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이 당신의 심장을 찌르고 있다면

[컬처]by 한겨레

[책&생각] 정여울의 문학이 필요한 시간


(20)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의 마지노선


가난한 이웃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화려함을 부끄러워한 ‘가든파티’의 로라


순수한 부끄러움은 훗날 타인의 슬픔에 참여하는 용기의 씨앗이 되리라


당신이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면, 당신이 남의 눈에 띄는 어떤 손해도 끼치지 않았다면, 당신은 완벽하게 선량한 사람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답은 점점 ‘아니요’ 쪽으로 기운다. 우리는 대체로 착하고 바르게 살고 있다는 자기암시를 계속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저지르는 실책에서 완전히 벗어날 길이 없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거북이를 비롯한 온갖 바다생물은 죽어가고, 우리가 먹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인해 수질오염과 토양오염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모든 순간,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로 인해 걸핏하면 상처받듯이.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무심코 상해를 입히고, 그것이 심각한 상처인지도 모르는 채 스스로를 보살피지 않고,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도 여전히 수줍거나 소극적이다.


내가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잘 모르고 저지르는 우리들의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내가 미처 보살피지 못한 타인의 상처’를 통해 ‘내가 무의식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잘못’을 되돌아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무 죄도 없으면서 평생 부끄러움을 화두로 시를 써야만 했던 윤동주의 무참한 슬픔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착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힐 것 같지 않은 사람조차도, 끝없이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것이 생의 본질적 조건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자신이 혹시 조그마한 벌레라도 밟을까봐 노심초사하며 눈을 크게 뜨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양철나무꾼처럼,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마음의 기술을 평생 연마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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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에 균열이 일어나던 날


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 <가든파티>는 바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한없이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르쳐준 아름다운 작품이다. 주인공 로라에게 가든파티가 열리는 날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설렘과 축복의 시간이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로라는 정원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악단을 부르고, 음식을 장만하는 ‘파티의 주인공’이 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살아가던 로라는 건장한 인부들이 자신의 가든파티 준비를 돕기 위해 힘든 육체노동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며 감탄한다. 연약하고 지루한 부잣집 도련님들만을 알고 지내온 로라의 눈에 비친 인부들은 생동감이 넘치는 존재,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존재로 다가온다. 함께 춤을 추지만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이렇게 건장하고 매력적인 인부들을 친구로 사귀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에도 빠져본다. 로라는 사람을 계급으로 차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이런 로라의 순수한 마음에 균열이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두가 파티 준비에 열심인 동안, 이웃의 짐꾼 스코트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토록 기다려온 가든파티 당일에, 바로 길 건너 사는 이웃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라는 깊은 충격을 받는다. 로라는 결심한다. 집 근처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차마 가든파티를 열 수는 없다고. 이런 결심을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태연자약하게 반응한다. 우리가 파티를 그만둬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고. 그들은 우리의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고. 로라, 너는 모두의 행복한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고. 스코트의 죽음만큼이나 엄마의 냉담함에 충격을 받은 로라는 어쩔 줄 모르지만, 엄마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새 모자를 로라에게 씌워주며 제발 파티에 집중할 것을 명령한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거울 앞에 선 로라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버린다.


파티의 여주인공에게 딱 어울리는 그 아름다운 모자는 로라의 부끄러움을 마비시켜버린다. 로라는 몰려드는 손님들과 흥겨운 음악, 현란한 파티 장식과 맛있는 음식 속에 파묻혀 ‘내 이웃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파티를 취소해야 한다’는 애초의 신념을 접고 만다. 악단의 음악 소리와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가 스코트의 장례식장까지 들릴까봐 걱정하고 조심스러웠던 로라. 그러나 막상 파티의 흥겨움이 절정에 달하자, 로라는 스코트의 죽음이 전해준 심각한 화두를 깡그리 잊고 ‘파티의 여주인공’이 된 듯한 찬란한 희열에 흠뻑 도취된다. 진정 어려운 결정의 순간은 파티가 끝난 뒤 찾아온다. 지금까지 스코트네 집안에는 관심도 없던 어머니가 갑자기 로라에게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장례식에 갖다주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스코트의 장례식에 가게 된 로라는 드디어 자신이 그저 막연히 동경하던 일꾼들의 세계가 얼마나 거칠고 힘든 것이었는지를 명징하게 깨닫는다.


로라의 일거수일투족, 옷차림 하나하나가 빈민가 사람들에게는 처음 보는 구경거리였다. 로라는 아름다운 인물화를 바라보듯 인부들의 힘찬 노동의 세계를 멀리서 ‘감상’했을 뿐 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가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스코트씨 가족들을 본 순간 로라는 자신이 그토록 안전하다고 믿었던 아름답고 완전한 세계가 붕괴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이 완벽하고 훌륭한 음식을 보내도록 해라.” 엄마의 명령은 곧 부의 과시였고, 치사한 생색이었으며, 죽은 이에 대한 배려나 애도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함의 발로라는 것을 로라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스코트 가족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로라를 맞아주며, 스코트의 시신까지 보여준다. 로라는 평생 가족을 위해 뼈빠지게 일하다가 비명횡사한 스코트의 얼굴이 뜻밖에도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져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로라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며 그 집을 뛰쳐나온다. “제 모자를 용서해줘요!” 로라는 자신의 화려한 옷차림이 그들의 참혹한 슬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로라의 외침 “내 모자를 용서해줘요”


나는 가든파티의 주인공처럼 눈부신 역할을 연기하고 싶을 때 바로 길 건너편의 이웃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면, 때로는 그토록 원하던 최고의 주인공 역할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로라가 지금 당장 세상을 바꾸는 혁명가가 될 수 없을지라도 로라는 분명 어머니보다 나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내 모자를 용서해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기에.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열망 때문에 화려한 것들에 마음을 뺏기는 순간마다, 나는 <가든파티>의 로라를 생각한다. 가난한 가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슬픔 앞에서 로라가 자신의 화려한 모자를 부끄러워했듯이, 우리 또한 자신이 이미 가진 것들이 누군가에게 칼이 되고 화살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이 순수한 부끄러움은 훗날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참여하는 용기의 씨앗이 될 것이다.


문학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마침내 꿈이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순간(<노인과 바다>처럼)의 아름다움이지만, 꿈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어쩌면 지켜야 할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 또한 문학에서 배웠다. 화려한 욕망을 포기하고 올바른 신념을 따르는 자에게는 어떤 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나 자신이 최선을 다해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기억만이 남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상보다도 소중한 생의 가치가 아닐까. 언젠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추구했던 그 올바른 선택들이 모여 눈부신 인류의 별자리가 될 것이다. 때로는 부끄러움이야말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절실한 감정이 될 수도 있다. 내게 그 부끄러움의 소중함, 조심성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작품이 바로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다.


‘제 모자를 용서해주세요’라고 외치며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는 로라의 애처로운 뒷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의 마지노선이다. 로라는 가난한 스코트씨 가족이 평생 만져볼 수 없는 화려한 모자를 쓰고 장례식장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이 마치 칼날처럼 스코트네 가족을 찌르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미 가지고 누리며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결코 자기도취와 허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아프게 배웠다. 부끄러움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이라는 것을. 조심성이야말로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는 힘이라는 것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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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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