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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북한은 언제 ‘괴물 ICBM’을 만들었을까요?

by한겨레

정치BAR_길윤형의 알고싶어


북 10일 열병식 제일 마지막에 초대형 ICBM 등장

2017년 11월 발사성공한 화성-15형보다 훨씬 커

‘다탄두 능력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 쏟아져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 이후 12월 연속 엔진 실험

실험 성공 후 “또다른 전략무기에 적용” 담화 나와

북-미 협상이 전략무기 개발 이끈 게 아니라

협상의 실패가 북핵 문제 점점 더 어렵게 꼬아가

한겨레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신형 ICBM은 화성-15형보다 미사일 길이가 길어지고 직경도 굵어졌다. 연합뉴스

“김종식 상장이 지금 거대한 핵전략무력을 이끌고 김일성 광장을 통과해 나갑니다.”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10일 0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시작된 열병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이날 행사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거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었습니다. 북한이 ‘거대한 핵전략무력’이라 표현한 이 미사일은 여러 모로 한반도 주변국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 충분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북한은 이미 2017년 11월29일 화성-15형을 성공적으로 발사해 자신들이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음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이후 그보다 더 거대한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공개했으니, 이 미사일은 기존의 화성-15형과는 다른 특징을 가졌을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인 이해입니다.


일단, 이 미사일은 기존의 화성-15형보다 훨씬 더 큽니다. 겉보기에도 화성-15형(9축, 18개 바퀴)보다 훨씬 큰 11개축(22개의 바퀴)으로 지탱되는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실려 있습니다. 10일 공개된 영상 화면을 통해 어림 잡아 보면, 길이는 약 25~26m, 지름은 2.5~2.9m 정도로 추정됩니다. 덩치가 크니 화성-15형에 비해 사거리가 길거나, 더 무거운 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게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화성-15형이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그보다 먼 남미를 타격할 게 아니라면 사거리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이 여러 개의 탄두를 한번에 나를 수 있는 다탄두(MIRVs) 능력을 갖춘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탄두란 하나의 탄도미사일에 여러 개의 탄두가 탑재된 미사일을 뜻합니다. <조선일보>는 12일 “2~3개의 다탄두를 탑재해 워싱턴과 뉴욕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까지 내놨습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역시 12일 <문화방송>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금 전문가들이 다탄두 가능성을 주목해서 보고 있다. 그런 부분들은 정밀하게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적이 없으니 정확한 능력이 확인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오릅니다. 북한은 이 거대한 탄도탄을 언제 만든 것일까요? 대륙간탄도미사일개발은 어느 나라에서건 극비로 취급되는 ‘전략 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알기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힌트는 있습니다. 북한이 자신의 전략무기 개발과정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외부 세계에 자신들의 의도를 드러내 왔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려면 핵심이 되는 장치인 ‘엔진’ 시험을 필수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2019년 2월28일 하노이 ‘노 딜’로 인해 북-미 협상이 사실상 좌절되자 그해 말인 12월7일과 12월13일 동창리에서 각각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해 4월 연말까지는 그래도 미국의 성의 있는 대응을 기다려 보겠다고 했는데, 그 직전에 시험을 시행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공개하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과학원 대변인 발표


(평양 12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2019년 12월7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하였다.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한번 변화시키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끝)

두번째 발표에선 주변국들의 이목을 더 끌고 싶었는지, 실험시간은 아예 분대까지 정확히 밝혔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과학원 대변인 발표


(평양 12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


2019년 12월13일 22시41분부터 48분까지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중대한 시험이 또다시 진행되였다.


우리 국방과학자들은 현지에서 당 중앙의 뜨거운 축하를 전달받는 크나큰 영광을 지녔다.


최근에 우리가 련이어 이룩하고 있는 국방과학연구성과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믿음직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는데 적용될 것이다.(끝)

이후 이날 열병식에도 등장한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은 14일 담화에서 “최근에 진행한 국방과학연구시험의 귀중한 자료들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기술들은 미국의 핵 위협을 확고하고도 믿음직하게 견제·제압하기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또 다른 전략무기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게 될 것”이라고 밝힙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대신해 발표한 당 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 발표를 통해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북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습니다. 이 같은 정보를 토대로 볼 때 이날 등장한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엔진시험이 지난해 12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이후 10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이날 공개됐다고 합리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2월28일 1대1 단독 정상회담을 마치고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 정원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 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우리가 이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을 막을 순 없었을까요. 분명, 기회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이 엔진의 시험이 우리가 흔히 동창리 발사장이라 불리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북한엔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가 이곳 하나 뿐입니다.


북한은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부터 북한이 더 이상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증거’로 이 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이어, 북한 외무성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이후 발표한 7월7일 담화에서 “비핵화 조처의 일환으로 ICBM의 생산중단을 물리적으로 확증하기 위하여 대출력발동기 시험장을 폐기하는 문제”를 미국에 제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남북 정상이 합의한 9·19 평양공동선언에선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한다”고 약속했습니다. 단순히 폐기에 그치지 않고, 전문가들의 검증까지 받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대국민 보고대회를 통해 이 조처의 의미를 “이번에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대를 폐기한다면 이제 북한은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도 할 수 없게 되고, 또 미사일을 더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그런 식의 일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북-미가 서로 신뢰를 쌓아가며 하나씩 실효 있는 비핵화 조처를 취해가자는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론과 북한 핵시설의 신고와 검증을 통해 단숨에 비핵화를 끝내자는 미국의 ‘빅 딜’론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충돌하며 북-미 핵협상은 사실상 기나긴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한겨레

북한이 서해위성발사장이라 부르는 동창리 발사대의 모습

미국의 이 결정은 옳았던 것일까요.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행동 대 행동’식의 단계적 비핵화는 결국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영변과 동창리를 폐기하고 미국의 핵심 제재를 풀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하노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미국이 하노이에서 좀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했다면, 우리는 동창리 발사장과 영변 핵 시설이 사라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북한은 10일 등장한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결코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