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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은퇴 뒤 귀촌과 다르다, 오지로 간 2030 도시내기들

by한겨레

이들은 왜 시골이나 오지에 매료되었나

은퇴 자금 들고 귀농한 중장년 아닌

자꾸만 시골에 기웃대고 싶은 밀레니얼들

경북 3대 오지 BYC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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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팍팍한 삶이 싫어 귀촌한 이유진(사진 오른쪽), 송태훈씨 부부는 경북 봉화에 산다. 집 앞 데크에 앉으면 내려다 보이는 풍경.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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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곳이 ‘핫플’이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까지는. 사람 드문 곳이 최고의 ‘장소’로 떠오르면서 시골·오지살이는 로망이 됐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쫓기는 게 일상인 도시 생활의 팍팍함 또한 떠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최근 시골·오지살이의 흐름을 주도하는 이들은 20·30세대다. 청년들의 시골살이가 주목받고 있다. 말 한마디 없이 시골의 소리를 담아내는 유튜브 ‘키미’(구독자 55만명), 요리, 인테리어 등 아기자기한 시골집 일상을 담아내는 ‘냥숲’(49만), 시골집 고쳐 사는 이야기를 담은 ‘오느른’(21만) 등에 영상이 올라오면 뜨거운 반응이 이어진다. 이들 채널에 올라온, 응원하고 부러워하는 내용의 댓글을 보고 있자면 누구나 마음속에 꿈꾸는 ‘리틀 포레스트’가 있는 것 같다.


이제 귀농·귀촌은 중장년층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의외로(?) 20~30대 청년 귀농·귀촌 인구가 많다. 특히 농업 종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귀촌의 경우, 30대 이하 젊은 층이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많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한해 귀농·귀촌 흐름을 집계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연령대가 44.3%를 차지한다.


무엇을 위해 시골이나 오지를 찾을까. 귀농·귀촌 이유를 물은 설문에서는 ‘정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서’(21.2%), ‘자연환경이 좋아서’(19.3%)등의 이유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꼽힌다. 농식품부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귀농·귀촌에 관심을 갖는 도시민 증가에 대비해 정보 제공 확대, 일자리 교육 등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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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씨 집 주변의 자작나무 숲. 사진 이유진 제공

이번주 ESC는 시골로 떠났다. 시골 가운데에서도 경북 3대 오지로 통하는 ‘비와이시’(BYC·봉화, 영양, 청송) 가운데 한 곳인 봉화로 다녀왔다. 지난달 26일, 봉화에서 만난 서른일곱살 동갑내기 이유진·송태훈 부부는 7년차 ‘프로시골러’다. 서울에서 봉화까지 약 3시간여 거리이지만 구룡산, 선달산, 청옥산, 문수산, 청량산에 둘러싸여 있고, 좀 더 멀리엔 소백산과 태백산국립공원이 있어 더 아늑한 봉화는 산골이자 오지다. 전체 약 3만여명의 인구수도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이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산이 많고 사람이 적어 공기 좋고 고즈넉한 점이 봉화를 고르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부부는 친구들이 대출받아 도시의 집을 살 때, 더 적은 돈을 들여 땅을 샀다. 골짜기에 부는 바람과 계절마다 바뀌는 산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살고 싶어서다. 다듬어지지 않은 풀숲과 야생동물이 종종 출몰하는 언덕이 그들의 앞마당이고 뒷마당이다. ‘각 계절이 지나가는 대로 그 계절 속에 살라. 모든 바람을 맞으라. 봄과 함께 파릇파릇해지고 가을과 함께 노랗게 익어가라.’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남긴 ‘계절 속의 삶’의 한 구절이다. 이런 삶이란 어떤 것일까. 로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청춘의 프로시골러들에게 물었다. 시골·오지살이 왜 좋아요?


