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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아내를 물건 취급해온 역사, 동서양 다를 바 없었다

by한겨레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41. 작가 미상, ‘영국의 아내 경매’


18세기 영국의 아내 판매


빈곤층 남성의 이혼 방식


공식 기록만 300명 이상


재산세 매길 만큼 소유물 간주


트로피 와이프, 결혼식 풍경


21세기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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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배우며 섬뜩했던 적이 많았다.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 나서며 아내의 목을 벤 장면은 ‘비장함’으로 소비되었지만 나는 소름이 끼쳤고,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조선 여인을 뜻하는 ‘환향녀’(還鄕女)가 비속어 ‘화냥년’의 유래가 됐다는 글을 보고 탄식했다. 남성 중심으로 기술돼온 역사(his story=history) 속에서 여성들은 독립 인격체가 아니었다. 그저 가부장의 소유물일 뿐이었다. 계백이 아내를 살해한 것은 자신의 재산을 없애며 불퇴전의 각오를 다지는 행위였고, 환향녀가 환영받지 못했던 것은 적에 의해 손상된 재산이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물론,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만 아내를 물건 취급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영국은 무려 아내를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17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무려 20세기 초까지 지속된, 영국의 ‘아내 판매’가 그것이다.


소녀 구매해 아내 만들려던 노예해방운동가


한 남성이 단상에 올라가 아내를 경매에 부치고 있다. 남성이 쥔 고삐 끝에는 아내가 소나 양처럼 목에 밧줄을 걸고 서 있다. 구경꾼에 둘러싸인 아내는 이 상황이 굴욕적이어서 화가 나는지 팔짱을 끼고 얼굴을 찌푸린 채 남편의 시선을 무시하는 중이다. 1876년 미국의 잡지 <하퍼스 위클리> 20호에 실린 그림 이야기다. 잡지는 영국의 아내 경매를 ‘신기한 관행’이라며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관행’이라 할 만큼, 아내 판매는 흔한 일이었다. 1780년부터 1850년까지 팔려나간 부인들의 수는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만 해도 300명이 넘는다. 보통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니 실제 아내 판매가 이뤄진 경우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판매가 이뤄졌을까. 1832년 아내를 팔았다고 알려진 조지프 톰슨이라는 남자는 아내를 “태생 독사”라고 부르며 아내의 나쁜 자질을 시장에서 나열했다고 한다. “미친개, 으르렁거리는 사자, 장전된 권총, 콜레라를 피하는 것처럼 이 쾌활한 여자를 조심하라” 그런 다음 그는 “하지만 이 여자는 소젖을 잘 짜고, 노래를 잘하고, 술동무 하는 역할을 잘한다”고 장점을 늘어놓은 뒤 “모든 장점과 결점을 합해 총 50실링에 판다”고 광고했다. 유의할 점은 조지프 톰슨이 아내의 값을 정한 방법은 사실 ‘아내 판매’ 관행에서 벗어난 경우였다는 것. 보통은 소나 양 또는 돼지와 똑같이 ‘몸무게 몇 그램당 얼마’ 하는 더 모멸적인 방식으로 아내의 단가가 매겨졌다고 한다.


