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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ESC

훈남? 뇌섹남? 안경이 좌우하는 세계

by한겨레

스타일


‘발정 방지 안경’ 썼던 미군들

증강 현실 안경 곧 우리 곁으로

안경은 이제 패션의 중심

최근 안경알 48㎜→46㎜

얼굴 작아진 젊은 세대 영향

브리지·안경다리 길이 등 확인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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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늄 안경은 가볍고 열전도율이 낮아서 여름에 쓰기 좋다. 오르오르 제공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시절, 차 안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운전 못 하는 거 보니 보나 마나 안경잡이네.” 어린 마음에도 이 말이 편견으로 느껴져 찜찜했던 데다, 일반 시력과 교정시력 간의 어떤 차이가 정확히 운전 실력에 영향을 주는 변수인지 알 수 없어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안경 쓴 이들에 대한 조롱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던 건 아니다. 과거 미군에서는 시력이 나쁜 병사를 위해 ‘아르피지’(RPG·Regulation Prescription Glasses)라는 시력 교정 안경을 지급했다. 안경 디자인은 현재 유행하는 플라스틱 뿔테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1960년대 군에 복무했던 미군은 이 안경 디자인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아르피지’라는 이름 대신 ‘버스 컨트롤 글라시스’(Birth Control Glasses·직역하면 ‘출생 억제 안경’)’, ‘루트 프리벤션 글라시스’(Rut Prevention Glasses·직역하면 ‘발정 방지 안경’)’라고 불렀다. 이 안경을 쓰면 여성을 못 만날 만큼 못생겨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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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의 등딱지와 비슷한 문양의 아세테이트 안경. 바버샵 제공

시대가 변하고 안경의 지위도 달라졌다. 안경 하나로 원격 교육, 화상 회의, 스포츠 관람 등이 가능해졌다. 증강 현실 안경(AR Glasses)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스마트 워치를 대체할 차세대 웨어러블 기기가 증강 현실 안경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아이티(IT) 공룡들이 전부 증강 현실 안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운전 못 한다고 조롱받던 안경잡이들이 이제 기술 최첨단을 걷는 얼리어답터로 신분 상승을 이룬 것이다.


다만 증강 현실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도 안경은 다양한 이들의 부름을 받았다. 단순 시력 교정용이 아닌, 패션 액세서리로서의 역할이 커지자 사람들은 색안경을 벗고 안경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예인이 알 없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 것이 알려지면서, 유재석이나 윤종신처럼 영향력 있는 연예인이 안경으로 화장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시력이 멀쩡한 이들도 안경을 찾기 시작했다. 글자가 안 보여 안경원에 가는 이만큼이나 ‘이동휘 안경’을 검색해 비슷한 안경을 찾아 쓰고 다니는 이들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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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빈티지 스타일 안경. 레스카 제공

