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즙 부부’의 30일 채식 체험기

[라이프]by 한겨레

본래 육식인이었던 40대 초 부부

전업주부이자 육아 아빠인 나

늘 우울의 바닥에 떨어지는 나날들

의사 아내의 철저한 점검하에 채식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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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채식 체험을 마친 송호균(41) 객원기자와 그의 아내 홍덕만(42)씨는 이후에도 완전채식(비건)을 지향하는 식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하나토리스냅’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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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육식인이었다. 하루라도 동물성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반찬이 식탁에서 빠지는 일은 없었다. 대충 냉장고 속의 나물류를 슬쩍 비벼 한 끼를 때우자면서도, 달걀 6개를 부쳤다. 우유를 물처럼 마셨다. 주말 외식 때면 백에 아흔아홉은 아닐지라도, 열에 아홉쯤은 고기를 굽고, 소맥(소주+맥주)을 말았다. 연애할 때는 아내의 집 앞 고깃집 사장님이 우리를 퍽 예뻐하셨다. 복스럽게 잘 먹는다고. 둘이 삼겹살 3인분은 기본이요, 기분이 내키면 4~5인분도 먹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잔반이 남지 않았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요는, 10년 넘도록 비슷한 식생활을 이어왔다는 거다. 비싸서 자주 하지 못할 뿐,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에는 어김없이 소고기를 맘껏 먹었다. 고소하게 기름진 고기 뱃살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일은 우리만의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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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비트, 당근으로 에이비시(ABC·apple+beet+carrot)주스를 만드는 모습. 사진 ‘하나토리스냅’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아직 40대 초반이지만, 늘 불쾌한 피로감을 달고 살았다. 고지혈증과 간 기능 저하 등 대사증후군(성인병 초기 단계) 진단을 받은 지 오래다. 전업주부이자 두 아이의 육아 아빠로서, 아이들의 행동이 조금만 엇나가도 짜증을 내거나 아이들에게 소리까지 질렀다. 육아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면 우울했고,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고기를 먹었다. 당장은 입이 즐거웠을지 몰라도, 곧 몸과 마음의 컨디션은 다시 바닥을 향했다. 가장 엄격하다는 완전채식, 비건을 체험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지면을 채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일단 스스로가 절박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가능한 일일까?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고기·생선·달걀·우유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기본이란다. 게다가 젓갈류가 들어간 김치도 안 된다. 이를 어쩌지?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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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식사로 만든 채식 비빔쫄면. 송호균 객원기자

후회하건 말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일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시작인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저녁으로는 라면을 끓이고, 적당히 익은 장모님표 김장김치를 반 포기쯤 흡입했다. “야식이라도 먹자!” 야밤에 집 근처에서 냉동 삼겹살을 굽고, 전장에 투입되는 전우의 심정으로 우리 부부는 서로의 빈 잔에 찬 소주를 채웠다. 마음이 급했던 탓일까. 고기를 굽다 왼쪽 팔뚝이 불판에 닿아 동전 크기만 한 화상을 입었다. 물집이 생길 듯 말 듯, 1도와 2도 사이의 상처였다. 아, 이건 어쩌면 도저한 육식인의 낙인이랄까.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완전채식’ 그날은 끝내 오고야 말았다.


비건식을 시작하기 직전,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우리는 보건소에서 각각 ‘체성분 분석기’(인바디) 데이터를 측정해 비교해봤다. 기자는 전후에 피검사도 받았다. 현직 의사이자 4년차 크로스피터인 아내가 체험 과정 내내 든든한 조력자이자 조언자, 팀 닥터의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식단은 어땠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했는지, 매일의 육체적·심리적 상태는 어땠는지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비건식에 도전하는 이들을 위해 참고할 만한 팁들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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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국·채소볶음을 곁들인 부부의 식탁. 송호균 객원기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30일 동안, 90끼의 아름다운 식사는 ‘섭생’에 대한 부부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우리는 ‘약속한 한 달’이 지난 뒤에도 비건식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다만 전처럼 엄격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손님이 오거나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 식사해야 할 때는 특별히 제한을 두지는 않고 있다.


비건의 어떤 매력이, 부부의 식생활을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바꿔 놓았을까? 비건이 좋다고 말은 많이 하는데, 무엇이 그렇게 좋았던 것일까? 여기, 그 답이 있다.


