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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섬뜩한 유머, 아직도 남은 이야기가 많다

by한겨레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7화 봉준호 vs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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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끼리 비교는 무슨 비굡니까?” <씨네21> 2003년 11월25일치에 실린 박찬욱의 말이다. 최민식과 송강호는 둘 다 뛰어난 배우라 비교가 의미없다고 잘라 말하던 맥락이었다. 그래도 나는 감히 이 글을 쓴다. 외국에 나가 무슨 상을 받고 관객이 몇이 들었고, 이런 비교는 나도 싫다. <한겨레>,<한겨레21>과 <씨네21>의 옛 자료에 실린 인터뷰와 대담 기사를 뒤적였다. 봉준호와 박찬욱의 초기 작품 세계를, 두 감독 스스로의 목소리로 들어보자. 해설 김태권


‘케이블 가이’ 별명이던 박


영화 천재 이야기 듣던 봉


둘 다 첫 영화 흥행은 우울



서로 닮으면서 달라 흥미로운 둘


박이 ‘살인의 추억’을,


봉이 ‘복수는…’을 감독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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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이 감독한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이 개봉하던 때가 2002년이다. 봉준호 <살인의 추억>은 2003년.


그해 4월26일치 <한겨레>에는 봉준호와 박찬욱의 대담 기사가 실렸다.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던 일화가 소개되었다. 여러 해 전 박찬욱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다. 마침 그때 주목받던 연극 <날 보러 와요>가 이 살인사건을 다루었다. 박찬욱은 김광림이 쓴 희곡의 판권을 사러 찾아갔다가, 며칠 전에 판권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판권을 사간 감독은 봉준호였다. 이럴 수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때 박찬욱은 봉준호가 그 무렵 일본 만화 <올드보이>를 재밌게 읽은 일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올드보이>를 자신이 찍는 건 일종의 복수인 셈이다.” 박찬욱은 <올드보이>의 판권을 입수한다. 영화는 2003년에 개봉했고 2004년에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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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꿈, 골드보이


이 일화가 사실일까? 봉준호에 따르면 절반만 그렇다. 박찬욱이 <날 보러 와요>의 판권을 원한 일은 사실이다. 그런데 봉준호가 탐낸 이야기는 <올드보이>가 아니라 다른 작품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처럼 유괴를 소재로 시놉시스를 쓴 게 있었지.” 봉준호의 푸념을 듣고 박찬욱은 받아친다. “내가 (<살인의 추억>을) 감독했다면 참 다른 영화가 나왔을 거야. 일단 제목부터 다르겠지. 나 같으면 그 마을 허수아비에 새겨진 글귀 있잖아.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 그걸 쓰지 않았을까.”


봉준호가 <복수는 나의 것>을, 박찬욱이 <살인의 추억>을 감독할 수도 있었다. 어떤 영화가 나왔을까.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두 감독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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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와 박찬욱의 유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나는 한겨레신문사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던 중 충격적인(?) 글을 읽게 되었다. <올드보이> 개봉을 앞두고 박찬욱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우리 포스터가 붙은 담벼락에 생쥐 한 마리가 뽀르르 기어올라가더군요. 그러더니 글쎄 제목 활자 왼쪽에 찰싹 달라붙는 거예요. 어때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 아, OLD BOY 앞에 G 한 마리가 붙으면 뭐예요, GOLD BOY 아닙니까. … 길몽도 이런 길몽이 없어요, 이거 완전 메가히트라니깐, 메가히트! 음화핫핫핫!”


<씨네21> 2003년 11월25일치 기사다.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십년 가까이 지난 유머를 보고 왜 내가 지금 난처한 걸까. 한편 봉준호는 <플란다스의 개>를 찍고 난 후 스스로 “평소 유머감각이 괴상한 편”임을 인정했다. “나는 자연스러운데, 듣는 사람들은 간혹 이상하다고 말한다.” 2000년 3월7일치 <씨네21> 인터뷰다.


그런데 영화로 보면 그렇지 않다. 봉준호도 박찬욱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블랙코미디의 대가다. 괴로움과 웃음이 뒤엉켜 있다.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을 만들며, “아주 사실적으로 찍다 보면 그 상황이 너무 부조리해 웃음이 나오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영화의 웃음이라고 했다.(<한겨레> 2002년 9월13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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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란 한 편의 부조리극


