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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ESC] 한국판 ‘세상의 끝’ 달마산 공룡 등허리 아시나요?

by한겨레

한겨레

달마산에 오른 김강은씨.

거리/소요시간: 10.5㎞ /약 6시간 30분

난이도 : ★★★★

주의 : 홀로 산행보다는 2인 이상 산행 권장. 방풍 대비 철저히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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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 일상을 탈피하고 싶은 것일까. 4년 전 방문했던 전남 해남이 떠올랐다. 그곳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의 종착역 달마산이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 피스테라나 유라시아 대륙의 끝, 포르투갈의 호카곶처럼 나라마다 ‘세상의 끝’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세상의 끝’이 있다면 땅끝마을 해남일 게다. 그곳에 서면 형용할 수 없는 울림이 있지 않을까. 그곳으로 떠났다. 해남 달마산에서 꼭 붙잡았던 2020년의 손을 탁 놓을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산행의 시작점은 천년 고찰 미황사다. 미황사 뒤편에는 거대한 공룡(?)이 잠들어 있다. 공룡의 등줄기 같은 울퉁불퉁한 달마산의 산등성이가 미황사의 배경으로 7㎞나 이어져 있는 것이다. 달마산을 여행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달마산 정상까지 등산하기△달마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달마고도 걷기△미황사에서 도솔암을 거쳐 땅끝마을까지 걷는 ‘땅끝 도보여행’. 그날은 달마산의 모든 봉우리를 걷는 종주 산행을 결심했다. 온종일 산의 품에 푹 빠져버릴 심산이었다.


달마고도 1코스는 평탄한 길로 시작한다. 커다란 돌이 쌓인 너덜지대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름 코스다. 키 낮은 수풀들이 다리를 스치고, 한 사람 정도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을 만난다. 오름길이 시작되고 약 10분 후 달마산이 돌산임을 증명하는 바위 군락이 나타난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남해가 펼쳐진다. 까칠한 바위에 올라섰다가 경사가 급한 길로 내려가기도 하고, 또 바위 두 개에 기대어 보기도 한다. 가파른 암릉을 밧줄을 타고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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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에서 본 일몰.

날카로운 공룡의 등허리 같은 고개를 넘는 내내 쪽빛 남해가 넘실거려 두 눈이 현혹됐다. 줄줄이 이어지는 바위 능선은 단단한 성벽 같고, 높이 선 기암은 요새처럼 신비로웠다. 입은 레깅스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두 개나 생겼지만,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과 황홀함에 지루함 따위는 느낄 틈이 없었다. 까칠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이 넘치는 산이다.


‘이 산, 정말 재밌는데!’


손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오르내리길 3시간. 달마산의 정상 달마봉에 도착했다. 남해와 완도대교가 시원하게 보였다. 해발고도 489m. 산으로 치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사람을 외모나 스펙만으로 판단할 수 없듯이 산도 높이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달마봉 정상에서 떡봉을 지나면 길이 부드러워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찔한 낭떠러지 절벽에 있는 암자를 발견한다. 미황사를 지은 의조 화상이 수행하며 낙조를 즐겼다는 곳, 도솔암이다. 바위 요새에 작은 암자가 자리한 것처럼 모양새가 절묘하다. 이곳은 해남의 해넘이를 볼 수 있는 낙조 명소이기도 하다. 주차장까지는 20분의 거리라서 산보하듯 올라도 좋다.


땅끝에서 오렌지색 일몰로 물드는 세상을 바라봤다. 울컥거리는 심정을 붙잡고 그제야 눈치챘다. 내가 넘은 건 ‘산’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파도를 넘은 후엔 반드시 잔잔한 흐름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후련해졌다. 버틴 2020년에 대한 위로와 함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격려, 땅끝마을의 작은 산이 주는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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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강은(하이킹 아티스트·벽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