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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ESC]

남향집만 좋은 걸까? ‘북향집’의 장점도 있답니다

by한겨레

전명희의 질문하는 집

다른 이점 있는 각 방향 집

삶의 모양 따라 기준 달라

한겨레

탁 트인 전경을 눈부심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시원한 크기의 북향 베란다가 특징인 집.

코로나19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늘면서 개인의 취향이 더욱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낯선 이들과도 기꺼이 취향을 나누며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고 싶어 한다.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집을 통해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랜선 집들이’다. 다양한 집의 형태부터 거기 사는 사람의 삶의 모양까지 드러나 들여다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저런 집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공간을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구나’ 등 선망과 시기 섞인 시선으로 영상을 감상하다가 ‘다음 집엔 내 취향을 한껏 반영하리라’ 다짐하곤 한다.


그런데 막상 집을 구하는 이들을 만나 보면, 대부분 정형화된 ‘좋은 집’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예산 안에서 고려하는 조건은 집의 방향, 층, 면적, 채광, 방음, 단열, 전망, 지하철역과의 거리, 노후 연도, 주차 가능 여부 등이다. 다른 사람들인데, 어째 집을 고르는 조건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예컨대 무조건 북향과 1층은 피해야 하고 지하철역에서 도보 10분 이내이면서 답답하지 않은 전망을 가진 집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들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자신의 생활 방식이나 주거 공간에 대한 취향을 반영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집의 기준을 본인이 원하는 것이라 생각한 건 아니었는지. 자, 이제 취향 자립을 시도해보자. 이 지면을 통해 자기답게 살기 위해 어떤 관점으로 집을 선택해야 할지, 집의 조건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필터를 발견하시길 바란다.


한겨레

차분하고 집중이 잘되는 북향 작업실.

우선 방향을 보자. 한국 사람에게 집을 선택하라고 하면 99% 남향 또는 남향이 낀 집을 선택할 것이다. 나머지 1% 중에서도 북향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도 극소수 아닐까. 한국에서는 집에 북향이 조금이라도 끼었다고 하면 부지불식간에 그 집은 최악의 향을 가진 집이 된다. 북향은 정말 거주하기 나쁜 집일까?


사실 한국 기후 특성상 남향을 선호하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딱히 단점이 없는 향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의미 없는 향이 될 수도 있다. 실례로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하는 한 임차인은 푸른 산이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남향의 창을 보고 한눈에 반해 집을 계약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장기화하면서 모니터 눈부심 방지를 위해 항상 창을 암막 커튼으로 가리며 지내고 있다. 그 집의 매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말이다. 이렇듯 각각의 방향마다 일장일단이 있기에 개인의 생활 패턴을 고려하여 향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인이 남향 다음으로 선호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동향이다. 아침 햇살의 기운을 받으며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향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이라도 밝은 테이블에서 마신다면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대신 동향집은 오후에 빛이 들지 않아 겨울에는 다소 어둡고 춥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서향은 오후에 주로 활동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향이다.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서향은 오후 늦게까지 빛이 들어오므로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만약 가구를 애지중지하는 성향이라면 가구를 놓을 때 남향과 서향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오랜 시간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가구의 색이 바래고 건조해져 원목이 갈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피하는 향인 북향에도 우리가 생각지 못한 여러 장점이 있다. 북향집은 어두울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북향은 온종일 균일한 조도가 유지되어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나 독서, 영화 감상 등을 위한 향으로 안성맞춤이다. 또한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고, 가구와 바닥재, 벽지, 책 등이 변색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단독주택들은 대개 정원이 남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꽃과 나무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향은 사실 북향이다. 해를 향해 움직이는 해바라기처럼 식물의 잎이나, 줄기, 꽃은 햇빛이 강한 쪽을 향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역광인 남향과 달리 북향은 눈부심이 적어 깨끗한 파란 하늘을 더욱 잘 감상할 수 있다는 포인트도 있다. 몇달 전 한 손님은 차분하게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구하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정북향의 작업실을 보고 그 정적인 분위기에 매료됐다. 그는 지금도 밤마다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북향의 작업실에 불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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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향과 북서향에 창이 설치된 원룸. 북쪽에서 들어오는 빛은 조도가 일정해 옅은 빛을 좋아하는 식물인 아비스 등을 키우기 좋다.

북향은 겨울에 춥고 빨래가 잘 마르지 않으며 결로가 발생하기 쉬운 향이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이런 단점들은 설비나 인테리어로도 충분히 메꿀 수 있다. 요즘은 집의 방향과 상관없이 미세먼지 때문에 빨래를 자연 건조하기보다 건조기로 말리는 가정이 많다. 북향의 집도 건조기를 둔다면 빨래 걱정을 덜 수 있다. 추위와 결로로 인한 곰팡이 문제는 단열과 통풍이 주된 원인이므로 성능 좋은 단열재와 창호로 기밀하게 시공하면 실내외 온도 차가 줄어 결로 발생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환기할 때는 공기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창을 2개 이상 열어 습한 기운을 내보내면 된다. 집에 아무리 큰 창이 있어도 하나만 열어 두면 공기의 흐름이 생기지 않아 습도를 낮추기 어렵다.


그러니 집을 구할 때 북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지에서 제외하지 않으면 좋겠다. 따사로운 남향의 빛도 좋지만 오후 3시부터 행복감으로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사막여우처럼, 오후에 잠깐 드는 북서향의 소중한 빛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너무 낭만적으로 해석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 각박한 세상에서 집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러분, 북향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글∙사진 전명희(별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