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은 왜 휴대전화 15만대를 불태웠나

[테크]by 한겨레

[시간의 극장]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제35화 삼성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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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동안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폰만큼 사람 사는 모습을 바꾼 기술이 있을까? 정보통신기술은 우리가 물건을 사고, 남들과 이야기하고, 일하는 방식을 모두 바꿨다. 그 가운데 휴대폰은 더 친근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항상 곁에 두고 쓰는 물건이라 그렇다. 삼성전자는 이런 흐름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세계 시장 2위까지 올라갔다. 이제는 애증 어린 존재가 되어버린 삼성 휴대폰의 스마트폰 이전까지의 초창기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해설 이요훈


불량률 무려 11% SH-770


휴대전화 최초로 ‘화형’


그러곤 모토롤라 아성 무너뜨려


다양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세계시장 2위까지 치고 올라가


아이폰 이전엔 모든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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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18일, <한겨레>는 “휴대용 전화기 시대가 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 최근 몇년 동안 해마다 100% 정도의 시장 확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삼성, 금성, 현대 등 국내 가전 3사와 미국 모토롤라, 유럽산 수입업체 등 모두 17개 업체들이 내놓은 20여개 모델이… 1500억원 규모의 시장 쟁탈에 나서고 있다”(1993년 7월18일치 7면)고 썼다. 1984년에 차량이동전화, 1988년에 휴대전화 개통이 시작되고, 전화기 가격 인하와 더불어 93년에야 전국 74개 시 전역과 읍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한 탓이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렵지만, 휴대전화 서비스가 시작될 무렵 국산 휴대폰은 없었다. 다행히 88올림픽에 맞춰 삼성전자에서 최초의 국산 휴대전화 ‘SH-100’을 선보였지만, 성능이 나빠 별로 팔리지 않았다. 우리 기술력은 부족했고, 시장은 한동안 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반전은 삼성의 신경영 선언 이후, 1994년 10월에 출시된 ‘SH-770’부터 일어났다. 이 폰은 휴대전화 최초로 ‘화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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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큰 문제였던 통화 품질 문제를 보강했던 이 기기는, 많은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지인들에게 선물했을 정도다. 문제는 제품 품질. 불량률이 무려 12%에 가까웠다. 1995년 3월 <한겨레> 기사를 보면 이에 화난 이 회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반품된 휴대전화 15만대 등을 쌓은 다음 불을 지르기에 이른다.


어떻게 됐을까? 1995년 8월18일 <한겨레>에는 이런 기사가 적혀 있다. “격전을 거듭하고 있는 휴대폰 시장에서 마침내 모토롤라의 11년 아성이 무너졌다. 17일 휴대폰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한달 동안 삼성전자의 휴대폰 애니콜이 시장점유율 51.5%를 차지해 모토롤라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에 뛰어오른 것으로 나타났다.”(“삼성휴대폰 ‘애니콜’ 1위/7월 시장점유율 51.5%” 1995년 8월18일치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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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보급되던 초기에는 휴대 공중전화로 많이 쓰였다. 무선호출기로 연락이 오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는 식이다. 휴대전화로 바로 연락하는 일에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행여 상대방을 방해하지 않을까 조심하기도 했다. 참고로 1997년까진 휴대폰으로 한글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없었다. 1997년 12월 삼성전자 제공 사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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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제품만큼이나 실패한 제품도 많다. 사진은 1998년에 나온 삼성 폴더형 애니콜 전화기. 반으로 접어 크기를 줄인 제품이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분명히 다른 인기 제품과 비슷해 보이는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 제공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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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문제에 집중하고, 품질 관리에 신경 쓴 게 적중했다. 이후 국내 2세대 이동통신 방식이 시디엠에이(CDMA) 방식으로 결정되면서 외산 휴대전화가 들어오기 어렵게 되고, 여러 광고가 인기를 얻으면서 삼성 애니콜은 국내 시장 1위 휴대폰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


