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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ESC

[ESC] 트레킹 폴, 꼭 써야 하나요? 잘못 쓰면 몸도 산도 시달려요

by한겨레

알고 쓰는 등산장비 이야기


하체에 쏠리는 하중 분산 효과


평평한 둘레길 등에선 효과 미미


한쪽 무게 200g 안팎 선택하고


팁 보호 마개로 생태 보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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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등산 장비 세가지를 들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배낭, 등산화, 그리고 트레킹 폴(하이킹 폴, 하이킹 스틱 또는 워킹 폴이라고도 하며, 그냥 줄여서 ‘폴’이나 ‘스틱’이라고 부른다)을 꼽을 것이다. 유독 한국 산에서는 트레킹 폴을 사용하는 등산객들을 많이 보게 된다.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근교 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많은 경우 제대로 된 사용법을 익히지 않고 그냥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처럼 들고 다니기도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트레킹 폴을 마치 지팡이처럼 쥐거나, 허투루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트레킹 폴은 들고만 있어도 내 무릎을 지켜줄 것이라는 ‘뇌피셜’이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레킹 폴은 크로스컨트리 스키(노르딕 스키) 폴에서 유래한 것으로 1970년대 크로스컨트리 스키 훈련의 한 방법으로 노르딕 워킹이 제안되면서 걷기에서 폴을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걷기 전용 트레킹 폴이 상품화된 것은 80년대 말이며, 그런 탓에 90년대 이전 등산이나 트레킹 사진 자료에서는 트레킹 폴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산 좀 다니는 사람들이 알루미늄 합금 소재의 가벼운 트레킹 폴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내 낡은 기억으로는 대략 90년대 중반 무렵이다. 물론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겟작대기를 사용했으니 그 역사적 유래는 더 오래되었겠지만 근대 등산 문화가 들어온 후 트레킹 폴이 대중화된 것은 고작 30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한때 트레킹 폴과 관련하여 등산 동호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논쟁은 두 갈래였는데 정말 트레킹 폴이 산행 능력을 향상시키고 관절의 피로도를 줄여주는가에 대한 ‘효용성’ 논쟁과 다른 하나는 환경, 특히 지표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환경영향평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제법 뜨거웠던 논쟁에서는 몇몇 전문 등산가와 등산 교육 기관, 트레킹 폴 제조사 등이 나름의 논리를 내세워 여러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트레킹 폴은 정말 산행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제대로 사용하면 산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우리나라 산의 지형에서는 하체에만 집중되는 하중을 상체로 분산시켜서 무릎 관절을 보호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특히 내리막길에서 트레킹 폴의 유용성을 강조한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불규칙한 지형에서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트레킹 폴이 산행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트레킹 폴을 이용한 보행법을 처음 시도할 경우 팔꿈치 부위에 근육통이 생길 수 있다. 일반적인 보행법과는 달리 트레킹 폴을 반복적으로 들어올린 후 뒤로 밀어내기 때문에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근육을 반복 사용해서 생기는 근육통이다. 트레킹 폴을 처음 사용할 때 팔꿈치에 약간의 근육통이 생긴다면 오히려 제대로 하중을 분산시킨 긍정적인 결과이다. 물론 이 팔꿈치 근육통은 자전거를 오래 타면 엉덩이 통증이 완화되는 것처럼 트레킹 폴 사용을 반복하다 보면 이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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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트레킹 폴이 산행 필수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산행에 도움이 되는 보조 도구와 모든 산행 조건에서 필요한 필수품과는 그 분류부터 다르다. 예를 들어 지표면이 규칙적이며 경사도 변화가 크지 않은 둘레길에서는 트레킹 폴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번거로운 소지품이 될 뿐이다. 반면 경사도가 심한 구간, 눈이 많이 쌓인 등산로나 불규칙한 지표면에서는 신체 균형에 큰 도움이 된다. 트레킹 폴이 산행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적합한 제품을 골라야 하고 올바른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트레킹 폴 사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쥐는 방법인데 손목걸이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손목을 넣은 후 손잡이를 잡고, 손목 아랫부분이 손목걸이에 하중이 실리도록 해야 한다. 트레킹 폴 상단에 손바닥을 얹듯이 잡거나, 손목걸이에 하중을 싣지 않고 손아귀 힘만으로 손잡이를 잡아서는 상체의 하중을 장시간 지탱할 수 없다. 기본적인 사용법은 발 방향과 교차해서 땅을 짚는 것이다. 즉 왼쪽 발이 나갈 때 오른쪽 트레킹 폴을 앞으로 내밀어 땅을 짚은 후 썰매 탈 때처럼 내디딘 폴을 뒤로 밀어내는 식이다. 트레킹 폴을 처음 사용한다면 산에 가기 전에 이 방법을 참조하여 한두번 연습하면 금방 익숙해진다. 돌이 많은 지형에서는 폴 팁이 돌 틈에 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칫 트레킹 폴이 휘거나 부러질 수 있으며,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다.


