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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부산행, 킹덤, 반도…한성수, ‘K좀비’ 흥행 이끈다

by한겨레

‘부산행’ ‘킹덤1’ ‘킹덤2’ ‘#살아있다’ ‘반도’까지


열풍 불어닥친 ‘좀비 시대’ 일등 공신이자 주역


좀비의 조건? “마르고 눈이 커야 좀비 테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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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너무 멀쩡하잖아?


만나자마자 이 말부터 나온다. 사람이 사람답게 생긴 건 당연한데 어쩐지 좀 낯설다. 줄곧 좀비 모습으로 만나왔기 때문이다. 한성수. 알고 보면 그는 요즘 열풍인 ‘좀비 시대’의 일등공신이다. 2016년 <부산행>부터 <킹덤1>(2019), <킹덤2>(2020), <#살아있다>(2020), <반도>(2020)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인기 좀비물에 빠짐없이 출연했다. 현재 촬영 중인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도 나온다. 심지어 <부산행> 연상호 감독이 만든 좀비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에서는 목소리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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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빼놓고 한국 좀비물을 논할 수 없다. “하하하. 제가 출연한 작품이 잘되면 뿌듯하고 기분은 좋아요. 하지만 중요한 역할로 부각된 것도 아니고, 좀비물의 인기에 일조한 것도 없어 칭찬받는 건 좀 민망합니다.”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가 “한 게 없다”며 겸손해했다. 좀비물의 질은 좀비로 판가름나는 거 아닌가. 한동안 한국에서 좀비물이 성공하지 못했던 데는 좀비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좀비 시대의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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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산행 열차에 올라탔다가 좀비가 됐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인 <창>(2012)에서 더빙을 한 인연으로 <서울역>에 참여했고, <부산행>에서 열차 팀장 역을 맡게 됐다. 극 초반, 승객을 대피시키려고 동분서주하다 좀비가 되는 인물이다. 한국 좀비는 이 열차 팀장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좀비 동작을 연구하는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인 박재인·전영 안무가가 그와 함께 갖가지 실험을 하며 좀비의 기본 틀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행> 당시 수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다. 안무 선생님도 나도 처음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좀비 동작의 기본 틀을 너무 잘 잡아놓은 덕에 이후 작품은 거기에서 조금씩 변형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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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의 좀비가 머리를 계속 움직였다면, <킹덤> 때는 굶주린 좀비였기에 공격할 때 팔은 쓰지 않고 얼굴이 먼저 나갔다. <#살아있다>에선 사람이었을 때의 습성을 기억하고, <반도> 때는 4족 보행을 하며 움직임에 역동성이 더해지는 등 좀비 동작도 작품마다 변화를 거듭했다. <반도>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한다. “4년 묵은 좀비라 훨씬 더 굶주린 상태여야 했고, 자동차 장애물까지 기어오르는 등 공격성을 강하게 표출해야 했어요.”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가 동작을 연구하지만 구현은 철저히 배우의 몫이다. 그는 “좀비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관련 작품을 보면서 끊임없이 연구한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면 작품마다 손끝, 표정, 고개 각도 등이 제각각이다. “팔을 축 늘어뜨리고 넋을 놓으며 터벅터벅 걷다가 가끔 ‘그르렁그르렁’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게 가장 기본이에요. 이런 깔끔한 좀비를 선호합니다.” 마르고 눈이 좀 커야 ‘좀비 태’가 잘 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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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수는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좋은 좀비’로 꼽힌다. <킹덤1>에서 해가 뜬 뒤 감옥의 나무 창살에 끼여 버둥대는 좀비도 전영 안무가와 현장에서 만들어낸 동작이다. “연기 잘했다고 칭찬받았어요. 바퀴벌레 같다고. 하하하.”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분장 받고 의상 입으면 왠지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주변이 다 좀비니까 창피함도 사라지고. 백태 렌즈를 착용하면 사실 눈에 뵈는 것도 없어요. 하하하.” 그는 좀비가 되려면 “자신을 내려놔야 한다”고 했다. “자의식이 들어가는 순간 움직임이 가짜처럼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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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분장 자체도 고역이다. 보통 분장에만 1~2시간, 지우는 데만 또 1시간이 걸린다. <반도> 때는 4년 묵은 좀비를 표현해야 해 2시간 이상 분장했다. “작품당 20~30번씩은 분장을 하는 것 같아요. 한번 하고 나면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12시간씩 그 상태로 있어야 해요.” 겨울엔 추운데도 뭘 껴입을 수 없어 힘들고, 여름엔 물엿으로 만든 피에 파리가 꼬여 힘들다. “그럴 땐 내가 진짜 좀비 같아요. 하하하.”


얼굴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물집이 잡히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장애인·노인 비하 등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동작이 나오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등 진정성을 갖고 임하지만, 좀비 전문 배우로 굳어지는 건 부담스럽다. 그도 다양한 배역이 욕심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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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영화 <반도> . 첫 시작에 우르르 등장하는 좀비 중 하나. 이 얼굴 찾아보길.


서울예술대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그는 2007년 연극 <오이디푸스-성>, 2013년 단편영화 <집>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았다. 이후 드라마 <황후의 품격> <빅 이슈>, 영화 <염력> <박화영> 등에서 작은 역이지만 열심히 연기를 해왔다. “비록 좀비 역할이라도 계속 찾아주는 건 기쁜데, 좀비물의 인기가 시들해지면 아무도 찾지 않을까 봐 걱정도 돼요. ‘사람’으로 나와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으니까요.” 그는 “<부산행> 때는 좀비지만 인간이었다가 좀비로 변하는 역할이라 대사가 있어서 좋았다”며 “임팩트 있는 좀비보다는 여전히 잠깐 나오는 ‘사람’이 부럽다”면서 웃었다.


최근에는 강윤성 감독의 영화 <힙대디>에서 비중 있는 ‘사람’ 역을 맡아 몇달간 준비하기도 했다. “영화가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중단돼 너무 아쉽다”지만, 지금의 열정이라면 기회는 또 오지 않을까. ‘좀비력’을 인정받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선 배우를 넘어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로 활약하게 된 것처럼. “머리 쓰는 악역도 하고 싶고…. 아니다, ‘사람’ 역할이라면 뭐든 다 해보고 싶어요. 하하하.”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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