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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비처럼 음악처럼’ 먼저 부르고도 묻힌 ‘비운의 가수’ 문관철

by한겨레

김현식보다 ‘비처럼 음악처럼’ 먼저 녹음


이문세 ‘그대와 영원히’ 원래 주인공


김장훈보다 ‘오페라’ 먼저 발표하고도 잠잠


산에서 은둔생활하며 재즈 피아노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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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철이 5월2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재즈바 가우초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지난달 28일 저녁 8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재즈바 가우초에서 조촐한 미니 음악회가 열렸다. 이른바 ‘비운의 가수’로 불리는 문관철의 콘서트였다. 재즈바엔 그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으로 꽉 찼다. 문관철은 직접 피아노를 치며 트럼펫·베이스·드럼 연주자와 함께 그 ‘비운’의 노래를 불렀다.

문관철의 ‘비처럼 음악처럼’​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이 보고파요/ 당신의 떠나시던 모습은/ 그렇게 젖어 있었죠”.


이날 공연에서 문관철은 이렇게 ‘비처럼 음악처럼’을 불렀다.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가 잘 아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노랫말(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과 ‘살짝’ 달랐다.


후렴구도 달랐다. 문관철은 “주르르르르 주르르르르~ 그렇게 아픈 비가 왔어요”라고 노래 마지막에서 빗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해 불렀다. “작사·작곡한 박성식에게서 건네받은 가사와 코러스를 곡 분위기에 맞게 직접 손을 본 거죠.”


사실 ‘비처럼 음악처럼’은 문관철이 먼저 녹음한 노래였지만, 앨범은 김현식이 먼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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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3집 앨범 표지. 서라벌레코드 제공

1986년 12월5일 나온 <김현식 3집> 타이틀곡이 ‘비처럼 음악처럼’이었다. 1집과 2집에서 미성에 가까웠던 김현식은 3집에서 이전과는 달리 거칠지만 애절한 음색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앨범은 굉장한 인기를 끌며 30만장 넘게 판매됐다.


문관철은 김현식보다 두달 늦은 1987년 2월20일 낸 첫 앨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이 노래를 실었다. 애초 이 노래는 밴드 ‘빛과 소금’의 박성식이 작사·작곡해 문관철에게 준 것이다. 문관철은 1984년 녹음까지 했으나, 제작비 부족으로 앨범 발표가 미뤄지고 있었다. 그때 김현식이 이 곡을 듣고 박성식에게 자신이 부르게 해달라고 간청해 먼저 앨범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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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철 1집 앨범 표지. 서울음반 제공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의 생각은 어떨까? 애증이 교차하는 듯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노랫말처럼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파’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내가 인기 가수가 부른 히트곡을 따라 부른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저는 남이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해서 부른 적이 없어요.”


그러다 김현식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때 김현식은 동아기획 소속으로 굉장히 유명했죠. 후배가 녹음한 걸 다 알면서…. 저는 혼자니까 말도 못하고….” 김현식이 1958년생, 문관철이 1960년생이니, 김현식이 두살 형이었다.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경험도 없고, 어리고 해서 실력을 다 발휘 못한 것 같기도 해요.”


얄궂은 운명을 탓하며 이해하려고도 했다. “내 노래인데 그가 부르고 싶어 한 걸 어떻게 합니까. 음악에 대한 욕심이 많은 건데…. 오히려 그가 잘 불렀어요.”


‘김현식한테 얘기를 들은 적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음반 나오기 전에 ‘미안하다. 그 노래로 음반 낸다’고 하더군요. 술에 취한 채 한 얘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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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철이 5월2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재즈바 가우초에서 트럼펫(김예중), 베이스(안원석), 드럼(김영진)에 맞춰 연주를 하고 있다. 가우초 제공

문관철의 ‘그대와 영원히’

이날 공연에서 문관철은 ‘그대와 영원히’를 부르기 전에 가수 유재하 얘기를 먼저 했다.


“1980년대 초반에 우리 밴드가 인기가 좀 있었어요. 그래서 한양대 축제에 초청을 받았죠. 그때 한양대 작곡과에 제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공연하기 전에 여자친구와 다방에서 얘기했어요. 여자친구가 ‘우리 과에 이상한 애가 있어. 거의 맨날 술 먹고 수업 들어와. 작곡과 다니면서 클래식에는 관심이 없고, 가요와 팝에만 관심이 있는 좀 이상한 애야’라고 했죠.” 그보다 두살 어린 1962년생 유재하였다.


문관철 말처럼, 그는 1980년대 대학가에서 꽤 알려진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문관철이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 함께 만든 록밴드 시나브로였다. 그를 포함해 권영국(드럼), 김광민(키보드), 안지홍(기타), 이훈석(베이스)이 멤버였다.

