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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오겜’ 오영수 “죽음 문턱까지 가보니 돈과 명예 무슨 의미가 있냐”

by한겨레

[②오영수의 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

<봄 여름…> 인생 마지막 작품 될 거라 생각

폐렴 확진 “마지막인가 싶었는데 결국…”

그리고 봄, 구슬치기 장면 눈물…“깐부정신 필요"

이 다섯 작품을 계절과 인연으로 담아 그의 연기 외길을 따라가 봤습니다. <한겨레> 27일치 지면으로 나간 인터뷰 기사에서 종이 지면 제한으로 포함하지 못한 오영수 선생님의 작품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 얘기를 보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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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가 12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 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가을, 마지막 작품인 줄 알았던 <봄 여름…>

오영수는 이 영화를 찍기 전엔 김기덕 감독을 잘 몰랐다고 했다. “김기덕 감독이 에이포(A4) 용지에 영화 내용을 간단히 적어 갖고 왔더라고. 보니 <봄 여름…>에 나오는 노스님 역이었죠. 계절과 함께 인생을 담은 영화 같았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의미 있는 작품이면 적극적으로 하려고 해요.”


그는 촬영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김기덕 감독답게 영화를 엄청나게 빨리 찍더군요. 제가 나오는 부분은 여드레 찍고 끝냈어요. 주왕산 주산지에서 봄에 나흘, 늦가을에 나흘. 이렇게 찍었죠. 그렇게 빨리 찍은 것에 비춰보면 영화는 잘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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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 여름…> 에서 산사 바닥에 ‘반야심경’을 새기는 장면. 오영수는 이 글을 글 쓰는 사람과 함께 썼다고 했다. 코리아 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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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영화 <봄 여름…> 마지막 장인 ‘다시 봄’ 촬영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조명 없이 자연광으로 찍는 데다 현장 상황에 따라 콘티를 순식간에 바꾸는 김기덕식 스타일에 이틀 촬영분을 하루에 마쳤다. 이혜정 기자

오영수는 영화에서 나와 유명해진 ‘반야심경’ 쓰는 장면에서 글을 직접 썼다. “처음엔 글 쓰는 사람이 와서 ‘반야심경’을 썼어요. 촬영 시간 때 시간이 좀 남아 나도 따라 써봤죠. 김 감독이 휙 보더니, 고양이를 안기면서 ‘선생님 한번 써주실래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글 쓰는 사람과 함께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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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 여름…> 에서 산사 바닥에 ‘반야심경’을 새긴 장면. 오영수는 이 세트장을 보존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코리아픽처스 제공

그 세트장은 영화가 끝난 뒤 철거됐는데, 오영수는 보존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다.


글은 누구에게 배웠는지 물었다. “글은 서당 훈장을 했던 할아버지에게 배웠죠. 초등학교 때부터 제사 지낼 때 쓰는 지방을 직접 쓰라고 해서 그때부터 조금씩 쓰게 된 거죠.”


오영수에게 글 하나를 써달라고 했다. 그가 에이포(A4) 용지에 쓴 글은 ‘緣’(인연 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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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가 12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 와 인터뷰를 하던 중 에이포(A4) 용지에 ‘緣’(인연 연)을 썼다. 성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기덕 감독은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다른 노스님을 누구로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안성기 또는 전무송 가운데 누가 괜찮냐’고 김 감독이 물어보더군요. 안성기보다는 전무송이 괜찮을 것 같다고 얘기해줬죠. 그런데 그 배역이 좋았나 봐요. 영화를 보니 김 감독 본인이 직접 출연했더라고요.”


오영수에게 영화의 4계절 가운데 어느 계절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까? “아무래도 낙엽 지는 가을이죠. 그때 내 모습하고 계절 모습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환갑인 60살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나 역시 단풍 지어 떨어질 날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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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오영수는 <씨네21> 과 한 인터뷰에서 “자연스럽게 연기한다고 리얼리티가 아니에요. 거기에 미적인 것이 들어가야지”라고 말했다. 이혜정 기자

오영수는 이 작품이 자신에게 마지막 선 굵은 작품이 될 거라고 여겼다. “ 영화를 찍고 난 뒤, 나는 그 영화로 이젠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내 이름을 알렸고, 영화 자체로도 괜찮은 작품이었으니까. 내 인생에 하나의 획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그가 쓴 인연 ‘연’ 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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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가 12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 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겨울, 장민호와 인연이 쌓인 <3월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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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가운데)는 2018년 공연한 연극 <3월의 눈>에서 장민호가 했던 역을 맡았다. 국립극단 제공

오영수가 2018년 출연한 <3월의 눈>은 그에게 의미 있는 연극이었다. 이 작품은 2011년 3월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기념으로 장민호와 백성희가 출연해 초연한 연극이었다.


