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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ESC] 600 국밥의 사나이, 시장 국밥에 빠진 이유?

by한겨레

시장을 대표하는 음식, 돼지국밥


수년간 600그릇 먹은 이 인터뷰


코로나19로 더 그리운 시장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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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수많은 돼지국밥집을 탐험하고 있는 직장인 조수영씨. 유선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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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장 음식’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시나? 겨울철엔 따끈한 국밥을 생각하는 이가 많을 게다. 그중에서 소박한 돼지국밥이야말로 대표 시장 음식이 아닐까. 돼지국밥하면 우선 부산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대구에도 만만찮은 돼지국밥이 있다. 조수영(32·닉네임 몰래쿠파)씨는 블로그 ‘대구 돼지국밥 맛집을 찾아서!’를 통해 지역 대부분 돼지국밥집을 방문하고 소개한다. 그를 지난 2일 대구 봉덕시장 ‘청도돼지국밥’에서 만났다. 조씨가 국밥 기행을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된 식당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여기뿐일 리가 없다. 분명 더 있겠지’ 하고 2016년부터 대구 돼지국밥 식당을 다니기 시작했죠. 시장 안 국밥집부터 찾아다녔죠.” 천장에는 청테이프로 기운 자리가 보이고 구석구석 묵은 흔적이 드러나는 허름한 시장통 식당, ‘청도돼지국밥’. 받아든 돼지국밥은 밥을 말아 내오는 토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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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돼지국밥집 간판의 다양한 돼지 캐릭터들. 유선주 객원기자

수북한 대파에 쌈장이 조금 올라가 있다. 후추도 뿌려져 있다. 양념이 풀어지기 전에 얼른 숭늉 빛깔의 국물을 한술 떴다. 잘 뽑은 고깃국은 첫 숟가락이 다음 숟가락을 당길 정도로 구수하고 은은한 단맛이 으뜸이었다. 국물에 흠씬 젖은 돼지 머릿고기는 어찌나 부들부들 한지. 깍두기 올려서 한 점, 간장 양파에 또 한 점, 퍼진 밥알과 곁들여 또 한 점. 물릴 새도 없이 싹 비웠다. 조씨의 유튜브 채널에서 하루 세끼를 ‘청도돼지국밥’에서 먹는 영상을 보고 아무리 좋아해도 무리가 아닌가 싶었는데, 먹어보니 이해가 됐다. “오늘은 특히 고기의 질이 좋네요. 머릿고기를 넣고 쌈장을 고명으로 얹는 꼴은 여기 봉덕시장 스타일이고, 가게마다 맛은 다 달라요.” 같은 집 돼지국밥도 매일 새롭게 즐기는 이의 평가가 이어진다. 조씨가 먹고 기록한 돼지국밥의 숫자는 600그릇(11월23일 600그릇 돌파·12월7일 기준 616그릇)이 넘는다. 여러 번 간 곳과 타 지역 국밥을 빼면 대구에서만 대략 500여곳 국밥 여행을 한 것이다. 첫해는 유명한 식당 위주로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블로그를 3년간 쉬었는데, 지난해 8월께 다시 시작하면서 대구의 모든 돼지국밥을 먹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된 배경에는 또 다른 단골집이 있다. ‘청도돼지국밥’보다 더 아꼈던 그곳은 노부부가 은퇴하고 맛이 달라져 더는 예전의 감동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이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죠. 시대의 흐름 속에 사라지는 시장 국밥집이 안타깝고, 조바심도 났어요.” 그래서 그는 하루 두 끼, 때로 네 끼 시장 국밥을 먹으며 기록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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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봉덕시장 ‘청도돼지국밥’. 유선주 객원기자

그는 돼지국밥은 지역마다 변화무쌍하며 식재료의 포용력이 크다고 말한다. 주인이 제주식이라며 김 가루를 넣어주는데 뜻밖에 맛이 잘 어울렸던 곳이 있는가 하면, 전남 순천 재래시장인 웃장·아랫장 국밥처럼 채소를 넉넉하게 품은 곳도 있다. 전북은 고추장찌개처럼 애호박이 들어가는 돼지국밥도 있다. 국물의 재료도 소뼈, 돼지머리와 다리, 닭 등 다양하다. “돼지국밥은 (같은 유형의) 재래시장에서 파는 거라도 지역마다 맛이 달라요. 대구에서도 외곽지역인 달성군 가창면의 ‘세명국밥’은 묵은지가 같이 나와요. 첫 국물 맛을 보고 묵은지를 넣으면 묘하게 김치말이 국수가 떠오르고 여기에 소면을 넣으면 또 달라지니까 3단 변화를 즐기게 되지요.”


