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ESC] 레깅스가 어때서?…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by한겨레

알고 쓰는 등산장비 이야기


MZ세대 등산복이 된 레깅스


스코틀랜드 남성 스타킹 원조


날씨 대응·내구성 지적하지만


근교 산 이용 땐 큰 문제 없어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레깅스가 여러모로 화제다. 최근 수년간 ‘애슬레저 룩’(운동을 뜻하는 애슬레틱과 레저 의류의 합성어)의 급성장과 경계를 넘나드는 패션 트렌드의 한복판에 레깅스라는 독특한 아이템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적인 스타일인 것 같지만 레깅스의 역사는 제법 오래되었다. 복식 연구자들은 14세기 스코틀랜드 남성들이 즐겨 입던 양말보다 훨씬 긴 스타킹에서 레깅스의 기원을 찾는다. 당시 스코틀랜드 남성, 특히 군인들은 발목으로 흙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보온에도 유리하도록 발목을 조여주는 스타킹을 선호했다. 같은 시대에 스코틀랜드 남성들이 치마를 자주 입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일이다. 대부분의 발명품이 애초 목적과는 달리 산업화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가는데, 레깅스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현대적인 패션 아이템으로서 레깅스는 1958년 미국 듀폰에서, 흔히 ‘스판덱스’라고 하는 라이크라 소재를 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신축성과 착용감이 뛰어난 이 신소재는 이듬해인 1959년에 현대적 스타일로 레깅스에 적용되었고, 지금도 소재의 특성에서는 큰 변화가 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레깅스가 본격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마돈나와 같은 팝스타들이 무대 복장으로 하체와 밀착된 팬츠를 입고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때마침 불어닥친 에어로빅 열풍이 레깅스 스타일의 유행에 불을 붙였다.


21세기 들어 피지컬 피트니스의 하나로 전세계적인 요가 붐이 일어나면서 레깅스는 ‘요가복’의 다른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레깅스는 한동안 몸동작이 큰 요가 활동에 적합하도록 허리 위까지 길게 만들고, 옷이 흘러내려 엉덩이가 노출되는 민망한 일이 없도록 허리 밴드를 넓게 디자인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등산이나 일상생활에도 어울리는 패턴으로 디자인의 변화가 일고 있다. 피트니스 센터를 빠져나온 레깅스는 이제 공원 산책로에서, 가까운 등산로에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복장이 되었다. 우리는 레깅스 복식사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4세기 남성 복장으로 시작된 레깅스가 신축성이 뛰어난 화학섬유의 등장과 함께 여성 의류로 거듭났고, 최근에는 다시 남녀 공용 패션 아이템으로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의 길목에서는 당연히 의견이 분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요가복으로 시작한 레깅스가 일상의 전 영역에서 간편 복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 특히 시끌벅적 논쟁이 벌어진 곳은 등산로이다. 최근 근교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레깅스 복장에 대해 긍정적 평가와 아울러 비판적 관점도 존재한다. 가볍고 근육을 잡아주는 신축성이 뛰어난 소재를 사용하다 보니 신체 움직임이 많은 등산 활동에도 레깅스는 제격이라는 긍정적 관점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기 때문에 크게 논란이 없다. 의견이 분분한 것은 비판적인 관점과 관련해서다. 비판적 관점은 크게 두가지 시각에서 비롯된다. 우선은 신체 곡선에 따라 착 달라붙는 레깅스가 민망하다는, 다소 관습적인 시선이 그 하나이고, 좀 더 논리적인 비판으로는 등산 안전 문제로 접근하는 시선이 그것이다. 첫째 시선과 관련해서 나는 ‘익숙함’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낯섦’과 ‘익숙함’의 간격은 의외로 그리 넓지 않다.


