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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ESC]

[ESC] ‘식물의 집’은 어떻게 만드나?

by한겨레

정원 식물 키우는 건 와인 공부와 비슷해


식물 뿌리 내릴 흙을 잘 고르는 게 중요


실내, 옥상 등 환경도 따져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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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보다 보면 식물을 키우는 건 커피나 와인 공부와 비슷하다고 느끼곤 한다. 에티오피아 시다모,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토스카나 키안티, 아르헨티나 말베크 등 사람들은 커피와 와인을 말할 때, 그것들이 태어난 고향을 거론하면서 맛을 표현한다. 몇몇 심각한 애호가들은 커피나무나 포도 덩굴이 자라는 지역을 다녀와서는 감동에 북받쳐 원산지의 극적인 경험을 묘사한다. ‘에게해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짭조름한 해풍과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사막 모래의 꺼칠꺼칠함이 황금빛 화산재 흙 사이에서 맺힌 이슬이 바로 산토리니 와인’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우리는 원두와 포도즙에서 머나먼 땅의 흙냄새를 맡아보려고 킁킁댄다. 그것들이 자란 곳을 상상한다. 커피나 와인 한 모금에는 캥거루가 뛰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웃백도 있고, 칠레의 안데스 숲도 있고, 소노마 구릉지대를 휘돌아가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도 녹아있다. 차를 마시는 이들은 푸젠성 첩첩산중과 대만의 고원지대, 히말라야 산악마을 다르질링을 떠올리기도 한다. 가보지는 못해도 그 대지의 온갖 향을 내 입속에 머금었다는 시적인 착각이 우리를 취하게 한다. 때로 고상하게 만든다. 칙칙한 현실과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순간이다.


나 같이 남의 인생에 관심이 없어서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냉혈한과 달리, 식물을 멋지게 키우는 이들을 보면 공통으로 식물의 고향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다. 커피나 와인 애호가처럼 말이다. 실상 식물 키우는 취미에서 가장 재밌고 매력적인 점은 커피나 와인처럼 출생지를 상상하고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보는 일이다. 호접란 한 포기를 보면 인도네시아 정글의 무지개 폭포와 그 포말을 가득 머금고 있는 진녹색의 절벽이 떠오른다. 복슬복슬한 가시를 걸친 선인장을 보면 고대 신전이 내려다보이는 멕시코 오악사카의 고대 경관이 겹쳐지고, 감귤색 금잔화는 소치밀코 호수를 부유하는 나룻배들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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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격렬한 애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아피시나도’(aficionado)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사랑하는 존재를 단순히 좋다거나 싫다는 선호가 아닌 지식과 철학의 영역으로 다룬다. 대상을 자기 위주로 보지 않고 저간의 사정을 파악한다. 조건과 환경을 따진다. 그러다 보니 대상에 측은지심마저 생긴다. 아피시나도 중엔 식물 애호가도 많다. 이들은 식물의 고향의 토양 구성, 빛의 양, 강수량 등을 알아보고 최대한 비슷한 조건을 식물에 마련해주려고 한다. 식물 입장에선 가장 고마운 일이다.


우리 야생화도 마찬가지다. 야생화 전문가로서 농업 부문 명장 칭호를 받은 장형태 대한종묘조경 대표는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해선 정원사의 손질이 닿기 전 자연 상태의 식물을 틈틈이 관찰할 것을 추천한다. 식물 자체만 볼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 그러니까 ‘식물의 집’을 살펴보고 기억해 두면 정원을 꾸밀 때 훨씬 편하다. 식물 심을 위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파트나 실내 공간은 식물 입장에선 어떤 특성을 가진 곳일까? 대체로 빛이 부족한 편이다. 볕 잘 드는 남향이라 해도 베란다 유리에 선팅했거나 자외선 차단 제품을 사용했다면 광량은 턱없이 모자란다. 물론 강한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면 오히려 약해지는 식물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속새속이 대표적이다. 영어에서는 말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호스테일’이라고 하는데, 원래가 습지식물이다. 간접 광이 드는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 집 베란다가 양지인지, 음지인지, 반음지인지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그 조건에 따라 식물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대개 들판에 살던 야생화를 실내에 두면 비실비실 키만 웃자라는 경우가 많은데, 햇빛이 부족하다는 신호다. 실내는 야생 환경에 견줘 온도도 높고, 사계절이 없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열대 식물이 가장 적합하다. 그것들은 원래 큰 교목 아래에서 자라며 그늘에 적응된 식물이다. 제대로 울창한 열대우림은 한낮에도 깜깜할 정도다. 그런 이유로 아레카야자와 같은 열대성 관엽식물은 햇빛이 약한 거실에서도 꽤 잘 자란다. 우리나라 식물로는 팔손이 같이 남해안이나 제주도에서 자라는 식물도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온대 식물을 실내에서 기르는 건 여간해서는 어려운 일이다.