글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사진 ‘하나토리스냅’ 이하나 작가


[ESC] 코골이 탈출 “채식했더니 몸과 마음 다 달라졌어요”


한 달간 ‘완전 채식’에 도전한 우리 부부

ABC주스·현미쌈밥·후무스·비건 타코 등

체중·중성지방·간 수치 등 떨어져

골격근도 감소했지만 고강도 운동 병행한 아내는 유지

코골이 탈출, 한결 나아진 몸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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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균 객원기자 부부의 비건 식단표.

‘비거니즘’(채식주의)을 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이 사회에는 완벽한 소수의 비건(완전한 채식주의자)보다, 불완전하더라도 비건을 지향하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래도 기왕 하는 김에 한 달 동안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비건 식사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했다. 비건이 되는 일은 의외로 쉽다. 고기·생선·달걀·우유를 안 먹으면 된다.


5살, 7살인 아이들은 일반식을 유지했다. 우선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 비건을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급식에 옵션이 없었기에 강제할 방법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선택할 문제라고 봤다. 단, 아이들에게 햄이나 소시지 등의 가공육은 먹이지 않기로 했다. 가공육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정한 1급 발암물질이라고 하지 않던가.


엄격한 비건의 기준에선 식품의 성분표에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고기·생선·달걀·우유를 취급하는 시설에서 생산한 식품은 ‘논비건’으로 친다. 이 부분은 타협했다. 고기·생선·달걀·우유를 먹는 아이들과 같은 집에서 사는 마당에 별 의미가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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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시주스. 사진 ‘하나토리스냅’ 이하나 사진작가 제공

아침엔 ‘ABC주스’, 저녁엔 나물 반찬에 현미 쌈밥

지난 8월24일부터 30일 동안 엄격한 비건 식사를 유지했다. 매일 아침 식사는 사과와 비트, 당근을 물과 함께 갈아 넣은 에이비시(ABC·apple+beet+carrot)주스로 해결했다. 이를 위해 성능이 꽤 괜찮다고 알려진 핸드블렌더를 샀다. 에이비시주스는 우리의 비건 도전의 시작이자, 핵심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뻘건 액체를 아침마다 ‘500㏄ 맥주잔’에 한가득 넣어 마셨다. 무엇보다 맛있다. 마시면 마실수록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배도 불렀다. 전날 과음을 했다면 해장에도 효과 만점이다. 일반식을 준비할 때보다 채소류를 풍부하게 섭취하고 있는 터라 그 시너지는 어마어마했다. 매일 화장실에서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자.


점심때까지 배고픔이 느껴질 게 걱정되면 간식으로 집에서 만든 견과류 그래놀라를 집어먹었다. 캐슈너트나 해바라기씨, 아몬드, 호두 등 견과류는 무엇이든 넣고 싶은 만큼 넣어 먹었다. 여기에 오트밀을 가득 부어 넣고 메이플시럽과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한 뒤 살짝 볶아내 말린 크랜베리를 추가로 넣었다. 두유를 부어 시리얼처럼 먹어도 좋다.


점심이나 저녁 등 메인이 되는 식사에는 주로 현미밥을 주식으로 한 한식을 준비했다. 아내의 직장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터라, 매일 점심을 함께 먹었다. 사실 직장생활은 비건 도전의 가장 큰 걸림돌일 수 있다. 동료와 함께 밖에서 먹는 점심이나 꼭 참석해야 하는 회식은 어쩔 것인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인 아내는 “매일 점심을 동료들과 했다면 계속 비건 식사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다. 비건을 지향하는 동료를 찾아 함께해도 되고, 차림표를 잘 살펴 주문하는 방법도 있다. 나름의 방법을 찾으면 길이 없지는 않을 터.


쌈 채소는 끼니마다 빠지지 않았다. 각종 나물류를 매일 준비했고, 허전하면 가지와 버섯이라도 볶아 먹었다. 식물성 단백질을 풍부하게 섭취하려고 노력했다. 청국장이나 두부, 콩류를 많이 먹었다. 김치도 따로 담갔다. 일반적인 겉절이를 만드는 방식에서 새우젓이나 까나리액젓 등 젓갈류만 뺀 비건 김치다.