5년은 된 거 같은데 미국 포틀랜드의 한 변두리에서 점심 한끼 해결하려고 들렀던 타코벨 식당에서 마주친 한 여성의 복장은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유아차를 끌고 식당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당시 나에게는 낯선 레깅스 차림이었다. 가까운 피트니스 센터에서 요가를 하다가 잠깐 타코를 사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냥 동네 산책할 때도 즐겨 입는 일상복으로 레깅스는 처음 본 것이다. 나는 마치 도심 한복판에서 비키니만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런 복장을 자주 마주치다 보니 최근에는 미국의 여느 도심에서 여성들이 주로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지 치마를 입고 다니는지, 혹은 핫팬츠를 입고 있는지 분명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청바지, 스커트, 핫팬츠 등 다양한 복장 중에 레깅스도 섞여 있어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3년 전 등산로에서 레깅스 차림의 여성 등산객을 마주치면 낯설고 시선 처리가 다소 난감했지만, 최근에는 여느 등산객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다르다고 주장한다면 나로서는 크게 할 말이 없지만, 기성세대의 관습적 시선의 변화 속도보다 글로벌 트렌드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빠른 세상에서 그들의 복장과 우리의 복장이 달라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없다.


만년설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눈 쌓인 여름 스키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스키어의 모습은 일종의 퍼포먼스이긴 해도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장면도 아니다.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레깅스 복장은 낯설고, 해운대에서 마주치는 비키니 복장은 낯설지 않다는 것은 결국 익숙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등산 동호인들의 관점에서는 등산 활동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최근에는 등산도 여러 애슬레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순수한 자유의지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다는 거대 담론은 올드보이의 무용담처럼 느껴질 뿐이다. 적어도 250년은 된 알피니즘(등산)의 역사와 가치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나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올드보이에 가깝지만 모든 사람에게 산에서는 근엄해야 한다고 훈계할 생각도 없다. 많은 사람에게 트레드밀(러닝머신)보다는 공원 산책로가 낫고, 단조로운 산책로보다는 전망 좋은 등산로가 운동하기 좋지만, 반대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봉우리에 오르고, 같은 경로를 걸어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등산 활동을 바라보는 셈이다.


그래도 등산 장비 정보를 제공하는 글인데, 레깅스가 등산 활동에 적합한 복장인지는 조금 따져봐야겠다. 등산 복장으로서 레깅스가 적합한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 부정적인 입장은 레깅스의 악천후 대응력과 거친 환경에서의 내구성을 문제 삼는다. 한마디로 등산복으로는 기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레깅스 등산객들은 근교 산을 다니고 있어서 갑작스러운 악천후를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잡목이 우거진 험한 등산로를 이용하는 경우도 드물다. 특히 최근에는 대부분의 등산로에 나무 데크나 안전한 계단을 설치하여 경사가 있을 뿐이지 공원 산책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캐주얼 복장으로도 얼마든지 등산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에어로빅이나 요가 복장에서 출발하여 등산복으로 확장된 레깅스는 소재의 신축성 때문에 근육 피로도를 줄일 수 있고, 착용감도 뛰어나다. 등산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천후 대응력인데 갑작스러운 폭우나 강설로 저체온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서울의 북한산이나 청계산, 관악산에서 레깅스 복장 때문에 저체온증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악천후 대응력은 레깅스 같은 등산 바지가 아니라 방수 방풍 재킷에 요구되는 기능성이다.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레깅스 복장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레깅스가 등산 복장으로서 부적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낯섦’에서 오는 것이다. 소위 ‘공항 패션’이라고까지 불리던 기성세대들의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에서 레깅스와 탱크톱으로의 급격한 등산 복장 변화의 기저에는 세대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등산복의 변화를 반기는 레깅스 옹호자들은 ‘68혁명’의 구호 중 하나를 차용해 “레깅스를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라고 주장한다.


등산복의 변화에 혀를 찰 필요는 없다.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대한 지금의 불편한 시선이, 1960년대 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할 생각은 않고 몰려다니며 사랑, 평화, 자유 등 철없는 소리나 하고 다니던 히피들과 반전 시위대를 바라보던 기성세대의 시선만큼이나 충격적이겠는가? 어쨌거나 그들은 1960년대 이후의 세상을 이끌었다.


이현상 그레이웨일디자인 대표·〈인사이드 아웃도어〉 저자

한겨레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