식물의 집을 이해하는 데 있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토양이다. 유튜브 채널 ‘오~하르방이 알려주는 반려식물’을 운영하는 오창호 국립생태원 차장이 부엽토와 펄라이트, 화산송이, 모래, 굵은 마사 등 7~8가지를 섞어 식물에 적합한 토양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요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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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에서 잘 자라는 파인애플은 영양분이 풍부하면서도 건조한 흙에 심어야 잘 자란다. 반면 몬스테라는 물이 풍부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버미큘라이트라는 질석을 보충해서 보습해주면 좋다. 물만 잘 주어도 쑥쑥 잘 자란다. 올리브와 로즈메리는 우리나라와 반대로 겨울에 습하고, 여름이 건조한 지중해에서 온 식물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 지역 강수량을 생각하면서 물을 주어야 한다.


옥상이란 곳은 어떨까? 옥상 정원은 대개 건물의 하중을 고려해서 흙의 깊이가 얕다. 그나마도 경량토를 쓰니 보습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과도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서 식물 입장에서는 항상 목마른 곳이다. 집 안에 키우는 식물도 꼬박꼬박 물주는 일이 녹록지 않은데, 옥상 정원에 부지런히 물을 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옥상 정원 조경사는 생태 조직에 물을 저장하는 캠식물을 종종 사용한다. 선인장이나 다육이, 돌나물처럼 건조한 곳에 살던 식물들은 저녁에 이슬을 저장했다가 해가 뜨면 끄집어내서 광합성에 이용하는 메커니즘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잎이 두툼하다. 요즘엔 아예 다육이가 잘 클 수 있도록 바이오매스와 흙 등을 혼합한 블록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나무가 있는 옥상 정원을 만들 때는 조금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미처 나무가 자리를 잡기 전에 바람에 시달리게 되면 뿌리와 흙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제대로 수분을 흡수하지 못한 채 말라죽는 일이 생긴다. 해안가 개활지에 심은 묘목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그리스 산토리니의 포도 덩굴마냥 땅바닥에 찰싹 붙은 채 잘 자라는 식물을 심거나 옥상 난간을 높게 만들어 주는 게 좋다. 임시 벽을 설치해서 바람을 막아주면 더 좋다. 사람에게도 훨씬 쾌적한 공간이 된다.


요즘엔 멋지고 개성 있는 신축 주택을 다루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많다. 그만큼 정원에 관심 갖는 이가 늘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에 등장한 정원의 나무는 언뜻 보아도 죽어가거나 근근이 연명하는 모습이다. 우선 집 공사를 하다 보면 토양이 다져지게 되는데, 그러면서 통기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년들이 나무를 심었다는 정원에 간 적이 있다. 단풍나무가 너무 힘이 없기에 봤더니, 뿌리를 칭칭 동여맨 고무 끈조차 풀지 않은 채 심겨 있었다. 나무란 생명력과 적응력이 무척 강한 식물이라서 상식대로만 챙겨주면 말라 죽을 일은 거의 없다.


정원은 키 큰 나무뿐만 아니라 관목, 지피식물들이 층을 이루어야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하층 식생이 없어 흙이 노출된 정원은 보기에도 좋지 못할 뿐 아니라 토양의 유기질이 유실될 가능성이 크다. 또 빗물 등으로 흘러내린 흙과 모래는 정원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먼지를 일으키며, 배수 시스템을 막기도 한다. 관목으로 흙을 보호하면 유기질이 축적되어 미생물이나 미소생물이 토양을 부드럽게 만든다. 하층 식물들을 심을 여력이 없다면 흔히 바크라고 부르는 분쇄된 나무껍질로 토양을 덮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이규(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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