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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시간의 극장

그리고…성희롱 예방교육이 시작됐다

by한겨레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5화 신 교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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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 국내에서도 이제 성희롱을 명백한 성범죄의 하나로 여긴다. 1999년까지만 해도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었다. 저절로 이뤄진 건 없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싸움이 있다. 한 성희롱 피해자와 그의 연대자들이 함께 27년 전 처음으로 세상에 질문을 던졌다. 6년에 이르는 싸움에서 그들이 물러서지 않았기에 얻은 성취를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다. <한겨레>는 어떤 언론보다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전하려 노력해왔다. <한겨레> 아카이브에서 그 사건을 돌아본다. 해설 이정연



서울대 ㅇ조교 사건으로 기억되는


국내 최초 성희롱 법정싸움


여성인권과 노동권 신장에 한 획


1심에서 3천만원 지급 판결


항소심에서 뒤집어졌지만 원고 승소


직장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화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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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자의 기사



변화의 파문은 1993년 8월24일 시작됐다. <한겨레>는 1993년 10월7일치에 이와 관련한 첫 기사를 실었다. ‘교수•여자 조교 성희롱 법정비화’라는 제목으로 단 220자의 짧은 기사가 19면 구석에 실렸다. “최근 서울대를 들끓게 하고 있는 교수와 여자 조교 사이의 성희롱 공방이 법정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8월24일 서울대 자연대 조교 ○아무개(25•여)씨가 담당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공개하면서 일어난 이 공방은 신아무개 교수가 지난달 16일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국내 최초로 성희롱에 대한 법정싸움으로 비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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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이삭’이라는 코너 아래 실렸다. 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줍듯 흘려버릴 수 없는 사건을 짧게 소개하는 코너였다. ‘성희롱’은 당시 낯선 개념이었다. 처음엔 지면에 짧게 다뤄진 이 사건은 여성 인권과 노동권의 신장에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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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불러야 할 사건 이름


이 사건을 기억하는 40살 이상의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서울대 ㅇ조교 성희롱 사건’이라고 기억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의 성씨와 직위로 사건을 호명했다. ‘서울대 여조교 성희롱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93년 10월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모임인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성희롱을 한 교수 등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며 고소한 뒤 언론은 이 사건에 더욱 주목한다. 대책위의 이름에도 피해 당사자의 직위를 부각했을 뿐이었다. 언론도 이런 호명에 문제의식이 크지 않았다.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은 이 사건을 대부분 ‘서울대 ㅇ조교 사건’으로 칭했다. 과거의 기사를 오늘날의 성인지 감수성에 비춰 재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호명 방식이 오늘날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기에 힘주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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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가해자들의 이름은 지운 채 불법 촬영 피해를 당한 여성 연예인의 이름을 앞세우고, 성폭력 피해를 본 여성 운동인의 이름을 내세워 사건을 부르는 일은 27년이 지난 지금에도 바뀌지 않았다. 그 잘못된 호명 뒤에 성범죄 가해자들은 숨고, 잊힌다. 한국기자협회가 여성가족부와 함께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실천요강’에는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는 것은 피해자를 주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줄 소지가 있으므로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워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등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제 서울대 ㅇ조교 성희롱 사건이 아니라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으로 불리고, 기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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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만원을 지급하라



피해자가 대자보로 피해 사실을 공론화한 뒤 지난한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피해자가 1993년 10월 서울민사지법에 신아무개 교수와 서울대 총장 등을 상대로 5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최은순(현 법률사무소 디케 대표변호사), 이종걸(정치인), 박원순(현 서울시장) 변호사가 피해자 편에서 공동 변론에 나섰다.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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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신 교수는 일상을 이어갔다. 1994년 봄학기에 4개 강좌를 하게 됐다. 1994년 3월3일치 <한겨레>는 서울대 성희롱대책위 소속 학생 50여명이 1994학년도 입학식에서 이에 항의해 침묵시위를 했다고 전했다. 같은 달 22일 피해자는 재판정에서 직접 성희롱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한달 뒤인 4월18일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승리였다. 서울민사지법 합의18부(재판장 박장우 부장판사)는 “신 교수는 우씨에게 3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직장 내 근로자의 지휘•명령•인사권을 갖고 있거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상사가 성과 관련한 언동으로 성적 불쾌감과 굴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직무수행에 부당하게 간섭하기 위해 이런 행위를 했을 때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성희롱에 관한 국내 첫 사법적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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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차림을 즐겨했다