조씨가 돼지국밥을 먹는 순서는 이렇다. 간을 더하지 않은 첫 국물을 맛본다. 누린내 없이 돼지의 향긋한 풍미가 도는 국물을 만나면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 “몇백 그릇을 먹다 보니 알게 된 게 있어요. 비계의 지방질이 따뜻한 국에 녹으면서 국물 맛이 올라가고 그 국물을 돼지고기가 다시 머금어요. 서로 상승작용 일으킨다고 할까요.” 다음은 숟가락으로 고기의 양을 가늠한다. 120~130g 정도는 되어야 돼지국밥이라 할 수 있단다. 측정을 많이 하다 보니 그의 감도 예민해졌다. 고기 부위와 탄성, 비계의 비율 등은 보기만 해도 얼추 감이 잡힌다고 한다. 늘 반찬으로 나오는 양파를 꼼꼼하게 본다. “양파가 말랐거나 양념에 오래 절어있으면 가게가 그만큼 손님에게 신경을 덜 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부산 돼지국밥에 부추 겉절이가 필수 요소라면, 대구에는 달짝지근한 간장 양념을 끼얹은 양파가 중요한 반찬이다.


환경시설관리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교대근무를 하며 쉬는 날 끼니 대부분을 국밥으로 해결했다. 베트남 여행을 가서도 한식당 돼지국밥 세 번, 여주를 넣어 끓인 현지식 돼지국을 먹을 정도였으니, 참으로 돼지국밥 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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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구 대명동 ‘신송자 신마산 돼지국밥’. 유선주 객원기자

어려움은 없었을까? 선뜻 들어가기 꺼려지는 식당도 예외 없이 방문해야 했던 게 처음엔 어색했다고 한다. “처음에 이름난 곳을 다닐 때는 허름한 식당 보면 ‘저기는 누가 가지?’ 했는데 제가 가게 될 줄은 몰랐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 사명감이 생겼다. “대구 돼지국밥집 대부분은 테이블 몇 개 놓고 소규모로 운영하는 형태라서 포털에 정보도 없고 영업시간과 휴일, 가격도 알 수 없는 집이 많아요. 제가 한 번이라도 가서 가게 정보를 등록하고, 어떤 느낌인지 어떻게 먹었는지 기록하면, 다음에 찾아가는 이들은 망설임이 덜 하겠지요.” 이 정도 먹으면 질릴 법도 한데, 그는 “아니다”라고 한다. 오히려 식육점을 운영하며 미식가가 된 가족들에게 포장해 가 평을 부탁할 정도다. 시장 안 이름없는 국밥집이 많다는 걸 깨달은 그는 꼼꼼하게 조사해 하나라도 더 소개하려고 한다.


국밥은 일상식이다. 국밥을 팔지 못하면 일상이 무너지는 작은 식당이 요즘 많다. 특히 시장 국밥집은 코로나 시대에 직격탄을 맞았다. 북적이던 시장은 옛이야기다. 손님도, 손님을 맞는 이도 두렵다.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방역에 틈이 생길까 두려운 것이다. 그는 이런 시대에 최대한 가게 주인에게 ‘안전한 손님’이 되려고 노력했다. “산업용 특수 마스크를 끼고, 고글까지 착용한 차림으로 식당에 갔어요. 유난스럽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했는데 명덕시장 ‘영천식당’ 주인 할머니가 그 차림이 오히려 좋고, 안심이 된다고 했죠. 손님들은 시장을 찾았다가 혹시 감염될까 걱정이지만, 주인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음식을 팔지 않으면 내일이 오지 않으니까.” ‘청도돼지국밥’에서 한 날 세끼를 먹은 사연도 코로나19와 연관 있다. 대구에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때, 한 달을 휴업했다 돌아온 ‘청도돼지국밥’이 언제 다시 문을 닫을지 모르니 시장 국밥 기행의 시작점에서 원 없이 먹자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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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용산동 ‘고령 돼지국밥’. 유선주 객원기자

사람들이 예전처럼 시장을 찾는 때가 오면 추천해주고 싶은 국밥집이 궁금했다. “역시 봉덕시장 ‘청도돼지국밥’(8000원)을 빼놓을 수 없죠. 남구 대명동의 ‘신송자 신마산 식당 본점’(6000원)은 돼지 살코기 부위를 넣어요. 그리고 삼겹살 부위를 넣는 달서구 용산동 ‘고령 돼지국밥’(7000원)을 올해 ‘톱3’로 꼽아요.” 그는 남은 한 달 동안 다녔던 국밥집을 다시 점검하고 20곳을 추릴 예정이다. <부산일보>에서 만든 <부산 돼지국밥 로드 30>이 부산 국밥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이드가 되었듯이, 대구 돼지국밥을 아끼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를 준비 중이다. 그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대구/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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