영화 <괴물>을 찍고는 이런 말을 했다. “재난이라는 게 무섭고 비극적이고 하지만, 반대로 희극적인 상황도 수반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나 역시 충격을 받고 슬펐는데, 그때를 하루하루 돌이켜보면 무너진 백화점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골프채를 가져 나오거나 수입 매장을 뒤진다든가, 시내 도둑들이 다 모인다든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있었다. 극한의 재앙이 닥쳤을 때 희비극은 항상 같이 나타나는 것 같다. … 한국에서 재앙이란 그런 느낌 같다. 부조리극 같지 않나.” 2005년 3월15일치 <씨네21>에 실린 인터뷰다. 한편 박찬욱은 2005년 8월2일치 <씨네21>에서 <친절한 금자씨>에 대해 “우습다며 계속 보다가도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식으로 주저하게 되고, 또 나중에는 웃은 게 조금 미안하게도 되는 그런 상태”를 노렸다고 했다. 김지운 감독을 만나서는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씨네21> 2002년 4월9일치 기사다. “사실 (비극적인 상황도)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웃기는 순간이 많다. 배우가 막 우는 클로즈업을 초벌필름으로 소리 없이 보면 웃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듯이.” 소름 끼치는 통찰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에서 두 사람의 유머가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2000년 3월7일 <씨네21>에서 봉준호는 밝혔다. 유머 소재를 “주로 생활에서 얻고 늘 기록을 해둔다. 전철이나 술자리에서 옆사람이 하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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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와 박찬욱, 두 사람이 영화감독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신기하게 닮았다. 두 사람은 데뷔하기 전부터 주목받았다. 장편영화 감독이 되기 전, 박찬욱은 인정받던 영화평론가였다. “한때 박찬욱 감독의 별명은 케이블 가이였다. 케이블티브이 채널의 초창기 때부터 온갖 영화프로그램에 메인엠시나 게스트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한겨레> 1999년 3월15일치의 기사다. <씨네21> 2000년 10월3일치에 따르면 류승완은 감독 지망생 시절부터 “비평가 박찬욱의 글을 애독”했다고 한다. 한편 봉준호는 ‘천재’ 소리를 들었다. 영화아카데미 학생 시절이던 1994년에 만든 단편영화 <지리멸렬>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30분 동안 웃다 정신을 차리면 씁쓸하고 슬픈 뒷맛이 남는 영화였다. 데뷔작을 내고 인터뷰를 할 때도 기자가 <지리멸렬>에 대해 한참을 물어볼 정도였다.


그런데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며 두 사람 다 쓴맛을 본다. 박찬욱은 <달은 해가 꾸는 꿈>(1992년)과 <삼인조>(1997년)를 감독하지만 반응은 별로였다. 나중에 류승완 감독은 이렇게 평가한다. “(두 작품은) 웰메이드 영화를 삐딱하게 보는 B급영화 예찬론자의 영화였다.” 2000년 10월3일치 <씨네21> 인터뷰다. 봉준호 역시 2000년에 <플란다스의 개>의 감독을 맡는데,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평범한 관객은 낯설어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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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을 빼면 섭섭하지”


촉망받던 두 사람이 첫 작품에서 주춤했다. 마음이 철렁했으리라. 다른 사람이면 낙담해서 그만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봉준호와 박찬욱은 영화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박찬욱은 1999년에 단편영화 <심판>을 만든다. 이듬해 박찬욱은 류승완에게 이렇게 말한다. “(<심판>을 빼놓고 말하면) 섭섭하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거든.” 박찬욱은 단편영화 <심판>을 찍으며 얻은 깨달음이 자신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단편영화다 보니 연극계 고참 배우들을 (제대로 보수도 드리지 못하며) 모시고 찍었다. 감독의 뜻대로 지시하기보다는 의견을 듣고 설득하면서 촬영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배우들과의 의사소통이 무엇인지, 그리고 배우들이 얼마나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들인지도 알게 됐다.” 2005년 7월21일치 <한겨레>에 실린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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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와 박찬욱은 비슷한 시기에 크게 성공한다. 그러고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박찬욱이 2000년에 감독한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한국에서 영화 좀 본다는 사람치고 박찬욱이라는 인물이 흥행 기록을 깨는 영화를 만들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잖아요? 그런데 흥행과 비평 양쪽으로 성공하다니 심정이 어때요?” 류승완 감독이 짓궂게 묻자 박찬욱은 재치 있게 대답한다. “이 영화가 과찬받는 건 괜찮은데 예전 영화들이 무시당한 건 억울하지.”