승리의 기쁨은 짧았다. 신 교수는 곧장 항소를 제기했다. 1994년 7월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고, 재판부는 1994년 10월1일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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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 중엔 2차 가해 발언이 쏟아졌다. 김종태 기자는 1995년 5월24일치 항소심 결심공판 기사에 “신 교수 쪽에서 ‘당시 아무개씨는 남성들로부터 성적 충동을 일으킬 수 없는 청바지 차림을 즐겨했다’고 주장하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방청객은 어이가 없어 웃었겠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피해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기사엔 “본인 진술에서 아무개씨는 내내 울먹이면서 ‘성희롱 당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어떤 때는 교수님 뺨을 때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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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25일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박용상 부장판사)는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판결문 전체를 구해 읽었다. 판결문은 성희롱(재판부는 성희롱을 성적 괴롭힘으로 정해 판시했다) 개념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녀관계를 적대적인 경계의 관계로만 인식하여 그 사이에서 일어난 무의식적인 또는 경미한 실수를 모두 법적 제재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주장에는 경계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남녀 간의 모든 접촉의 시도는 위축되고 모든 남녀관계가 얼어붙게 되어 활기차고 정열적인 남녀관계의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이 사라지게 될 우려가 있다. 그것은 남성에게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불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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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입증할 필요 없다



다시 2년 반이 흐르고 1998년 2월10일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최종영 대법관)는 피해자가 신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신체 접촉이나 성적 농담에 대해 손해배상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단이 드디어 나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휘, 감독관계에 있는 신 교수의 이런 행동은 분명한 성적 동기와 의도를 가지고 계속적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또는 호의적이고 권유적인 언동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아무개씨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해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불법적인 성희롱의 범위를 넓게 보았고,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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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25일 서울고법 민사18부(재판장 홍일표 부장판사)는 25일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마침내 법정싸움의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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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주셔서 고맙습니다



1999년 2월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됐다. 사업주에게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규정을 두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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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가 이런 의무를 위반했을 때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피해자에게 고용상 불이익을 줬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났다. 성차별과 가부장적 사고방식, 이에 바탕을 둔 성희롱과 성추행 등 성범죄는 여전히 만연한다. 27년 전 성희롱 공론화 뒤 “여사원에게 함부로 말하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말라”는 전혀 웃지 못할 농담이 넘실댔다. 성범죄의 피해자와 연대자들이 미투 운동, ○○계 성폭력 운동을 이어가는데, 자신은 가해자일 리 없다고 여기는 방관자들은 27년째 같은 농담을 한다. 4월23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집무실에서 여성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알려졌다. 직장 내 성범죄와의 싸움에 끝은 없다.


<한겨레>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피해자의 마지막 흔적은 2001년 5월 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박민희 기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제정한 제1회 성폭력추방운동상 수상자로 그가 선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수상 소감을 전했다. “힘겹게 법정 투쟁을 해왔지만 아직도 피해자인 저는 사회적 약자이고, 가해자는 강자입니다. 여성이 성적인 문제에 맞서 싸우는 것이 개인적으론 너무나 힘든 사회입니다.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문제를 제기했을 것입니다.”


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야 한다. 부디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일하는 여성인 나는 뒤늦은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싸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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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회 해설자인 이정연 기자는 <한겨레>에서 사회부, 경제부, 한겨레21, esc팀을 거쳐 현재 젠더데스크를 맡고 있습니다. 젠더데스크는 한겨레 구성원과 함께 젠더 이슈와 성범죄 관련 기사를 상시적으로 살피며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콘텐츠를 내놓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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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팩트스토리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 실화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2017년 설립 이후 6편의 르포, 웹소설을 개발했고 2편이 영상 판권계약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 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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