첫날에는 식사를 배불리 해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즐기게 됐다. 밥과 각종 나물 반찬, 그리고 국이나 찌개까지 준비하는 식사는 맛도 좋고 즐거웠다. 이렇게 제대로 차려 먹는 식사가 일반식을 준비할 때는 오히려 적었다. 먹거리를 마련하고 준비하는 일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직접 해보니, 고기가 주식인 서양식 식사와 달리 밥을 주식으로 하고 각종 나물류를 접할 수 있는 한식이 비건에 더 유리하다는 걸 알게 됐다. 디저트도 즐겼다. 제과제빵이 취미인 아내는 종종 우유나 버터 없이 견과류가 가득 들어간 쿠키를 굽거나, 메이플시럽을 끼얹은 팬케이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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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타코. 송호균 객원기자

인도네시아 청국장 ‘템페’도, 비건 마요네즈와 후무스도 인기 만점

한식으로만 잇는 비건 식사는 자칫 지루할 수 있다. 그래서 이국적인 비건 식사에 눈을 돌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식재료에 도전했다. 인도네시아식 청국장이라고 할 수 있는 ‘템페’를 주문해서 냉동하고 하나씩 꺼내 썼는데,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현지에서는 주식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먹는단다. 한국의 청국장처럼 강한 냄새는 없다. 기름에 살짝 구워도 좋고, 잘게 부숴 카레에 넣거나 채식 짜장면을 만들 때도 넣어주면 식감과 맛이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도 잘 먹었다.


서양식 식사로는 오일 파스타인 ‘알리오 올리오’나 구운 채소와 토마토 살사를 곁들인 ‘비건 타코’가 인기 만점이었다. 가족들이 환호했다. 마요네즈도 만들어 썼다. 달걀을 넣지 않고, 올리브유와 소금, 레몬, 두유만을 섞어 푸드 프로세서에 넣어 돌리니 신기하게도 마요네즈가 만들어졌다. 마요네즈를 만드는 날에는 고소한 풍미가 한동안 집 안에 가득 퍼졌다. 맛도 상당히 좋다. 빵이 먹고 싶을 때면 우유와 버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바게트와 호밀빵, 치아바타 등 시큼한 식사 빵을 준비했다. 다만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의 빵에는 우유와 버터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니 구매하기 전 매장에 문의해 보는 게 좋겠다.


‘슈퍼 푸드’로 각광을 받는 렌틸콩이나 병아리콩도 애용했다. 특히 타코를 먹을 때 불린 콩을 삶아 적당히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비건 마요네즈를 섞으면 근사한 속 재료가 된다. 한 달 동안 채식 타코를 10회 준비했다. 삶은 병아리콩에 소금과 후추, 올리브오일, 커민가루를 넣고 되직하게 갈아낸 ‘후무스’는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렸다. 중동 지역에서 즐겨 먹는 후무스는 각종 미네랄과 단백질이 풍부한 이슬람 문화권 소스다. 쌈밥에 넣어도, 빵에 발라도, 타코에 곁들여도 은은한 감칠맛이 폭발한다. 식사가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비건을 계속 추구하는 게 고역이 된다. 그런 점을 예방하기 위해 선택한 게 중동식 식사 등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류와 탄수화물로 이뤄진 빵이나 파스타, 토르티야 등은 든든하고 맛도 좋았다. 여기에 샐러드를 곁들이면 매우 균형 잡힌 식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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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리아 비건버거. 송호균 객원기자

‘외식’이라는 진입장벽, 역시 ‘집밥’이 최고

비건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라면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맞벌이 부부는 비건을 해도 외식이 절실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외식의 불편함’은 가장 큰 진입장벽이다. 선택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요즘 비건 식당이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비건 문화가 아직 생소한 지방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방에 사는 우리 가족은 한 달 동안 5번 외식을 했다. 우리가 선택한 건 롯데리아에서 출시한 ‘비건버거’ 세트. 기름진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 의미는 적지 않다. 전국의 비건 식당을 망라한 ‘채식한끼’ 애플리케이션에 수록된 채식 짜장면, 콩고기를 이용한 수제버거와 함박스테이크 등은 특별히 비건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지 아이들도 잘 먹었다. 단골 식당에서 콩국수 주문 등으로 해결했다. 달걀 반찬은 빼달라고 했다. 비건 외식은 식당을 찾기 힘들다는 불편함을 빼면, 대체로 맛있었다. 콩고기 등 대체육도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고기의 식감과 맛을 잘 재현했다. 진짜 고기를 먹을 때처럼 속이 더부룩한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외식보다 집에서 준비한 비건 식사의 만족도가 대체로 높았다.


