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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쉿! 시청률도 조용…밥상이 부실한데 황정민이 무슨 소용

by한겨레

드라마 ‘허쉬’, 황정민 복귀작 관심 끌었지만 시청률 2% 고전

기자들 영웅적 모습 아닌 ‘밥벌이 라이프’ 그리겠다 흥미 유발

하지만 “유배지 다름없는 디지털 뉴스팀” 등 시대 뒤떨어진 설정

허술한 디테일·지루한 전개 ‘천만 배우’ 무색하게 만들어

오히려 흥행 보증 수표 없어 기대 않았던 ‘경이로운 소문’

소시민의 활약 등 참신한 소재 몰입 이끌며 수직 상승

코로나 시국 신혜선 코미디 활약 ‘철인왕후’도 인기

“스타 배우가 시청률 보장 시대는 지났다!!”



한겨레

전형적이고 지루한 이야기로 수많은 스타들을 데리고도 기대에 못 미친 ‘허쉬’. 제이티비시 제공

“아니 황정민이 나오면 적어도 시청률 5%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거 아냐?” 요즘 드라마 관계자들끼리 만나면 오가는 대화다. 배우 황정민이 8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해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은 <허쉬>(제이티비시 금·토 밤 11시) 이야기다. 방영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황정민이 밝힌 목표 시청률은 25%.


지난 12월11일 뚜껑이 열리자, 웬걸 성적이 신통찮다. 1회 3.3%(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해 2~6회(5회 3.1%) 줄곧 2%대에서 고전한다. 전개가 느리고 정치인 비리와 언론 유착을 담은 내용이 전형적이라는 평가는 둘째 치고, 그래도 황정민을 보려고 시청자들이 티브이 앞에 몰려들 줄 알았던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 영화관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의 명연기를 안방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8년 만의 기회를 시청자들은 왜 외면하는 것일까.


최규식 피디는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허쉬>는 월급쟁이 기자들의 밥벌이 라이프다. 기자 드라마이지만 사건이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자가 직업인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모든 시청자나 직장인들이 공감하고 웃을 수 있고 따뜻하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기자를 등장시킨 드라마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한 몸 내던지는 영웅적인 모습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주말에 일 생기면 짜증 내고, 점심 뭐 먹을까 고민하는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기자의 모습을 다루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자의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껏 기자 드라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의감에 불타는 내용에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드라마 초반 어떤 사건을 통해 잠시 ‘기레기’가 됐을 뿐이지, 그들은 곧 정치인의 비리를 파헤치는 정의로운 기자로 다시 돌아간다. 달라진 언론 환경을 반영하기는 했다. <날아라 개천용>이 ‘재심’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어 차별화했다면 <허쉬>가 꺼낸 카드는 ‘디지털 시대’다. 하지만 그 또한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 한준혁(황정민) 등 <매일한국>의 디지털 뉴스팀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조회 수 끌어올리려고 낚시성 제목을 다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나 싶었더니 그런 모습을 초반에 잠깐 보여줄 뿐이다.


