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집, 설계로 끝난 게 아니네…‘산 넘어 산’

[라이프]by 한겨레

너도 한번 지어봐: 착공


건축심의·안전진단 등 복잡


시공회사 선별해 견적 내고


자재 선택하는 일도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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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는 끝났지만, 이제부터가 정말 ‘일’이었다. 전 집주인의 이사가 두어달 정도 남았을 때였다. ‘바로 공사 들어가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큰 틀의 구조설계와 공법을 확정하고 지자체의 건축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사실, 신축이냐 대수선이냐를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었다. 신축은 말 그대로 새로 짓는 것이다. 기존의 건축물을 모두 철거하고 멸실신고를 거친 뒤에 지면 바닥기초부터 다시 시작해 건축물을 새로 세운다. 대수선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고친다는 것인데, 건축 쪽에서는 원래 있던 공간 안에 내력벽(수직하중을 버티는 단단한 벽)을 제외하고 구조체를 해체하거나 덧대어 새로운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다.




그림에 빗대면 도화지를 찢어내고 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신축이고, 원래 있던 그림을 일부분 지우고 고쳐 그리는 것은 대수선이라고 하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각각의 장단점도 있는데 신축을 할 때 대지 경계선에서 안쪽으로 물러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측량 오류나, 엄격하지 않았던 과거 대지 경계선 때문이다. 이럴 땐 법으로 정한 건폐율을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또 근린생활시설(주택가 상업시설)이 들어가게 되면 세대수에 따른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하므로 전체 면적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수선은 오래된 집의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기면 설계를 변경해야 하므로 공사 기간과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결국 나중에 이 문제로 발목을 잡혔다.) 우리 집은 1·2층의 콘크리트 골조를 일부 남겨두고 철골구조로 보강하는 대수선공사와 3층을 경량목구조로 뼈대를 세워 덧붙이는 증축공사를 병행하는 것으로 서류를 접수했다. 어떤 것이 되었건 간단한 내부 인테리어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철거공사에 앞서 지자체의 건축 담당 부서에 신고하고 허가를 얻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


뉴스에 심심찮게 건축 과정에서 생기는 사건·사고가 등장하는데,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잃는 사고는 대부분 철거 단계에서 발생한다. 속도와 이윤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던 경제성장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치밀한 공학적인 계산을 거쳐 설계된 것보다는 건축업자들의 경험치를 따른 것이 더 많았다. 지금은 조그만 것 하나 고치려고 해도 설계도면을 첨부해서 신고해야 하지만, 그 당시는 관련 법규가 다듬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자료를 뒤져보아도 지어질 때의 도면 한장 남아 있는 것이 없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무책임한 건축에 대한 책임은 현재의 철거업자에게 전가된다.




건축물을 해체하면서 생기는 사고는 앞세대가 만들어놓은 문제들과 지금 세대의 성급한 철거 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나 초음파 사진 없이 의사의 경험과 운을 믿고 배를 열어 수술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구조안전진단’은 이런 사고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다. 매도인이 이사하기 전이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안전기술사와 진단팀이 방문해 견본으로 삼을 벽과 바닥 일부를 뚫어 두께를 재고 내구성을 계산했다. 뚫기 어려운 부분은 ‘공공칠가방’처럼 생긴 케이스 안에 담긴 비파괴검사 장비로 측정했다. 건축사는 전달받은 안전진단 결과를 반영해 초기 설계를 변경해야 하는데, 이때 비로소 대략적인 시공견적을 뽑아낼 수 있다. 대수선은 철거 범위와 보강을 위해 들어가는 건축자재, 공사의 난이도, 예상 기간이 결국 비용 부담으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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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ㅎ소장이 설계한 도면을 검토하면서 또 하나 정해야 했던 것이 내외장재 사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는 안전을 위해 고정된 비용을 줄이기 어렵지만, 바깥으로 드러난 외장재료와 인테리어 자재들은 선택의 폭과 가격의 스펙트럼이 넓다. 시간 여유를 두고 정해도 되는 것들을 제외하고 확정된 공법과 설계안, 자재 사양은 ‘적산사무소’에 전달해 견적 계산을 의뢰한다. 바쁜 설계사무소를 대신해 도면을 바탕으로 공사에 들어가는 철골, 목재, 시멘트 따위 자재의 물량과 가격을 계산해주는 일종의 분업 시스템이다.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시공회사(시공팀) 선정이다. 그들은 건축사의 설계를 실물로 구현해내는 전문가 집단이다. 보유하고 있는 면허에 따라 종이 구분되는데, 종합건설시공회사이면서 대수선공사와 경량목구조 경험이 많은 업체로 몇곳을 추천받아 ㅎ소장과 함께 미팅했다.




각 공정의 장단점을 고려해 건물의 뼈대가 되는 구조와 벽체를 세우고 지붕과 외벽의 굵직한 작업은 ㄱ회사가 맡기로 했고 전기, 난방, 배관 설비, 내부 목공작업, 인테리어와 같은 섬세함이 요구되는 부분은 ㄴ회사가 진행하기로 했다. 각 회사에 다시 견적을 요청해 비용을 산출했더니 적산사무소에서 계산한 것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실제 현장에서 작업 도중 생기게 되는 불량이나 하자보수까지 포함해 조금 넉넉히 주문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계산에 딱 맞추어 자재를 주문했다가 나중에 추가로 주문하는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안심비용’이다.


일반인 건축주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시공회사들의 이윤과 작업에 들어가는 자재 가격, 인건비 등이 타당한지 세세한 내역을 따져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하고 나보다 먼저 집을 지어본 지인의 조언과 건축사의 설명을 들어가며 여러번 계산기를 두드렸다. 시공회사와 몇차례 밀고 당기는 흥정을 거치고 비용을 확정해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눈 깜짝할 사이 계절은 봄으로 바뀌어 매도인의 이삿날이 되었다.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만나 잔금을 지불하고 행복하게 잘 사시라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살림살이와 사람의 온기가 모두 빠져나가 텅 비어 있는 집에 와 그제야 공간의 넓이와 쌓여 있는 시간의 흔적들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드디어 철거를 시작하는 날 아침, 집 앞 골목에 트럭과 철거팀이 들어와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전이 제일이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사고가 없기만을 기원했다.


임호림(어쩌다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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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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