술은 특별히 제한하지 않았다. 실제로 막걸리 반주 등 음주량에는 비건 도전 전에 견줘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아내는 직장의 회식 자리에서도 당근이나 오이 같은 곁들임 음식을 안주 삼아 술만 마셨고, 2차로 찾은 맥줏집에서는 통조림 황도 안주만 먹었다고 했다. 눈물 나는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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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이 줄어 헐렁한 청바지. 게티이미지뱅크

체중은↓컨디션은↑, 비건식 한 달 만에 ‘몸이 변하다’

남성인 기자의 경우 비건 체험 전후인 8월21일과 9월22일 각각 체성분 분석기 검사(인바디 검사)를 했는데, 체중은 97.6㎏에서 94㎏으로 한 달 동안 3.6㎏이 줄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비건 식사를 유지하고 있는데, 체중은 92.1㎏까지 줄었다. 약 두 달 동안 5㎏이 넘게 빠진 셈이다. 체중은 한꺼번에 빠지지 않고 하루에 100~200g가량씩 꾸준히 줄어드는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다만 한 달 사이에는 골격근이 40.2㎏에서 37.4㎏으로 감소했고, 체지방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의사인 아내는 “체중 감소분이 대부분 근손실이었다는 뜻으로, 그다지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강도 높은 근육운동을 병행할 필요가 있겠다”고 조언했다. 물론 체중이 줄어 몸이 현저히 가벼워진 느낌은 있었다. 시곗줄이 헐렁해졌고, 바지가 흘러내려 벨트를 평소보다 더 조여야 했다.


아내의 경우 같은 기간 체중에도, 골격근량과 체지방의 비율에도 변화가 없었다. 아내는 고강도 운동인 크로스핏을 주 5일씩 하고 있다. 아내는 “두 사람 사이의 현격한 운동량 차이가 근손실 여부를 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피검사 결과에는 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기자는 대사증후군(성인병 초기 증상) 진단으로 지질개선과 간 수치를 낮추기 위해 약을 먹고 있었는데, 비건 식사를 시작하면서 진단의와의 상담을 전제로 투약을 중단했다. 콜레스테롤은 158㎎/㎗에서 131㎎/㎗로 줄었다. 고질적인 중성지방도 398㎎/㎗에서 350㎎/㎗로 줄어들었다.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간 수치는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모두 긍정적인 변화다.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섭취하지 않아도, 혈중 단백질 수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아내의 운동 기록엔 변화가 없었지만 달라진 건 있었다. 아내는 “기록이 특별히 좋아진 것은 아닌데, 회복력은 확실히 나아졌다. 전에는 무리한 운동을 하면 2~3일 정도는 근육통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하루면 곧바로 돌아왔다. 전반적으로 몸이 가벼운 느낌이 있다”고 했다. 운동능력 유지와 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 섭취에 고기·생선·달걀·우유가 꼭 필요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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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과 채소. 게티이미지뱅크

측정되지 않는 ‘채식 효능감’, 완벽하진 않아도 ‘비건’을 지향하다

수치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보다 심리적 변화를 포함해 실제 체감하는 ‘채식 효능감’은 컸다. 무엇보다 ‘먹는다는 행위’의 성격이 바뀌었다. 전에는 배불리 식사하거나, 외식에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하면 몸이 무겁고 뱃속이 묵직해 그대로 눕기 일쑤였다. 비건 식사를 시작한 후에는 의식적으로 매 끼니를 잘 챙겨 먹었다. 밥을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특별히 몸이 무거워지거나 하지 않았다. 짜증을 내는 일이 줄었고 일상은 더욱 활기차졌다. 컨디션이 좋아지니 아이들을 비롯한 주변인에게도 더 너그러워졌다.