봉화(경북)/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SC] ♬ 브라보 브라보~ 마이 오지라이프

일상을 여행처럼, 청춘의 즐거운 오지살이

“매일 아침 생각해, 여기 사는 게 참 다행이라고”

필요한 만큼 벌고 덜 바삐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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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훈(사진 왼쪽)∙이유진씨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앞마당을 정돈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큰 도로에서 작은 샛길로 빠졌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좁디좁은 도로, 길 양쪽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큰길을 달릴 때까진 멀어 보이기만 했던 계절이 가까이 쏟아졌다. 저물어 가는 계절이 나뭇가지마다 매달려 눈앞에서 대롱거린 덕분이다. 지난달 26일, 경북 봉화에 사는 서른일곱살 동갑내기 이유진·송태훈 부부의 집으로 가는 길. 그들의 오두막집은 깊은 골짜기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5분여를 달려 올라가야 나왔다.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부부가 키우는 고양이 라미, 개 달구와 달동이가 마당을 지키고 앉았다. 산속에 폭 들어앉은 작은 오두막집 뒤로는 자작나무숲이 풍성하다. 집 앞쪽에는 멀리 단풍으로 물든 산이 겹겹이 서 있었다. 산을 향한 창문을 열면, 풍경이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을 테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이씨 부부의 집은 가장 가까운 이웃집까지 가려면 차로 큰길까지 내려가야 하는 산속의 외딴집이다. 창문을 열면 맞은편 집이 보이는 아파트 생활과는 확연히 달랐다. 층간소음을 다툴 이웃은 없다. 인근 3~4㎞ 안에는 집이 없다. 우거진 숲이 옆집이고, 하늘이 윗집이다.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며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씨가 말했다. “처음 여기 살기 시작했을 때는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지금은 아침에 눈 떴을 때 내가 여기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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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사는 고양이 라미가 송태훈씨 옆에서 놀고 있다. 신소윤 기자

2014년, 두 사람은 아무 연고가 없는 봉화에 내려왔다. 봉화는 이른바 경북 3대 오지 ‘비와이시’(BYC·봉화, 영양, 청송) 중 한 곳이다. 봉화는 2018년 7월 현재, 인구 약 3만3000명, 약 1만6000세대가 산다. 부부가 사는 소천면은 인구 2000여명의 작은 동네다. 산에 둘러싸인 두 사람의 집은 요즘 같은 때 오후 3시면 서늘해진다. 택배 배달도 힘들다. 누가 뭘 보내면 택배 사무소에 직접 찾으러 가야 한다. 시커먼 밤에는 고라니, 멧돼지 등이 풀숲을 부스럭거린다. 고슴도치도 여러 마리 출몰해 마당 개들과 싸웠다. 이씨는 “동물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죠. 그래서인지 인근에 낯선 등산객이라도 지나갈라치면 개들이 짖는 소리도 달라요. 더 경계한달까.”


처음엔 뿌리를 내릴 생각은 아니었다. 부부는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이씨는 대형 놀이공원 안내원과 기업 임원 비서로, 송씨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이씨는 “내 기분과 상관없이 밝은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비서 일을 한 두 번째 직장에서는 파견 계약직이었는데, 고용 형태에 따라 사람의 급이 나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여자는 나이 들면 회사를 그만둔다는 인식까지 있어 미래가 안 보였다”고도 덧붙였다. 직장 생활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기는 송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도 컸고, 막연하게 공기 좋은 곳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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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빛공해가 없는 곳이라 밤이면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다. 사진 이유진 제공

두 사람은 결혼 전부터 귀촌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지만 30대에 도시 탈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송씨가 말했다. “은퇴하면 시골 가서 조용히 살아보자, 나이 들면 떠나자, 이런 식으로 먼 미래의 일로 막연히 생각했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지금 당장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이죠.”


