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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ESC

“뛰어라 비글아, 우리 이제 자유다”

by한겨레

[커버스토리] 반려동물 & 함께하는 여행

비글구조네트워크 유영재 대표와 세 마리 반려견

금강 무인도로 떠난 좌충우돌 카누 여행기

에너지 대방출, 여행 아닌 모험이라도 괜찮아

한겨레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가 비글들과 함께 카누잉을 즐기고 있다.

세 마리 비글(견종)과 함께 집을 나와 여행을 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개가 한 마리만 있을 때는 무리 없이 여행이나 캠핑하러 다녀올 수 있지만, 두 마리 이상이 되면 용기가 백배쯤 필요하다. 비글은 꼭 사람 아이 같은 특성이 있어서 혼자 다닐 때는 매너가 좋다가도 2~3마리가 모이면 난리가 난다. 장난은 둘째치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한다. 그럼에도 세 마리와 여행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두고 가면 너무 외로울 테니까. 서울에 남은 개들도 그렇지만 나도 마음이 불편하니까 함께 길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처음 비글 셋과 캠핑을 떠났을 때는 캠핑은커녕 종일 비글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혹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긴장하는 바람에 여가를 즐길 여유도 없었다. 캠핑까지 와서 비글에게 목줄을 채우고 움직임을 제한하는 건 활동량이 많은 그 녀석들에게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3년 전부터는 자그마한 카누를 마련해 전국 각지에 있는 무인도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카누 여행 초반에는 물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비글 한 마리씩만 데리고 캠핑하러 다녔다. 이제는 셋 모두 카누에 익숙해져 다 같이 카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지난달 28일, ‘햇살이’, ‘달님이’, ‘희망이’와 이른 여름휴가를 떠났다. 새벽 6시, 아침잠이 유달리 많은 세 마리를 깨웠다. 챙겨뒀던 짐과 카누를 차에 싣고 금강 중류 한 어촌으로 출발했다. 도착 후 카누에 승선하기 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절차가 있다. 바로 세 마리 비글들의 ‘힘 빼기 운동’. 최소 한 시간 동안은 1 대 1 산책을 통해서 그들의 체력을 어느 정도 방전을 시켜야 카누 안에서 비글 특유의 오두방정(?)을 줄일 수 있다. 나는 나름 비글 견종에 대한 전문가로 통하지만 세 마리 비글들과 함께 카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애당초 꿈도 꾸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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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 ‘햇살이’도 여행이 즐거운지 즐거운 표정이다.

지금은 카누 여행을 너덧 번 다녀온 터라 녀석들은 나름 침착하게 잘 따라주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날이 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에는 승선한 비글들이 출발도 하기 전에 물에 뛰어들었다. 한 마리를 건져 올리면 또 다른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여행은 고사하고 나의 작은 배 안은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다.


무거운 캠핑 장비와 비글 세 마리를 태우고 카누를 타는 것 또한 주의가 필요하다. 카누는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 전복되기 쉽기 때문에 숙달된 패들링이 필요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구명복은 필수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개들의 리드 줄을 구명복과 카누에 연결해둬야 한다. 물살이 거의 없는 강에서는 구명복만 잘 착용해도 만약의 상황에서 수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를 보고 미리 점찍어 둔 무인도를 향해 노를 젓기 시작했다. 육지에서는 폭염의 기온 속에 바람 한 점 없었는데, 큰 강줄기로 나오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더위에 두꺼운 구명복을 입고 노를 젓는 건 분명 힘든 일이지만, 조금만 더 가면 우리의 파라다이스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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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들이 카누에서 내리고 있다. 구명 조끼 탓에 더웠는지 바로 물에 뛰어들었다.

한 시간쯤 노를 저어 왔을까. 네 식구가 5일 동안 머물 울창한 나무가 빼곡한 무인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비글들은 꽤 더웠는지 섬에 도착하자마자 물에 뛰어들었다. 나도 급히 카누를 뭍에 올려두고 온통 땀으로 젖어버린 옷을 입은 채 시원한 강물에 뛰어들며 외쳤다. “얘들아, 우린 이제 자유다. 우리 말고 여기엔 아무도 없어!”


수영으로 몸을 식힌 비글들이 섬으로 올라와 여기저기를 탐색하며 목줄 없는 자유를 만끽했다. 장비를 풀어 야영 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세 비글은 지쳤는지 나무 그늘서 곤히 잠들었다. 비글들은 순간적인 활동량이 엄청나다.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순식간에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다시 충전한다. 비글은 19세기 초부터 무리를 지어 초원을 질주했던 사냥견이었다. 수 세기 동안 집단 사냥을 위해 사육∙개량되어 온 탓에 이렇듯 늘 함께 뛰고, 먹고,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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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 지쳐 잠든 세 비글.

