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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보수가 진보보다 가짜뉴스에 더 취약하다”

by한겨레

미국의 인기있는 정치뉴스 분석 결과

우익 편향 가짜정보 과잉이 주된 원인

보수에 유리한 가짜정보가 진보의 2배

진보가 진실과 거짓 구별 능력 더 좋아

한겨레

미국의 경우 가짜뉴스 중에는 보수에 유리한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예전엔 선거때나 돼서야 가짜뉴스가 고개를 들었지만 요즘엔 분야를 불문하고 이슈가 생겼다 하면 어김없이 가짜뉴스들이 횡행한다. 가짜뉴스는 제도권 언론보다는 소셜미디어를 주무대로 유통된다. 개인들끼리 손쉽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탓이다. 코로나19에서는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뉴스 확산이 극심해지면서 `인포데믹'(정보전염병)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건 가짜뉴스가 그럴듯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가짜뉴스의 유혹에 쉽게 말려들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이후 가짜뉴스 공방이 부쩍 심해진 미국에서,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가짜뉴스 민감도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연구진이 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수적인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들보다 가짜 정치뉴스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익에 편향된 가짜정보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연구를 이끈 켈리 개릿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미국의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은 모두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맞는 주장들을 믿는 경향이 있지만, 보수적 입장을 지지하는 가짜정보가 너무 많은 탓에 보수주의자들이 더 자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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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등장 이후 가짜뉴스를 둘러싼 공방이 더욱 치열해졌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정보에 대한 신뢰도, 보수-진보 차이 극명

이번 연구를 위한 실험에는 2019년 1월부터 6개월간 미국인 성인 1204명이 온라인을 통해 참여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2주에 한 번씩 가장 인기 있는 정치 분야의 진짜뉴스와 가짜뉴스 10건씩을 보내줬다.


그런 다음 그때마다 참가자들에게 이들이 읽은 뉴스에 기반한 20가지 문장을 준 뒤,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고 그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연구진은 이어 다양한 분야에 걸친 다양한 관점을 담은 240개의 문장에 대해서도 평가하도록 요청했다.


연구진은 또 별도의 그룹을 대상으로 그 문장에 담긴 내용이 사실일 경우 보수주의자에게 유리한지 아니면 진보주의자에게 유리한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지 판단해달라고 했다.


실험 결과,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 자신이 접한 정보의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정보를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 차이가 극명했다. 예컨대 “조사관이 텍사스의 여러 이주민 시설이 극심한 과밀, 심각한 건강 위험 등 열악한 상태임을 확인했다”는 진짜 정보에 대해 민주당원은 54%가 진실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원은 18%만이 진실이라고 답변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러시아와 결탁해, 클린턴 재단에 기부금을 내는 대가로 미국 우라늄 공급량의 20%를 러시아에 팔았다”는 가짜뉴스에 대해선 민주당의 2%만이 진실이라고 답변한 반면 공화당원은 41%가 진실이라고 답변했다. 개릿 교수는 “두 주장 다 매우 중요한 사실과 관련한 것이지만 각 정보에 대한 신뢰도에 대해서는 엄청난 정파적 차이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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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접하는 뉴스를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했당. 오하이오주립대 제공

진실과 거짓 구별 어려워지면 민주주의 위기

이는 사람들이 접하는 미디어 환경에 기인한다. 사람들이 많이 접한 진실 정보의 3분의2(65%)는 진보주의자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보수주의자에게 유리한 것은 10%에 그쳤다. 반면 사람들이 많이 접한 거짓 정보의 46%는 보수주의자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진보주의자에게 유리한 것은 23%로 훨씬 적었다. 이런 차이가 보수주의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회피하는 걸 더 어렵게 만든다고 개릿 교수는 말했다.


연구진은 이런 정보 환경이 보수주의자들을 잘못된 정보에 취약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밝혔다. 정보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보수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정보를 잘못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릿 교수는 실험 결과만으로는 그 이유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보수와 진보는 뉴스에 포함된 정치적 주장에 대한 태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뉴스일 경우엔 보수와 진보 둘 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데서 똑같은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뉴스일 경우엔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보다 참과 거짓을 더 잘 구별했다.


보주주의자들은 또 `진실 편향'이 더 강했다. 연구진은 이는 자신이 접하는 모든 주장에 대해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통해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어하는 거짓정보에 둘러싸여 있다는 미디어평론가들의 지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개릿 교수는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얼마나 진실과 거짓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느냐에 달려 있다”며 “이것이 어려워지면 민주주의는 흔들린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2018년 “2012년 대선 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 가운데 약 4%가 가짜뉴스 때문에 4년 뒤 대선에서 클린턴에 대한 투표를 포기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