안경을 쓰는 이들은 잘 알겠지만, 안경은 이미지를 만드는 요술 램프다. 눈썹 숱이 적어 권위가 부족해 보였던 미국 장교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브로라인 안경(흔히 ‘하금테’라고 부르는 안경)을 쓰고 다녔다는 (안경 마니아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는 안경이 가진 마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20~30대 남성들 사이에서 안경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현상은 전통적인 미남 상을 대체한 훈남 신드롬과 무관하지 않다. 사전에서는 ‘훈남’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성품을 지닌 남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재 선호하는 남성상에 ‘성품’이 포함된다는 뜻이다. ‘뇌섹남’ 같은 단어에서는 높은 수준의 지능 혹은 현명함을 언급하고, ‘현실 남친’이라는 용어는 연인관계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성품과 학식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지만 부드럽고 차분해 보일 수도 학구적인 걸 넘어 개화기 지식인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이 이미지 메이킹이고 여기엔 안경만 한 물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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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테 안경을 쓴 배우 이동휘. 이동휘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렇다고 모든 안경이 각광을 받는 건 아니다. 안경도 패션 액세서리인 만큼 사람들이 선호하는 특징이 있다. 일단 소재다. 현재 안경 소재의 양대 산맥은 플라스틱과 금속이다. 플라스틱 테 중에서 가장 각광 받는 것은 아세테이트 소재다. 흔히 ‘뿔테’라고 부르는 다수의 안경이 실은 뿔이 아닌 아세테이트로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버펄로 뿔을 이용하거나 바다거북의 등딱지인 귀갑을 사용했지만, 동물 보호가 강화되고 소재 관련 기술이 개발된 요즘은 대부분 아세테이트를 활용한다. 염색이 쉬운 데다, 귀갑과 뿔의 은은한 문양(이를 마블링이라고도 한다)을 흉내 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금속 테 중에서는 티타늄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이 소재는 항공기 제작에 사용할 만큼 가볍고 단단하다. 같은 강도 기준, 강철보다 약 43%가량 무게가 덜 나간다. 무게가 안경 착용감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고려하면 티타늄은 안경 소재로서 꽤 이점이 있다. 바닷물에서도 부식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내부식성이 뛰어난 것도 장점이다. 탄성이 있고 열전도율도 금속 중 낮아 한여름 온종일 티타늄 안경을 쓰고 있어도 피로감이 적다. 게다가 피부 알레르기 반응도 거의 없다.


안경 사이즈는 점점 작아지는 추세다. 대부분의 안경다리 안쪽엔 ‘46–23–150’같이 3개로 구성된 숫자가 적혀 있다. 이는 안경의 수치로 단위는 전부 ㎜다. 먼저 ‘46’은 안경알을 넣는 부위의 가로 길이를 측정한 값이다. 그다음 ‘23’은 브리지 너비다. 브리지는 안경의 중앙, 안경알을 잇는 부위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150’은 안경다리 길이다. 이중 먼저 살펴봐야 할 수치가 안경알의 가로 너비. 몇 년 전만 해도 48㎜ 안경의 인기가 높았던 반면, 최근에는 46㎜ 제품을 찾는 이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이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얼굴이 작아지는 추세와 연관이 있는 데다, 과거에는 큰 안경을 써서 얼굴을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려고 했던 반면 최근에는 얼굴과 안경의 적당한 비율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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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엑스의 안경의 그의 성정을 드러내는 데 일조한 아이템. 연설하고 있는 말콤 엑스. <한겨레> 자료 사진

브리지와 다리 길이도 안경 구매 전 꼭 확인해야 한다. 안경을 썼을 때 안경알 중앙이 눈 위치와 일치되어야 보기 좋은데, 이를 결정하는 것이 브리지 길이다. 브리지가 너무 짧으면 눈이 몰려 보이고, 반대로 너무 길면…. 상상에 맡기겠다. 또 안경다리 길이를 확인해야 하는 것은 귀 위치가 사람마다 제각각이어서다. 귀가 상대적으로 얼굴에서 먼 사람은 안경다리가 긴 제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경이 귀를 위태롭게 붙잡는 형국이 된다. 이와 달리 다리가 너무 길면 귀 뒤로 너무 많이 튀어나와 보기 좋지 않다.


누군가 필자에게 안경을 골라달라고 하면 여름이니 작고 둥그스름한 티타늄 테를 추천하겠다. 하지만 이건 ‘만능소스’처럼 어디에나 적용 가능한 해법은 아니다. 반드시 써본 후 어울리는 제품을 찾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전문가인 안경사에게 조언을 구하시라. 이것이 안경 선택의 거의 유일한 현답이다. 첨언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안경 유통업체 ‘코어’ 변웅진 대표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과거에는 연예인이 쓴 안경, 유명한 브랜드의 안경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본인의 패션 스타일을 고려해 안경을 고르는 분이 늘고 있습니다. 안경도 패션의 일부로 여기는 거죠. 또 최근 몇 년간 미국 빈티지 스타일의 안경테 열풍이 거셌다면, 최근에는 프랑스 빈티지 스타일의 안경테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임건(<에스콰이어> 디지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