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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섬, 너의 이름은 카누

by한겨레

카누&여행


은밀하게, 외따로, 반려자와 함께

한없이 고요하고 느린 시간

호기심·모험심, 카누 여행 이끌어

카누를 타면 알게 되는 것들


물 위를 걸었다, 아주 천천히

물 밖에선 몰랐던 소리와 풍경

‘지그재그’ ‘뒤뚱뒤뚱’ 헤매도 좋아

구석구석 자연 누비며 쉬어 가는

강원 홍천강 카누 여행

한겨레

지난 9일 강원도 홍천강 배바위 앞, 1인용 카누에 누운 김선식 기자. 360도 카메라로 촬영했다. 정용일 기자

‘카누 한 척. 목재. 약 3m. 좁은 좌석 2개.’ 애덤과 데이비드는 카누를 ‘피라미호’라 불렀다. 숭어보다 날씬하고 강꼬치고기보다는 온순한 피라미가 꼭 카누 같다고 생각했다. 두 어린이(주인공)는 동화 <세이 강에서 보낸 여름>에서 피라미호를 타고 모험을 떠난다. 옛 보물을 찾아 떠난 아이들의 모험은 카누 타기를 닮았다. 그건 느리고 기약 없지만, 은밀한 경험이다.


카누는 느리다. 양날 패들(노)을 휘돌리며 젓는 카약과 달리 외날 패들을 쓴다. 초보자가 이끄는 카누는 영락없이 곡선을 그리며 뺑뺑 돌아간다. 똑바로 저어도 똑바로 가지 않는다. 카누에서 보는 세상은 온통 곡선이다. 앞사람 패들은 반원을 그리며 돌고 블레이드(패들 날)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은 강에 동심원을 그린다. 물고기는 수면으로 뛰어올라 곡예를 부리고 놀란 물새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머리와 꼬리 모두 부드럽게 말려 올라간 카누도 곡선의 세계에서 한 자리를 점한다.


카누에선 패들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또렷이 들린다. 노 젓기를 멈추면 한없이 고요한 시간이 강을 따라 흐른다. ‘둘(주인공 두 어린이)은 노를 소리 없이 물속에 넣었다가 천천히 빼내고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수면에 닿을락 말락 한 높이로 들고 있다가 다시 물에 담갔다. 그렇게 조용히 노를 저은 덕분에 생각지 않은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다. 강굽이를 스르르 돌아가자, 커다란 잿빛 새가 화들짝 놀라 날아오르더니 물기 젖은 몸을 반짝이며 다리를 쭉 뻗은 채 날개를 천천히 퍼덕여 원을 그리듯 날아간 것이다.’(<세이 강에서 보낸 여름>) 느리고 조용한 카누 타기가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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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식 기자가 카누에서 노를 젓다 말고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카누는 말없이 모험을 권한다. 카누와 캠핑, 카누와 낚시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다. 강원도 홍천강에서 카누 교육·대여 사업을 하는 ‘캐나디언 카누클럽’ 이재관(63) 대표는 카누와 캠핑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캠핑만 하다가 강 건너편에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카누를 타거나, 카누만 타다가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하곤 캠핑을 하는 경우죠.” 우연히 외딴 ‘섬’을 보고 생긴 호기심과 모험심이 카누 여행을 이끈다.


어쩌면 카누가 섬일 것이다. 강에 홀로 떠 있는 카누는 평온한 단절감을 선사한다. 나 홀로, 가족·친구·연인끼리, 반려동물과 함께 은밀한 공간에서 하나가 되어 자연에 몰두할 수 있다. ‘춘천 물레길’ 임병로(42) 대표는 말했다. “카누에선 서로 대화를 안 하면 똑바로 더 못 가요. 카누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대화죠.” 카누에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앉는다. 서로 마주 보지 않고 대화하는 맛도 색다르다.