봉준호는 2003년에 <살인의 추억>을 감독했다. “관객들이 트렌디한 영화들을 많이 소비해서 식욕이 떨어진 상태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니 반긴 것 아니겠냐.” 제작자 차승재의 말이다. 2003년 5월17일치 <한겨레>에 실렸다. “만약 이 영화가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 직후에 나왔다면 이렇게 (관객이 많이는) 안 들 거다.” 영화를 제작한 쪽도 두 감독이 닮고도 다른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 <한겨레>가 이 글 첫머리에 실린 두 감독의 대담을 마련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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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이 관심 가진 인혁당


박찬욱은 변신을 시도한다. ‘복수 삼부작’은 <제이에스에이>와 느낌이 다르다. 2002년에 <복수는 나의 것>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 영화에 감독의 일관성이 없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만든 영화 같지 않으면 좋겠다.” <씨네21> 2002년 4월9일치에 실린 인터뷰다. 2003년에는 <올드보이>를 만들며 말한다. “했던 거 또 하면 재미없다. 나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다.”(2003년 5월13일치) <친절한 금자씨>는 시나리오 작가부터 새로 뽑았다. “내가 직접 한명을 골랐다.”(2004년 6월8일치) 이후로 호흡을 맞추게 되는 정서경 작가다.


봉준호도 번번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 2006년에는 <괴물>을 내놓았다. 괴수영화도 가족영화도 아닌 시도였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에 말했다. “<살인의 추억> 때도 딱히 장르는 없고 ‘농촌 스릴러’나 ‘<쎄븐>의 <전원일기> 버전’이라고 말했는데, 이번엔 ‘<에이리언>의 한강수 타령’쯤 되려나.”(2005년 3월15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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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와 박찬욱은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만들고 싶다고 밝혔지만 아직 만들지 못한 작품을 적어본다. 팬으로서 언젠가는 보고 싶은 영화들이다.


“인혁당 이야기도 꼭 만들어야지.” <씨네21> 2000년 10월3일치에 실린 대담에서 박찬욱이 말했다. <제이에스에이>를 개봉한 직후였다. <한겨레> 2003년 4월10일치 기사에도 실렸다. <올드보이>를 촬영하던 당시였다.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고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계획한 영화로는)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 그다음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인혁당 이야기가 있다.” <씨네21> 2004년 6월8일치에 실렸다.


다른 계획도 많다. “사회주의자 김산의 일대기를 다룬 <아리랑> 같은 시대극을 하고 싶어 했다고 안다”며 이성욱 기자가 묻자, 주저하면서도 박찬욱은 말한다. “말을 꺼냈다가 언제 찍을 거냐고 자꾸 그러면 어떡하나. 노동운동, 파업, 이런 이야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 내가 제작자가 되어 다른 감독을 기용할 수도 있다.”


마지막 영화도 미리부터 궁리하는 것 같다. “최후의 한편은 뭘로 만들지 생각했나?” 신윤동욱 기자가 질문하자 이렇게 답한다. “아직은 정하지 못했다. 다만 아주 저예산으로 만들고,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영화가 되면 좋겠다. 지금은 아니지만 늙은 다음에는 아주 논쟁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 늙어서 현명한 척하는 예술가보다는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겨레21> 2005년 8월16일치의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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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가 언급한 ‘수능시험지’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을 만들고 2003년에 만화책 <프롬 헬>을 언급한다. “잭 더 리퍼라고 1890년대 영국에 실존했던 연쇄살인범 있잖은가. 그 사건을 다룬 <프롬 헬>이라는 만화를 보게 됐는데 전화번호부처럼 두꺼운 그 책을 덮고 나서 가장 강렬하게 든 느낌은, 런던 사람들이 그때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거였다.” <왓치맨>과 <브이 포 벤데타>의 작가 앨런 무어가 그린 만화책이다. <프롬 헬> 역시 영화가 한번 나왔는데 평가가 썩 좋지는 않다. 봉준호가 언젠가 다시 만들면 어떨까 기대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전세계에 많이 있을 것 같다.


2000년 <플란다스의 개>를 만든 후에는 이런 말도 했다. “(앞으로 계획이) 몇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고등학생 3명이 수능시험지를 훔치는 거다. 우발적인 게 아니라 2년간 치밀한 훈련과 연구,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는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는 쪽으로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수능이 없어진대서 싱거워져버렸다. 어쨌든 남이 하지 않은 이야기를 남이 안 한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


꼭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좋다. 부디 좋은 작품 더 많이 만들어주시길. 다음 시대의 사람들은 봉준호와 박찬욱과 동시대를 살며 영화를 즐기던 우리를 부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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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자인 김태권 작가는 만화가입니다. 글도 쓰고 일러스트도 그립니다. 요즘은 주로 관악산 자락에서 두 아이를 떠메고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시대> 등의 만화책을 그렸고, <불편한 미술관>과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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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팩트스토리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 실화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2017년 설립 이후 6편의 르포, 웹소설을 개발했고 2편이 영상 판권계약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 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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