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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넉달의 ‘삽질’에 ‘나만의 욕실’이 빛나기 시작했다

by한겨레

[토요판] 이런 홀로


욕실 셀프 공사기

누런빛의 구식 욕조·세면대

‘세월의 더께’ 안 지워지지만

클래식한 모습 마음에 들어

셀프 코팅 해보기로 결심


유튜브 영상처럼 쉽진 않으나

이튿날 다시 보니 ‘그럴싸’

내 집을 내가 고쳐 쓰는 일이

이렇게 만족감 주는 행위라니!


한겨레

욕조와 세면대 코팅은 사람들이 ‘셀프 시공’을 많이 하지 않는 분야였다. 온갖 고생을 해서 예쁘게 되지도 않는 셀프 시공을 하느니 업체를 부르거나, 아예 욕실 자체를 신식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고, 비용이 많이 드는 욕조 교체도 부담스러웠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무것도 하지 마.”


이사 온 뒤 집 곳곳을 보수하겠다는 나의 계획에 엄마는 말했다. 2년 살 집에 돈 들이지 말라는 충고였다. 그렇지만 물론 내 생각은 달랐다.


이 집은 사실상 내가 15년 전 독립한 뒤 처음으로 갖게 된 근사한 집이었다. 밝고, 넓고, 전망이 좋고, 동네도 마음에 들었다. 계절이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이 드넓은 거실 창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산의 풍경을 통해 일 단위로 느껴졌다. 아침이면 깊은 산속에서나 들리던 낯선 새소리가 시끄럽게 잠을 깨웠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좋았다. 매일 변화하는 날씨를 전면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내가 ‘비가 오는 오늘을 살고 있구나’, ‘눈이 오는 지금을 살고 있구나’라는 이상한 지구적인 실감이 느껴졌다. 눈이 오면 집 앞에 나가 골목과 계단의 눈을 쓸어야 하는 것도, 내 집 앞의 관리를 비용으로 대체된 누군가의 서비스가 아닌 내 스스로 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자연스러운 행위에는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만족감이 있었다. 집이 낡아 걱정했던 겨울도 문풍지와 두꺼운 커튼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따뜻하게 보냈다. 나는 이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이 근사한 집을 조금 더 나와 가까운 집, ‘내가 사는’ 집으로 만들고 싶었다. 2년이 한계라면 오히려 더 시급했다. 그 2년 중 하루라도 더 많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지난 5개월 동안 1995년에 지은 이 낡은 집의 거실, 부엌, 방을 조금씩 보수하고 꾸몄다. 도배를 했고, 몰딩을 칠하고, 조명을 바꿔 달고, 새시에 시트지를 붙이고, 부엌 타일에 페인트를 칠하고, 이런저런 가구들을 놓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이 욕실이었다. 실은 미루고 미뤄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욕실이었다.

마지막 관문, 욕조 코팅

욕실 정리를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이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고부터였으니 적어도 4개월쯤 전일 것이다. 이 집 욕실은 누런 빛깔의 카운터식 세면대와, 역시 똑같은 누런빛의 욕조가 있는 전형적인 구식 욕실이었다.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나니 웬만큼 청결해지기는 했는데 오랜 세월의 더께가 쌓인 곰팡이의 흔적과, 세월에 바랜 세면대와 욕조 표면의 색깔과 물때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벽면의 타일도 번잡스러웠다. 이 집의 연식을 생각해보면 비교적 최근에 줄눈을 비롯한 보수공사를 한 듯 깨끗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연한 노란빛을 띠는 줄무늬 타일에 기하학적 문양의 띠가 둘러져 있어 어지러웠다. 더구나 보수에 보수를 거듭한 탓에 여러가지 다른 종류의 타일 조각이 반창고처럼 덧대어져 있었다. 물품들을 보관하는 상부장도 여기저기 갈라지고 뜯어져 역시나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나의 욕실 개조 플랜은 단순했다. 타일과 욕조, 세면대를 모두 새로 도색하고 코팅하는 것. 조명을 바꿔 다는 것. 그리고 제반 액세서리를 모두 바꿔 다는 것. 비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세면대와 변기를 싹 다 신식으로 교체하거나 욕조를 샤워부스 같은 걸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부터 욕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욕조였다. 어설픈 인체 맞춤형으로 내부를 둥글리거나 월풀 흉내를 내지 않은 클래식한 사각형의 욕조. ‘드디어 나도 자기 전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게 되었어! 욕조에 앉아서 책도 보고 넷플릭스도 볼 거야….’ 구식의 카운터식 세면대도 나는 마음에 들었고,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케아에서 수건걸이, 선반, 휴지걸이, 비누 받침대와 칫솔꽂이, 샤워 헤드, 샤워기를 끼워두고 쓸 수 있는 샤워봉 등 제반 욕실 액세서리를 모두 구입해 집 안 한쪽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다. 을지로까지 가서 욕실 타일 위에 칠하는, 타일 부착력이 우수하며 젯소 작업이 필요 없이 바로 칠할 수 있는 타일 전용 친환경 수성페인트도 구입해두었다. 타일 사이사이의 줄눈을 보수할 줄눈보수제도 함께 구입했다. 가장자리를 마감해줄 실리콘과 실리콘건은 이미 구비되어 있었다. 페인트용 각종 롤러, 페인트를 따라놓고 쓸 트레이와 커버링 테이프, 실리콘을 쏜 뒤 밀어줄 헤라(주걱)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시공도 문제없었다. 문제는 욕조와 세면대였다.