이 연극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연극 선배인 장민호가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이었다. 2012년 세상을 떠난 장민호는 국립극단에 입단한 뒤 60년 동안 23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극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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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서울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기념으로 장민호와 백성희가 초연한 <3월의 눈> 포스터. 오영수는 가장 존경하는 연극 선배인 장민호를 꼽았다. 국립극단 제공

<3월의 눈>은 재개발 열풍으로 한평생 일구어놓은 집 한 채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노부부, 장오와 이순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급변하는 시대, 사라져 가는 것을 향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연극은 재개발로 한 짝 한 짝 뜯기며 사라지는 한옥이 책상이 되고 밥상도 되며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순리를 보여준다. 3월의 눈처럼 반짝 사라지는 우리네 인생사를 펼쳐낸다.


장민호는 <3월의 눈> 초연에 출연할 때 오영수에게 공연이 끝나면 바로 와달라고 했다. 버티기가 힘들다며 안아달라고 했다. “장민호 선생님 폐가 (기흉으로) 많이 안 좋을 때였어요. 무대에서 인사할 때 서서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거였죠. 그래서 무대에서 안아달라고 하신 거였어요.”


오영수는 장민호가 연기의 정수를 가르쳐 준 선배라고 했다. 오영수가 환갑을 넘어 나름 연기에 자부심이 있을 때, 장민호가 술자리에서 ‘오영수! 네 연기는 가짜야”라고 했다. “‘연기를 안 하는 듯이 연기를 해라’는 말씀이셨죠. 장민호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셨을 때가 80대였고, 저는 60대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연륜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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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세상을 떠난 장민호는 국립극단에 입단한 뒤 60년 동안 2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극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다. <한겨레> 자료 사진

오영수는 인생을 담은 작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여정씨가 출연한 <미나리>, 일본 <철도원> 같은 영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해요. 노배우가 인생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를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많이 만들잖아요. 우리도 이제 그런 영화를 누군가는 만들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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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공연한 연극 <3월의 눈>에서 부부 사이로 나온 오영수와 정영숙. 국립극단 제공

오영수 역시 3년 전 폐렴을 앓으면서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처음에는 기침 감기인 줄 알고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어요. 큰 병원에서도 이게 염증인지, 암인지, 결핵인지 확인을 못 했어요. 나중에는 폐렴으로 확진되고 격리됐죠. 의사가 ‘만만치 않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그는 떨어지는 낙엽처럼 삶의 마지막을 느꼈다고 했다. “제 몸무게가 평소 60kg이었는데, 그때는 일주일 만에 10kg이 빠졌어요. ‘이게 마지막인가’ 싶어 가까운 사람들을 부르려고 했어요. ‘이렇게 가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살아 나왔죠. 죽음 문턱까지 가보니 삶에 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돈과 명예,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봄, 또 다른 시작이 된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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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해사하게 웃으며 결승선을 넘는다. 그는 “그냥 웃은 거”라며 “부담 없이 찍은 장면”이라고 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갈무리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해사하게 웃으며 결승선을 넘는다. “그냥 웃은 건데. 하하. 오일남의 특징은 치매, 뇌종양, 사람 속이잖아요. 그런 캐릭터를 염두에 두면서 연기했어요. 황동혁 감독은 ‘선생님이 알아서 하시라’고 해서, 부담 없이 찍은 장면이었죠.”


그의 표정 연기는 이때만이 아니다. 이정재와 구슬치기를 하며 ‘깐부잖아’라고 말할 때 역시 표정엔 슬픔, 배신감, 애처로움, 희망이 묻어난다. “그 장면을 찍을 때 나도 울었어요.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정직하게 살아온 기훈이 살기 위해 속이잖아. 인간의 한계를 느꼈죠.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확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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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구슬치기 장면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나도 울었다”며 “가장 인간적인 삶을 보면서 눈물이 확 났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갈무리

‘깐부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맘에 드는지를 물었다. “‘깐부 할아버지’보다 ‘깐부 아저씨’가 더 좋을 텐데…”라는 농담을 던졌다.


