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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전쟁은 역사도 태우고 부순다

by한겨레

한국전쟁 문화재 보존기

한겨레

국보인 사자 모양 향로.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청자 컬렉션에서 최고 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개성분관 소장품이었다가 1949년 5월 전란의 기운이 감돌자 서울 박물관으로 이송된 작품이다.

1949년 5월 당시 북위 38도선 남쪽의 대한민국 영토였던 경기도 개성 시내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38도선 바로 위인 시내 북쪽 송악산 정상을 차지한 북한군이 산기슭에 대치한 국군과 포격전을 벌이면서 전투가 격화된 것이다.


도심에 자리한 국립박물관 개성 분관의 진홍섭 관장은 전운이 감돌자 걱정이 깊어졌다. 당시 개성 분관은 고려문화의 정수인 고려청자 컬렉션의 보금자리였다. 일제강점기부터 소장해온 병과 대접, 주자 등의 다양한 청자 명품을 200점 가까이 수장·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이 송악산 북한군 야포의 사정거리 안에 들면서 근처에 수시로 포탄이 작렬했던 터다. 진 분관장은 고민 끝에 서울 국립박물관의 김재원 관장과 상의해 207점의 주요 작품을 열차에 실어 서울로 황급히 옮긴 뒤 문을 닫아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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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대장에 ‘개성품’으로 기재된 13세기 고려시대의 원숭이 토끼 무늬 항아리. 상감청자의 명품으로, 상감한 무늬 가장자리에 가는 선을 파고 금가루를 발라 호사스러운 장식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1933년 개성의 고려왕궁터인 만월대 근처에서 발견된 이래 개성박물관에 계속 보관되어왔다가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 서울로 이송된 유물이다.

현재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3층 청자실에서 볼 수 있는 국보 60호 사자 모양 향로와 국보 61호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 청자 상감 원숭이 토끼 무늬 항아리 등은 71년 전 이런 곡절을 거쳐 북녘에서 건너온 고려청자의 걸작들이다. 박물관 상설전시관 조선2실에서 25일 온라인으로 먼저 개막하는 주제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에도 당시 개성에서 반출된 청자상감국화무늬병과 연꽃무늬 그려진 북 모양의 물병이 선보인다. 박물관에서는 이들을 포함해 당시 개성에서 들어온 유물 100여점을 ‘개성품’이라고 공식 이름을 붙여 일괄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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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인 어룡 모양 주전자. 한국전쟁 직전 개성박물관에서 옮겨온 고려청자 컬렉션의 대표작 중 하나다. 물속을 지배하는 어룡(마카라)의 기세 넘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개성품’의 유래에서도 보듯 1950~1953년 벌어진 한국전쟁 전후 기간 국립박물관 소장품과 전국 각지 사찰 등에 산재한 문화유산은 혹독한 수난을 겪었다. ‘개성품’의 경우 김재원·진홍섭 관장의 지혜로 포화를 피했으나, 큰 불상과 일부 유물은 1·4후퇴 전에 개성박물관에 남겨놓고 와야 했다. 진홍섭 관장은 이와 관련해 2000년 국회에서 “민천사 대형 석불과 몇몇 청자류는 개성박물관 앞에 구덩이를 파서 묻고 왔다”며 “나중에 발굴해 되찾기를 갈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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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서울에서 북한군이 퇴각한 뒤 찍은, 경복궁 사정전 국립박물관 전시실이 파괴된 모습. 진열장 등의 집기와 도자기 등의 깨진 유물들이 뒤얽혀 방치되어 있다.

전쟁 발발 당시 국립박물관 유물은 경복궁 안의 본관(옛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만춘전, 사정전 등의 전각에 분산돼 있었다. 경복궁 궁내 전각과 경내 법천사터 석탑이 포격으로 크게 파괴됐지만, 진열장에 전시·소장한 서화, 도자기, 서역 벽화 같은 동산 유물의 피해는 의외로 크지는 않았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과 물질문화유물보존위원회 관계자들이 박물관 유물을 북송하려 했으나 최순우를 비롯한 학예직들은 유물을 고의로 분산시키고 포장을 늦추는 등 지연 전술을 써 목숨 걸고 반출을 막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덕수궁 석조전 미술관 지하에 핵심 유물을 보관했기 때문이다. 1951년 1·4후퇴를 전후한 시기에는 미 당국에 읍소하며 열차 편을 구하는 등 필사적인 수송작전을 펴 4차례에 걸쳐 400여상자 약 2만점에 이르는 유물을 피란 수도 부산 도심의 창고로 안전하게 옮기기도 했다. 경주 분관의 금관총 유물은 이와 별도로 1950년 7월 한국은행 금괴와 더불어 미국으로 옮겨졌다가 수년 뒤 귀국했다. 온라인 개막한 전쟁 주제전에서 당시 전쟁 중 피해를 본 박물관의 상황, 부산에서의 임시박물관 활동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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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강원도 양양 선림원터에서 발견됐던 신라시대 동종. 오대산 월정사에 보관됐으나 1951년 1월 국군이 적 토벌을 이유로 월정사를 불태우면서 형체를 잃고 녹아내리는 비극을 겪었다. 25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조선2실에서 온라인 개막하는 주제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의 출품작으로 나왔다.

박물관 쪽은 전쟁 당시 임시 국립박물관으로 썼던 부산 광복동 일제강점기 약제 회사 건물이 일부가 훼손됐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도 이 건물을 유적으로 보존·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박물관의 역사를 알리는 표석조차 세우지 못한 실정이다.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초상인 어진의 경우, 부산 임시 창고로 피란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관리 부실로 정전 이듬해인 1954년 화재로 대부분이 불타 사라졌다. 오대산 월정사 전각과 지리산 화엄사, 전남 순천 송광사, 장흥 보림사 전각 등도 불탔다. 해방 뒤 문화재계 최대의 발굴 성과였던 강원도 양양 선림원터의 신라 동종 역시 보관처인 월정사가 1951년 1월 국군 포격으로 전소할 때 녹아내려 형체를 잃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