야식을 먹지 않게 된 것은 가장 큰 변화였다. 전에는 새벽 1~2시에 잠드는 게 일상이었고, 그러다 보니 뭐라도 먹는 일이 많았다. 주로 기름진 음식들이었다. 비건 식사를 하다 보니 야식을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다. 정 출출하면 견과류나 과일을 조금 먹었다. 아내가 ‘수면 무호흡증’을 걱정할 정도로 코골이가 심했는데 확실히 잠드는 일이 편해졌다. 늦어도 밤 11시~12시에는 잠들었고, 중간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잤다. 아내는 “코골이가 현저히 줄었다”고 증언했다. 무엇보다, 40대가 된 이후 이렇게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흡연자들이 금연에 성공할 때의 느낌하고도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30일 체험이 끝난 직후에는 시험 삼아 고등어회를 먹어봤다. 우리 부부는 단골집에서 지난 한 달 동안의 무용담을 안주 삼아 소맥(소주+맥주)을 말았다. 회를 먹는다는 행위에 특별히 거부감이 들거나, 지나치게 비린 맛이 나지는 않았다. 고소한 고등어회는 기름지고 맛났다. 하지만 식사를 마친 뒤 깜짝 놀랐다. 그냥 배가 부른 정도가 아니라, 뱃속에 돌덩이가 들어간 것처럼 더부룩했다. 그 뒤로는 다시 비건 식사를 유지하고 있다.


비건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반복해서 지적되고 있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거부감이나 동물권 옹호, 환경보호 등의 가치에 방점을 찍는 사람도 있다. 반면 ‘개인의 건강’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이기적인 이유로 채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미 수십년 동안 지나치게 많은 고기를 먹어 왔다. 한 달 동안의 체험을 통해 고기·생선·달걀·우유를 먹지 않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고기·생선·달걀·우유를 먹지 않으니 깜짝 놀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졌다. 채식이 형벌이나 페널티가 아닌, 행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육식 인생 40년 만에 깨달았다.


당장 ‘완벽한 비건’이 될 필요는 없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든, 지구환경을 위해서든 비건 식사를 ‘지향’해보는 건 어떨까?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ESC] 비건 도전, 도와주는 친구들 있어요

글자에 콕콕 박힌 채식


<비건테이블>은 동물성 재료를 전혀 쓰지 않은 88개의 비건 레시피를 담은 요리책이다. 비건식 버터나 비건 밀크, 마요네즈 등의 기본 재료뿐 아니라 각종 수프와 브런치, 샐러드, 디저트까지 다양한 메뉴가 빼곡히 적혀있다. 저자인 소나영씨는 “따라 하기만 하면 누구나 맛있는 비건 요리를 쉽게 완성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의 채식 요리사이자 유튜버인 타카시마 료야가 펴낸 <나와 지구를 위한 조금 다른 식탁:베지테리언 레시피>에는 채식 피자나 타이식 볶음밥 등의 메인 요리와 라비올리나 뇨키 등의 각종 국수류, 쿠키·도넛·파이·케이크 등의 후식까지 다양한 레시피가 담겼다.


클릭 한 번에 채식 식당 발견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각각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채식한끼’에서는 주변의 채식 식당을 손쉽게 검색해볼 수 있다. 가령 이 식당에는 우유를 허용한 ‘락토’ 메뉴가 있다든지, 생선류를 허용하는 ‘페스코’에게 좋다든지 하는 정보가 가득하다. 식당의 운영 시간과 연락처, 메뉴와 음식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외식에 목마른 모든 채식인의 필수 앱이라 할 만하다.


위키독의 ‘비건편의점’(ko.veganism.wikidok.net)은 비건 식사를 테마로 한 각종 식품 정보가 가득하다. 비건과 관련된 각종 용어해설뿐 아니라 식품회사의 여러 제품을 비건과 논비건으로 구분해 놨다. 가령 김치를 구입하고 싶은데,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이 비건식이고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소스류를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채식 근력 키우는 영상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왓 더 헬스(What The Health)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카우스피러시>는 공장식 축산이 지구 환경과 소비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발물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거대한 자본과 로비력을 가진 축산업 단체가 ‘육식’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전문적인 의학 학회들이나 소비자단체, 심지어 환경단체에까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비건 운동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는 근력과 근육량을 늘리는 데에는 고기 섭취가 필수적이라는 ‘보편적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으로, 비건식을 유지하는 전문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육류 섭취를 중단하고 오히려 운동 능력이 늘었다고 증언하는 각 종목의 운동선수들의 생생한 육성을 접할 수 있다.


송호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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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레시피를 담은 요리책들. 송호균 객원기자

글·사진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2020.10.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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