그렇게 도착한 곳이 봉화였다. 결단은 내렸지만 부산과 울산, 도시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은 시골 생활을 구체적으로 그리기는 어려웠다. 귀농학교를 다니며 정보를 얻었다. 봉화를 선택한 이유는 “전국에서 땅값이 저렴하기로 손에 꼽히기 때문”이었다. 결단을 내린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바로 집을 빌렸다. 그 2년 동안은 최대한 일을 줄이고 여행하듯 지냈다. 송씨가 개발한 앱을 관리하며 얻는 수익과 집 옆 2644㎡(800여평) 규모의 임대 밭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식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한 해씩 다른 밭에서, 첫해엔 수세미, 다음 해엔 들깨를 키웠다. 월 생활비는 집 임대료 30만원을 포함해 100만원 안쪽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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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문을 열면 바로 마주하는,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숲의 풍경. 사진 이유진 제공

주변에서 오히려 두 사람 먹고살 걱정에 성화였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송씨는 “시골에 오면 많은 일이 청년들에게 열려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인근 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로 아이들에게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쳤다. 이유진씨는 봉화군에서 지원하는 청년 일자리 사업인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에 선발돼 투자금을 3000만원 정도 지원받았다. 경상북도 각 지자체에 시행되는 사업인데, 경북에 귀촌한 청년 사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씨는 “의성군은 청년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해 더 다양한 지원이 있다”며 귀띔했다. 이런 지원 사업 정보를 종합적으로 얻으려면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청년센터’(youthcenter.go.kr)를 참고하면 된다.


부부는 군청의 지원을 받아 외국 관광객을 위한 시골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려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했다. 체험 공간은 현재 카페로 활용하고 있다. 직접 만든 쌀빵, 정성스레 담근 과일청으로 내린 음료 등이 인기다. 오지라 찾는 이가 없을 듯하지만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관광객이 찾고, 이웃도 자주 들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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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를 준비 중인 이유진씨. 신소윤 기자

지금 사는 집은 두 차례 임대로 산 다음 아예 봉화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뒤 지은 집이다. 집을 지은 작은 언덕은 나무가 우거져 산처럼 보이지만, 등기부등본상 밭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버려진 밭이라서 땅 주인은 시세보다 약 절반 가격에 팔았다. 속수무책으로 숲이 우거져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게 더 좋았다. 부부는 돈이 생길 때마다 근처 땅을 조금씩 샀다. 맘에 쏙 든 자연환경에서 온전히 방해받지 않고 살고 싶어서였다. 처음 9917㎡(3000평)이었던 땅은 이제 13223㎡(약 4000평)가 됐다. 도시 사람의 기준으론 과하게 땅 욕심 부린 게 아닌가 싶지만, 땅값을 포함한 거주 비용이 얼마인지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땅을 사고 전기를 끌어오고 수도관을 연결하는 등 토목공사를 했는데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의 ⅓에도 못 미친다.


산골 오지생활 7년차, 장단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이씨가 답했다. “인간관계가 피곤해서 내려왔는데, 여기서는 공동체 생활이 매우 중요하니까 처음에 어려웠어요. 지역이 보수적인 편이다 보니 마을 행사가 있으면 여자들은 부엌에 모여서 설거지하는 건 몇 년이 지나도 적응이 어렵죠.” 송씨도 덧붙였다. “임대로 지낼 때는 우리가 떠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는지,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안 불렀는데, 이제는 우리를 여기 살 사람으로 인정해서 이런저런 행사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어요. 한편으론 예상 못 했던, 적극적으로 마을 일에 나서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 같은 게 생겨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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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 ‘문화정거장’. 신소윤 기자

두 사람은 자녀가 없어 비교적 자녀 교육 문제엔 자유롭다. 하지만 어린 자녀가 있는 오지살이 준비생이라면 특히 임대로 먼저 살아보고 결정하길 부부는 권했다. 아이가 둘인 송씨의 남동생 부부는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을 경쟁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키우고 싶다”며 귀촌을 결심해 지난해 봉화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남동생은 “아이들 표정이 밝아졌다. 교육 문제가 조금 걱정되지만,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사소한 어려움보다 삶의 만족도가 압도적으로 높다고 평가했다. 이씨는 “이렇게 내려와 살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한다. 욕심내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벌고 덜 바쁘게 사는 일상이 주는 만족감도 높다. 이씨가 덧붙였다. “직장 생활할 때는 눈 떴을 때 해야 할 일이 줄줄이 떠오르잖아요. 여기 와서는 이런 생각을 할 여유는 생긴 거죠. 오늘은 풀을 좀 뽑아볼까, 산책을 좀 할까, 이렇게요.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데서 해방됐다는 것,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봉화(경북)/​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오지살이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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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오느른’을 운영하는 최별 피디. 사진 최별 제공