시나브로는 1981년 5월 한국신문협회에서 주최한 국풍81 ‘젊은이의 가요제’에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의 곡 ‘을지문덕’으로 출전했다. 같은 해 ‘엠비시(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안개’로 동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시나브로는 독집 음반을 내지도 못한 채 해체한다. 대중적이지 않고 다소 난해한 노래에 돈을 댈 음반 제작자는 없었다.


그 뒤 문관철은 솔로 앨범을 준비하며, 1983년 서울 방배동에 밴드 이름을 딴 ‘시나브로’라는 카페를 열었다. 유재하, 들국화, 시인과 촌장,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김광민, 한상원, 해바라기, 조하문, 권인하 등이 즐겨 찾았다. 가수들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유재하가 작사·작곡한 ‘그대와 영원히’ 역시 이문세가 먼저 1985년 11월20일 낸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 실었다. 150만장에 이르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 이 앨범 B면 4번째 곡이 ‘그대와 영원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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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3집 앨범 표지. 서라벌레코드 제공

그런데 이 노래는 유재하가 문관철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었다. 가수 권인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원래 이 노래는 유재하가 문관철에게 선물한 곡입니다. 유재하가 카페 시나브로에서 거의 숙식했는데, 문관철 파마머리가 아침마다 떡 져 있는 걸 보고 지은 노래죠. 유재하가 ‘관철이 형 주려고 이 노래를 지었다’라고 했죠.”


‘헝클어진 머릿결/ 이젠 빗어봐도 말을 듣질 않고/ 초점 없는 눈동자/ 이젠 보려 해도 볼 수가 없지만’.


이 노래를 문관철에게 준 유재하는 1987년 자신의 첫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하고, 같은 해 11월1일 25살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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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철이 5월2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재즈바 가우초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문관철의 ‘오페라’

이날 공연에서 문관철은 김장훈이 불러 유명해진 ‘오페라’를 마지막 곡으로 노래했다. ‘오페라’는 문관철 1집 타이틀곡이다. 밴드 시나브로 멤버였던 안지홍이 작사·작곡했다. “엠비시 대학가요제에 나갈 때 ‘오페라’와 ‘안개’를 놓고 고민하다 ‘안개’를 택했죠. 그때는 ‘오페라’ 가사가 다 만들어지지 않았고, 곡도 완성되기 전이었죠. 그 뒤 제 1집 앨범을 내면서 전체적인 곡 흐름에 맞춰 수정했죠.”


록에 클래식을 접목한 ‘오페라’는 문관철이 시나브로 시절부터 추구해왔던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의 곡으로 평가받는다. 안지홍은 삼성전자 64메가 D램 개발팀 주역으로 일하다가 영화음악가로 전업한 특이한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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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5집 앨범 표지. 신나라레코드 제공

김장훈은 이 노래를 1999년 10월5일 낸 5집 <바보> 9번째 곡으로 실었다. 이 곡이 처음 발매된 지 12년 만에 리메이크를 한 것이다. 이 곡은 광고에도 삽입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노래를 김장훈은 내지르기 창법으로 시원시원하게 부르지만, 문관철은 특유의 담백한 목소리로 기교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부른다.

‘비운의 가수’ 문관철

문관철은 1990년 전설의 포크 듀오 어떤날 출신 조동익이 편곡을 맡은 2집 <다시 처음이라오>를, 1993년 박호준이 편곡을 맡은 3집 <어쩌란 말입니까>를 냈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내는 음반마다 실패하니 모든 게 헛것처럼 여겨졌습니다. 마침 친형이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잘됐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피아노와 기타만 갖고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2001년 경기도 가평에 있는 화야산으로 홀로 들어갔다. 산속에서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며 자연과 함께 은둔생활을 했다.


2006년 악보를 구하려고 산에서 내려왔다가 피아니스트 임인건을 만났다. “재즈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보는 게 어떠냐”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재즈 피아노 공부를 시작했다. 2011년 과거 자신의 음반에 실렸던 음악을 재즈로 편곡해 4집 앨범 <부트 프롬 메모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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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관철(오른쪽)과 트럼펫 연주자 김예중. 정혁준 기자

‘5집 앨범을 준비하는지’ 물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어요. 인기를 위해 히트곡이나 히트 가수를 따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모순된 사랑, 모순된 행복, 모순된 인간을 그린 곡을 준비는 하고 있어요.”


‘요즘 가요계에선 몇 년 지난 곡이 다시 인기를 끄는 역주행이 유행’이라고 하니, 그는 “허허허” 하고 웃었다. 이미 그의 앨범은 역주행 중이다. 1집 앨범 엘피(LP)는 중고시장에서 희귀 아이템으로 불리며 15만~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