드라마는 디지털 뉴스팀 기자들이 오히려 사회부 기자들과 탐사보도팀을 만들어 예전 기자 드라마가 그랬던 것처럼 정치인의 비리를 파헤치는 ‘뻔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제작진조차 요즘 시대 달라진 언론환경을 명확히 이해 못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허쉬>에서 가장 새로운 지점인 디지털 뉴스팀에서 어떻게 기사를 생산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그래서 기자들이 어떤 자괴감을 겪는지 등이 요즘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지점인데,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 한 일간지 언론사 팀장은 “요즘 언론환경을 이끄는 디지털 뉴스팀을 묘사하면서 신문사의 실패자들을 모아놓은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이라는 설정부터가 이 드라마가 시대를 읽지 못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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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계속 과거를 곱씹는다. 전개라도 빠르면 몰입될 텐데 주인공들은 자꾸 곰탕과 치킨을 먹으며 과거에 빠져 있다. 일 잘 하는 양윤경(유선)을 통해 워킹우먼의 애환을 그리는 등 등장인물의 사연, 한준혁과 이지수(윤아) 관계 설정 등도 너무 전형적으로 흐른다. 한 누리꾼은 “한준혁이 곰탕을 먹으며 과거의 감상에 빠져 있는 장면 등이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전개가 너무 느리다. 이들이 다 같이 모여서 대체 언제 뭘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허쉬>는 가짜뉴스가 돈과 권력과의 관계로 얽힌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 고발이 그저 기레기의 현실 한탄이나 변명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통해 어떤 대안의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정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는 디테일이 중요한데, 곳곳에 실수가 보이기도 한다. 신문 바이라인에 ‘매일한국 정치부 한준혁 기자’라고 쓰거나 신문 1면 제목 앞에 <단독> 이라고 붙이는 등 사소하지만 그래서 중요한 실수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한 디지털팀 기자는 “디지털팀은 속보가 중요하기에 한준혁처럼 저렇게 자리를 뜰 수 없다. 디지털팀 취재 기자이면서 수년 동안 자기 이름으로 기사 한 줄 안 썼다는 것도 주인공의 사연과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설정인데 그런 게 너무 작위적이어서 공감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리 드라마이지만, 설득력 있는 설정이어야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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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소재와 만듦새가 좋은 ‘경이로운 소문’. 오시엔 제공

<허쉬>가 기대에 못 미치는 틈을 타 오히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두 드라마가 치고 올라온다. <경이로운 소문>(오시엔 토·일 밤 10시30분)과 <철인왕후>(티브이엔 토·일 밤 9시)다. <경이로운 소문>은 11월28일 2%로 시작해 12월20일 방송에서 9%를 기록했다. <철인왕후>는 12월12일 8%로 시작해 4회 만인 20일 10%를 넘어섰다. 가장 최근인 27일 방송은 11.8%까지 올랐다. 둘 다 배우의 이름값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소재, 연출, 전개 등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경이로운 소문>은 기대작도 아니었는데 흥행 보증 스타 없이도 성공하면서 <허쉬>에 보란 듯이 한 방을 먹였다. 지난해 시즌1이 끝난 웹툰 원작으로, 교통사고로 다리를 저는 소문(조병규)이 악귀 사냥꾼 ‘카운터’에 합류하는 이야기다. 평소 카운터들은 국숫집을 운영하며 악귀가 나타나면 힘을 모아 처단한다. 시청자들은 <경이로운 소문>의 평범하지만 알고 보면 영웅인 이들에게 빠져들어 응원한다. 악귀를 잡는 추매옥(엄혜란), 가모탁(유준상), 도하나(김세정)는 모두 아픔을 갖고 살았던 이들이다. 장애인이었던 소문이 악귀를 물리치는 영웅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자 시청자들은 내 일처럼 기뻐한다. 웹툰을 쓴 장이 작가는 <오시엔>을 통해 “이 이야기는 어려운 일선에서 일하는 모든 분에게 보내는 찬사”라고 했다. 15~20명의 제작 인력이 땅의 색채 변화, 움직임 등 컴퓨터그래픽 작업에 두세달 동안 매달리는 등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한 점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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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의 코미디 연기가 돋보이는 ‘철인왕후’. 티브이엔 제공

<철인왕후>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위기도 있었지만, 코로나19에 답답한 마음을 웃음으로 뚫어준 점이 시청률에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신혜선은 드물게 코미디에 출연하며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고 있다. 내용의 아쉬움을 배우 보는 즐거움이 달래준 셈이다. <허쉬> 제작진이 황정민에게 바랐던 역할을 신혜선이 <철인왕후>에서 해냈다는 점에서 찬사가 쏟아진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의 내용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극의 90%를 끌고 가는 신혜선의 연기가 발군이라, 신혜선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더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