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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80년대 아이유’ 이경미, 속세를 떠난 사연

by한겨레

가수 이경미와 영화 ‘밤쉘’

궁정동과 폭스뉴스, 권력형 성범죄의 질긴 역사

한겨레

이경미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1980년대에 지금의 아이유 같은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다. 그 시절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나중에 그를 알게 되었는데, 영상을 찾아보니 ‘80년대 아이유’라는 별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료가 그리 많지 않지만 ‘설마’라는 댄스곡은 무대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체계적인 보컬 트레이닝이나 기획사의 연습생 프로그램이 없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보면, 단단한 음색과 폭넓은 표현력은 감탄할 만하다.


그는 80년대 최고의 인기 음료 오란씨와 화장품 피어리스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고, 데뷔 음반으로 1984년 ‘한국방송(KBS) 가요대상’ 여자 신인 가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무려 이선희와 경쟁해 상을 놓치긴 했지만, 당시 이경미의 인기와 실력을 가늠해볼 만하다. 이쯤 되면 인기 가수로서 승승장구 스토리가 이어져야 정상인데 그는 돌연 행방을 감췄다. 실종 뉴스까지 나간 뒤 그가 발견된 곳은 안국동의 어느 암자. 그 뒤로도 연예계에서 활동하다 사찰로 피신하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다. 훗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시절을 회상했는데 내용이 충격적이다. 군부정권에 불려 다니며 노리개 취급을 당하다 못해 도망쳤다는 것이다.


비단 이경미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궁정동 안가는 군부정권이 여성들을 불러들여 술 시중을 들게 하고 성접대를 강요한 장소로 유명했다. 기자 출신으로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김충식의 저서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 궁정동 안가로 끌려온 여성이 100여명에 이르고 임신에 낙태까지 한 사람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민주화의 햇살이 비추지 않았던 그 옛날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천만의 말씀.


최근에 개봉한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불과 몇년 전 미국에서, 그것도 방송국 한복판에서 백주에 이런 식의 성폭력이 자행됐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2016년 <폭스 뉴스> 회장 로저 에일스를 상대로 여성 앵커가 성희롱 소송을 벌이고, 다른 여성 언론인들이 잇따라 추가 피해를 증언해 결국 로저 회장을 물러나게 한 사건을 다룬다. <폭스 뉴스>는 그냥 수많은 뉴스 채널 중 하나가 아니다. 세기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이며 미국에서 압도적인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공룡 미디어다. 회장의 권력은 얼마나 막강했겠는가? 그는 봉건 영주식 권력을 이용해 아주 오랫동안 여직원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고 괴롭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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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결국 로저 에일스를 쫓아냈다는 점에서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영화도 실제 역사도 씁쓸하다. 바로 그즈음에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자가 누구인가. 극도로 왜곡된 여성관을 갖고 있으며 불륜은 기본이고 성폭행 가해자로 수차례 지목된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공식적으로 나선 여성만 16명이니 말 다했지. 방에서 설치는 늑대를 겨우 내쫓았나 싶었는데 대문으로 호랑이가 들어온 격이다. 세상이 이렇게 비정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나도 폭로한다) 운동은 우리나라로도 넘어왔다. 그 전까지 숨죽이고 울던 여성들이 용기 내어 목소리를 냈고 예전 같으면 묵인됐을 권력자들의 위선이 드러나고 있다. 그 옛날 군부정권의 궁정동 안가에서도 그랬고, <폭스 뉴스>의 회장실에서도 그랬고,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시장, 도지사의 집무실에서도 그랬다. 정도만 다를 뿐이지 본질은 같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저항하기 어려운 위치의 여성을 성적으로 괴롭혔다. 그때도 범죄였고 지금도 범죄다. 미국에서도 범죄고 우리나라에서도 범죄다.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로저 에일스 회장이 <폭스 뉴스>를 성장시킨 자신의 공로를 운운하며 사태를 무마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나 공적을 운운하며 범죄의 무게를 덜어주려는 이들이 참 많더라. 그래서 이런 칼럼을 쓴다.


이경미 역시 권력자들의 성희롱에 시달리다가 결국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속세를 떠났다. 법도 총칼에 짓밟히던 그 시절엔 지금처럼 연대하고 힘이 돼주는 사람조차 없었으니 기댈 곳은 종교밖에 없었겠지. 보현스님이라는 법명으로 불가에 귀의한 뒤에도 그는 노래하는 스님으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속세의 삶은 포기해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 정도로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그가 여성성을 거세해서라도 권력자들의 성폭력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어야 했던 순간이 눈앞에 떠오른다. 오죽하면! 얼마나 무섭고 억울했을까? 내 머리 가죽이 서늘해진다.


그의 곡 중에서 ‘혼자 사는 여자’의 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나 이렇게 혼자 살아왔어요. 비바람 맞아가며 부딪치며 말 없는 강물처럼 그렇게 살아왔어요.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때론 누구나 외로워지고 사랑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외로움이 깊은 병처럼 가슴을 적시는 이런 인생에 사랑은 남의 이야기.’


쓸쓸한 노래를 속세에 남겨두고, 불가에서는 행복한 삶을 꾸리고 계신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