지난 9일 강원도 홍천강에 카누를 띄웠다. 일행과 호흡 맞춰 노를 젓다가, 가만히 앉아 물 안에서만 보이는 풍경과 소리에 놀랐다가, 홀로 카누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카누 중독은 한 번 빠지면 평생 간다’는 경고(<아빠와 함께 떠나는 놀라운 모험의 세계>)가 뼈에 사무칠 만큼 와 닿았다. 카누 한 척 빌려 홀로 유유히 떠다니다가 이름 모를 금모래 빛 강기슭에서 얼마간 머무는 날을 상상했다. 카누를 타면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심장이 생각보다 뜨겁고도 차분하다는 걸.


‘워터 워커’.(물 위를 걷는 사람) 카누 타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카누는 천천히 노를 저으면 사람 걷는 속도(시속 3~5㎞)와 비슷하다고 한다. 캐나다 카누이스트 빌 메이슨은 1984년 다큐멘터리 <워터 워커>를 세상에 내놨다. 자신이 카누를 타고 북미 최대 호수인 슈피리어호를 탐험하는 여정을 담았다. 그는 카누의 속도와 눈높이로 자연을 바라봤다. 캐나다 중남부 온타리오주를 소개하는 한 유튜브 영상에서 캐나다인들은 말한다.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느끼며”, “자연과 접속하고”, 종국엔 “나 자신과 접속하는 행위”가 카누다. 과연? 좁은 카누에서 뒤뚱거리다 강에 빠지는 건 아닐까? 지난 8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강원도 홍천강으로 향했다. 사진 취재를 맡은 정용일 기자가 동행했다. 2인용 빨간 카누 한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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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강원도 홍천강에서 김선식 기자가 카누를 타고 있다. 정용일 기자

9일 새벽 6시, 하얀 나비들이 텐트 앞을 서성였다. 전날 밤 숲 속 야영장으로 가는 길, 은가루처럼 빛나던 반딧불이 떠올랐다. 밤사이 나비로 환생한 걸까.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살도 강물에 산산이 부서져 반짝거리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은 이미 강가에 가 있다. 카누 여행은 기대와 설렘 없이 설명할 수 없다. 강 저편 외딴 강변이 궁금해 카누를 타는 법이니까. 누구나 쉽게 탈 수 있는 카누라지만 기초 교육은 필수다. ‘캐나디안 카누클럽’(홍천군 서면 마곡리) 이재관(63) 대표는 2010년부터 홍천강에서 카누 대여·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레크리에이션 카누협회’에서 발급하는 카누 인스트럭터 자격증 소지자다.


“수직으로 세웠을 때 자신의 턱과 눈 사이에 오는 패들(노)이 적당한 길이입니다.” 이재관 대표가 패들 8개를 세워놓고 설명했다. 패들 옆에 2인용 빨간색 카누가 누워 있었다. 길이 약 16피트(4.88m), 무게 약 35㎏인 폴리에스테르 재질 카누다. “앞 사람이 탈 때 뒷사람은 밖에서 카누를 잡아주고 이어 탑니다.” 카누에 오를 땐 두 팔, 두 발을 벌려 엉금엉금 기어가듯 자리를 잡는다. 카누가 옆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거다. “최대한 무게 중심을 아래에 두기 위해 바닥에 무릎을 어깨너비로 꿇고 발목을 편 채 앉는 게 원칙”이지만 “초보자들은 좌석에 앉아 양 무릎이 옆면에 닿도록 다리를 벌리거나 ‘양반 다리’ 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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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들에 관해 설명 중인 이재관 대표. 정용일 기자

이어 스트로크(노 젓기) 설명. 그립(손잡이) 맨 위쪽을 한 손으로 움켜쥐듯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샤프트(패들 허리 부분)를 잡는다. 블레이드(날)를 앞쪽 직선 방향 45도 각도로 물에 밀어 넣고 뒤로 당기는 게 포워드 스트로크(앞으로 가기). 백 스트로크는 그 반대다. 두명이 같은 방향(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노를 저으면 카누는 그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 나아간다. 뒷사람이 패들을 옆쪽 수평으로 뻗어 뒤로 당기면 카누는 그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마지막으로 위급 상황 대처법. “가장 위험한 건 전복된 배 안에 갇힌 상황입니다. 무조건 카누 밖으로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주변 카누들은 재빨리 다가가 빠진 사람이 보(카누 앞쪽)나 스턴(뒤쪽)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초보 구조자가 물에 빠진 사람을 끌어 올리려고 하면 카누가 뒤집히기 쉽다.


