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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1700년 전 서울 주민은 어떻게 살았을까

by한겨레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한성백제박물관 ‘왕성과 왕릉’전



한겨레

5세기 백제 굽다리 토기 뚜껑 꼭지에 새긴 백제인 얼굴. 가장 오래된 옛 서울 사람의 얼굴을 담고 있다. ‘왕성과 왕릉’전에서 돋보기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2017년 몽촌토성 안 백제 도로 터에서 나온 유물로, 보는 각도에 따라 웃거나 찡그린 모양 등으로 표정이 바뀐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장 오래된 서울 사람의 얼굴이 돋보기 렌즈 속에 나타났다. 5세기께 백제 토기 뚜껑 꼭지에 새겨진 상이니 1600~1700년 전 서울 주민의 모습인 셈이다. 혹 모양의 꼭지에 쓱쓱 선을 부려 천진난만한 얼굴을 오목새김해 마치 외계인 같은 느낌도 든다. 찡그린 것인지, 환히 웃는 것인지, 미소를 머금은 것인지 표정을 종잡기 어렵다. 시선의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인상이 바뀌어 보는 재미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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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 유적에서 최근 출토된 백제 삼족기의 다릿발 부분을 돋보기로 확대한 모습. 당시 사람 얼굴 모양을 다릿발 안쪽에 새긴 것을 볼 수 있다. 옆에 함께 전시된 토기 뚜껑 꼭지의 인면새김상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옛 서울 사람의 얼굴을 담고 있다.

백제인 얼굴을 새긴 토기 뚜껑은 2017년 서울 송파구에 있는 초기 백제 왕성 추정 터인 몽촌토성 북문 백제 도로 터에서 나온 5세기 중엽 유물이다. 현재 서울 송파구 방이동 몽촌토성 사적 내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백제 특유의 세 발 달린 토기인 삼족기의 다리 부분에 사람 얼굴 모양을 새긴 또 다른 인면문 유물과 함께 전시 중이다. 당시 백제 장인이 소일거리로 일상 속 사람 얼굴을 모델로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두 인면상은 1~5세기 한성백제 시대 ‘수도권 사람’이 만든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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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에서 나온 작은 돌절구. 주전자로 사용된 중국제 자기 등과 함께 출토돼 차를 빻기 위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귀족층에서 차 문화가 유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다.

이번 전시는 몽촌토성과 석촌동 고분군에서 조사단이 2013년 이래 발굴한 유물 600여점을 처음 한자리에 공개하는 ‘왕성과 왕릉’ 특별전이다. 발굴 유물을 일부 공개한 적은 있지만, 초기 백제 생활 유적의 핵심인 몽촌토성과 대표적인 무덤 유적인 석촌동 고분군 발굴 유물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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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굴뚝 장식품(연가). 연기를 빼는 굴뚝 몸통 윗부분에 놓았던 머리 장식으로 한성백제 시대 유적에서는 처음 발견된 굴뚝 장식이다.

지금도 대다수 시민은 수도 서울의 역사가 14세기 조선왕조 개국 이래 시작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1세기 이래 고구려에서 갈라진 백제인들은 한강 변 송파벌에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란 두개의 왕성을 쌓고 한강 뱃길을 중심으로 번영했던 고대 수도 서울을 만들었다. 475년 고구려군의 침공으로 함락되면서 왕족이 몰살되고 주민이 뿔뿔이 흩어진 비극 이래 이런 수도 서울의 역사는 잊혔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재산권 침해를 우려한 주민들의 풍납토성 유적 파괴로 사회적 파문이 일어난 뒤 고대 서울은 조금씩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2013년부터 박물관 산하 백제연구소에서 몽촌토성 발굴 조사를 지속하고 있고, 2015년엔 뜻밖의 싱크홀(땅 꺼짐) 사태를 계기로 80년대 졸속으로 발굴·복원됐던 석촌 고분군도 제대로 된 장기 조사를 시작해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전시는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파악한 당대 서울 거주민의 생활사와 백제인이 묻힌 무덤의 유물을 차례차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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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 고분군의 1, 4, 7호 무덤 동쪽 매장의례 추정 공간에서 잘게 부서진 채 나온 인골 조각들. 고열에 바스러지고 금이 간 흔적들이 뚜렷해 화장된 인골들로 보인다. 무덤 옆 매장의례 공간에서 화장된 것인지, 다른 곳에서 화장되어 옮겨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몽촌토성에 백제 왕궁이 있었음을 실증하는 ‘궁’(宮) 자가 새겨진 토기나 당시 귀족이 차 문화를 즐겼음을 보여주는 작은 돌절구, 연기를 빼는 굴뚝 몸통 윗부분에 놓았던 장식인 ‘연가’ 등에서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백제인 특유의 검박하면서도 우아한 문화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일본 토기 스에키나 가야토기 굽다리 접시 등도 나타나 당대 백제 문화가 이미 국제성을 띠고 있었다는 것도 보여준다. 몽촌토성이 475년 함락된 뒤 상당 기간 고구려군이 이곳에 주둔한 흔적을 처음 보여주는 유물도 눈여겨볼 만하다. 귀 모양 손잡이가 달린 동이와 시루편 등 고구려계 유물이 적지 않다. 이런 양상은 석촌동 고분군의 발굴 유물에서도 드러난다. 전시는 기존 기단식 돌무지무덤이 따로 떨어져 존재했다는 통설을 뒤엎고 벌집 모양으로 연접된 대형 단지 형태의 고분이 함께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잘게 부서진 화장된 인골과 흩어진 귀걸이·목걸이 등 장신구를 내놓아 석촌동 고분군 다시 보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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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 발굴조사의 대표적 출토품인 ‘궁’(宮) 자 토기. 2016년 토성 북문 터 안쪽의 구덩이 유적에서 나왔다. 몽촌토성에 백제 왕궁이 존재했음을 실증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바스러진 화장 인골과 심하게 파괴된 굽다리 접시 등 생활 토기를 보면서 백제의 수도 유적이 과거 얼마나 소홀하게 방치되고, 스러져갔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유물에 스며 있을 고대 서울 사람의 숱한 삶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역사의 무게감에 숙연하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21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