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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무엇을 위한 전쟁영화였는지…돌아오지 않는 대답들

by한겨레

영화로 보는 한국전쟁

한겨레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6·25 한국전쟁은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 특히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영화의 경우 시대마다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천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영화에 나이테처럼 새겨진 전쟁의 그림자와 그 안에서의 치열한 예술적 성찰을 짚어본다.


김기덕의 <5인의 해병>(1961),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은 6·25 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초창기 한국영화의 전범 같은 작품들이다. 5·16 이후 강화된 국시로서의 반공 이념을 선전하는 국책영화의 외피를 취하면서 전쟁에 내몰린 병사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를 만든다. 극한상황에 몰린 병사들의 우정과 갈등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집단의 비극에 대한 뼈저린 상실감으로 치솟고 대개는 어머니로 대변되는 여인들을 향한 고해의 몸짓과 눈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갈등과 통곡의 드라마 막간에서 희극적인 면모로 관객을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순박한 이들이 활약한다(<5인의 해병>의 후라이보이 곽규석,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막둥이 구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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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5인의 해병>(1961).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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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죽음을 향해 장렬히 뛰어드는 마초적 호쾌함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어머니 죄송해요, 사랑해요, 라고 하고 싶은 다 큰 남자들의 징징대는 모습으로 감상적 신파를 내세우는 것은 신상옥의 <빨간 마후라>(1964)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로선 엄청난 대작 규모로 제작된 이 영화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육박하는 긴장감을 자아내는 전투 비행기 조종사들의 공중전을 보여준다. 죽음을 불사하는 게 아니라 죽음에의 충동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 속 전투기 조종사들을 대표하는 장교 나관중(신영균)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쟁에만 필요한 놈이다. 나같이 무식하고 더럽고 쓸모없는 인간은 빨리 없어지고, 순수한 너희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너희들은 자라나라, 나는 그 밑에 깔릴 재다, 거름이다.” 이 반공 전쟁영화의 무용담은 늘 그렇듯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비극으로 도달하며 마지막 장면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등장해 모든 자식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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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감독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3).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겉으로는 반공영화를 표방하지만 속으로는 반전사상을 드러낸 감독으로서 가장 극적인 궤적을 그린 이는 이만희 감독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대규모 전투 장면과 인간적인 드라마를 세련되게 엮는 재능을 보여줬던 그는 <7인의 여포로>(1965)에서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고 반공 색채가 강한 후속작 <군번 없는 용사>(1966)를 통해 용공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낙인을 벗었다. 이런 소동이 이만희의 작가적 개성에 남겼을 상처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1973년에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에서 직접 제작하고 대규모 군부대의 지원을 업고 만들어진 국책 반공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에서 그 여파를 가늠할 수 있다. 우파 논객으로 유명했던 소설가 선우휘가 각본을 썼지만 감독 이만희의 관심은 각본에 담긴 선전 영화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영화 초반 수십분 동안 북한군의 탱크 위용을 보여주는 장면은 압권인데 웬만한 총이나 화기에도 끄떡하지 않는 탱크에 맞서 남한군 병사들은 아예 수류탄을 지고 탱크에 뛰어드는 무모한 방법으로 목숨을 버린다. 그건 영웅적인 활약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가공할 살상 기계에 맞서는 인간의 힘겨운 투쟁을 담아 황망한 무력감을 안겨준다. 이 영화가 북한군의 잔학상과 국군의 활약상을 스크린에 담길 바랐던 정부 당국의 눈 밖에 난 것은 당연했다.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사정없이 난도질당했으며 다른 감독이 보충촬영을 해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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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 <낙동강은 흐르는가> (1976).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들국화는 피었는데>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기획되고 제작된 임권택 감독의 <증언>(1974)은 정부의 방침에 순응하는 얌전한 반공 대작영화였지만 임권택 감독 본인은 이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평론가 정성일과의 인터뷰에서 고백한다. 