납부할 재원과 미술관 확장 신축 등에 들어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보물급 소장품을 처음 공개 출품하는 고육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간송가 쪽이 사적인 용도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처분하려는 유물들을 국가가 예산을 들여 사들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와 문화계에서는 뜨거운 논란이 거듭됐다. 박물관 쪽은 경매 없이 합의를 통한 구매를 원했으나 소유주의 거절에 따라 입찰 강행과 유찰이라는 결론이 나면서 소유주나 박물관, 경매사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특히 간송 쪽은 문화계에 큰 충격을 주었지만 애초 목표했던 매각을 성사시키지 못해 앞으로 행보에 부담을 안을 것으로 보인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쪽은 앞서 지난주 두 불상의 경매 출품 사실을 밝히면서 누리집에 올린 글을 통해 국보인 계미명 불상과 삼존불감 등 소장하고 있는 다른 불교문화유산들도 정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지금 당장은, 유찰된 두 불상의 후속 매각 협상에 국립박물관이 참여할지가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불교유산 소장품들의 경매 추가 출품을 둘러싼 정당성 논란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매 현장을 지켜본 문화재학계의 한 전문가는 “뜨거웠던 논란과 뒷말에 비하면 개운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며 “간송미술관이 권위에 타격을 입을 것이고, 케이옥션은 물론 국립박물관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미묘한 논란과 진통이 잇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국내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린 국가지정 문화재는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 나왔던 보물 1210호 <청량산괘불탱>으로, 개인 소장가에게 35억2천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