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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몸뻬 입고 아궁이에 불 때고…MZ세대는 시골에서 휴가 중

by한겨레

‘민속박물관’ 충남 아산 외암마을 등 농촌여행지 인기

특급호텔 대신 한적한 시골집에서 ‘몸뻬 파티’ 인증샷

청정 자연 보며 힐링…“어릴 적 할머니집처럼 따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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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에 1박2일 여행을 간 김은혜(왼쪽부터)·박경애·박서정씨. 여행 전에 준비한 몸뻬 바지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박서정 제공

‘럭셔리한 호텔보다 정겨운 시골집으로.’ 코로나 시대 엠제트(MZ) 세대 사이에서 시골 여행이 인기다. 시골집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뜻인 ‘농캉스’, ‘촌캉스’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생겨났을 정도.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해시태그인 ‘#촌캉스’(3664개, 9월27일 기준), ‘#촌집’(1만1525개)을 붙인 게시물도 코로나 시기에 새로 등장했다. 여행 분야에도 옛것에 재미를 느끼는 레트로(복고)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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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집성촌의 모습을 간직한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풍경. 허윤희 기자

파자마 대신 몸뻬 바지

지난달 11일,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의 외암민속마을. 초가집과 한옥이 도란도란 모여 있고 들녘에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외암민속마을은 500년 전에 형성된 예안 이씨의 집성촌이다. 조선 시대 집성마을의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60여가구가 있는 마을은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인 셈. 이곳에서는 떡메치기, 전통혼례 등 체험 행사와 숙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고등학교 동창생인 김은혜(32)·박경애(32)·박서정(32)씨가 이 마을에 1박2일 여행을 왔다. 박경애씨는 “요즘 유행하는 촌캉스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 이곳을 방문했다”며 “인터넷에서 장소를 찾다가 외암민속마을의 초가집과 마을 돌담길에 반해 이곳을 여행지로 정했다”고 말했다. 박서정씨는 옛 시골 모습을 간직한 외암민속마을을 직접 와서 보니 “어릴 때 갔던 시골 할머니네 생각이 난다”며 “마을 곳곳에서 포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김은혜씨는 여행 가방에 꽃무늬 몸뻬 바지 세벌을 담아왔다. 호텔에서 하는 ‘파자마 파티’ 대신 ‘몸뻬 파티’를 준비한 것. “친구들과 몸뻬 입고 사진을 찍으려고 인터넷에서 한벌 5천원에 샀다. 이거 입고 저녁에는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예정이다”라며 김씨는 웃었다.


외암민속마을은 이들처럼 엠제트 세대들이 찾는 여행지가 되고 있다. 외암민속마을 한영미 사무국장은 “코로나 전에는 50~60대가 어릴 적 향수를 느끼기 위해 많이 찾아왔는데 지난해부터 20~30대 젊은층이 농촌 체험을 하러 많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손꼽는 매력은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다. “어디에서 봐도 한눈에 마을 풍경이 들어온다. 모든 곳이 조망점이다. 특히 가을에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에 올라 누렇게 익은 논을 보고 있으면 푸른 바다 보는 것보다 좋다. 이런 자연 풍경을 본 여행객들이 ‘이곳에 와서 쉼표를 찍고 간다’고 얘기한다”고 한 사무국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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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평상에 앉아 쉬는 여행객 김은혜(왼쪽부터)·박경애·박서정씨. 허윤희 기자

​제철 재료로 요리하고

코로나 시대 한적한 시골 마을은 안전한 여행지로도 주목받는 중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마을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 장소다. 올 초 ‘번아웃’으로 힘들었던 김민주(31)씨는 사표를 내고 제주의 시골 마을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무작정 떠난 여행인데 자연에 머무르며 큰 위로를 받았다. 온전히 쉰다는 걸 처음 경험했다. 시골이라 조용하고 시끌벅적하지 않으니 내 느낌과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김씨는 제주에서 관광지가 아닌, 여행객들이 적은 마을을 돌아다녔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제주 동쪽 마을 세화리, 종달리, 하도리에 머물며 그곳의 분위기가 가득 담긴 작은 상점들과 책방, 제철 요리 식당 등을 찾았다. “작은 마을을 다니니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시골 마을 여행의 장점이다.