드디어 카누를 들고 강으로 나갔다. 마곡유원지 들머리부터 상류 배바위까지 다녀오는 원점 회귀 코스다. 이재관 대표는 “직선으로 나아가면 왕복 6㎞ 거리인데 편도만 10㎞ 타는 사람들이 있다. 워낙 지그재그로 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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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카누를 타고 앞서 가는 이재관 대표. 정용일 기자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였다. 카누는 똑바로 가지 않았다. 왼쪽을 저으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을 저으면 왼쪽으로 나아갔다. 정용일 기자가 앞좌석에, 내가 뒷좌석에 앉았다. 뒷좌석은 노 젓기와 방향 전환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정 기자가 카메라와 가방을 내려놓느라 움직일 때마다 카누가 뒤뚱거렸다. 지그재그, 뒤뚱뒤뚱, 우린 강을 오리처럼 ‘걸었다’. 우리보다 먼저 1인용 카누를 타고 출발한 이 대표가 한참 앞서갔다. 저만치 멀리 암벽이 드리운 그늘을 따라 부드럽게 나아가는 이 대표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양날 패들로 거침없이 직진하는 카약 타는 사람들, 카누 위에 올라서 긴 패들로 우아하게 ‘스탠딩 카누’를 즐기는 이들이 지나갔다. 한참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선 채로 카누를 타는 것처럼 보여 많은 이들이 “스탠딩 카누”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스탠드 업 패들보드’(SUP)라는 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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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업 패들보드'(SUP)를 타는 이들이 양 옆으로 지나갔다. 정용일 기자

“왜 노를 안 젓는 거야?” 앞에서 쉼 없이 노를 젓던 정 기자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난 일찌감치 똑바로 가는 걸 포기했다. 급기야 노를 무릎에 얹고 가만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강은 고요했다. 강변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강물에선 들렸다. ‘깩깩’ 지저귀는 물새 소리, ‘첨벙’ 수면으로 뛰어오른 물고기 소리, ‘또르륵’ 패들 날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 소리. 얕은 강물 아래 듬성듬성한 수초들도 눈에 들어왔다. 수로가 좁아지는 구간, 방향 전환에 실패한 카누는 암벽에 부딪혔다. 다행히도 노를 열심히 젓지 않았기에 영화 같은 극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암벽 그늘을 따라갔다. 사람이 걸어서는 닿을 수 없는 곳이다. 미지의 정글을 탐험하면 이런 기분일까. 나뭇가지 아래 암초 사이를 지나 카누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어느덧 정 기자도 아무 말 없이 노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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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 대표(사진 오른쪽)가 ‘제이(J) 스트로크’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거대한 범선 모양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꼭대기엔 돛처럼 소나무가 자랐다. 중간 기점 ‘배바위’다. 카누를 정박했다. 이 대표가 그제야 똑바로 나아갈 수 있는 노 젓기 기술을 알려줬다. 가장 효율적이고 중요한 포워드 스트로크 기술이라 불리는 ‘제이(J) 스트로크’다. “노를 카누 앞쪽에 담그고 뒤로 당겨 몸까지 왔을 때, 그립을 서서히 바깥쪽으로 90도 회전합니다. 이때 그립을 잡은 손 엄지손가락이 아래를 향하도록 합니다. 물 밖으로 패들을 들어 올려 다시 앞쪽으로 보냅니다.” 금세 익숙해지진 않는다고 한다. 초보들에겐 그립을 90도 회전한 뒤 패들을 4초간 물에 담가놓는 방법을 권한다. 그렇게만 해도 카누가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 나아가는 걸 막아 준다고 한다. 물속에 담근 패들이 방향타 구실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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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위 앞에서 카누를 타는 김선식 기자와 이재관 대표(사진 오른쪽). 정용일 기자