살던 곳을 훌훌 털고 떠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무엇에 가치를 두냐에 따라 누구는 가족 때문에, 누구는 직장 때문에, 누구는 문화적 인프라 때문에 쉽사리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에 올라와 있는 청년들의 시골살이 영상은 구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며 로망과 현실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듯하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를 오가며 자기 일을 유지한 채 시골 생활을 꾸려가는 두 명의 유튜버에게도 물었다. 시골살이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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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별 피디의 시골집. 사진 최별 제공

오느른 시골집 고쳐 사는 이야기로 3개월 만에 구독자 수 20만명을 넘어 선 유튜브 채널 ‘오느른’을 운영하는 최별(31) <문화방송>(MBC) 피디는 지난 7월 전북 김제에 있는 115년 된 집을 샀다. 1905년에 지어진 집이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내려올 집, 올 때마다 여행 오는 느낌이 드는 집으로 구하고 싶었다. “그늘진 데 없이 봄 햇살이 마음껏 반짝이는 곳이 좋아서” 덜컥 구매했다. “그냥 당장 쉬고 싶은 마음에” 솟아오르는 퇴사 욕구를 누르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마침, 소속된 팀 이름마저 엠비시 디지털크리에이티브센터 엠드로메다 스튜디오팀이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일하면서 유튜브 운영을 회사 프로젝트로 제안해볼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업로드하는 그의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위안이 된다. 이를테면 막혀 있던 벽에 논밭을 향한 커다란 창을 내는 영상 같은 걸 볼 때면, 내 마음이 뻥 뚫린 듯 후련하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수많은 도시 청년이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회사 때려 치고 시골 가서 살고 싶다는, 막연하게 모두 꿈꾸는 마음이 있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무계획한 상황에서 얻는 황당한 에피소드에 구독자들이 응원을 보내요. 응원이라니! 어릴 적 운동회 때 말고는 들어본 적 없는 말인데, 이런 대가 없는 응원에 저도 뭔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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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산책하고, 시골집을 여행하는 유튜브 ‘오지는 오진다’의 한 장면. 사진 정태준 제공

오지탐험대-오지는 오진다 시골살이가 좋아도 실제 실행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저 소박하게 시골길을 잠깐 걷기만 해도 좋은데, 그럴 수 없는 게 대부분 사람의 현실이다. 이럴 땐 ‘오지는 오진다’를 운영하는 정태준(29)·이현우(29)씨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전남 나주 출신인 두 사람은 당장 집 대문만 열면 펼쳐지는 시골 풍경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한다.


카메라는 산책하는 두 사람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한적한 시골길을 천천히 함께 걷는다. 이를테면 “오, 지금 새소리가 엄청나요”라고 태준씨가 말하면 현우씨가 든 카메라가 시골집 마당의 우거진 나무를 비추는 식이다. 그러다 살짝 열린 대문을 열고 (미리 섭외한) 시골집을 구경하기도 한다. 수돗가, 아궁이에 걸린 가마솥, 장독대, 군불에 익히는 고구마까지 세세하게 살핀다. 이들의 영상을 보고 동네 부동산을 수소문해 집을 구입한 구독자도 있다고 한다. 정씨가 말했다. “영상 찍는 걸 좋아하는 친구와 운동 삼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시골집의 모습을 궁금해하더라고요. 어디 떠나기 힘든 요즘, 여행하는 기분으로 보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시골집 일주일 살기, 시골 섬 투어 같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 현재 이들은 콘텐츠 제작 관련 일을 하면서 시골을 ‘여행’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