여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세상은 무정한 법이라, 1997년에는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와 대규모 디(D)램 업계 구조조정이 찾아왔다. 달러가 필요해진 삼성은 미국 시장 진출을 모색했고, 미 통신업체 ‘스프린트’를 통해 휴대폰을 팔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에 삼성이 등장하지만(당시 스타티스타(Statista) 기준, 1997년에는 기타, 1998년에는 2.7%),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외국 소비자는 삼성을 모방 제품을 만드는 회사 정도로 생각했다. 여기서 두번째 반전이 등장한다. 한국과 유럽에서 망한 폰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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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3500’은 휴대폰 뚜껑을 위로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휴대폰이다. 신선하긴 했지만, 때를 잘못 만난 탓인지 한국과 유럽 시장에서 크게 실패했다. 다른 나라에선 실패했는데 미국에선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스프린트 통신사의 대표 상품으로 1999년부터 2년간 600만대가 넘게 팔렸다. 덕분에 삼성은 모방품을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새롭고 멋진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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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삼성 휴대폰은 날아올랐다. 엠피스리(MP3)폰, 카메라폰, 가로본능폰, 손목시계폰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진 제품을 선보였고, 이건희폰(SGH-T100)이나 벤츠폰(SGH-E700), 블루블랙폰(SGH-D500)처럼 1000만대 이상 팔리는 기기도 만들어냈다. 2003년에는 영화 <매트릭스2>에 들어가는 매트릭스폰도 만들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E1100처럼 1억5000만대 이상 팔린 휴대전화도 있다. 휴대폰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커졌고, 휴대폰은 패션 아이템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이런 세상에서, 멋진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한국 휴대폰은 정말 잘 팔렸다. 2009년 8월12일 <한겨레> 기사는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전한다.


“휴대전화는 시장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북미시장에서 압도적 1·2위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에 1170만대를 팔아 4분기 연속 점유율 1위(24.7%) 자리를 지켰다. 2위 엘지(LG)전자(22.6%)의 점유율을 합치면 47.3%에 이른다. 여기에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수출하는 팬택(점유율 3% 안팎)을 더하면, 북미시장에서 팔리는 휴대전화 두대 중 한대가 한국업체 제품인 것이다.”(“전세계 TV·휴대폰 3대 중 1대 ‘한국산’” 2009년 8월12일치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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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을 거쳐, 국내에서 보호받으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외환위기를 맞아 세계에 진출했고, 다양하고 새로운 제품을 제시해 세계 시장 2위까지 올라갔다. 끝내 노키아는 잡을 수 없었지만, 모토롤라 같은 경쟁사는 알아서 망가졌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진, 모든 게 참 좋았다. 이렇게 끝내면 좋겠지만, 그림자도 짙다.


2005년 8월 <한겨레21>에선 “국내 협력업체들을 쥐어짜라? 수입부품 늘면서 삼성전자 협력업체 줄고 단가 인하 압력으로 마진도 낮아”라는 글을 통해 협력업체 문제를 지적했다.


특허법원에서 휴대전화 관련 중소기업 기술을 빼앗았다는 판정도 받았다.(“삼성전기, 중소기업 기술 뺏었다” 2005년 10월13일치 1면). 출고가보다 높은 판촉비를 지급하며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마이너스폰’ 봇물…제조업체 피의 전쟁” 2009년 7월13일치 14면)


이에 대해 2009년 11월23일, 삼성전자 40주년을 축하하는 <한겨레> 칼럼(“삼성전자 40주년에 부쳐” 2009년 11월23일치 30면)은 이렇게 말한다. “21세기 삼성과 삼성전자는… 과연, 세계 일류기업 차원은 물론, 자기가 설정한 ‘경영이념·핵심가치·행동규범’에 일치하는지 냉정히 자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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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해설자인 이요훈 아이티(IT) 칼럼니스트는 아이티산업이 보여주는 ‘와!’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줄 삶의 변화에 대해 생각합니다. 민예총 정보화팀장과 <넥스아트> 편집장을 지냈으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문위원을 맡은 적 있습니다. 와이티엔(YTN) 사이언스 ‘스마트 라이프’와 아리랑티브이(TV) ‘비즈테크 코리아’(BizTech Korea)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자그니 블로그’를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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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스토리는 전문직·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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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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