자신의 키에 맞는 길이도 중요하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트레킹 폴은 대부분 길이 조정이 가능한데 제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최단 110㎝, 최장 140㎝까지이다. 자신에게 맞는 길이를 측정하는 방법은 자연스럽게 트레킹 폴을 쥔 상태에서 팔꿈치가 90도 각도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오르막길에서는 조금 짧게, 내리막길에서는 조금 더 길게 조절한다. 대부분의 트레킹 폴 사용자들은 양쪽을 사용한다. 신체 균형을 위해서 양쪽이 유리하지만 꼭 양쪽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겟작대기처럼 하나만으로도 신체 균형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등산 장비들과 마찬가지로 트레킹 폴의 무게도 눈여겨 살펴봐야 한다. 최근 가볍고 심플한 디자인의 등산 장비가 트렌드인데 트레킹 폴도 마찬가지이다. 아령과 같은 운동 효과를 기대한다면 모를까 한쪽 폴의 무게가 250g을 넘지 않는 게 좋으며, 200g 안팎의 무게가 적절하다. 지나치게 무거운 제품은 오히려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본 소재가 제일 가볍지만 돌 틈에 끼거나 무게중심이 흐트러지면 자칫 부러질 우려가 있으므로 평탄한 둘레길에 어울리며, 흔히 두랄루민으로 불리는 알루미늄 합금 소재가 내구성이나 무게 등에서 유리하다.


일종의 충격 완화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안티쇼크’(anti-shock) 기능은 그 쓰임새가 크지 않다. 오히려 기능이 복잡해지면 쉽게 고장이 날 뿐 아니라 제품 가격도 올라간다. 사용한 후에는 특히 연결 부분을 청결하게 하고 잘 건조해야 한다. 등산용 트레킹 폴은 대부분 접이식이거나 3~4개의 마디를 축소, 확장하는 방식인데 이 연결 부분에 흙이 끼거나 습기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보관하게 되면 쉽게 부식하거나 잠금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트레킹 폴의 잠금장치가 고장이 나서 늘리지도, 줄이지도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등산로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부분 연결 부위의 습기나 이물질 때문에 생긴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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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트레킹 폴 반대론자들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트레킹 폴은 무엇보다 등산로 지표면 생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표면은 날카로운 트레킹 폴의 팁에 의해 더 깊이 파헤쳐지고 나무뿌리들은 상처 입는다.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등산로에 설치된 나무 데크 방부목도 트레킹 폴에 의해 더 빠르게 훼손되고 있으며, 바위는 온통 상처투성이다. 미국의 가장 오래된 하이킹 관련 단체인 애팔래치아 트레일 보호협회(ATC)는 지표면이 훼손되거나 바위 표면이 긁히지 않도록 팁 보호마개(Tip protector)를 할 것과 평이한 구간에서는 사용하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트레킹 폴은 뒤에 따라오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위험도 있다. 지나치게 힘껏 뒤로 밀어내거나 미끄러운 바위 위를 헛짚어 미끄러지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폴 팁이 향해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기도 한다. 팁 보호마개는 이런 예상치 못한 부상을 막아줄 수 있다. 번잡한 등산로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동에 방해가 되므로 사용을 자제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서 배낭 옆에 넣는다. 맨손을 이용해야 하는 난간이나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구간에서는 트레킹 폴이 오히려 위험요소가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산에서 트레킹 폴을 사용하면서 바위와 부딪혀 내는 금속성 소음도 문제가 되고 있다. 누구나 산에서는 날카로운 소음보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를 듣길 원한다.


끝으로 필자의 의견은 매우 제한적으로 트레킹 폴을 사용하자는 쪽이다. 거친 지형에서 신체 균형을 잃지 않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근교 산이나 평이한 둘레길에서의 사용은 자제하자는 것이다. 꼭 사용해야겠다면 적어도 팁 보호마개로 지표면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보자. 무릎 관절은 다른 여러 방법으로 보호할 수 있으나 트레킹 폴 팁에 의해 훼손되는 지표면은 달리 보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현상(그레이웨일디자인 대표·<인사이드 아웃도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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