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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제주, 꿀 떨어지네

by한겨레

온갖 번거로운 결혼 절차

신혼여행 때문에 버틸 수

‘뉴노멀’시대 외국은 꿈도 못 꿔

신혼여행지로 다시 뜨는 제주

확 달라진 제주 신혼여행


부부의 첫발, 제주에서 찍다

코로나19로 뜬 신혼여행지 제주

별 기대 없었는데, 알고 보니 보물로 가득

웨딩 사진 전문 이하나 작가가 알려주는

추억 가득 촬영지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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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혼여행에 나선 소준섭·박현아 부부가 지난달 26일 제주시 협재해수욕장의 석양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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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박현아 부부가 제주 한림읍 성이시돌 목장 인근의 한 들판에서 찍은 웨딩사진. 사진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신혼여행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결혼 과정의 어려움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양가 어른들 사이에서 오가는 크고 작은 줄다리기 속에서 온갖 ‘정무적 술수’(?)를 남발해야 했던 일은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식 결혼 문화 자체가 조금은 버거웠다고 할까.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라고 불리는 결혼 준비의 에이비시(ABC)부터, 식장예약과 혼수 준비, 살 집을 구하고 양가의 어른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드리는 과정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일이 없었다. “신랑님, 웃으세요!” 웨딩촬영을 하는 내내 200번쯤 들었던 말이다. 나중에는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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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들판에 놓인 낡은 트랙터가 멋진 배경이 되기도 한다. 사진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그래도 우리에겐 신혼여행이 있다. 백년해로를 약조한 부부는, 아직 가보지도 않은 인도네시아 발리의 풀 빌라를 떠올리며 눈앞의 난제를 하나씩 해치워갔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왔고, 결혼식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인근의 호텔에서 아내 머리에 꽂힌 수천개나 됨직한 실 핀을 하나씩 제거하고, 24시간 영업하는 근처 도가니탕 집에서 ‘소맥’(소주+맥주)을 말았다. 결혼이고 뭐고, 두 사람은 이미 녹아내린 양초처럼 기진맥진해 있었다. “끝났다. 그리고 떠나자!” 쫀득한 도가니를 씹으며 넘긴 소맥 한 잔의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기막혔다. 그래. 신혼여행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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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협재해수욕장. 사진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전 세계를 강타한 역병의 시대다. 이른바 ‘뉴노멀’이란다. 세계 어느 곳에도 갈 수가 없는 게 ‘뉴노멀’이다. 풀 빌라 발리는 꿈도 못 꾼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꿈의 여행지 예약을 취소하고 국내로 눈 돌린 신혼부부가 한둘이 아니다. 진심으로, 2020년의 신혼부부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신혼여행 아닌가. 무엇에 의지해 그 험난한 결혼 과정을 버틸 것인가.


여기, 그 해답이 있다. 과거 제주는 신혼여행의 메카였다. 신랑은 양복저고리에 꽃을 달고, 신부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는 게 일반적이었단다. 한 세대 전의 일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그나마 형편이 어느 정도 허락하는 경우에만 단체여행으로 제주를 찾았다. 과거엔 신행도 ‘전투’였다. 용머리 해안이나 성산 일출봉 같은 유명 관광지를, 마치 ‘도장 찍는 것처럼’ 돌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단체관광객을 전문으로 받는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코로나19로 오늘 제주는 다시 신혼여행의 메카로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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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해수욕장을 손잡고 걷는 신혼부부. 사진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1993년 4월15일치 한 일간지의 ‘신혼여행 주선여행사 바가지 상흔 여전하다’는 제목의 기사에는 53만원에 호텔과 관광, 식사까지 모든 것이 제공된다는 여행사의 말을 믿고 제주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의 사연이 실렸다. 막상 도착해보니 숙소는 일반 여관이었고, 여행은 뒷전이고 억지로 사진과 비디오 제작비 수십만원을 강제로 추가 부담시켰단다. 신랑은 “신혼에 들뜬 사람들을 상대로 폭리를 노리는 상술이 밉기만 하다”고 했다.


다시 제주로 눈을 돌린 2020년의 신혼부부들은 ‘똑똑하게’ 즐긴다. 굳이 여행사를 통하지 않아도, 온갖 여행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특급호텔 등 제주의 숙박업계는 발 빠르게 신혼여행객을 위한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주만의 독특한 풍광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별도의 신혼여행 스냅사진 촬영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


그대들에게는 아직 제주가 있다. ‘그나마 제주’가 아니다. 세계어느 여행지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제주 허니문’의 달콤한 비밀이 당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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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길. 사진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 소준섭(34)·박현아(32) 부부는 원래 태국 코사무이로 신혼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예식장을 잡고, 여행사를 통해 근사한 신혼여행 코스를 예약했다. 모두 코로나19 사태가 이처럼 확산되기 이전 일이었다. 다행히 항공권은 환불을 받았지만, 다른 계약금은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었다. 가을이나 겨울쯤으로 신혼여행을 미룰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너무 억울했다. 한 번뿐인 신혼여행 아닌가.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제주행을 택했다. 신부 박씨는 말했다. “거의 반강제였죠.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저나 신랑이나 그동안 제주를 많이 다녀보지 않았어요. 그냥 가서 좀 쉬다 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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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송당리 일대. 송호균 객원기자