욕조와 세면대 코팅은 사람들이 ‘셀프 시공’을 많이 하지 않는 분야였다. 온갖 고생을 해서 예쁘게 되지도 않는 셀프 시공을 하느니 업체를 부르거나, 아예 욕실 자체를 신식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나는 말했듯 그럴 생각이 없었고, 비용이 많이 드는 욕조 교체도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욕조 셀프 코팅을 하기로 마음은 먹었는데, 문제는 믿을 만한 셀프 코팅 후기 자체를 찾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셀프 코팅은 무턱대고 했다가 망하면 되돌리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나에게는 ‘믿을 만한’ 시각적 증거와 되도록 많은 경험자들의 증언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나마 찾은 후기들에는 ‘너무 힘드니까 웬만하면 업체를 불러서 하라’는 충고가 많았다. 아니면 사진상 광택이나 색감이 좋지 않아 보이거나, 유성페인트라 시공 시 냄새가 너무 독해 힘들다거나, 시공 후 쉽게 벗겨진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동영상 속 전문가와 달라도

나는 유튜브로 발걸음을 돌려 해외 직구를 염두에 두고 ‘배스 리피니싱’(Bath Refinishing)과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를 헤맨 끝에 하나의 구원과 같은 영상을 발견했다. 유럽 어느 국가의 코팅제 업체에서 올린 시공 영상이었는데,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롤러나 붓으로 코팅제를 칠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들이부어주면 자체 평탄화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100% 무취라는 말에 끌렸다. 무독성에 인체와 환경에 무해하며 사용수명이 20년, 롤러 자국이 남지 않고 거품도 안 생긴다는 상세한 설명 문구도 왠지 믿음직스러웠다.


이베이나 아마존 직구를 불사하려 했는데, 찾아보니 국내에서도 이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업체가 있었다. 나는 코팅제를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리며 샌딩기(그렇다. 나는 집 여기저기를 고쳐 쓸 생각으로 샌딩기도 구입했다)로 욕실과 세면대를 골고루 사포질해두었고, 타일 페인트와 줄눈 시공을 마쳤다. 타일 페인트는 부엌 공사 때도 한번 시공해본 적 있어 이제 어렵지 않았다.


이윽고 도착한 코팅제는 과연 거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동영상에 나와 있는 대로만 잘하면 큰 문제 없이 욕실 개조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공은 동영상 속 전문가가 하듯이 그렇게 손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서리와 곡면, 넓은 바닥에 코팅제를 균일하게 도포하고 그것을 전체적으로 퍼뜨려야만 했는데, 차라리 붓으로 쓱쓱 칠하는 편이 더 쉬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욕조에 도포하면서 양 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세면대와 욕조 바깥 벽면에 도포할 양이 모자랐다. 욕실 공사 전체에 30만원 이상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목표였고, 그 가격의 절반에 달하는 욕조 코팅제를 또 구입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붓과 롤러를 이용해 조금씩 도포하면서 표면이 욕조만큼 매끈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욕실 문을 열었는데 다행히 자체 평탄화가 이뤄져 꽤 그럴싸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두꺼비집을 내리고, 은은한 주백색의 조명을 달았다. 다시 두꺼비집을 올리고, 티릭, 조명 스위치를 켰다. 거기에는 지난 4개월간 나의 시간과 온갖 ‘삽질’이 깃든 나의 욕실이 있었다. 하얗고 은은하게 빛나는 욕조가 있는 나의 욕실.


요즘도 가끔 욕실 조명을 켜고 문밖에 서서 그곳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곤 한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욕실이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내 집을 내가 고쳐 쓰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만족감을 주는 행위였다는 것을 독립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에야 안다.


다이나믹 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