좌익 집안의 후손으로 연좌제에 묶여 있던 그의 출신 성분은 그에게 국책영화를 만드는 자의 성실성을 요구했고 그는 그걸 충실히 이행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정부의 눈에 안 띄게 반공영화인 듯 반전영화를 만들었다는 혁혁한 성과는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들국화는 피었는데>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선 북한군 탱크에 맞서는 어린 학도병의 일화를 통해 전쟁에 대한 분노를 장렬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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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감독 <그 섬에 가고 싶다> (1993).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군사정부를 거쳐 문민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박광수의 <그 섬에 가고 싶다>(1993)는 ‘사람은 죽어 별이 된다’는 생사관으로 살았던 섬사람들이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에 무너져내리는 비극적 풍경을 냉정하게 묘사했지만 국군의 양민학살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논란에 휩싸였다. (그해 대종상 영화제 예심에 참여했던 나는 ‘박광수의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수군거리던 일부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좌우 대립을 넘어 전쟁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면서도 어느 정도 반전사상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최초의 영화는 강제규의 천만 대작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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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 <태극기 휘날리며> (2004). 한겨레 자료사진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야기 배경을 포탄과 총알과 피난민으로 붐비는 전쟁터로 설정해놓고 낙동강 전투와 평양 시가지 전투, 압록강을 넘어 전진하는 중공군의 떼, 휴전선 근처의 두밀령 전투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장관을 펼친다. 피아의 구분이 힘들 만큼 어지럽게 펼쳐지는 백병전의 스펙터클은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정한 가치는 1970년대의 관제 반공 전쟁영화 대작과 완전히 선을 그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반공 이데올로기의 구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채 형제의 멜로드라마로 초점을 좁게 옮긴 이 영화에서 역시 유구하게 되풀이되는 것은 어머니에게 힘들었다고 고해하고 싶은 남자들의 욕망이다. 영화 속에서 말 못하는 어머니에게 차마 발설하지 못하는 형제의 비극은 이후로도 <국제시장>에서 변형된 형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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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 <국제시장> (2014).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박광현의 <웰컴 투 동막골>(2005)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멀리 떨어져 도달할 수 있었던 한국영화의 색다른 지점이었다. 박광수의 <그 섬에 가고 싶다>와 비슷한 설정을 품고 있는 이 영화는 전혀 다른 해결책으로 색다른 정서를 전해준다. 6·25 전쟁 당시 남과 북의 병사들이 동막골이라는 낯선 산골 마을에 도착하는데, 그곳은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열심히 농사를 지어 함께 나눠 먹고 알콩달콩 자기들끼리 자조 협조하며 자연을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멧돼지가 밭농사를 망쳐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내는 것이 짱돌로 멧돼지 머리를 맞히면 다시는 안 오지 않겠냐고 하는 이 사람들에게는 뭔가를 정복하고 제압한다는 개념이 없다. 이들 무리에 파묻혀서도 여전히 주적 개념을 갖고 사는 남과 북의 병사들을 볼 때 관객들은 그들이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 대치해 총을 들이대며 대결하는 남과 북의 병사들 사이에서 동막골 사람들이 ‘우리 때문이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리는 영화 초반 장면에서 <웰컴 투 동막골>은 매우 효율적으로 현실을 이탈해 다른 이상향의 비전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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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 (2005).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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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한 감독 <인천상륙작전> (2016).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시간이 흘러 보수정부가 연이어 들어서면서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은 순진무구한 판타지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고지전>(2011), <포화 속으로>(2010)와 같은 영화는 신중하게 이념적 대립을 회피하면서 전쟁 스펙터클에 주력했지만 박근혜 정부 한창기에 제작된 <인천상륙작전>(2016)과 같은 영화는 아예 과감하게 1970년대의 관제 반공영화와 유사한 선동적 색채를 과시했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과장된 전투담의 영웅이자 도구로 쓰일 뿐인데 그런 인상을 강화하는 건 영화 속의 맥아더 캐릭터였다. 리엄 니슨이라는 존재감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 영화 속의 맥아더는 늘 신처럼 군림하면서 좌우를 압도하는 구원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심지어 걷는 모습조차도 배제된 이 인물은 맥아더에 대해 어떤 역사적 지식도 생산하지 않는 대신, 이 모든 상황을 집전하는 초월적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한국군 병사의 용맹한 모습을 보며 자기 아들처럼 생각했고, 아들 같은 한국군 병사들을 위해 작전을 집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온,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절대자이고 그의 권능에 기대어 한국군들은 초인적인 활약으로 작전을 미리 대비하고 있던 북한 군대를 초토화한다. <인천상륙작전>을 만든 제작사에서 만든 가장 최신 영화 <장사리>에서 이념적 대립의 구태는 간신히 희석되었지만 어떤 관점에서라도 아직 객관적 거리를 두고 한국전쟁을 절실하게 묘사한 한국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