결혼식 다음 날부터 5박6일로 찾은 제주는, 신혼여행지로서도 ‘뜻밖의 발견’이었다고 했다. 국내 여행의 편의성과 충분히 이국적인 풍광을 모두 누릴 수 있어서다. 서귀포시 예래동에 위치한 ‘히든클리프’ 리조트에서 묵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귀고, 창밖에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는 싱그러웠다. “표선면 정석비행장 근처였는데, 풍경이 예뻐서 그냥 차에서 내렸어요. 아름다운 제주의 들판에 저희밖에 없었어요. 가만히 신랑과 손을 잡고 자연의 소리를 들었죠. 이번 신혼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그들은 제주 신혼여행의 추억을 보다 특별하게 기억하기 위해 ‘웨딩 스냅사진 찍기’에도 나섰다. 이미 결혼식을 올리기 전 서울에서 ‘스튜디오 촬영’은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친구 중 한 명이 별도의 사진 촬영을 예약해줬다. 결혼선물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제주에서 활동하는 ‘하나토리스냅’의 이하나(37) 작가와 함께 제주시의 협재해수욕장에서 웨딩 스냅사진을 찍었다. 여행인 듯, 출사인 듯 신혼여행을 즐기는 부부의 ‘소중한 시간’이 협재해수욕장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그대로 ‘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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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치기해변. 사진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차량으로 이동하며 한립읍 성이시돌 목장 인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만연한 여름 기운을 머금고 있는 들판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부부와 이하나 작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고 했다. “우리 내려 볼까요!” 의외성은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발견의 기쁨이다. 게다가 이들은 신혼여행 중이었고, 옆에는 프로 사진작가가 있었다. 더 이상 바랄 게 있을까. 신부 박씨는 “사진을 찍으면서 미처 몰랐던 제주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고, 몰랐던 곳도 많이 다녔다. 제주에서 웨딩스냅을 찍지 않았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고 했다. 이하나 작가는 “판에 박힌 사진이 아니라 마치 여행하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이국적인 풍광과 하나가 되는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게 제주 신혼여행 스냅사진 촬영의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했다.


통상 3~4시간가량 걸리는 웨딩스냅 촬영비용은 35만원이다. 웨딩사진 예약과 문의는 하나토리스냅 누리집(hanatorysnap.com)에서 하면 된다. 이하나 작가는 “다른 여행객이 있어도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인트가 많고 풍광도 더없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가 추천하는 촬영지는 아래와 같다.

협재해수욕장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손꼽힌다. 오전에 촬영하면 파란 하늘과 하늘만큼 파란 물빛을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다. 하얀 모래사장 너머로 지척에는 비양도의 구릉이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낸다. 유명한 ‘석양 포인트’이기도 한데, 저녁에 촬영하면 붉게 물드는 노을을 담을 수 있다. (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2497-1)


사려니숲길

그늘진 숲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아름다운 사진을 남기기 좋다. 기존 사려니숲길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에 ‘사려니숲길’ 대신 ‘붉은오름’을 검색해 인근 도로에 차를 세우면 곧바로 숲길로 진입할 수 있어 편리하다. (붉은오름 방향: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158-4)


아부오름

약간의 등산으로 드넓은 ‘제주 오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진 명소다. 주차장에서 5분만 오르막길을 오르면 평지나 다름없는 탐방로를 따라 분지 형태의 오름을 원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다. 운동화 정도만 준비해도 충분히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164-1)


광치기해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성산 일출봉보다 일출봉의 풍광을 더 드라마틱하게 즐길 수 있는, 제주 동부권의 최고 비경으로 손꼽힌다. 현무암으로 이뤄진 제주 특유의 해안 지형과 일출봉의 웅장함, 푸른 바다의 시원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때표를 참고해 어느 정도 물이 빠진 썰물 때 방문하는 게 좋다.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224-33)


오설록 티하우스

마치 칼로 그어놓은 것처럼 조형미가 넘치는 끝없는 녹차 밭이 사시사철 푸른 곳이다. 아기자기한 소품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초보자도 좋은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살살 녹는 녹차 아이스크림과 부드러운 롤 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덤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신화역사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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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록 티하우스의 녹차밭. 송호균 객원기자

신혼여행이라면 모름지기 ‘푹 쉬는’ 호캉스(호텔+바캉스)가 제격이다. 특급호텔 기준으로 1박에 100만원이 넘는 비용은 다소 부담스럽지만, 이건 신혼여행 아닌가. ‘때아닌 특수’를 맞은 제주도내 특급호텔 등 숙박 및 여행업계도 앞다퉈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제주 신라호텔은 올 초 출시한 신혼여행 상품을 ‘로맨틱 허니문’으로 개편해 8월까지 연장해 판매하고 있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허니문 패키지 판매 실적은 3월에 견줘 6월에 5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프라이빗 체크인과 공항 픽업·샌딩 서비스 외에도, 2박 이상 예약하면 1980년대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웨딩 스튜디오에서 ‘부모 세대의 결혼식’을 재현하는 사진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준다. 3박 이상 투숙객에게는 글램핑이 무료로 제공된다. 이 밖에도 제주신화월드는 1박에 48만원대의 신혼여행 상품인 ‘스위트&러브’ 패키지를 연말까지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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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라호텔은 신혼부부에게 1980년대 감성의 ‘옛날 결혼식’을 재현해 사진을 찍어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사진 제주 신라호텔 제공

안덕면 감산리에 위치한 ‘건강과 성 박물관’도 신혼부부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 관광 포인트다. ‘에로티시즘’을 전면에 내세운 국내 유일의 박물관답게 성을 테마로 한 각종 조각상과 미술품, 기념품 등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오감체험관, 북 카페 등도 인기가 많다. 연중무휴로 운영하며 입장료는 1만2000원이다.


제주/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