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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개콘이 ‘코미디 프로계 송해’로 돌아오려면

by한겨레

개그콘서트, 21년 만에 쉼표

인기 코너 우려먹기 하면서

외모 놀리기, 소수자 희화화

농담·조롱 수위 올라간 개콘

인권감수성·독해력 예민해진

젊은층 붙들어매는 데 실패

시청자 안전하게 웃을 기회와

코미디언들 나설 무대 필요해

더 건강한 개그로 또 만나기를

한겨레

6월26일 방송을 끝으로 ‘무기한 휴식’에 들어간 <개그콘서트> . 한국방송 공식 유튜브 갈무리

한국방송(KBS) <개그콘서트>가 ‘휴식기를 가진다’는 말을 남기고 사실상 종영되던 날, 박준형은 마지막으로 무를 갈다 말고 울었고, 윤형빈은 “<개콘> 재미없다고 시청자 게시판에 악플 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너스레를 떨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1999년 첫 방송을 시작해 21년간 자리를 지켜왔던 프로그램이 사라진다는 충격과, <개그콘서트>마저 사라지면 지상파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하나도 안 남는다는 절망감은 코미디언들에게는 사뭇 무겁게 다가왔으리라. 지난 몇년간 <개그콘서트>를 보며 개운하게 웃어본 기억이 없는 나조차도 코미디언들이 눈물을 떨구는 걸 보고 있자니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개그콘서트>가 어쩌다가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공감하며 같이 울려던 마음은 김이 새곤 했다. 지상파라서, 심의가 심해서 제대로 못 웃겨서 이렇게 되었다는 인식을 내비칠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 돌아가는 걸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시청률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된 막장 드라마 제작자 역할로 사랑받았던 ‘시청률의 제왕’ 코너에서, 박성광은 보란 듯 팔다리를 동동거리며 외쳤다. “어, 왜 안 돼? 다른 코미디에선 다 하던데?!” “케이비에스는 안 돼요.” “아 케이비에스는 다 안 된대! 이렇게 해서 어떻게 웃기라는 거야?! 손발 다 묶어놓고 어떻게 웃기라고?” 객석에서 코너를 지켜보던 동료 코미디언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그 시청자들은 지금 어디로 간 걸까

심의 때문에 날카로운 표현이나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못해서 더 빠르고 즉각적인 웃음을 주는 데 실패한다는 이야기일 텐데, 그만큼 많은 코미디언이 비슷한 좌절감을 공유한다니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뚱뚱한 사람을 비하하고, 사람의 외모를 놀리는 개그를 구사하며, 성소수자를 조롱하고 발달장애인을 집요하게 농담의 소재로 삼을 때에는 대체 어떻게 했는가? 가설 하나, 조금이라도 도전적인 코미디를 할 때에는 철통같이 작동했던 한국방송의 심의 기준이, 조롱하기 만만한 대상인 사회적 약자를 조롱할 때만큼은 너그러웠다. 가설 둘, 코미디언들은 이제까지 농담의 소재로 삼아왔던 만만한 대상을 사실은 더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싶었는데 심의 때문에 하지 못했다. 지금껏 물의를 빚어왔던 방향이나 소극장 공개 코미디에서 볼 수 있는 코미디 레퍼토리들을 보면, 상황은 아마도 후자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개그콘서트>의 경쟁 상대를 티브이엔(tvN) <코미디 빅리그>로 잡으면 심의가 문제였다는 판단도 맞을지 모른다. 지상파보다 상대적으로 관대한 심의 기준을 지닌 케이블 채널에서, 코미디언들은 큰 규제 없이 수위 높은 코미디를 선보인다. 그러나 <개그콘서트>를 보던 사람들이 죄다 <코미디 빅리그>로 넘어간 건 아니다. <개그콘서트>는 전성기엔 20%대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종영될 무렵엔 3%대의 시청률로 문을 닫았다. <코미디 빅리그>의 시청률 또한 최근 6개월 중 최고치가 3.2%에 그쳤다. 두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합쳐도 한 자릿수인 거라면, 오히려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10%가 넘는 나머지 시청자들은 지금 어디로 간 걸까”라고 말이다.


