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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개가 보는 세상은 과연 흑백일까

by한겨레

[애니멀피플] 조홍섭의 멍냥이 사이언스

한겨레

개 눈에 빨간색은 칙칙한 갈색이지만 테니스공은 선명한 노란색으로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은 사람 눈에 보이는 세상 속에서 산다. 그렇다면 개 눈에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흔한 오해가 개는 흑백으로 된 세상에 산다는 것이다.


1960년대까지 “포유류 가운데는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만이 컬러로 세상을 본다”고 믿었다. 개는 말을 하지 못하니 어떻게 색깔을 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이 니츠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캠퍼스의 심리학자는 이를 알아볼 동물실험을 고안했다. 개에게 작은 판 3개를 차례로 보여주는데, 2개의 판에는 같은 색 나머지 판에는 다른 색깔의 빛을 쏜다. 개가 다른 빛깔의 판에 코를 대면 정답을 맞힌 보상으로 맛있는 간식을 자동으로 제공했다.


수많은 실험 결과 개가 색깔을 구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89년 과학저널 ‘시각 신경학’에 실린 논문에서 니츠 등은 개가 사람보다 1가지 적은 2가지 파장대의 색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사람은 긴 파장(빨강), 중간 파장(초록), 짧은 파장(파랑)의 색깔을 구별한다. 빨강부터 보라까지 모든 스펙트럼을 본다. 그러나 개는 긴 파장은 노랑, 짧은 파장은 파랑 근처의 색깔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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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본 모습(왼쪽)과 이를 개 시각으로 변환한 모습(변환 누리집: https://dog-vision.andraspeter.com/tool.php). 왼쪽 게티이미지뱅크

따라서 개가 보는 세상은 노랑, 파랑, 회색이 배합돼 이뤄지는 다양한 색조로 이뤄진다. 사람이 보기에 초록, 노랑, 주황은 개에게 노란빛 비슷하게 보일 것이고 보라와 파랑은 파랑으로, 청록은 회색으로 보일 것이다. 빨강과 초록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적록색맹과 비슷하다.


개 장난감에 많이 쓰이는 빨강은 반려인이 보기엔 예쁘지만 개에게는 칙칙한 갈색으로 보인다. 초록 잔디밭에 노랑 테니스공을 던져주면 개가 신나게 물어오겠지만 풀밭과 색깔 구분이 안 되는 빨강 공을 던져주면 당황할 것이다(물론 공에 묻은 주인 땀 냄새로 찾겠지만).


개와 사람의 시각이 다른 이유는 눈의 구조 차이 때문이다. 눈 뒤쪽 망막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세포(광수용기)가 있는데, 빛이 이 세포를 자극하면 신호를 뇌에 전달해 색깔을 보는 것처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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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망막의 광수용기 세포. 길쭉한 막대 세포와 원뿔세포로 이뤄졌다. 개는 막대 세포의 비중이 더 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망막에는 수백만 개의 광수용기 세포가 있다. 주변부에 있는 막대 세포는 약한 빛을 감지하고 명암과 형태를 구별하고, 중앙부의 월뿔세포는 밝은 빛을 감지하고 색깔과 형태를 구별한다. 사람과 개의 차이는 사람이 3종(적, 녹, 청)의 원뿔 세포를 갖춘 데 견줘 개는 2종(황, 청)만 보유한다는 데 있다.


분명히 한낮의 시각은 사람이 개보다 한 수 위다. 특히 색깔을 감지하고 선명하게 상을 보는 데 필요한 원뿔세포의 수는 개가 120만 개인데 사람은 그보다 5배 많은 600만 개에 이른다. 개가 보는 상의 선명도는 사람의 20∼40%에 불과해 사람이 9m 밖에서 구분하는 물체를 개는 2m 앞까지 와야 가려낸다.


그러나 새벽과 저녁의 어스름에서 개와 사람 시력의 우열은 뒤바뀐다. 개에 더 많은 막대 세포는 어두운 곳을 잘 보게 한다. 또 눈 뒤편에 들어오는 빛을 모아 반사하는 거울 구실을 하는 휘판이 있어 야간 시력을 극대화한다. 손전등으로 개나 야생동물의 눈을 비추면 눈에 불을 켠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개의 주간 시각이 사람보다 떨어지고 저녁과 새벽에 뛰어난 이유는 사냥에 최적화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개의 시력이 움직이는 물체를 더 잘 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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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시력 분포. 가로축은 눈 지름이고 세로축은 시력이다. 사람은 최상위에 위치한다. 케이브스 외 (2018) ‘생태학과 진화 동향’ 제공

낮 동안 잘 익은 열매를 따 먹도록 진화한 사람은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와 함께 동물 가운데 가장 시력이 좋은 편이다(관련 기사: 거미줄에 '조류 충돌 방지' 무늬 넣는 호랑거미). 사람의 시력이 개와 고양이보다 4∼7배 뛰어나다지만 어두울 때 사냥하는 개나 고양이와 맞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개는 시각에만 기대어 사는 것도 아니다. 뛰어난 후각과 청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시각을 뒷받침한다. 개는 사람보다 10만 배나 냄새를 잘 맡는다(차고 촉촉한 개 코의 비밀). 또 우리 귀에 안 들리는 고주파도 감지하고, 소리의 강도가 너무 약해 ‘마이너스 데시벨’로 측정되는 소리도 듣는다. 개가 느끼는 세상은 우리가 짐작하듯 그리 단조롭지 않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