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머금은 땅, 고창 습지와 갯벌 ‘생명의 소리’

[여행]by 한겨레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전북 고창

삵 등 생물 864종 사는 운곡습지

지구 정화 ‘청소부’ 역할 갯벌

코로나 시대 생태여행지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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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864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허윤희 기자

전라북도 고창군은 생태자원의 고장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갯벌뿐 아니라 운곡람사르습지, 선운산도립공원이 있다. 한 지역에서 산과 들, 바다 등 다양한 자연생태계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곳으로, 군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그 덕에 최근에는 코로나 시대 안전한 생태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0일 찾은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에는 운곡람사르습지(운곡습지)가 있다. 이곳은 1980년대 초반 전남 영광의 원자력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며 생긴 습지다. 저수지로 인해 수몰된 용계리 등 9개 마을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2011년에 야생 동식물이 다양한, 보전가치가 있는 지역으로 인정받아 람사르습지로 등재됐다.


1.797㎢(약 55만평) 규모의 운곡습지는 4개의 생태 탐방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도 습지를 관통해 걷는 제1코스는 탐방 안내소(고인돌유적지)를 시작으로 생태연못, 생태둠벙, 조류관찰대를 지나 생태공원까지 이어진다.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약 5㎞ 코스로, 길이가 짧아 누구나 쉽게 갈 수 있어 가장 인기가 좋다.


이날 습지 탐방은 1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생태공원에서 시작했다. 습지 탐방길에 있는 나무 데크는 성인 한명이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습지 훼손을 막기 위해 최대한 좁게 만든 것이다. 데크와 데크 사이에는 틈을 만들어 데크 아래 식물들이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보니, 식물들이 데크와 데크 사이에서 햇빛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이날 운곡습지 탐방 안내를 해준 신영순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사무국장은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탐방 적정 인원을 유지하고 있다. 한번에 탐방 가능한 단체 인원은 2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뿐인가. 습지 탐방 해설을 하는 에코매니저들은 설명을 할 때 확성기나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동식물들에게 소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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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훼손을 막으려고 폭을 좁게 만든 탐방 데크.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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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생태연못에 핀 노랑어리연꽃. 허윤희 기자

자연이 스스로 복원한 습지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는 운곡습지는 원시림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떠난 뒤 자연 스스로 생태계를 복원한 것. 자연의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태풍과 장마 등으로 뿌리가 뽑혀 쓰러진 나무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나무들이 있었다. 물을 머금은 땅에서 자라는 버드나무, 이끼, 풀들이 다채로운 푸른빛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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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운곡람사르습지 지도

이곳은 습지가 유지되는 지질학적 특징이 있다. 운곡습지 주변은 선운산 화산암체의 일부인 유문암이 분포돼 있다. 유문암은 입자의 크기가 작고 단단해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산지형 저층 습지인 이곳은 산과 습지의 생태계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데크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산에서 자라는 은사시나무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습지 대표종인 버드나무가 무성하게 자란다. 마을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에 예전에 사람들이 심은 감나무 등 과실나무도 여러 그루 남아 있다.


‘남한의 비무장지대(DMZ)’로 불리는 이곳에는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산다. 2013년 환경부가 실시한 습지보호지역 정밀조사에 따르면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수달, 황새, 삵, 담비 등 생물 864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탐방객들이 볼 수 없는 야생동물의 모습을 담기 위해 군데군데 폐회로티브이(CCTV)가 설치돼 있다.


운곡습지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생태연못이다. 연못에는 나무 의자가 설치돼 있어 쉴 수도 있고 연못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이 피어 있었다. 주로 흰색 어리연꽃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노랑어리연꽃이 주로 핀다. 멸종위기 2급 식물인 가시연꽃의 넓은 잎도 연못에 둥둥 떠 있었다.


신 사무국장은 “봄과 가을에 탐방객들이 많이 찾는데 습지의 겨울 풍경도 아름답다. 고창은 설창이라고 부를 정도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다”라며 “겨울에 오면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 있는데 데크를 걸으며 보면 정말 멋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생각보다 습지 안에 있으면 그리 춥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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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자라는 고마리, 삿갓사초, 이삭사초.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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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와 함께 살아가는 습지의 나무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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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에 있는 운곡저수지의 전경. 허윤희 기자

생태공간과 맞닿은 고인돌 유적지

운곡습지에 기후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제주 등 남쪽 지역에서 서식하는 청솔귀뚜라미가 이곳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청솔귀뚜라미는 기온 상승으로 북상하고 있는 곤충 중 하나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습지가 말라가고 있는 것. 고창군 용계마을 등 6개 마을 주민들이 2016년부터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논둑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빗물 등이 흐르지 않고 모이게 하기 위해 논둑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 그 덕분에 최근 몇년 사이 반딧불이, 다슬기 등 생물 개체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이날 함께 습지 탐방을 한 박종석 전라북도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센터장도 “도시에서는 기후변화의 징조를 잘 느낄 수 없지만 이곳에 오면 습지가 점점 말라가는 육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며 “자연의 변화를 보고 우리가 이 자연을 향유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키고 상생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생태관광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 탐방을 하며 다다른 마지막 코스는 고인돌 유적지다. 생태 탐방에 이어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역사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이색적 공간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보던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유적지 옆에는 고인돌을 축조한 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 터와 역사 학습장인 고인돌박물관도 있다. 청동기 시대의 각종 유물과 생활상, 다른 나라의 고인돌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고창에는 2000여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중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은 447기. 고창천을 따라 1.8㎞에 걸쳐(도산리·죽림리·상갑리 일대) 400기 이상의 고인돌이 밀집돼 있다. 이는 세계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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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람사르습지 생태길과 이어져 있는 고인돌유적지.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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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창 고인돌.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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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갯벌을 질주하는 갯벌체험 차량.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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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갯벌에 있는 칠면초는 가을이 되면 붉은색을 띤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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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있는 물결무늬. 갯벌이 그린 ‘갯벌화’처럼 보인다. 허윤희 기자

윤에스코 세계유산 고창 갯벌

고창에는 습지 못지않은 자연생태의 보고인 갯벌도 있다.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의 만돌갯벌이 그곳이다. 만돌갯벌은 2007년 12월 해양수산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고창갯벌(면적 64.66㎢) 일대에 포함되는 곳이다. 지난 11일에 방문한 갯벌 입구 쪽에는 지난 7월 고창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축하하는 자축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밤새 바닷물이 빠져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갯벌을 질주하는 갯벌 체험 버스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물결무늬가 그려진 갯벌의 구멍에서 작은 달랑게들이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갯벌을 지키는 생명의 움직임!


만돌갯벌은 모래와 펄이 섞인 혼합갯벌이다. 동죽과 바지락 같은 조개들이 서식하기 알맞은 환경이다. 겨울에는 김 양식, 봄에서 가을까지는 조개류 채취를 하고 있다. 사계절 내내 어업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다양한 저서생물과 염생식물, 멸종위기 물새의 서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갯벌은 ‘지구의 허파’로 불린다. 1㎡당 인구 10만명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을 정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람사르고창갯벌센터의 김진근 명예습지안내인은 “모래가 많은 해안가 쪽에는 달랑게가 많고 더 들어가면 엽낭게와 조개들이 많다. 이들은 갯벌에서 생물의 사체나 갈대 등의 유기물을 섭취해 갯벌을 깨끗이 하기 때문에 ‘갯벌 청소부’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다양한 생명체를 품은 갯벌. 고요한 갯벌에서 쉼 없이 꿈틀대는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고창/글·사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2021.10.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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