인적 없는 배바위, 강물은 맑고 햇볕은 따가웠다. “여기서 종일 놀다 하룻밤 자고 가면 좋겠네.” 내 말을 들은 정 기자는 “카누에 누워보라”고 했다. 사진 한장 찍자는 것이었다. 카누에 올라 간신히 균형 잡고 패들을 목에 받쳐 누웠다. 온몸으로 태양을 맞이하는 시간이었다. 강 한복판에 몸을 놓아버린 순간 해방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반소매 아래 두 팔이 붉게 익어가는 줄도 모른 채 홀로 섬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 “이제 됐어.”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강을 달래듯 부드럽게 노를 저어 보았다. 두 팔은 열기를 뿜어냈고 카누는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우리의 패들은 더는 고장 난 방향타가 아니었다. 그건 오리의 물갈퀴였고 물새의 날개였다. 목적지가 없는 양 구석구석 떠다녔다. 물 위를 걷는 시간, 나만의 섬(카누)과 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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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를 옆으로 세우면 바람을 막아준다. 정용일 기자

카누 어디서 타요?

  1. 캐나디언 카누클럽 : 강원 홍천강 마곡유원지~배바위 원점 회귀 코스를 카누를 빌려 타고 여행할 수 있다.(6㎞·2시간 이상 소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레크리에이션 카누협회’에서 발급하는 카누 인스트럭터 자격증을 딴 이재관 대표가 카누아카데미도 운영한다. 당일 투어는 카누 한 대 기준 15만원(부가세 별도), 1박 2일 캠핑 투어는 20만원. 카누 한 대에 최대 성인 2명과 어린이 2명, 또는 성인 3명이 탈 수 있다. 대여 시간대는 오전 9시~오후 6시(하절기 기준)다.(강원 홍천군 서면 마곡길 113-28/010-3969-9000/예약은 3일 전 필수)
  2. 춘천물레길 : 춘천 의암호에서 카누 여행을 할 수 있다. 초급자는 스카이워크 길(3㎞·1시간 소요), 중급자는 붕어섬 길(4㎞·1시간30분 소요), 상급자는 중도 길(5㎞·2시간 소요)을 우든(나무) 카누를 타고 돌아볼 수 있다. 대여 시간대는 오전 9시~저녁 8시,(하절기 기준·매주 화요일 휴무) 1인당 1만5000원(할인가 1만원)이다. 최소 2차례 이상 이용자에 한해, 카누를 1박 2일(7만원) 빌려주기도 한다. 적삼목으로 직접 제작한 카누 판매도 한다.(한 대당 300~500만원) ‘춘천물레길’ 외에 의암호 주변엔 카누 대여 업체가 3개 이상 있다.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타운길 113-1/033-242-8463/mullegil.org)
  3. 협동조합 노리터 : 섬진강에서도 카누 여행을 할 수 있다. 초급자는 경남 하동 화개장터 주변 원점회귀 코스(1시간·1인당 2만5000원), 중급자는 여울 한 곳을 지나는 화개장터~피아골~궁도장 코스(1시간30분~2시간·3만5000원), 상급자는 여러 여울을 지나는 화개장터~궁도장~평사리 코스(3시간 이상·7만원)를 카누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 대여 시간대는 오전 10시~오후 4시다.(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720-4/055-882-2237/hadongplay.com/하루 전 예약 및 2인 이상 예약 필수)
  4. 라온보트 : 충북 옥천군에 위치한 우든 카누 제작·판매업체다. 적삼목으로 직접 제작한 카누를 판매한다.(한 대당 300만 원대 초반~400만 원대 중반) 패들, 나무 컵, 캠핑용 식기류도 제작·판매한다. (충북 옥천군 금강로 64/인스타그램 @raoncanoe)

홍천(강원)/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