코미디언들이 유독 심의 문제에 민감한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개그콘서트>와 같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한 코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같은 코너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새로운 코너를 구상하는 건 어렵고, 선보인다고 다 인기를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제작진도 코미디언도 한번 찾아온 인기를 최대한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대학로 코미디 공연의 경우 반복해서 찾는 관객보다 어쩌다가 한 차례 찾는 관객이 더 많으니,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도 신선함이 떨어지는 일은 덜하다. 그러나 매주 전파로 방영이 되는 텔레비전 코미디의 경우 모두가 어떻게 전개될지 뻔히 예측 가능한 코너가 되어 급속도로 진부해지는 걸 피할 수 없다. 화제성을 유지한다고 유명 게스트들을 코너에 초대하다가는 자칫 게스트 보는 재미 말고는 남는 게 없는 코너가 되기 쉬우니, 끊임없이 수위를 올리는 방향을 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농담의 수위와 심의 기준은 생존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처럼 조롱과 농담의 수위가 올라갈수록, 이탈하는 시청자층도 늘어난다. 비만인 시청자가 비만인을 조롱하는 종류의 코미디를 보며 모멸감을 피하기는 어렵고, 발달장애인과 그 주변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을 희화화하는 코미디를 보며 공격받는다는 인상을 피하기도 어렵다.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농담을 일삼는 방송을 즐겁게 볼 성소수자도, 여성이 대상화되는 코미디를 보면서 즐거워할 여성도 드물다. 시대의 진보와 함께 사회 전반의 인권 감수성이 더 섬세해지는 상황에서, 자신이 부당하게 공격당한다는 느낌을 참아가면서까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이들은 점점 줄어든다. 오히려 사회적 편견과 이중잣대 자체를 조롱함으로써 자신들을 변호해줄 만한 코미디언의 도래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을, <개그콘서트>는 따라가지 못했다.

무례·진부함…개콘이 내내 놓쳤던 것

이와 같은 현상은 시청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 티엔엠에스(TNMS)에 따르면 마지막 방송인 6월26일 방송을 가장 열심히 본 이들은 50대 시청자들이었다. 처음 <개그콘서트>가 방영되던 시기 가장 열심히 시청했던 당시의 30대들이, 50대가 되어서도 <개그콘서트>를 가장 열심히 소비하는 시청자층으로 남은 셈이다. 50대 시청자들의 충성도에 감탄할 일은 아니다. 그 말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그 이후로 젊은 시청자층을 붙들어매는 데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젊은 시청자 중에서도 더 자극적이고 즉물적인 코미디를 원하는 이들은 <코미디 빅리그>나 유튜브의 클립 영상들을 보면서 <개그콘서트>로부터 멀어졌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젊은 시청자 중 ‘부당하게 공격당하는 일 없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좋아하는 이들은 남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 이들은 덜 불쾌하고 개운한 코미디를 찾아서 넷플릭스를 구독하기 시작하거나, 유튜브에서 <문명특급>, <미선 임파서블>, <오늘부터 운동뚱> 등을 구독하는 것으로 <개그콘서트>를 대체했으니까. 인권 감수성이 높아진 환경에서 성장했고, 예민한 미디어 독해력을 지녔으며, 얼마든지 한국 텔레비전 코미디를 대신할 만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만큼 국외 콘텐츠나 온라인 콘텐츠를 검색하는 능력도 뛰어난 10대와 20대 시청자들을, <개그콘서트>는 내내 놓치고 있었다. 진부한 프로그램, 농담이 무례한 프로그램, 뻔하게 예측 가능한 코너를 계속 유지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인상이 굳어진 탓에, 그들을 설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리라.


그 결과 코미디언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던 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잃었고, 이제 시청자들에게도 선택지는 <코미디 빅리그> 하나만 남았다. <코미디 빅리그>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겐 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코미디언들에게 창구가 하나로 줄어든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코미디 빅리그> 식 코미디가 아닌 다른 웃음을 찾던 시청자들에게도 하나의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며, 경쟁과 다변화를 통해 건강함을 유지할 기회를 잃었다는 점에서 <코미디 빅리그>에게도 큰 손실이다. 단순히 ‘시대에 뒤처졌으니 없어지는 것도 당연하다’는 식으로 냉소하기엔 <개그콘서트>의 종영은 그 여파가 크다.


그러니 정말 <개그콘서트>가 다시 돌아와 재기할 기회를 얻고 싶다면 같은 코너를 신선함이 소진될 때까지 반복하면서 수위를 높이는 현행 구조도, 당장 놀려먹기 만만한 대상을 찾아 농담의 소재로 삼고 그에 대한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도 손봐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부디 휴식기를 거친 뒤 그런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코미디언들에게는 설 수 있는 무대가, 시청자들에겐 안전하게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절실하니까.


▶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