그들은 왜 아내를 시장에 내다 팔았을까. 당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남성의 소유물이 되었다. 소, 돼지, 집 등에 대한 재산세를 내듯 아내에 대해서도 재산세가 매겨졌다니, 이는 국가에서 아내를 남편의 ‘재산’으로 공인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싫증난 소유물(아내)’을 시장에서 처분하는 것은 당시 남성들에게 그다지 이상할 게 없었다. 사실 ‘아내 판매’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이혼 소송 대신 18~19세기 영국의 빈곤 계층 남성이 택하는 일종의 이혼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혼을 위한 편법임을 고려하더라도 영국 상류층은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를 ‘하층민의 미개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내 판매’가 급증했던 1780~1850년에 상류층 남성들은 이를 반드시 없애야 할 풍습으로 지정했다는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동시대 영국 상류층도 아내를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특히 영국의 시인이자 노예제에 반대한 진보 운동가 토머스 데이(1748~1789)가 벌인 ‘미개한 짓’은 역대급이었다. 그는 아예 고아 소녀를 ‘구매’해 억지로 자신의 여성관에 맞춰 기른 뒤 아내로 삼으려고 했고, 주변 상류층 남성들도 이를 방조했다. 그가 이런 기이한 일을 벌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규모 영지를 소유한 집안의 외아들 데이는 돈도 많은데다 명석한 남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희한하게도 여성에게 인기가 없었다. 왜였을까? 데이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관, 그리고 ‘겉치레와 과시적 소비를 지양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설파한 장자크 루소의 사상을 깊이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그 영향으로 그는 머리를 빗지도 깎지도 않았고 모든 예절을 경멸해 기본적인 식사 에티켓조차 지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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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라이트(1734~1797)가 1770년에 그린 데이의 초상화는 그의 ‘고대 취향’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스 신전 스타일의 기둥에 기댄 채 예스러운 망토를 두른 데이는, 왼손엔 루소의 책 <에밀>을 쥐고 세속의 경박함과 멀리 떨어진 곳을 응시하는 중이다. 문제는 이런 삶의 방식을 자신만 지키면 되는데 아내가 될 여성에게까지 강요했단 점이다. 데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 <완벽한 아내 만들기>는 데이의 여성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녀는 그리스나 로마의 여신처럼 젊고 아름다울 것이었다. 또한 시골 아가씨처럼 순수하고 처녀여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강하고 두려움이 없는 스파르타의 신체적 조건을 가지되 꾸밈이 없고 때 묻지 않아서 옷이나 음식과 생활 습관에서도 허름한 농가의 아이처럼 수수한 취향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데이를 주인이자 선생으로, 감독자로 여겨야 했다.”


그런 여성이 현실에 있을 리 만무할 터. 청혼을 네 번이나 거절당한 데이는 마침내 고아 소녀를 양육해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여성으로 키워내기로 결심한다. 현실 여성들에게 혐오감을 느낀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이상적인 여인 조각상을 만들어 결혼하는 그리스 신화처럼 말이다. 선택된 소녀는 12살의 고아 사브리나 시드니(1757~1843). 데이는 한 인간을 자신의 욕망의 틀에 맞추기 위한 세뇌 계획을 차근차근 시행한다. 고통을 참아야 한다며 사브리나의 피부에 뜨거운 왁스를 떨어뜨리고, 사치와 방탕에 대한 인내를 시험한다며 예쁜 옷이 담긴 상자를 준 뒤 갑자기 불에 집어 던지고 타오르는 장면을 보게 하는 식의 교육이 이뤄졌다. 사브리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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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신부 인계, 상징적 아닌가?


리처드 제임스 레인(1800~1872)이 75살의 사브리나를 그린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브리나는 할 말이 있다는 듯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으며, 빛나는 눈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길들여진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데, 그 이유가 있다. 바로 데이의 아내 시험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하녀 훈련을 받는 것으로 알고 데이의 지시를 잘 따르던 사브리나는 진짜 의도를 뒤늦게 알고 경악했으며, 그 뒤 석연치 않게 데이의 지시를 어기는 등 ‘예비 아내답지 않게’ 행동했다고 한다. 아마도 사브리나는 실험실 속 동물의 운명을 자기 힘으로 박찬 것 아니었을까. 사브리나는 신화 속 조각상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21세기라고 데이의 후예들이 없을까. ‘트로피 와이프’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자신의 입맛에 맞게 소녀를 키워 아내로 삼는 일은 차마 못하지만, 부와 명성을 거머쥔 중장년 남성들은 이혼과 재혼을 통해 피그말리온의 조각상 같은 젊고 예쁜 아내를 트로피처럼 차지한다. 이때 아내는 남편의 성공의 표상이자,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유물로 전락한다.


계백의 후예들은 어떤가. 그들은 차마 아내의 목을 치진 못하지만, 아내의 자존심을 후려친다. 남들에게 “마누라 얼굴 보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다”, “아내 음식은 겨우 먹을 만한 수준이다”라고 우스개 삼아 폄하하는 남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겸손의 미덕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이 아니라 아내를 깎아내리는 것은 결국 아내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하긴 요즘에도 결혼식 때 신부는 옛 가부장(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해 새 가부장(신랑)에게 옮겨져 단상에 선다. 굉장히 상징적인 의식 아닌가?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다. ‘여자 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본다. 아울러 미술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호출해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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