잠에서 깬 비글들의 요란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캠프 할 자리를 완성했다. ‘이 섬은 너희들이 절대 탈출할 수 없는 곳’이라고 각인시키는 의미에서 함께 섬 끄트머리로 산책하러 나갔다. 에너지가 재충전된 탓인지, 그동안 답답했던 목줄 생활의 짐을 던져버린 자유의 표현인지 비글들은 뛰고 또 뛰었다. 난 이런 모습을 보려고 무인도로 찾아왔고, 이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이 시간에 감사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은 섬 주위의 풍경은 혼자 바라보기에는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흐릿한 하늘을 보니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려나 보다 싶었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었지만 산이나 강 주변에는 예보보다 강수량이 많거나 좀 더 일찍 찾아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자연은 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을 찾아온 이상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점심이 되자마자 비가 하늘에서 뚝뚝 떨어졌다. 대부분 사람은 비 오는 날 캠핑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난 ‘우중 캠핑’이 참 좋다. 무엇보다 텐트나 타프(가림막) 안에서 듣는 빗방울 소리가 좋다. 이렇게 오지로 나오면 인터넷이 잘 연결되지 않아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할 수 없지만, 비가 오면 바람도 함께 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만약을 대비해서 타프를 다 걷고 카누를 좀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렸다. 텐트 전실(텐트 안 취사 가능하게 한 자리)에 앉아서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역시 비 내리는 날에는 부침개가 제맛이지.’ 노릇노릇한 부침개에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니 소록소록 잠이 쏟아진다. 졸리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으려 여기에 왔으니 몸이 원하는 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베개도 없이 세 비글 틈 속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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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갑갑했던 목줄을 풀고 신나게 뛰는 개들.

한숨 자고 일어나니 빗줄기가 더 거칠어지고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가져온 텐트는 바람에 강한 알파인 텐트라서 걱정은 않았지만 바깥에 둔 물건들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한 번 더 점검하러 텐트 밖으로 나왔다. 비글들이 ‘저 카누 떠내려가면 전화도 안 터지는 이곳에서 우리 고립될 수 있다’며 호들갑을 떠는 듯 따라 나와 도와주었다. 물론 오히려 방해만 되었지만.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잦아들어 바깥에 다시 타프를 쳤다. 비가 떨어지는 타프 안에서 카우보이식 커피를 끓이니 눅눅한 빗속의 공기가 진한 커피 향으로 채워졌다.


오후가 되자 날씨가 완전히 갰다. 비글들과 기다리고 기다리던 뱃놀이에 나섰다. 비글들은 카누를 타려고 구명복을 입히면 빨리 타자고 배 앞에서 재촉하듯 기다린다. 예전에는 물새가 우리 곁을 지나가면 비글들은 그걸 잡겠다고 물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애써봐야 잡지 못할 존재란 걸 아는지 그저 씩씩거릴 뿐 카누에서 뛰어내리지는 않는다. 세 비글의 협조로 정말 오랜만에 여유 있게 카누잉을 즐겼다.


모처럼 별 탈 없이 여행을 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사고를 쳤다. 아이스박스에 얼음이 얼마 남지 않아 남은 음식이 상할까 봐 모두 익혔다. 식힌다고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어 둔 채 뒀던 게 잘못이었다. 잠깐 내가 다른 일을 하는 사이 셋이서 잔치판을 벌였다. 다음 날 나는 종일 감자만 먹어야 했다. 섬에 들어오기 전 들른 재래시장에서 채소가게 아저씨가 떨이라고 감자를 한가득 주지 않았다면 물만 먹어야 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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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가 여행을 마치며 아쉬운 듯 하염없이 떠나온 곳을 바라보고 있다.

철수하는 날, 자연은 우리에게 고생하지 말라는 듯 맑은 날씨를 선사했다. 덕분에 모든 장비를 보송하게 말리고 짐을 꾸렸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남겨간 흔적이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하고 호우에 떠내려온 쓰레기까지 전부 걷어 배에 실었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면 비글들도 꽤 피곤한 기색을 보인다. 목줄을 풀고 실컷 놀고 나면 녀석들은 단잠을 잔다. 모처럼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 나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힘들어도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 아닐까.


떠나는 순간엔 늘 비글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역력하다. 비글들은 섬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런 비글들에게 다시 또 올 거라는 약속으로 위안을 준다. “괜찮아. 여행도 돌아갈 집이 있어서 행복하듯, 우리가 다시 올 수 있는 자연이 여기에 있으니 우린 그동안 행복할 거야”라고.


글∙사진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