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ESC] BTS 해변, ‘슬의생’ 캠핑장…‘비주얼 맛집’ 어디냐고?

by한겨레

BTS 앨범 재킷 촬영한 삼척·강릉선 방탄 성지순례

‘킹덤’ ‘슬의생’ 등 드라마 속 장소 인증사진 인기

전국 누비는 로케이션 매니저가 고르고 골라 선정

한겨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 의 캠핑 촬영지로 쓰인 평창의 산너미 목장. 산너미 목장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촬영한 해변은 어디지?”, “<킹덤>의 생사초가 자라는 숲은?” 뮤직비디오나 드라마를 보면 영상 속 장소가 궁금해진다. 국내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멋진 풍경에 감탄사도 터진다. 하지만 배만 아프다. 화면만 보고 부러워하기엔 너무 암울하지 않나. 그래, 직접 찾아가자. 여행길이 쉬 풀리진 않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길잡이 답사에 나섰다. 일종의 ‘코끝여’(코로나 끝나면 가야 할 여행지) 안내서.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가본 적 없었던, 하지만 화면 속에서 한번은 봤을, 국내 숨은 명소를 찾아 떠났다.

한겨레

강원도 삼척의 맹방해수욕장에 있는 ‘비티에스(BTS) 포토존’. 삼척시에서 방탄소년단의 ‘버터’ 앨범 재킷 촬영 때 사용한 소품을 재현해놓았다. 허윤희 기자

한겨레

강릉의 향호해수욕장에서 찍은 <유 네버 워크 얼론> 앨범 재킷 사진. 빅히트 뮤직 제공

한겨레

강릉의 ‘비티에스 버스정류장’을 찍는 여행객. 허윤희 기자

삼척∙강릉의 방탄 포토존

“여기가 방탄 촬영지야!”, “난 슈가 자리에 앉을래.” 지난달 22일, 강원 삼척의 맹방해수욕장. 모래사장의 파라솔과 줄무늬 선베드가 눈에 꽂혔다.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이 늘어선 풍경이 펼쳐졌다. 인증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었다. 방탄소년단 굿즈나 멤버 사진을 챙겨 와 찍는 ‘비티에스 찐팬’도 여럿 보였다. 이곳은 지난 3월 방탄소년단이 신곡 ‘버터’ 앨범 재킷 사진을 촬영한 장소다. 일명 ‘방탄 성지’이자 ‘방탄 투어’ 코스 가운데 한곳.


해수욕장 한쪽에 마련된 ‘비티에스 포토존’에는 파라솔과 선베드 외에도 비치발리볼 네트와 심판 의자가 있다. 삼척시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방탄소년단 재킷 촬영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삼척시 관광과 유정옥 계장은 “맹방해수욕장은 주변 삼척 해수욕장보다 덜 알려진 곳이었는데 방탄소년단이 재킷 촬영을 한 뒤 전국 곳곳에서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방탄 성지’가 또 있다. 강릉 주문진에 있는 향호해수욕장이다. 이곳은 2017년 <유 네버 워크 얼론> 앨범 재킷 촬영지다. 강릉시는 방탄소년단 팬들의 ‘성지 행렬’이 이어지자 2018년 사진 속 버스정류장 세트를 복원했다. 실제로는 버스가 서지 않는, 오직 인증샷만을 찍을 수 있는 ‘비티에스 버스정류장’이다. 정류장 안에는 멤버 단체 사진과 방탄소년단 노래 제목으로 만든 버스 운행 코스 안내도가 붙어 있다. 정류장 바로 앞에는 휴대전화 거치대가 설치돼 있어 푸른 바다와 정류장을 함께 렌즈에 담을 수 있도록 했다.


강릉에는 ‘비티에스 버스정류장’ 외에도 ‘인스타 핫플’(인스타그램 핫 플레이스) 사진 명소가 있다. 주문진 영진해수욕장에 있는 공유, 김고은 주연의 <티브이엔> 드라마 <도깨비>(2016) 촬영지다. 김신(공유)이 바닷가 방사제에서 지은탁(김고은)에게 메밀꽃을 건네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드라마가 종영된 지 5년이 흘렀지만 당시 장면을 촬영한 이곳 방사제는 여전히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날, 관광객들은 각자 <도깨비>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 삼아 방사제에서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온 이들이 서로 마주 보며 소중한 추억을 남겼다. 이날 주말여행을 온 김미정(28)씨는 “친구들과 강릉 바다를 보러 왔는데 온 김에 <도깨비> 촬영지에서 사진을 찍었다”며 “좋아했던 드라마에 나온 곳인데다 바다 풍경도 너무 예뻐서 인생 사진 하나 건졌다”고 말했다.

한겨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 의 주인공 채송화와 이익준이 캠핑을 하는 장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2> 화면 갈무리.

‘슬의생’에 나온 캠핑장 어디?