그는 ‘깐부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좋아한다며 ‘깐부 정신’을 강조했다. “네 것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게 깐부 정신이죠.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정치적인 갈등, 남녀 갈등. 이런 갈등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깐부 정신’이 필요하죠.”


인터뷰는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 원로 배우로서 젊은이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해 달라고 했다. “자신을 믿고 자신감을 가져 보세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예요. 코로나로 힘들 때지만 버티는 힘이 필요해요.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찾아 밀고 나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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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일남이 죽는 마지막 장면”이라며 “그의 죽음을 보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갈무리

<오징어 게임>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짚어 달라고 했다. “일남이 죽는 마지막 장면이겠죠. 일남의 삶이 과장된 게 있긴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일남처럼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면서 살아가죠. 그의 죽음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해요.”


이병헌은 병실 장면에서 처음 봤다고 했다. “이병헌씨는 병실 장면을 찍을 때 처음 봤어요. 황 감독이 누구인지 얘기를 안 해줬거든요. 이병헌씨가 나오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딱 보니 이병헌씨이었죠.” 젊었을 때 오영수와 비교하면 누가 잘 생겼는지 물었더니 “젊었을 때 내 얼굴을 기억을 못 해, 비교가 안 되네요. 하하.”


<오징어 게임이>이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인기를 끈 이유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인간의 희로애락, 삶, 죽음을 잘 보여줬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들 놀이에 인간의 삶을 투영한 점도 좋았고요.”


그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만든 ‘밈’(특정 사진이나 동영상을 재미있는 인터넷 콘텐츠로 재가공하는 것)이 인터넷에서 회자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 “딸내미가 보여주기도 하고, 나도 본 적이 있는데, 뭘 자꾸 그런 걸 만들어서….”


오영수는 광고 논란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출연한 작품에 맞지 않는 광고는 사양하고 싶다고 얘기한 거였어요. 작품에 맞지 않는 광고에 나와 돈을 버는 게 깐부 정신과도 맞지 않은 거죠. 연극만 한다는 게 왜 나갔는지 몰라요.”


그는 말을 이었다. “연극이나 영화는 내가 적극적으로 좋은 작품이면 나서는데, 광고는 소극적이어서 많이 생각하는 편입니다. 괜찮은 광고 있으면 나가야죠. 근데 그런 논란 때문인지 요새는 (광고 문의가) 조용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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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라스트 세션> 에 출연하는 배우 오영수는 “두 배우가 두 시간 가까이 대사를 하는데 숨 쉴 여유가 없을 정도로 대사가 많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파크컴퍼니 제공

오영수는 1월부터는 <라스트 세션> 공연이 있어 바쁠 것 같다고 했다. “<라스트 세션> 대사 외우기가 참 힘드네요. 셰익스피어나 유명 희곡 작가는 아무리 주연 배우라고 할지라도 좀 쉴 여유를 주는데, 이 작가는 그렇지 않아요. 두 배우가 두 시간 가까이 대사를 하는데 숨 쉴 여유가 없을 정도야. 작가가 ‘참 잔인한 친구’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대사는 어떻게 외울까? “일부러 택시 안 타고 지하철 타면서 외우죠. 날이 따뜻할 때는 벤치에 앉아 대사를 외우기도 하고요. 겨울에는 집에서 외우기도 하고요. 요즘엔 명사를 자꾸 까먹게 되더라고요. 하하.”


오영수는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새해 1월7일부터 3월6일까지 대학로 티오엠(TOM) 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를 연기한다.


내년쯤엔 그가 <파우스트> 주인공 파우스트로 무대에 다시 서는 모습을 50여년 만에 볼 수 있을 것 같다. 31살 오영수에서 78살이 된 오영수는 그렇게 연극 외길을 걸으면서 다시 한 번 도전하는 것이다.


오영수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물어봤다. “노래 듣기는 좋아하는데 잘하지는 못해. 좋아하는 노래는 프랭크 시내트라 <마이웨이>에요.”


그렇게 계절은 다시 돌고, 그렇게 그는 외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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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가 12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 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