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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사생활 팔기 프로그램’ 돌고 도는 연예인의 ‘도돌이표 인생’

by한겨레

싱글부터 연애, 결혼, 이혼까지

마음만 먹으면 평상 사생활 팔기

프로그램 바꿔가며 등장하고

내용도 점차 자극적으로 변질

‘침실 생활’까지 까발려

제작진 “공감대” 내세우지만

“말초적 관음증 합리화” 비판


2단계-외로워지면 <연애의 맛>에서 짝 찾아 삼만리 하는 연애 과정을 보여준다.


3단계-결혼하면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서 부부 일상을 드러내고,


4단계-아이를 낳으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육아를 한다. 아이가 좀 더 크면 <공부가 머니>에 나간다.


5단계-온 가족 모두 <살림하는 남자들>이나 <아내의 맛>에서 일상을 까발린다. <신박한 정리>에서 집 정리도 한번.


6단계-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로 고민을 털어놓자.


7단계-이혼하면? 이혼한 배우자와 다시 살아보는 <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하면 된다.


8단계-이제 돌싱이 됐으니 1단계부터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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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사생활 팔이’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티브이조선). 티브이조선 제공

한마디로 ‘도돌이표 인생’이다. 싱글 시절부터 연애, 결혼, 이혼 때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평생 사생활만 팔며 살아도 되는 게 요즘 연예인의 삶이다. 이러다 “노년의 연예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파는 예능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있다.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스비에스) <살림하는 남자들>(한국방송2) 같은 기존 프로그램에 더해 <아내의 맛>(티브이조선)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채널에이) 등 수년 사이 비슷한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현재는 12편에 이른다. <티브이조선>은 남녀를 짝짓는 <연애의 맛>, 부부 일상을 보여주는 <아내의 맛>도 모자라 하반기엔 이혼한 부부가 다시 살아보는 <우리 이혼했어요>까지 ‘연예인 사생활 팔이’ 3부작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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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 에서도 일상을 공개 중인 강성연 부부. 프로그램 갈무리

연예인의 사생활 팔이는 ‘아이 공개’부터 시작됐다. 2013년 <아빠 어디 가>(문화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한국방송2)가 인기를 끌면서 이듬해 <오 마이 베이비>(에스비에스), 2015년 <아빠를 부탁해>(에스비에스)까지 주로 아이를 드러내는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시어머니+며느리’ 조합의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문화방송), ‘장모+사위’ 조합의 <자기야―백년손님>(에스비에스), ‘연예인+조카’ 조합의 <빅스타 리틀스타>(제이티비시) 등 연예인 가족으로 구성할 수 있는 각종 조합이 등장했다. 단발성으로는 사돈에 팔촌까지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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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만나 결혼 뒤 에 출연한 이필모 부부. 티브이조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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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 에도 나왔던 소이현·인교진. 에스비에스 제공

최근에는 연예인 부부가 중심에 서면서 사생활 팔이 예능이 점차 자극적으로 변질하고 있다. 12개 중 절반 가까운 5개 프로그램에서 부부의 사생활을 까발린다.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애로부부> <아내의 맛> <1호가 될 순 없어>(제이티비시) <살림남> 등이다.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을 넘어 성생활 등 부부의 내밀한 부분까지 끄집어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아내의 맛>에서는 함소원이 남편 진화와 겪는 갈등을 부각하고, 코미디언 부부들이 등장하는 <1호가 될 순 없어>에서는 남편 김학래가 바람피우고 도박한 이야기가 소재로 활용된다. 아내 임미숙은 “(남편 때문에) 공황장애가 생겨 30년 동안 해외여행도 못 갔다”며 눈물을 흘리는데 김학래는 “각서를 많이 쓰니 문장력이 좋아지더라”는 농담을 던진다. <애로부부>는 한술 더 떠 부부의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코미디언 이광섭의 아내는 “(남편이) 결혼한 뒤 사랑을 나눌 때 상전처럼 받기만 한다”거나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표현까지 거침이 없다. <애로부부>에 나온 배우 조지환은 “(아내한테) 32시간마다 부부관계를 요구한다”는 말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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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여러 프로에서 사생활을 보여줬던 이휘재 부부는 최근 연예정보프로에서 집도 공개했다. 프로그램 갈무리.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듯한 이들 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은 편이다. <애로부부>는 케이블치고는 시청률이 높은 2~3%이고, <아내의 맛>도 종편으로서는 높은 수치인 8~10%를 오간다.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제작진도 지난해 100회 특집 간담회에서 “대상이 부부다. 남녀 관계 이야기는 누구나 (감정을) 이입하기 쉽다. 갈등이 존재하지만 같이 사는 이상 갈라설 수도 없는 둘의 관계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은 감정이입이 쉽다”고 인기 이유를 밝혔다. <애로부부> 제작진도 제작발표회에서 “현실 부부의 세계에선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3040이 고민을 툭 터놓고 이야기하면 공감할 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제작진은 ‘공감대’를 내세우지만 전문가들은 ‘관음증’을 합리화한다고 비판한다. 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부부 예능’이라는 용어로 말초적 관음증을 합리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종편을 중심으로 범람하면서 지상파까지 따라가다 보니 마치 1970년대 옐로 주간지가 방송으로 부활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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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성생활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 채널에이 제공

비슷한 소재와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면서 시청자들 또한 피로감을 느낀다. 연예인 부부가 프로그램을 바꿔가며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휘재·문정원 부부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육아로 사생활을 보여준 뒤 <아내의 맛>에서 부부 이야기를 다시 공개했다. 2018년 <따로 또 같이>(티브이엔)에 출연했던 강성연·김가온 부부는 현재 <살림남>에 출연하고 있고,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소이현·인교진 부부도 <너는 내 운명2―동상이몽>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연애의 맛>으로 만난 이필모·서수연 부부는 결혼 뒤 아이를 낳고 <아내의 맛>에도 출연했다. 연예인 가족 예능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연예인들이 과거보다 집과 가족 공개에 관대해졌지만, 사생활이 드러나는 걸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는 탓에 사생활 공개에 거리낌 없는 가족 위주로 섭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생활 파는 프로그램이 늘면서는 ‘연예인 부부’라면 일단 전화부터 돌려 무작정 출연을 타진하기도 한다.


리얼함을 내세우지만, 부부의 갈등이 주요하게 등장하면서 연출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부부 예능에 출연한 한 연예인은 “사이가 좋은 편인데, 방송에서는 안 좋은 것처럼 실제보다 과장해 얘기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