드라마 속 촬영지도 ‘방탄 성지’ 인기에 못지않다. 최근 <티브이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서 채송화(전미도)와 이익준(조정석)이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는 장소가 나왔다. 이곳은 강원도 평창에 있는 산너미 목장이다. 영상에서는 연인산 캠핑장이라는 표시석이 나와 실제 장소와 다른 캠핑장으로 문의전화가 많았다고 한다. 이 목장은 흑염소를 방목해 키우던 목장인데 캠핑족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며 ‘차박’(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캠핑) 캠핑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산너미 목장 관계자는 “드라마에 나온 곳은 캠핑장이 아니라 20~30분 정도 걸리는 트레킹 코스의 정상”이라며 “해발 850m에 있는 ‘양달 소나무’라 불리는 ‘나 홀로 소나무’가 인기”라고 했다.

한겨레

제주 머체왓숲길에서 촬영한 <킹덤: 아신전>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아신전>은 제주도 구석구석을 잘 활용했다. 어린 아신(김시아)이 생사초를 발견한 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머체왓숲이다. 머체왓숲이란 ‘돌과 나무가 한껏 우거진 숲’이란 뜻이다. 편백, 황칠나무, 동백나무, 삼나무가 번갈아 군락을 이루는 이곳엔 길이 6.7㎞(도보 2시간30분)의 산책 코스가 있다. 숲 도보여행 하기 좋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마을 숲도 드라마에 나온다. 밀렵꾼들이 호랑이를 모는 장면을 그곳에서 찍었다.


<에스비에스>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 2의 11회와 12회에 나오는 주단태(엄기준)의 숲속 별장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벽초지수목원에서 찍었다. 송중기 주연의 <빈센조>에도 벽초지수목원이 나왔다. 지난 4월11일 방영한 16회에서 빈센조가 휠체어에 탄 어머니와 산책하는 곳이 벽초지수목원의 버들길이다. 버들길은 버드나무가 길게 뻗어 있어 산책하기 좋은 숲길이다. “동양과 서양 정원의 아름다움을 한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1년에 드라마, 영화, 잡지 화보 등 보통 50~60건 촬영을 한다”고 벽초지수목원 관계자는 말했다.

한겨레

파주 벽초지수목원에서 찍은 드라마 <빈센조> 한 장면. 벽초지수목원 제공

MZ 세대가 찾는 인증샷 명소

드라마 단골 촬영 장소는 ‘비주얼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시청자에게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기 때문. 경기도 포천의 비둘기낭폭포가 대표적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 등 여러 작품에 나왔다. 비둘기낭폭포는 한탄강 폭포 뒤의 동굴에서 백비둘기들이 집을 짓고 살았는데, 비둘기 둥지와 같이 움푹 파인 낭떠러지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경상남도 밀양의 위양못(위양지)도 그렇다. 위양못은 신라 시대 때 농업용수를 공급하려고 만든 저수지다. 이곳에는 이팝나무와 느티나무, 왕버들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있다. ‘밀양 8경’ 중 한곳인 이곳은 새벽 운해와 물에 비친 반영 촬영지로 사진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2016)에서 주인공 이준기와 아이유가 다정하게 걷던 곳이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2014)도 위양못의 절경을 담았다.


경남도청 관광진흥과 신민영 주무관은 “촬영지에서 영상 속 주인공처럼 찍어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는 엠제트(MZ) 세대들이 지역 숨은 촬영 명소를 방문하고 있다”며 “지자체에서 예전에는 촬영 장소에 ‘촬영지’라는 팻말만 세웠다면 이제는 이들을 위해 드라마 소품을 비치하는 등 포토존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영상 촬영 명소인 포천의 비둘기낭폭포. 포천시 제공

한겨레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등 촬영지로 유명한 밀양의 위양못(위양지). 경남도 제공

한겨레

국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촬영지를 찾는 김태영 로케이션 매니저. 김태영 제공

로케이션 매니저의 숨은 공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촬영 명소는 어떻게 탄생할까. 국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촬영지를 찾고 섭외하는 로케이션 매니저들의 숨은 노력에서 시작된다. 김태영 ‘국내 1호 로케이션 매니저’(로케이션 플러스 대표)는 영화 <아저씨>, <타짜>, <내부자들> 등 수천편의 장소 섭외를 담당한 베테랑이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장소 섭외도 그의 안목이다. 김 매니저는 “방탄소년단의 ‘봄날’ 뮤직비디오 뒷부분에 나오는 황량한 땅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형도이다. 다들 그곳이 외국일 거라 생각할 정도로 이국적이다. 촬영지 답사를 하며 20여년 전에 알게 됐는데 황폐하면서도 스산한 느낌을 줘 기억해두었던 지역이다”라고 말했다.


독특하고 이색적인 장소만 찾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는 “로케이션 매니저는 영상과 공간을 잇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공간을 특별한 이야기의 공간으로 만드는 창조적 작업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공원을 보면 오전, 낮, 밤 풍경이 각각 다르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런 다양한 모습을 일일이 사진으로 기록한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장소를 기억해둔다.” 그가 말한 로케이션 노하우다.


국내 여행이 늘면서 주목받는 드라마·영화 촬영지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비주얼 맛집 전문가’ 로케이션 매니저들의 피와 땀이 서린 곳들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가볼 여행지에 꼭꼭 담아두시라. 그곳에 가면 당신도 영상 속 주인공이 될 테니. 혹 그곳에서 생사초를 발견해도 절대 따지 마시길.


강릉·삼척/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