음식 배달이 되지 않는 시골 마을에 있으니 직접 요리를 하는 재미도 경험했다. 마을 작은 가게에서 귤, 키위, 토마토 등을 사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사계절 내내 귤이 나오지만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제철 귤을 맛보는 행운도 누렸다.


김씨는 올해 말에 제주 시골 마을로 또 한번 여행을 갈 예정이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모집한 청년층 대상 체류 여행 프로그램의 ‘소소한 전원일기’ 분야에 신청해 선발됐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농어촌 마을을 찾는 ‘나 홀로 여행족’은 코로나 시대의 주요 여행객이 됐다. 농촌체험휴양마을을 관리·운영하는 한국농어촌공사의 웰촌 관계자는 “예전에는 농촌휴양마을을 찾는 주요 대상층이 어린이집·유치원생, 초·중·고등학생, 동호회, 회사 등 단체 여행객이었다면 최근에는 혼자나 연인, 친구 등 소규모 여행객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20~30대 여행객들이 자연, 청정, 언택트 등 새로운 관광 트렌드에 맞는 나만의 여행지, 숨겨진 국내 관광지를 농어촌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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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제주 시골 마을로 혼자 여행을 갔던 김민주씨. 김민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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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숙소에 있는 아궁이에 불을 때는 여행객. 시골투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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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 시골투어의 인기 숙소인 전남 구례의 황토시골집. 시골투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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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이 넘은 한옥인 충남 부여의 현암리 돌담집. 에어비앤비 제공

농어촌 ‘특1급’ 숙소는?

시골집 체험이 인기를 끌자 이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여행사도 생겼다. 시골 체험 여행 플랫폼 ‘시골투어’가 그중 한곳. 시골투어는 숙박과 고구마 캐기 등 체험 프로그램을 묶은 ‘시골 하룻밤’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시골투어 김민정 매니저는 “사람과 접촉이 적은 독채 숙박 상품, ‘시골 하룻밤’ 상품 등 비대면 여행·숙박 상품 이용률은 지난해보다 약 150% 증가했다”고 말했다.

시골투어를 찾는 이들이 선호하는 숙소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시골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례로 전남 구례에 있는 황토시골집은 민가와 떨어진 산 중턱에 있는데 전통 구들장 난방, 가마솥 이용 등 체험을 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마당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있는 유니크한 숙소가 ‘특1급’으로 대우받는다. 이런 숙소의 경우 “20~30대 미혼 고객들의 예약률이 높다”고 김 매니저가 말했다. 임용시험에 실패한 수험생이 시골 고향 집으로 간 뒤의 일상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소담한 시골집을 찾는 고객들도 많다고 한다.


사회적기업 ‘더몽’에서는 농어촌 빈집을 활용한 여행 상품 ‘시골하루’를 선보이고 있다. ‘시골하루’는 지역의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한 것. 더몽은 지난 5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시골 체험 숙박 프로그램 ‘담양 시골하루’를 처음 내놓았고, 목표의 128%를 달성해 큰 호응을 얻었다.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숙박 플랫폼에서도 다양한 시골집 숙소가 인기다. 특히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고택의 예약률이 높다. 강원도 동해에 있는 100년 된 한옥의 별채도 그중 한곳. 고풍스러운 집뿐 아니라 주위 울창한 숲 산책이 가능해 인기가 많은 숙소다. 충남 부여에 있는 70년이 넘은 고풍스러운 한옥도 예약률이 높다. 서까래, 기와, 대들보 등 한옥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방이 밤나무 산으로 둘러싸여 산골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 음성원 미디어정책총괄은 “코로나로 ‘리모트 워크’(원격근무)가 확산되면서 여행지에서 쉬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형태의 휴식과 노동이 가능한 시골 같은 붐비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형태의 여행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 시대 안전한 비대면 여행지이자 힐링 장소로 주목받는 농어촌 마을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여유로운 휴가를 누리고 싶은 이들에게 최적의 장소로 떠올랐다. 온전한 휴식과 고요한 치유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당신은 자연이 제공하는 ‘특급 서비스’에 “하루 더”를 외칠지도 모른다.


아산/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